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공감할 수 없는 판결문에 국민들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해자의 부모가 고위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타 언론사의 취재 결과 드러나며 법원과 가해자에 대한 불만이 폭주하였다.
모든 언론사가 경쟁이라도 하듯 SNS에 이 기사를 올렸고, SNS에서는 하루 종일 이 이야기로 담벼락이 도배가 되었다.
모두가 분노를 입에 담고 있었다.
나 역시 홍지혜가 이 기사를 SNS에 올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홍 부장님. 뉴스 밸류로 봤을 때는 오늘 뉴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같은데, 깜빡하신 건가요?”
나의 질문에 모두가 홍지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 내용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고민스러워서요.”
“응? 뭐가 고민스럽다는 거죠?”
“가해자와 법원에 문제가 많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동의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지금 아무도 안중에 없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박창후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가해자와 법원을 비난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사를 통해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어떻게든 묘사하고 있잖아요. 피해자에게는 성폭행 사실 자체가 고통일 텐데, 언론에서 너무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최루리와 이수빈 등 여성 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요. 중학생이면 같은 중학생이지 왜 피해자에게만 콕 짚어서 여학생이라는 표현을 쓰죠?”
“굳이 섬네일과 제목에 피해자와 성폭행이라는 이미지와 단어가 드러날 필요는 없을 텐데 이것도 일종의 낚시 아닌가요?”
이에 일부 남성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 부분은 저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창후는 달랐다.
“홍 부장님이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그러면 뭐요. 뭘 어떻게 기사를 써요? 사건에 대해서는 기사로 알려야 할 거 아니에요. 이런 게 기사로 나와야지 다시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나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 안 나오죠!”
그의 말에 홍지혜가 반박했다.
“박 부장님. 이런 사건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고, 또한 이런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법원이 달라졌던가요? 가해자가 줄어들었나요? 이건 기사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조금 더 피해자를 배려할 수 있는 기사와 정책이 필요하다고요.”
“이미 남들 다 하고 있는데, 우리만 고상하게 있을 필요가 있나 싶네요. 그렇다고 우리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자는 것도 아니잖아요. 트래픽 아깝게.”
그의 마지막 말이 홍지혜의 남아 있던 이성을 앗아갔다.
“박 부장님! 지금 박 부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피해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순히 자극적인 기사를 이용해서 트래픽 장사를 하자는 말 아닌가요! 네? 지금 당장 사과하세요!!”
박창후는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듯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어쿠야. 제가 말이 헛나왔네요. 죄송합니다.”
박창후는 부끄러운 듯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오프라인 내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던 이 사건은 결국 온리 원을 통해 폭발하고 만다.
퇴근 시간을 10분 앞두고 원화성과 신규 수익 사업에 대해 메일로 의견을 나누던 도중.
통합 뉴스에서 다음과 같은 속보가 날아왔다.
<집단 성폭행 피해자 여학생, 집 안에서 숨진 채 발견……. 자살 가능성 커>
퇴근을 앞두고 화기애애하던 오프라인 사무실은 해당 속보에 할 말을 잃은 채 정적만이 가득했다.
나는 즉시 부장급 인사를 집합시켰다.
“이거 그냥 간단히 지나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네. 사장님. 제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고 괜히 미안하고 그렇네요.”
박창후가 홍지혜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렸다.
“안 부장님. 법조 팀 가동해서 지금 당장 관할 경찰서 가 보시고요.”
“네. 사장님.”
“홍 부장님은 SNS 여론 좀 살펴 주세요. 응? 홍 부장님?”
홍지혜가 나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일순 일그러지더니 급기야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아니 무슨 일이에요 도대체?”
최루리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홍지혜의 옆으로 가서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홍지혜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는 스마트폰 화면을 최루리에게 보여 주었다.
최루리 역시 충격을 받은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홍지혜는 곧 스마트폰을 내게 들이밀었다.
피해자의 페이스북 계정이었다.
화면에는 사진 한 장과 함께 짧은 문장이 올려져 있었다.
<세상이 제게 너무 가혹하네요. 이제 그만하렵니다.>
글 아래에는 온리 원이 자사의 페이스북에 올린 기사의 캡처 사진이 보였다.
사진에는 일부러 약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선정적인 속옷 이미지와 함께 ‘친구인 줄만 알았는데……. 여중생에게 강제 삽입해 성폭행한 막장 중학생들’이라는 제목이 버젓이 쓰여 있었다.
그 아래로 온리 원의 로고와 리드문이 나왔다.
리드문에는 ‘중학생 A군과 B군은 친구인 C양을 불러 강제로 자신들의 성기를 그녀의 은밀한…….’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쿵.
나는 나도 모르게 홍지혜의 스마트폰을 손에서 떨어뜨려 버렸다.
충격으로 스마트폰을 쥐던 손의 힘이 약해졌던 것이다.
영문을 몰라 하던 이들도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는 모두 경악하였다.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때때로 나오는 한숨 소리 그리고 낮은 흐느낌만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건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가해자와 법원을 가리키던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온리 원과 해당 기사를 쓴 기자를 향해 돌아섰다.
<이건 진짜 답이 없다. 역대급 기레기다. 온리 원 당장 폐쇄해라!>
<저거 쓴 기자는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 설마 발 뻗고 자는 건 아니겠지?!>
<이거 자살 교사죄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한민국 능력 있는 법조인님들 당장 출동해 주세요!>
온리 원은 항의하려는 이들로 서버가 뻗어 버렸고, 이후 SNS와 유튜브에 어떤 기사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 찰나의 순간을 기성 언론에서 놓칠 리 없었다.
그들은 온리 원을 비롯한 소셜 언론에 문제가 많다며 특집 기사를 만드는 등 화력을 모았다.
오프라인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지만, 소셜 언론에는 오프라인도 포함되어 있음을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어휴. 이놈들 또 시작이네.”
안재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예전처럼 우리를 직접 공격하는 건 아니지만 괜히 찜찜하네요.”
“그러게요. 어째 화살의 끝이 온리 원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고 있는 느낌적 느낌이랄까요.”
“불만들은 이해하지만, 우리를 직접 거론하지 않는 이상 불필요한 대응은 자제해 주세요. 소셜 언론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 그 불똥은 우리한테도 튈 테니까요.”
나는 직원들에게 주의를 내린 뒤 그동안 온리 원이 올렸던 페이스북 게시물을 살폈다.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게시물들.
무언가 낯설면서도 친숙한.
그런 어색한 괴리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회귀 전 내가 해 왔던, 그리고 오프라인이 해 왔던 것들이라 그럴까.’
속이 불편했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
마침 퇴근하는 김희철이 계단에서 내려왔다.
“어? 희철이 형님. 퇴근하시는 거예요?”
“오. 우 사장 아닌가. 그래. 퇴근길이지. 우 사장도 퇴근?”
“퇴근은 아니고 잠시 바람 좀 쐬고 오려고요.”
“뭐? 시간이 몇 신데 아직 퇴근을 안 해.”
“골치 아픈 일들이 있어서.”
“온리 원 때문에?”
“어라? 형님이 그걸 어떻게?”
“우 사장, 나도 당신 회사에 같이 있거든? 요 며칠 카페에 온 직원들은 죄다 그 얘기만 하더라. 덕분에 나도 검색해 보고 알았지. 문제 있던데 그거.”
문제가 있다는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래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퇴근하는 것도 아니면 뭐 하려고?”
“그냥 편의점에 잠시 다녀오려고요.”
“뭐야? 저녁 안 먹은 겨?”
“네. 남은 일들이 있어서.”
“아이구! 됐고, 따라와!”
김희철은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고는 근처 육개장집에 들렀다.
“여기요! 육개장 두 개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오래지 않아 새빨간 국물이 담긴 뚝배기가 식탁 위로 올라왔다.
“어여 들어. 뭘 밥도 안 먹고 일을 해. 몸 상하게.”
“바쁘니까요. 그러는 형님도 지금 시간이 여덟 신데 왜 이제야 퇴근하는 거예요? 마감 시간 5시잖아요?”
“나? 카페 정리한다고 그랬지.”
“거봐요. 하여간.”
“크크. 원래 사장이라는 게 바쁜 거 아니겠냐. 우 사장이나 나나.”
그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육개장 한 숟가락을 떴다.
매콤한 고추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직원들이 형님 커피 맛있다고 다들 좋아라 해요.”
“나도 여기 직원들 참 마음에 들어. 다들 착하고 열성적이고.”
“백 사장님도 오프에 만족하고 계세요. 여기 사무실 들어오고 가장 잘한 결정 같다고요.”
“그래? 백 사장님은 통 말이 없어서 속내를 모르겠던데.”
“그래요? 말이 없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럴 리가. 다른 직원들도 그러던데. 백무뚝우열심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백무뚝우열심?”
“정말 몰라?”
“네. 정말 몰라요.”
김희철은 재미있다는 듯 소주잔을 입안 가득 털더니 말했다.
“백철웅 사장은 무뚝뚝하고 우세진 사장은 말만 하면 열심히 하자고 그런다고.”
“풋.”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주를 뱉을뻔했다.
“뭐야. 도대체 누가 그래요.”
“자네 직원들 다. 다들 그래.”
* * *
김희철과 반주를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온 나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 종로 거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창밖의 환한 풍경과는 다르게.
계속 마음속 한구석이 아렸다.
‘지금의 온리 원이 회귀 전 오프라인과 비슷해서 그랬을까.’
돌이켜 보건대 나 역시 성폭행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에 자극적인 섬네일과 문구를 붙이며 트래픽에 천착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처럼 누군가가 내 기사를 읽고 자살을 한다거나 한 적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단언컨대 사람이 쓰레기라서 기레기가 되는 경우보다.’
창밖으로 온리 원의 간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언론사가 쓰레기라서 기레기가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부장단 회의를 진행하는데 홍지혜가 오늘은 먼저 발표를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
보통은 부서명의 가나다순으로 개발부의 이덕오 이사부터 보고를 시작했기에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미리 준비해 온 A4 복사물을 나눠 주었다.
복사물에는 장문의 사과문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요?”
나의 질문에 홍지혜가 답했다.
“피해자가 올린 사진의 기사를 쓴 기자의 사과문입니다.”
“기자의 사과문이요?”
“네. 어제저녁에 모니터링하다가 발견했어요.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모두가 궁금하다는 듯 복사물을 자세히 살폈다.
-사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