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200)

“아직이요. 이번 보도 때문에 질병 관리 본부에서 징계 먹고 잘 연락이 안 되네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질병 관리 본부도 엄청 몸 사리네요.”

“렉시를 비롯한 제조 업체에서 압박을 주는 거겠죠. 이거 책임질 수 있냐고요. 로비도 장난 아닐 테고.”

“아무튼 이 건은 사장인 제가 책임지고 진행할 테니, 여러분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외부 전문가들도 만나 보시고, 피해자도 만나 보시면서 심층 보도에 힘써 주세요.”

“네! 사장님!”

* * *

그동안 일방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업체의 주장만을 다루던 고려 일보가 갑자기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5월의 끝자락이 보이는 어느 날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순 없어>

“미친. 누가 친일 신문 아니랄까 봐 일제에 붙었던 놈들이 하루아침에 독립을 옹호하는 꼴이네.”

박창후의 말에 최루리가 웃으며 말했다.

“타 언론사가 우리를 저격하는 건도 줄고 있잖아요.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하다는 얘기도 점점 많이 돌고 있고요.”

“그게 당연한 건데, 지금까지 오프라인 까는 거에 재미 들려서 똥오줌을 못 가린 거죠.”

오프라인의 보도가 나간 지 보름이 지나고.

각 병원에서 원인 미상의 폐 손상으로 입원하는 환자 비율이 뚝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너도나도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면 커뮤니티에서 가습기 살균제 흡입을 인증했던 이들은 하나둘씩 병원에 실려 가면서 오프라인의 주장이 옳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크크. 쌤통이다.”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면 안 되죠.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데.”

“흥. 분별없이 행동한 지네들 탓이죠. 그들이 남한테 고통 준 건 생각 안 하고요?”

“그동안 피해자가 어린아이들과 산모 등 여성 위주였는데, 일부러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20, 30대 남성들이 병원에 실려 온 게 임팩트가 크긴 하네요.”

“같은 남자지만 부끄럽네요. 반성하겠습니다.”

안재영이 홍지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자 홍지혜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녜요. 커뮤니티 인증 글이 모두 남성만 있었던 건 아니었고요. 아무튼 이제 저희도 더 힘을 낼 수 있겠어요.”

“그렇죠. 많은 전문가들이 저희 의견에 힘을 실어 주고 있어요.”

“저희가 꾸준히 그들을 찾아서 목소리를 전한 덕분이겠죠.”

나는 직원들을 추스르며 말했다.

“그동안 모두 마음고생 심했을 텐데, 조금만 더 힘을 내 봅시다.”

“넵!”

퇴근 무렵.

방에서 나가려는데 안재영이 헐레벌떡 방 앞으로 뛰어왔다.

“헉헉. 사장님.”

“무슨 일이에요?”

“조…… 조아라 씨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조아라 씨요? 뭐라고요?”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요!”

5월의 마지막 날.

질병 관리 본부는 서울 보건 복지부에서 브리핑을 열고 원인 미상의 폐 손상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최근 출산 전후 산모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갔던 원인 미상의 폐 질환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질병 관리 본부의 감염병 관리 센터장이 말문을 열자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는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며 국민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한편 제조 업체에는 제품 출시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살균제와 폐 손상 간에 명확한 인과 관계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3개월간 동물 흡입 독성 실험 등을 추가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앉아서 타이핑하던 기자들이 손을 들고는 질문을 던졌다.

“질병의 명칭이 도중에 달라졌는데요, 이유가 뭡니까?”

“처음에는 급성 간질성 폐렴으로 명명했지만, 영상 의학 조직학적 소견을 고려해 원인 미상 중증 폐 질환으로 변경했었습니다. 그러다 유사 사례를 수집한 결과 원인 미상 폐 손상으로 정리한 것이고요.”

또 다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환자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얼마나 자주 사용했습니까?”

“평균적으로 3~4년간 매년 4개월가량 가습기를 사용하였습니다. 대부분 가습기 물을 보충할 때 살균제를 넣었고, 한 달에 평균 1병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는 안재영의 차례였다.

“해외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나요?”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해외에서는 가습기 및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국내처럼 보편화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말인즉 살균제라는 것을 사람이 흡입하게 설계한 것 자체가 미스 아닐까요?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출시한 업체에서 출시 당시 이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개발한 거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조사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감염병 관리 센터장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자 안재영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인 PHMG 등이 코나 입으로 흡입될 때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업체는 물론이고 이를 승인한 정부에서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브리핑 회견장은 한동안 안재영이 쏟아 내는 질문과 이에 쩔쩔매는 감염병 관리 센터장의 모습이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이어졌다.

* * *

질병 관리 본부의 발표 후 나는 현장에 있던 조아라를 불러 따로 저녁 식사를 가졌다.

“여기 되게 비싼 곳 같네요?”

가벼운 캐주얼 차림의 조아라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 연구관님이 해 주신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뭘요. 진실을 가릴 순 없으니까요. 학자로서 당연한 행동이에요.”

조아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열심히 칼질을 하더니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 표정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위에서 압박이 심했나 봐요?”

“어휴. 말도 마세요. 오프라인은 물론이고 언론사 어디랑도 연락하지 말라고 스마트폰도 뺏었다니깐요.”

“스마트폰을 뺏어요? 그건 중대한 인권 침해 아닙니까!”

“됐어요. 흐흐. 그나저나 이거 데이트 맞죠? 우 사장님?”

“물론이죠. 오늘 데이트가 마음에 드시면 좋겠네요.”

식사가 끝나고 이어진 티타임.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른 반면 그녀는 파르페를 주문했다.

어린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떠먹는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슬슬 본론을 꺼냈다.

“서울대 나오셨더라고요?”

“어머! 벌써 제 출신 대학까지 조사하신 거예요? 빠르시네요, 호호.”

“그리고 지도 교수님이.”

“한도용 교수님이시죠.”

“네. 렉시에서 이번 사건 관련하여 연구를 의뢰한 분이기도 하고요.”

조아라는 아무 말도 없이 끝까지 파르페를 떠먹었다.

그녀는 한 방울도 아까운 듯 녹은 아이스크림을 몇 번이나 떠먹더니 한참 후에야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오늘 저를 보자고 하신 건 어떤 이유일까요? 단순히 저녁을 사 주시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교수님이 빚이 많으시더군요.”

“언론사 사장님은 무섭네요. 맞아요. 저 박사 딸 때도 매번 주식으로 돈을 꼬라박곤 하셨죠.”

“나쁜 분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제자분들도 많이 챙겨 주셨고, 논문도 많이 쓰셨고요.”

“그런데, 그 말씀을 왜 저한테 하시는 거죠?”

“한 교수님이 조 연구관님 은사시기도 하고, 또 같은 학자로서 진리를 탐구하시는 분이니까요.”

“그래서요?”

“조 연구관님이라면 그분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막아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던 조아라가 창밖으로 내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우 사장님이 얻는 이익은 뭐죠? 그리고 제가 얻는 이익은요?”

“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진리 추구 아닌가요? 그리고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진실 추구.”

우리는 둘 다 씨익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한도용 교수가 기자 회견을 열었다.

약속된 시간을 1시간여 앞두고 기습적으로 밝힌 기자 회견이었지만 렉시와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중대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자들이 서울대로 몰렸다.

“죄송합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렉시로부터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만들어 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한도용은 연이어 터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어느 날 갑자기 아끼는 제자가 찾아와서는 제게 묻더군요. 교수님은 학자예요? 아님 사기꾼이에요?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기자 회견을 마친 한도용 교수는 곧바로 긴급 체포되었다.

여론은 들끓었다.

사람들은 영혼을 판 사기꾼이라거나 악마의 보고서라며 그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를 거친 비난의 화살은 부정 청탁을 한 렉시와 가습기 살균제 제조 업체로 향했다.

비난의 정도는 도중에 자신의 부정을 밝힌 한도용 교수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영세한 제조 업체들은 회사 문을 닫아야 했으며, 대다수 업체가 장문의 사과문과 함께 피해자 보상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오직 렉시만이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들은 홈페이지에 간단한 입장문을 밝혔다.

<저희는 해당 제품과 질병의 인과 관계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으며, 한도용 교수에게는 어떠한 부정 청탁을 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검찰이 렉시의 전·현직 임원들을 줄줄이 소환하면서 렉시의 대표 또한 서울 중앙 지검에서 피 말리는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황당한 사건은 그가 18시간이 넘는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검찰 청사를 나왔을 때 일어났다.

“야 이 개놈의 새끼야! 이거나 맞아라!!”

대기하고 있던 피해자 유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 중앙 지검 청사 앞에서 렉시 대표를 향해 분노의 계란을 던졌다.

그리고 그 계란을 피하려던 그는 그만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통합 뉴스 속보로 그의 죽음을 접한 백철웅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중얼거렸다.

“인생 착하게 살아야 해. 착하게.”

한남동은 기묘한 동네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으로 손꼽히는 한편, 가난한 이들이 서로의 등을 맞대며 모여 사는 달동네가 공존하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한강진역에서 내린 나는 낡은 빌라 사이로 비좁게 난 골목을 지나 한남 대로로 내려왔다.

한남대로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왕복 차로 수가 12차로나 될 만큼 널따란 한남 대로의 양 측면에는 각종 고급 빌라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했다.

그 가운데 건물 전체가 짙은 보라색으로 칠해진 3층짜리 건물이 유독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오프라인의 캐릭터 매장 ‘오프라인 프렌즈 스토어’였다.

매장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북적이는 이들로 안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거대한 캐릭터 조형물 앞에 서서는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조형물 앞에 쓰인 ‘사진 촬영을 원하시는 분들은 입구를 가로막지 말아 주세요.’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였다.

사람 반 캐릭터 조형물 반이었던 1층 매장을 지나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1층보다는 사람이 적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매장은 상품들로 가득 채워졌다는 느낌보다는 여기저기 쉴 수 있는 여유 공간과 캐릭터 조형물을 적절히 배치하여 사진을 찍으며 놀기 좋은 테마 파크라는 느낌이 강했다.

여러 굿즈를 살피며 이동하는 사이.

“응?”

2층 매장 구석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수빈이었다.

멜빵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초여름인데도 빨간색 비니를 눌러 쓴 모습이 항상 단정하게 입고 다니는 회사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가게의 운영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여기 식탁에는 소품으로 먹을거리가 잔뜩 있으니까 이왕이면 실제 와인 병도 함께 놓여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리얼리티를 주는 거죠. 그리고 캐릭터 인형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움직이잖아요? 그걸 고정해 둘 수 있는 어떤 장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가게 직원들은 행여라도 그녀의 말을 놓칠까 한 자 한 자 빼곡히 적기 바빴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근처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 그제야 나를 눈치챈 이수빈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우 사장님! 주말에 여긴 웬일이세요?”

우리는 3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3층 전체가 캐릭터 상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였다.

통유리로 된 창가 쪽에 앉자 유리 너머로 한남 대로를 통해 빠르게 움직이는 차들이 그대로 보였다.

“우 사장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시죠? 그럼 그걸로 주문할게요.”

“고맙습니다. 이 부장님이야말로 오늘 주말인데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아. 제가 집이 이태원이라 여기랑 가깝거든요. 평일에는 바쁘니까 주말에 짬을 내서 가끔 이렇게 가게 컨디션을 살피곤 해요.”

“아까 보니까 여기 직원들한테 뭘 시키던데? 괜찮아요? 우리 직원들도 아닌데.”

그도 그럴 게 오프라인 프렌즈 스토어에 일하는 직원들은 오프라인의 정직원이 아니었다.

시범 사업이니만큼 1년 동안 우리 대신 운영을 담당한 업체를 선별하여 운영 중이었던 것이다.

“아니에요. 그들도 뭔가 배우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은 그런 니즈가 있어서, 제가 와서 캐릭터 배치 등에 관해 이야기해 주면 귀 기울여 들어 주시더라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하긴 일본 최고의 캐릭터 디자이너가 직접 와서 알려 주는데 그 친구들도 더 배우고 싶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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