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200)

“네. 모 기업의 중국 주재원이더군요.”

“에혀.”

“게다가…….”

“……?”

“임신한 아내를 위한답시고 가습기 살균제를 3개월 치나 사다 놓고 떠났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으니 그분의 마음도 참.”

아무도.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박창후가 떨리는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 산모의 아이는?”

박경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취재 차량으로 향하는 길이 무거웠다.

나는 돌연 길에 우뚝 멈춰 서고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의사 인터뷰는 이쯤하고 지금 당장 충북 오송으로 갑시다.”

“오송이요?”

“아니 거기는 왜요?”

“아까 분명 박 교수가 질병 관리 본부에 역학 조사를 요청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죠.”

“질병 관리 본부가 바로 오송에 있기 때문이죠.”

2시간에 걸친 주행 끝에 우리는 충북 오송에 위치한 질병 관리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담당 연구관을 찾아내 약속을 정한 우리는 곧장 그와 만나기로 한 미팅 룸으로 들어섰다.

얼마 후 30대의 여성이 미팅 룸에 나타났다.

여성은 무척 피로에 절은 모습이었다.

화장은커녕 옷도 대충 걸친 그녀가 귀찮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게 뭐라고요?”

그녀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안재영이 웃으며 말했다.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궁금한 게 있어서 서울에서 바로 내려왔습니다.”

“네네. 그러니까 뭐가 궁금하냐고요.”

안재영은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질문을 던졌다.

“아시다시피 전국이 난리입니다. 원인 미상의 폐 질환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생고생을 하고 있죠.”

여성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아닌가 온 국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만나 본 의사분께서는 바이러스는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그제야 여성은 호기심이 생긴 듯 안재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구죠? 똑똑한 분이시네요.”

“서울 태산 병원의…….”

“박경구 교수님이요?!”

“그렇습니다.”

“아하! 그럼 제대로 찾아오셨네요. 그분이 저희한테 역학 조사를 요청하신 분이거든요.”

“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다고 아까 전화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여성은 안재영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는 갑자기 휘파람을 불며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두고 보세요. 아주 엄청난 후폭풍이 올 테니까요.”

“후폭풍이라니.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안경을 살짝 내리더니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참이나 내 얼굴을 노려본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러더니.

“꺄악!!!”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미팅 룸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라도 했나?”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15분이 지난 뒤였다.

새가 둥지를 틀 것 같던 똥 머리는 제법 단정해졌고, 셔츠 위에는 하얀색 가운을 덧입었다.

게다가 새로 화장을 하고 와서인지 도저히 아까와 같은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소곳한 자세로 다리를 모으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질병 관리 본부 조아라 연구관입니다.”

“네. 오프라인에…….”

“우세진 사장님이시죠?!”

“아 네. 맞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저기 이것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갑자기 종이와 펜을 나에게 건네더니 사인을 부탁했다.

“팬입니다. ‘조아라 씨 힘내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부탁드려요.”

내가 웃으며 사인을 한 종이를 그녀에게 건네자 그녀는 무척이나 소중한 보물을 받은 것처럼 그것을 꼭 껴안고는 기뻐했다.

“우 사장님이 직접 와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니, 아까 전화로 분명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안재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도저히 듣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하시다고요?”

“아 네. 아까 엄청난 후폭풍이 있다고요?”

“아하! 맞아요! 이거 진짜 엄청난 사건이에요.”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 세간에는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이다 뭐다 말들이 많은데 바이러스는 무슨!”

카메라를 들고 있던 박창후가 궁금한지 대뜸 물었다.

“그러면요?”

조아라가 박창후를 살짝 돌아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입니다!”

“네? 가습기 살균제요?”

* * *

돌아오는 차 안은 시끄러웠다.

모두 각자의 의견을 말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여자가 하는 말 확실한 거야? 괜히 기사 잘못 썼다가 손해 배상 청구라도 오면 곤란한데?”

“아니 박 부장님. 아까 그 여자 눈 안 봤어요? 아주 눈이 돌아갔다니까요! 그건 찐이에요, 찐! 그 여자가 맞다는 것에 제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걸겠습니다.”

“사내새끼가 겨우 새끼손가락으로 되겠어? 좀 더 큰 걸 걸어 봐.”

“저는 박 부장님과 다르게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그건 좀 곤란한데요.”

“거봐. 안 부장. 자네도 확신을 못 하잖아.”

“그래도 예비 세포 독성 실험에서는 확인되었다잖아요?”

누군가의 말에 박창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야. 그 여자도 그랬잖아. 그건 단지 폐 세포를 시험 물질에 담그는 방식이라 가습기를 사용하는 경우와는 조건이 다르다고.”

“아니 그래도.”

“아니고 나발이고, 얌마. 너는 간을 술에 직접 담글 때랑 분무기로 뿌릴 때랑 그 효과가 같다고 생각하냐?”

박창후의 말에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구관 한 명의 말만 믿고 기사화했다가 오히려 우리가 후폭풍을 맞을 수 있어. 좀 더 신중해야 해.”

박창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내가 이 사건의 결과를 몰랐다면 말이다.

나는 박창후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분명한 건 이번 폐 손상 환자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자주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아직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과의 확실한 인과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잖아요.”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걸 끝까지 파헤치는 게 기자 정신 아닙니까.”

“아니 그건 그렇지만. 사실이 아닌데 괜히 설레발을 쳐서 업체에 피해를 줄 우려도 있잖습니까. 실제로 언론이 잘못 보도해서 업체가 망한 사례도 많고요.”

박창후의 말은 사실이었다.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기는 어렵다.

오보를 통해 이미지가 나빠진 회사나 회사의 제품이 정정 보도를 통해 다시 이미지가 회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박 부장님 의견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네, 사장님. 실제로 제가 HBS에 있을 때 한 가구 업체를 그렇게 보내 버린 적이 있어서 영 꺼림칙하네요. 제보만 믿고 기사화했다가요.”

박창후가 씁쓸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환자 대부분이 2, 30대의 산모들과 어린아이들이에요.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하루빨리 문제를 제기해서 피해를 막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휴. 알겠습니다. 일단은 생명이 우선이니까요.”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빠르게 조아라가 건네준 자료들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원인 미상 폐 손상,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수도>

<원인 미상 폐 손상,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성은 낮아>

<가습기 살균제 주의보. 인체에 무해하지 않아>

우리가 올린 기사는 순식간에 엄청난 반향이 일으켰다.

정부와 언론사를 비롯한 그 누구도 가습기 살균제가 이번 폐 손상의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실제 질병 관리 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일 수도 있다고 밝히는 건 지금으로부터 3개월 뒤의 일이니까.’

여론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조심해야 한다며 오프라인의 기사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주장으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압권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 업체들이었다.

그들은 연합하여 오프라인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오프라인의 책임질 수 없는 발언으로 가습기 살균제 업체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았다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서는 모습이 마치 악당과 싸우는 의용군 같았다.

고려 일보를 비롯해 많은 메이저 업체에서도 이들의 주장을 1면에 실으며 오프라인을 간접 공격했다.

국내 가습기 살균제 점유율 1위 업체의 사장은 고려 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저런 저질 언론이 버젓이 활보하게 둬서는 안 됩니다. 저희 가습기 살균제 제조 업체들은 모두 끝까지 오프라인의 오보와 망언에 맞서 저희의 정당함을 증명해 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희에게 힘을 주십시오! 폐 손상으로 고통받고 계시는 환자분들과 가족 여러분,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오프라인의 보도 이후 가습기 살균제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오프라인의 보도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물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 몰지각한 이들이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하는 모습을 커뮤니티에 올렸던 것.

“뭐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박창후가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관종들은 답이 없죠. 저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고나 하는 걸까요.”

안재영 역시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웃긴 건 살균제 제조 업체들이에요. 저걸 활용해서 바이럴 마케팅에 나서고 있어요. 온라인 곳곳에 저 글이 올라오고 있다니까요. 아무 문제 없다고.”

“끼리끼리 논다더니. 어휴.”

뒤에서 가만히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백철웅도 나서서 한마디 거들었다.

“살균제 업체들도 문제지만 언론들도 심각합니다. 업체와 전문가 인터뷰를 핑계로 오프라인을 공격하고 있어요. 지금 실검 인기 순위에 ‘오프라인 망발’이 며칠째 걸려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네. 백 사장님. 아주 잔치를 벌이는 모양이에요. Never의 언론사별 뉴스 항목에도 죄다 오프라인 이야기뿐이고요.”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언론의 사명을 잊은 채 트래픽 늘리기에 급급한 거죠. 쯧쯧.”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를 쓴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오프라인의 기사가 근거가 부족하다거나 업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섣부른 행동이었다는 지적이었다.

이 사안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한 회의가 길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안재영이 어딘가에서 전화를 받더니 분개했다.

“야 이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아니, 안 부장님 왜 그러세요?”

“고려 일보 동기 녀석한테 제보가 들어왔는데, 가습기 살균제 1위 업체인 렉시에서 우리 보도를 반박하는 자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자체 실험이요?”

“네. 국내 독성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한테 관련 연구를 맡겼다네요.”

“아니, 사람이 죽었잖아요! 제품에 위험성이 있는지 연구를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우리 기사가 틀렸다는 걸 입증하기 위한 연구라니요!”

“그걸 맡긴 업체나 그걸 수락한 전문가들이나 똑같은 사람들이네요, 정말! 돈 몇 푼이면 사람 생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악마들!!”

이수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나는 흥분되어 있던 회의 분위기를 잠시 진정시키고 안재영에게 물었다.

“조아라 연구관에게는 연락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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