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200)

이채선은 흡사 인기 연예인을 본 듯 스마트폰으로 홍지혜를 찍으며 중얼거렸다.

“이야. 실물은 TV 저리 가라네.”

홍지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자기소개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프라인에서 소셜부장을 맡고 있는 홍지혜 기자입니다.”

하정태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예전에 저희 사장이 홍 부장님에게 추태를 부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려 일보 기자 일동을 대표해서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말씀 안 해 주셨으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 못 할 뻔했네요.”

최루리가 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야, 그 사건 정말 대단했죠. 그래도 아래 직원분들은 다르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나와 백철웅의 사장실을 짧게 구경한 일행은 곧바로 위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쪽은 영상부와, 디자인부, IP 개발부, 개발부가 있습니다.”

아래와는 다른 인테리어로 꾸며진 사무실을 보고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야, 여긴 아래랑 느낌이 너무 다르네요. 무슨 카페에 온 것 같은데요?”

“저쪽에는 실제로 카페 같은 게 있어요. 우 사장님 저긴 뭐 하는 곳인가요?”

누군가가 카페 공간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카페 맞습니다. 직원 복지를 위해서 외부에서 커피 잘하시는 가게 사장님을 섭외해서 회사 내부에 둔 거죠.”

“그럼 실제로 운영도 오프라인에서 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운영은 카페 사장님이 하시는 거고, 저희는 음료 비용 일부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커피가 3,000원이라면 직원들한테는 1,000원만 받고 있거든요.”

“네? 커피가 겨우 천 원이라고요?!”

“네. 그래서 나머지 2,000원은 저희가 회사 비용으로 카페에 드리고 있죠.”

“와. 그럼 임대료는요?”

“그것도 아주 저렴하게 해서 빌려 드리고 있습니다. 어렵게 모신 분이니까요.”

내가 김희철을 바라보자 그가 한눈을 찡긋하며 손을 흔들었다.

“다른 언론사에서 오프라인 방문 오신 분들이죠? 자. 원하시는 음료 말씀만 하시면, 바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물론 비용은 우 사장님이 내주시겠죠?”

그의 말에 일행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카페에 몰려 수다를 나누는 오프라인 탐방단.

같은 기자들 게다가 메이저 언론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어떤 동질감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동질감은 자부심이 아니라 부러움으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오프라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 사장님. 여기 커피 진짜 맛있는데요? 제가 나름 커피 애호가라고 관련 기사도 자주 쓰고 했는데, 최근에 마셔 본 커피 중에 감히 최고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죠? 원래 제가 사는 집 근처에서 카페를 하시던 분인데, 어렵게 모셔 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카페를 들이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런 건 일부 대기업에서나 하는 거로 알았는데.”

“그들이 괜히 이런 제도를 운용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커피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사내 복지로 회사에서 카페가 있으면 직원들도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한참 동안 카페 ‘오프’에서 사내 카페 제도와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흘렀다.

이어서 2층에 있는 부서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존 취재 부서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만큼 탐방단의 관심도 높았다.

“IP 개발부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누군가의 질문에 IP 개발부장인 이수빈이 답했다.

“IP라는 게 지적 재산권이지 않습니까? 지적 재산권을 개발하는 부서입니다. 저희가 가진 디자인 요소, 개발 요소, 캐릭터 사업 등 여러 아이템의 개발을 도맡아 하고 있죠.”

“제 딸이 오프라인 프렌즈의 열혈 팬입니다. 캐릭터가 너무 귀엽다고 하더군요.”

중년 남성의 말에 내가 웃으며 답했다.

“그걸 디자인한 분이 바로 앞에 있는 이수빈 부장입니다.”

“그렇습니까? 이거 영광입니다. 듣자 하니 일본에서도 캐릭터 매출이 엄청나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메신저 ‘잇쇼니’가 일본에선 국민 메신저라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고, 덩달아 저희가 그린 캐릭터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죠.”

“메신저 개발이니 캐릭터 개발이니. 이거 이제 오프라인을 더 이상 언론사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IT 기업인데요, 여긴.”

하정태의 말에 탐방단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던졌다.

“맞아요. 제가 출입처가 Never랑 넥스트인데, 여기가 딱 그런 느낌이네요.”

“저희 사내 분위기는 여전히 80년대에 머물고 있는데 여긴 신세계네요, 신세계.”

“한 수 배우려고 왔다가 마음만 심란해지네요.”

고참 기자인 이채선의 말에 신참이 궁금한 듯 물었다.

“선배, 왜요?”

“왜긴 왜야. 여기로 이직하고 싶으니까 그렇지. 우리가 여기 따라 했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게 생겼으니 말이야.”

그녀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며 동의했다.

“맞아요. 이거 뭐 배우고 뭐 할 단계가 아니네요.”

“제가 1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여기에 지원했을 텐데 아쉽네요.”

나는 웃으며 일행을 회의실로 이끌었다.

“자자. 오늘의 마지막 순서입니다.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이니 이쪽으로 와 주세요.”

그때였다.

모두의 휴대폰에서 알람이 뜬 것은.

<(속보) 해병대, 민항대에 오인 사격>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자리에 모인 모두가 깜짝 놀라 외쳤지만, 제목뿐인 속보였다.

나는 탐방단에게 회의실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우 부장. 무슨 일이에요?”

“저희도 방금 통합 뉴스 속보만 받아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습니다.”

“당장 청와대나 군에 연락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봐요.”

“네, 사장님. 안 그래도 막 연락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사장실로 들어와 인터넷을 검색했다.

역시나 통합 뉴스의 속보 이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뜨지 않았다.

‘이상한데, 우리 군에서 민항기에 사격을 가해 격추했다는 기억은 없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사건이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사건이 떠오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재영이 군을 통해 들은 소식을 정리해 메일로 보내 주었다.

‘그러니까 해병대 초병들이 우리 민항기를 북한 공군기로 오인해 총격을 가했지만, 사거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기에 비행기 조종사나 승객들도 모르고 지나갔다가, 뒤늦게 국방부 발표로 알게 된 건이로군. 그럼 방금 일어난 게 아니라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이잖아?’

나는 조금 허탈한 마음에 가만히 있다가 위에 두고 온 탐방단이 떠올라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긴급한 내용은 아닌 것 같고, 이참에 우리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기사를 만드는지를 보여 줄 기회로군.’

나는 즉시 위에 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들을 데리고 아래로 내려왔다.

다들 영문을 몰라 웅성거렸으나 이내 내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사화하는지 살펴보신다면 분명 회사로 돌아가셔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탐방단은 편집국의 기자들 뒤에 서서 이들이 진행 중인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취재부에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 이를 어떻게 기사로 쓰고, 다른 부서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는지.

소셜부에서 온라인에서 어떻게 정보를 찾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파하는지.

국제부에서는 얼마나 빠르게 이를 다국어로 번역하여 노출하는지.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그 정교함과 세심함 그리고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쓴 기사의 야마는 대체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연이은 북한의 도발로 남북한 경계 지역의 긴장이 고조된 탓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초병 교육 강화 및 남북한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반면 다른 언론사에서는 초병들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오인 사격의 심각성에 대해 군과 정부를 무작정 비판하는 내용이 주(主)였다.

심지어는 이번 사건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북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는 기사도 많았다.

모니터 뒤에서 이채선 기자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트래픽이 중요하다지만, 우리 회사에서 낸 기사랑 오프라인이 낸 기사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네요. 부끄럽습니다, 정말.”

오프라인의 등장 이후 수많은 소셜 언론이 탄생하였다.

원래였다면 이렇게나 빨리,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소셜 언론이 세상에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성공.

이것이 세상의 판도를 바꿨다.

그러나 그게 꼭 소셜 언론의 성공이라거나 언론의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프라인이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로 성장하는 사이.

오프라인을 제외한 소셜 언론은 회귀 전 소셜 언론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었다.

낮은 연봉과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시작으로.

‘은는이가’ 등 단순히 조사만 바꿔 쓴 우라까이.

묻지 마 식 퍼 오기와 연예인에 대한 마구잡이식 사생활 들추기.

낚시성 기사와 자극적인 내용의 범람.

‘회귀 전 내가 절망했던 소셜 언론의 어두운 면이 그대로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자 출신이 회사를 나와 만든 영세한 업체 이외에도 대기업에서 자본을 댄 곳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었다.

특히 ‘온리 원’이 그랬다.

출판 대기업인 ‘다교’에서 투자하여 만들어진 온리 원은 오픈 첫해부터 온라인 기자만 50명에 달할 정도로 공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그들은 우리가 성공한 노하우를 그대로 답습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우리가 카드 뉴스를 만들면 그들도 만들었고, 영상을 만들면 그들도 만들었다.

기사를 빠르게 외국어로 번역하여 올리는 한편 자극적인 섬네일과 문체로 인기를 얻었다.

물론 그들에게 전문적인 개발 조직이나 디자인 조직 그리고 수준 높은 탐사 보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우 사장, 여기 온리 원이라고 들어 봤어요?”

백철웅이 내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온리 원의 페이스북 화면이었다.

“네. 세간에선 오프라인 주니어라고 불린다면서요?”

“주니어는 무슨. 이렇게 자극적인 이미지와 문장을 사용하니 다른 언론에서 여전히 소셜 언론이 문제 있다고 하는 겁니다.”

“저희는 그들과 다르니까요. 곧 제풀에 지쳐 떨어질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그들이 끈질기게 버텨 ‘유사 언론’ 또는 ‘기생 언론’으로서 자신의 영역을 탄탄하게 개척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오프라인이 바로 그랬으니까.’

저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렇게 내 기억에서 옅어지고 있던 소셜 언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온리 원의 기자 한 명이 국내 최고 디지털 에이전시 대표의 블로그 글을 무단으로 도용한 것이 시초였다.

대표가 오래전에 적은 그 글에는 면접관의 마음가짐과 면접자의 태도에 대한 그만의 생각이 적혀 있었다.

크게 문제가 없는 내용이었지만 요즘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조금 꼰대 같은 느낌도 적잖이 있었다.

회사에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거나 사람을 뽑을 때 관상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그랬다.

더구나 단순 도용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았다.

에이전시 대표가 무단 도용 사실을 인지하고 기사를 내려 달라고 항의했지만 온리 원의 기자는 해당 댓글을 삭제하고 댓글을 작성하지 못하게 막아 버린 것이다.

열 받은 에이전시 대표는 결국 온리 원을 상대로 소송 방침을 밝혔다.

<지금 현실과는 다소 맞지 않는 글이라 내려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내 댓글과 댓글 작성 권한까지 모두 막아 버렸다. 그들은 메일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법적인 대응을 하려고 한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글을 올리고 오래지 않아 해당 기사는 재빠르게 온리 원의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

대신 강아지가 엎드린 장난스러운 사진과 함께 대표님께 사과한다는 짧은 사과문이 올라왔다.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이미 지난 날짜의 기사를 복제해서 수정한 다음 사과문을 올렸던 것이다.

이런 의도적인 꼼수로 해당 사과문이 온리 원의 최신 뉴스에 노출되는 일은 없었다.

에이전시 대표는 씁쓸한 심경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온리 원 기자가 회사 윗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혼이 났다고 해서 소송은 취하하려 한다. 이렇게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받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 매체는 기자를 혼낼 정신은 있어도 나에게 사과를 할 생각은 정말 조금도 없단 말인가. 오프라인과 같은 소셜 언론이라고 하기에는 급이 너무 떨어진다.>

해당 사과문이 올라오고 이틀 뒤.

이번에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터져 버렸다.

* * *

“홍 부장님. 그 기사 아직 오프라인 SNS에 안 나갔던데 다른 이유가 있나요?”

박창후가 궁금하다는 듯 홍지혜에게 물었다.

박창후가 말한 기사란 작년에 있었던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었다.

“다들 기억하시죠? 작년 이맘때쯤 중학생 두 명이 같은 학교의 여학생을 불러 술을 먹인 뒤 강제 성폭행해서 난리가 났잖아요.”

박창후의 말에 안재영이 기억났다는 듯 분개하였다.

“아! 기억나요. 아오. 개새끼들. 진짜 어린놈들이 발랑 까져 가지고!!”

“그게 오늘 법원 판결이 났거든. 그런데 아주 개판이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중학생이었다는 점.

그리고 죄질이 나쁘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랬던 만큼 법원의 판결에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3년.

고작 3년이었다.

법원이 내린 판결은 고작 징역 3년에 불과했다.

양형 이유는 이랬다.

둘 다 미성년자로서 현재 죄를 많이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가 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러 나갔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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