소설리스트

55화 (55/200)

“네? 추가로 두 분이요? 대체 어떤 분들입니까?”

“지금도 좁은데 더 부르시겠다고요? 우 사장 너무하시네.”

“아니! 우 사장. 나한테도 이야기 안 해 주고 또 부를 분들이 있습니까? 그 대단한 분들이 대체 누굽니까?”

다들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백철웅이 식은땀을 흘리며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이고, 의원님들. 조금만 진정해 주십시오. 이미 안면이 있는 분들일 겁니다.”

나는 의원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좁은 방을 나가 옆방으로 이동하였다.

끼익.

방문이 열리고.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방과 동일한 사이즈의 방 안에는 두 명의 남성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바로 DC 소프트 정선호 대표와 엔젤 머니 원화성 회장이었다.

대기 중인 둘의 표정은 자못 달랐다.

‘이미 여야의원들과 자주 미팅을 가진 원화성 회장은 여유로운 반면, 정선호 대표는 이런 자리가 처음인지 얼굴이 굳어 있군.’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원화성이 먼저 입을 뗐다.

“후후.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의 목소리가 시장의 장사치들처럼 시끄럽기 그지없군요.”

“바로 옆 방에 계시니까 더 크게 들렸을 겁니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저렇게 다들 칠색 팔색을 하는데요. 제가 생각해도 좁습니다, 좁아.”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회장님과 대표님이 양해 좀 해 주세요.”

나는 둘을 데리고 다시 옆방으로 이동했다.

원화성과 정선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서자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아니! 원화성 회장? 그리고 DC 소프트 정선호 대표 아니요?!”

나는 의원들에게 둘을 소개하고, 다시 둘에게는 의원들을 소개했다.

원화성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하하. 여기 계시는 분들 모두 저랑 이미 술 한잔하신 분들입니다. 저는 됐고 옆에 정 대표나 제대로 소개해 주세요.”

“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의원님들. DC 소프트의 정선호 대표님이십니다. 이번에 한국 프로 야구 아홉 번째 구단주가 되셨죠.”

모두가 둘의 깜짝 등장에 환호했다.

“이야. 원화성 회장도 그렇고 정선호 대표도 만나기 힘든 분들 아닙니까? 그런데 도대체 어디 있다가 이렇게 바로 나타나시는 겁니까?”

“바로 옆 방에서 대기하고 계셨습니다.”

“아니 그럼 저 두 분,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겁니까?”

“네. 여러분들 오시기 전부터 옆 방에 계셨습니다.”

이광우가 당황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바로 합석을 하면 됐지 왜 이렇게 요란을 떨어요?”

“두 분을 같이 뵌다고 하면 부담감을 느끼실지 몰라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응? 그게 무슨?”

모두 의아하다는 듯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몇몇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원 회장은 대표적인 셧다운제 반대론자고, 정 대표는 그 법안의 관계자셨군요?”

국일당 원내 대표 김석진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맞습니다. 김 의원님. 오늘 여러분들을 한자리로 부른 건 꼭 인사를 드리기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화기애애했던 술자리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랭하게 변했다.

“우 사장. 이미 셧다운제는 법안 심사 소위를 넘어섰어요. 법사위 전체 회의와 국회 본회의만 거치면 법령으로 공표된단 말입니다.”

“그래요. 우 사장이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본회의에 올라온 법안은 대부분 가결됩니다. 이미 여야 간 의견을 조율할 만큼 했고요.”

“이미 법사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할 만큼 이견이 없습니다. 늦었어요.”

여당 의원이고 야당 의원이고 한결같이 고개를 저으며 어두운 얼굴을 보였다.

“법사위 통과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는 등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 건과 이 건은 확연히 달라요. 세종시 수정안은 명분이 없었으니까요.”

명분이 없다는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정선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닙니다. 의원님. 셧다운제야말로 그 어떠한 명분도 없는 주먹구구식 법안입니다!”

“아니, 정 대표. 당신은 게임 업계 대표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우리 유권자들. 아니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선호는 자신의 앞에 있던 술잔에 스스로 술을 붓더니 단번에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술잔에 술을 붓고는 목구멍으로 넘기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원화성이 술을 따라 주려 했지만 정선호는 한사코 거절하며 10잔의 술을 연이어 마셨다.

김석진 의원이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우세진 사장이 불러서 기분 좋게 왔건만 야구 구단주라는 분은 예의라는 걸 모르는가 봅니다.”

김석진도 자신의 술잔에 든 술을 입안으로 꿀꺽 넘겼다.

그때였다.

탁!

홀로 11잔을 마신 정선호가 술잔을 테이블에 강하게 내리쳤다.

모두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의원님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셧다운제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모두 그의 갑작스러운 돌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 좁은 방 안에서 말이다.

* * *

4월 29일, 국회 본회의.

셧다운제의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자로 나온 2명의 의원을 향해 언론사 카메라의 플래시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여당인 국일당의 원내 대표인 김석진 의원과 제1 야당인 민주 통일당의 원내 대표인 이광우 의원이 연이어 셧다운제에 대한 반대 토론자로 나선 것이었다.

처음은 김석진의 차례였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는 힘차게 외쳤다.

“정치권에서 시작한 문제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커지고, 게임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등 국민 여러분과 게임 업계 분들에게 무척이나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표결을 끝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그는 잠시 단상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국내 게임 업체에 대한 역차별로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본인 인증 기술에 따른 기술적인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창 성장하고 있는 게임 산업에 지원을 하지는 못할망정 제동을 거는 것만큼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력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김석진 의원의 15분여간의 연설이 끝나자 이어 이광우가 단상에 올랐다.

“앞서 단상에 서신 김석진 원내 대표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죠? 차라리 자정부터 6시까지 게임을 제한하지 말고 공부를 제한하도록 하는 게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훨씬 도움을 줄 거라고요. 지나친 제한은 게임 업계는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 이광우는…….”

그 둘뿐이 아니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여러 의원들이 반대 토론자로 나서 셧다운제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투표 결과는 본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하였다.

재적의원 291명 중 251명이 투표에 참석하여 찬성 55, 반대 150, 기권 46명을 기록.

압도적인 표 차로 셧다운제는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 * *

이날 국회 현장에 있던 기자들 대부분이 당황하며 기사를 고쳐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 본회의 통과를 예상하며 셧다운제 실시가 게임 업계에 미칠 영향이나 효과에 대한 분석 기사를 이미 써 놓았는데 난데없이 부결이 났으니 깜짝 놀란 것이었다.

“김석진 의원이랑 이광우 의원이 반대 토론자로 나서서 놀라긴 했지만, 그냥 정치권에서 게임 업계에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정도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였어?”

기자들이 화를 내며 기사를 수정하는 사이.

오프라인에서는 준비해 두었던 셧다운제 부결의 의미와 셧다운제의 문제점과 게임 과몰입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대안들에 대한 심도 깊은 기사가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게임 유저들이 이 같은 결과에 환호하며 오프라인의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해외의 게임 유저들도 오프라인이 올린 번역 기사에 흥미를 보이며 국가에서 게임과 유저를 강제하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야? 그럼 책 많이 읽으면 책도 못 읽게 하려는 거야? 통과됐으면 진짜 말도 안 되는 21세기 법안 베스트 1위가 됐을 듯.>

<아니 이게 실행되었다고 해도 애초에 어떻게 막겠다는 거지? 부모 아이디로 들어가면 어쩔 건데?>

<게임은 새벽에 하는 게 맛인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네.>

<한국의 게임 업계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런 명작들을 만드는구나. 일본 게임! 분발하라구!>

나는 셧다운제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기에 위헌의 소지가 컸으며, 만약 통과되었다면 국내 게임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힐 뻔하였다면서 셧다운제 폐지는 이번 국회가 내린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문장으로 기사를 마무리하였다.

클릭.

기사 송고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의자 깊숙이 몸을 눕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나저나 정선호 대표.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가 내로라하는 국회의원들을 훈계하며 셧다운제의 모순과 문제점에 대해 한참 동안 떠들어 댔던 게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크크크.”

당시의 모습을 생각하며 의자 깊이 누워 웃고 있는 사이.

모니터에서 메신저 화면이 깜빡거렸다.

백철웅이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가 보낸 메시지를 살폈다.

<우 사장. 혹시 오늘 괜찮으면 나랑 둘이 술 한잔하렵니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그는 단 한 번도 단둘이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화문 세종 문화 회관 인근의 허름한 골목에는 오래된 밥집과 술집들이 즐비했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에 역사가 쌓이는 동안 주변에 있는 식당들 역시 함께 나이를 먹어 간 탓이다.

백철웅은 언제나처럼 나보다 한 발짝 앞서 혼자 걸어 나갔다.

애써 그의 옆에 서면 그는 속도를 높여 거리를 두었다.

‘묘한 고집이 있으시다니까.’

어디를 가냐고 물어봐도 도통 답이 없는 백철웅.

네온사인이 가득한 골목을 지나 그가 향한 곳은 낡은 타일로 장식된 2층짜리 건물이었다.

성인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정도로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서니 자그마한 나무문이 보였다.

2층에 다다른 백철웅이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자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였다.

나도 모르게 가사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렸더니 백철웅이 얼굴 가득 웃음을 안고는 말했다.

“이 노래 알아요?”

“물론이죠. 이 노래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요.”

“하하. 그래요? 오래된 노래인데 아시는군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제목처럼 정말 아름다운 곡이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안타까움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노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 역시! 우 사장은 정말 모르는 게 없구려.”

“과찬이십니다.”

나는 백철웅이 안내해 주는 창가 쪽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백철웅은 이 집의 단골인지 술집 사장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 오늘은 제가 무척 아끼는 분을 데리고 왔습니다. 서비스 좀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지요. 그나저나 항상 혼자 오시더니 오늘은 동행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술집 주인은 한동안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보아하니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고. 나이 차가 제법 나는 것 같은데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군요.”

“하하, 같은 사장입니다.”

“같은 사장이요? 그럼 혹시 오프라인의 우 사장님?!”

“맞습니다. 이분이 저와 함께 오프라인을 이끌고 계시는 우세진 사장입니다.”

“이럴 수가. 이야. 실물은 첨이라 몰라뵈었네요. 뭔가 연예인을 보는 기분입니다.”

술집 주인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자 백철웅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저도 같은 사장인데, 이거 차별 대우 아닙니까? 사장님.”

“아니 백 사장님은 저희 가게 단골이시고, 우 사장님은 여기 처음이니까 그렇죠.”

“그러다 닳겠습니다! 저번에 키핑해 둔 술이나 꺼내 주세요.”

술집 주인은 바 너머 진열장을 잠시 뒤지더니 절반 정도가 비어 있는 위스키를 한 병 가져왔다.

병 가운데에는 한자로 ‘響’이 크게 쓰여 있었다.

“울릴 향?”

“하하. 일본어로는 히비키라고 합니다. 하모니라는 뜻이죠.”

“아하. 싱글 몰트가 아니라 블렌디드 위스키인가 보군요?”

“오호라. 맞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입니다. 맛과 향이 정말 뛰어나죠.”

“백 사장님 위스키 좋아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보통 소주만 드셨잖아요?”

“소주는 여럿이 마실 때 함께 마시면 좋은 술이죠. 가격도 저렴하고요.”

“위스키는요?”

“그건 혼자 마실 때나 우 사장님처럼 좋은 분들하고 소소하게 마실 때 좋죠. 비싸니까요.”

백철웅은 스트레이트 잔에 위스키를 두 잔 따르더니 내게 권했다.

등불에 비친 위스키가 밝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첫 잔은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게 좋습니다. 위스키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요. 독하면 이후부터는 온더록스로 즐기면 되지만 요건 그냥 스트레이트가 훨씬 좋습니다.”

그의 말대로 스트레이트로 위스키를 입안에 털었다.

위스키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니 새삼 식도의 위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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