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200)

정말로 오후 3시 반쯤 되자 준비했던 물량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입구에 있던 ‘Open’ 알림판이 ‘Close’로 바뀌었다.

‘이런 건 서울에서도 전통 있고 유명한 식당들에서나 가능한 건 줄 알았는데 대단하군.’

속으로 감탄을 하며 식탁과 의자를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쭈뼛거리며 내게 접근하는 게 보였다.

“저기…….”

“네?”

“진짜로 우세진 사장님 맞습니까?”

“네. 제가 우세진입니다만.”

“아이고, 실물이 훨씬 잘생겼네! 잘생겼어!”

그녀들은 발을 동동 굴리며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입을 귀에 걸치고서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세진아, 여기 우리 가게에서 일해 주는 분들이다. 인사해라. 여기는 제 아들 세진입니다. 우세진.”

“아오, 사장님. 정말 아드님이 너무 잘생기셨어요. 어찌나 듬직한지.”

“나도 이런 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도 잘생기고, 가게 일도 잘 돕고.”

“그뿐이야! 대한민국 최고 언론사 사장님이시잖아!”

엄마의 새 가게는 1층과 2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서빙하는 분들이 세 분, 안에서 요리하시는 분들이 세 분 계셨다.

엄마는 카운터를 지켰고, 아버지는 전천후 플레이어였다.

카운터가 바쁘면 카운터에, 서빙이 바쁘면 서빙을, 주방이 바쁘면 안에서 설거지와 채소 다듬기.

그러고 보니 저번에 봤을 때보다 부쩍 살이 여윈 모습이었다.

“아버지,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은 무슨. 느그 엄마가 고생 많제. 이 맛을 재현한다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던지.”

나는 문득 엄마의 해장국이 궁금했다.

“엄마, 나 배고픈데, 해장국 한 그릇 가능해요?”

“해장국? 다 떨어졌을 텐데.”

엄마가 주방을 바라보며 탄식을 하자 주방에서 주방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아드님 드실 양은 있습니다! 걱정 마이소!”

모두가 퇴근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가게 한쪽에 앉아 엄마가 내준 해장국을 앞에 두고 각오를 다졌다.

‘설령 엄마가 만든 그 옛날 맛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 실망하진 말자.’

엄밀히 말하면 엄마가 만든 해장국은 아니었다.

엄마가 레시피를 전수하여 주방에 있는 이들이 만든 엄마표 해장국.

나는 숟가락을 들어 선지 한 점과 국물을 담고는 입안으로 가져 갔다.

후루룩.

깜짝 놀란 나는 연이어 숟가락을 뚝배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든 그 해장국 맛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러니 손님들이 안 오고 배길 수 있겠어.”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오랜만에 맛본 엄마 해장국을 한참 동안 음미했다.

* * *

엄마의 상차림은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엄마. 나 조금 전에 해장국 먹었는데, 이거 너무 많잖아요?!”

“다 아들 먹이려고 만든 거니까, 남기면 알지?”

웃고 있는 엄마 표정이 무서웠다.

“다 먹어야죠. 누구 명령인데. 그나저나 식당 개업한 지 아직 일주일 안 됐죠?”

“응. 오늘로 오 일째네.”

“입소문이 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데. 그렇다고 동네 주민들이 닷새 내내 해장국만 먹는 건 아닐 테고.”

“동네 분들 이외에도 제주시랑 서귀포시에서도 많이 오시더라. 그리고 그 초코 과자 만드는 회사가 어디더라.”

“진양 그룹?”

“맞아! 진양 그룹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 어디 건설 현장이 있다고 하던데?”

“서귀포 서광리.”

“그래그래! 진짜 여기랑 정반대인데 그리 먼 곳에서도 다 찾아와 주시고 감사하지.”

“서울에서는 안 왔어요? 밖에 보니 어디서 정보가 샜나, 기업 홍보 팀에서 화환을 많이 보냈던데.”

“안 그래도 계산하면서 여기가 오프라인 우세진 사장님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 맞냐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

오프라인 내부에서 정보가 샜을 리는 없고, 진양 그룹을 통해서 외부로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엄마 아빠한테 피해 안 가게 할 테니까, 혹시 나 찾거나 나에 대해 뭐 물어보는 사람 있으면 그냥 무시하세요.”

“응. 걱정 마. 우리야 너보고 오는 사람들 많으면 좋지.”

엄마와 아빠가 걱정하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역시 집만 한 곳이 없다.

* * *

어두운 밤하늘.

마른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흡혈귀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창문 밖을 내다보자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 번개처럼 빠른 빛의 움직임이 있었다.

빛이 점점 그가 있는 곳 근처로 모여들더니.

이내 건물 밖으로 나간 남자를 향해 쏘아졌다.

“대한민국 최대 칠십오 메가 비피에스. 기존 대비 최대 5배 빠른, 이제는 포. 포로 포지로 포에버. 포쥐는 역시 티피티.”

남자는 흡사 랩을 읊조리듯 리듬감 있는 멘트를 뒤로하며 거대한 도시로 사라졌다.

2011년 6월 중순.

대한민국은 내가 찍은 광고로 들썩였다.

‘포로 포지로 포에버’는 어느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쓰는 유행어가 되었다.

“하하하. 축하하네, 우 사장. 이번 광고 완전 대박이던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백철웅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진짜 저는 뭔가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그런 느낌의 광고를 찍을 거라고 생각했지…….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네요!”

최루리가 모바일로 광고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 보며 내게 말했다.

“우 사장님 랩 잘하시는데요? 근데 이거 진짜 신선하다. 기존 광고랑 너무 달라서, 저 지금도 입안에 포로 포지로 포에버가 맴돌고 있다니까요.”

“저도요. 포로 포지로 포에버! 대박!”

모두들 내가 찍은 광고에 대해 한마디씩 하며 놀라움을 비췄다.

내가 저런 광고를 찍을지 몰랐다는 둥 광고가 너무 충격적이라는 둥 엄청 멋있다거나 랩을 잘한다거나 가지각색의 의견들.

나는 어디 숨을 구멍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런 곳이 있을 리 없었다.

“저는 저 의상이랑 모자가 너무 잘 어울렸던 거 같아요. 독일군 장교 같은?”

홍지혜가 간신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하는 게 보였다.

“그렇지? 이건 진짜 광고계에 한 획을 그을 작품임이 틀림없어. 이 이사님. 이거 우리 홈페이지 배너에 박을 순 없나요? 나 이 광고 하루 종일 보고 싶엉!”

최루리의 애교에 이덕오가 웃으며 답했다.

“어휴, 그거야 일도 아니죠. 그런데 원래는 광고비 받고 올리는 건데 그냥 올릴까요?”

“물론! 우 사장님이 찍은 광곤데 광고비를 왜 받아요! 우리가 우리 사장님 셀프 홍보하는 건데.”

나는 지금 내가 왜 영원히 고통받을 흑역사를 스스로 제안하고 촬영했는지에 대한 자책으로 다른 이들의 말에 대꾸할 힘이 없었다.

‘욕심이 과했나.’

김한곤 감독이 보낸 초기 콘티는 사실 이 내용이 아니었다.

안재영이 말한 것처럼 뭔가 고급스럽고 중후한 멋이 있는 광고였다.

고급 맞춤복을 제작하는 양복점에서 주인공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여성이 속으로 ‘우세진도 폰은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하자 주인공은 스마트폰을 뒤집으며 그녀와 다른 점이 있음을 알린다.

바로 4G LTE라는 붉은색 글씨가 선명하게 적혀 있는 스마트폰.

그야말로 깔끔한 광고 영상.

하지만 아쉬웠다.

임펙트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LTE 출시할 때 나온 광고 중에 기억나는 광고는 하나도 없으니까. 반면.’

내가 연출한 광고는 2014년에 경쟁사인 다른 통신사에서 유명 가수를 동원해 찍은 광고로, 전 국민 중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출연 가수가 비웃음을 당하긴 했지만.’

그런 영향일까.

이번에 내가 찍은 광고의 효과는 엄청났다.

원래 통신사 중 업계 1위를 하던 TP 텔레콤이었지만 광고 이후 2위 업체와의 점유율 격차를 무려 30%나 벌리는 데 성공했다.

또한 ‘TPT 우세진’, ‘우세진 광고’, ‘오프라인 우세진 LTE’ 등의 키워드가 며칠째 포털의 인기 검색어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뿐이랴.

많은 이들이 내가 한 광고 멘트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2차 창작물을 만들어 내며 온라인에서의 놀이 문화를 즐겼다.

심지어는 우세진 팬 카페가 생기더니 팬레터와 선물이 오프라인 입구 앞에 한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한 일간지의 문화부 기자는 내 광고에 대해 이런 기사를 남겼다.

<언론사 사장을 광고 모델로. TPT 광고가 보인 8가지 파격>

(중략) 이처럼 대한민국 광고 영상에 배우나 가수가 아닌 기자, 그것도 한 언론사의 사장이 등장한 것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촬영 감독에 따르면 이 모든 기획과 연출이 바로 오프라인의 우세진 사장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니, 당분간 광고에서도 그리고 언론에서도 이 당찬 기린아가 보이는 미래에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 이 기린아는 미디어의 미래를 어디까지 바꿀 생각이란 말인가.

<오프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무실에는 대형 현수막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낯선 모습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직원들의 옷차림이 평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티셔츠에 청바지는 어디 가고 다들 깔끔한 오피스룩 차림으로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이쪽이 저희 편집국입니다. 취재부와 국제부, 소셜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을 인솔하며 오프라인을 소개하였다.

한국 언론 진흥 재단의 주최로 메이저 언론사에서 오프라인 탐방에 나선 것이다.

고려 일보부터 한민족 신문까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내를 대표하는 10개 매체를 선정.

한 매체당 시니어 기자 한 명과 주니어 기자 한 명씩 총 2명을 보냈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오프라인에 탐방을 온다는 소식은 오프라인 직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그래서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평소와는 다른 옷차림을 입고 왔던 것이다.

“취재부가 따로 있으면 소셜부에서는 취재 대신 뭘 하는 건가요?”

한 남성이 손을 들고 물었다.

고려 일보의 하정태 기자였다.

“소셜부도 취재를 합니다. 다만 외부 취재보다는 SNS와 커뮤니티 등 온라인 취재를 주로 담당합니다. 물론 시급한 사건은 이들도 모두 외부 취재를 진행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희를 비롯해서 대부분 언론사에 있는 디지털 뉴스 팀 인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대다수의 메이저 언론사에는 10여 명 안팎의 규모로 온라인 이슈에 대응하는 디지털 뉴스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쓴 기사는 바이라인에 기자 이름이 박히지 않았다.

대신 ○○ 닷컴이라거나 디지털 뉴스 팀이라는 조직의 이름을 달고 나갔다.

또한 이들이 쓰는 기사는 탐사 보도나 분석 기사 등 깊이 있는 기사가 아니라 속보성이나 낚시성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편집국의 다른 기자들과는 급여나 처우가 달랐다.

자회사에 고용되거나 본사에 고용되더라도 인턴, 파견직, 계약직 등 고용 안정성이 낮았다.

설사 본사의 정규직으로 고용이 되더라도 다른 기자들과는 연봉 테이블 자체가 달랐다.

자연히 이들의 직업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모든 직원이 정직원입니다. 또한, 직무와 무관하게 모두 기자라는 직함으로 불리죠. 무엇보다도 이들이 낸 기사는 단순 낚시성 기사가 아닙니다. 모두 바이라인에 자기 이름을 걸고 내보내고 있습니다.”

언론사 모두가 디지털 뉴스 팀 기자들과 본사 기자들의 차별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업무가 너무 바쁘거나 자기 일이 아니었기에 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없었다.

“규모가 있는 전통 매체에서도 하지 못한 것을 신생 매체에서 하고 있었다니. 존경스럽습니다.”

단향 신문의 15년 차 고참 기자인 이채선이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는 존경을 표했다.

나는 2층에 있는 인물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며 이들이 맡은 일에 대해 알려 주었다.

“오프라인 취재부의 안재영 부장입니다. 취재부를 이끌고 있습니다.”

안재영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내 뒤에 있던 하정태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더니 그와 악수를 나눴다.

“오랜만입니다, 선배.”

“오랜만이네. 이야 나는 아직도 차장인데 벌써 부장인 거야? 하하.”

둘은 이미 아는 사이인 듯 가벼운 농담을 나눴다.

“두 분, 아시는 사이였습니까?”

내가 묻자 하정태가 웃으며 답했다.

“네. 같은 문화부에 있었죠. 다들 차세대 에이스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져서 의아해했는데. 오프라인이라면 아주 좋은 선택이 된 것 같습니다.”

“좋은 기자입니다. 고려 일보에서 신생 매체로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감사한 일이죠.”

취재부가 끝나고 소셜부의 차례.

홍지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행 모두가 술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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