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00)

<죄송합니다. 저는 그 어떠한 말로도 당신께. 이제는 사죄할 수도, 미안함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트래픽의 노예였던 제가 직접 쓴 기사였으니까요.>

“휴.”

나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다들 잘 모르시겠지만 온리 원은 직접 취재를 하지 않습니다. 다른 언론사에서 올린 기사를 보고 베낄 뿐이죠. 그날도 그랬습니다. 저는 판결문은커녕 다른 언론사의 기사도 제대로 읽어 보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편집장은 제가 올린 기사를 보더니 좋다면서 자극적인 섬네일과 제목을 달더군요. 그렇다고 제 죄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온리 원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저와 같은 인간이 더는 기자라는 직함을 달 수 없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그 어떠한 비난과 욕도 제가 한 행위보다 더하진 않을 겁니다.

저는 키보드 살인마입니다. 평생 속죄하면서 살겠습니다. 온리 원에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전영 드림>

무거웠던 회의실 분위기를 깬 건 박창후였다.

“주전영, 이 친구. 그래도 양심은 있네.”

안재영도 입술을 굳게 다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두 손을 포개 깍지를 끼고는 그 위에 턱을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라고 생각했는지 누구도 그런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십여 분이 지나고.

천천히 눈을 뜬 나는 이런 제안을 건넸다.

* * *

<오프라인, 소셜 언론 통폐합하나?>

<오프라인, 소셜 언론 상위 3개 업체 인수……. 이제 직원 수만 300명 넘어>

<소설 언론발 산업 재편……. 오프라인 천하 되나>

기자 회견장에는 엔젤 머니의 원화성 회장과 나 그리고 백철웅 사장이 나란히 앉았다.

홍지혜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행사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갑작스러운 발표에도 불구하고 관심을 드러냈다.

준비한 의자만 50석이 넘었지만 벌써 그보다 배는 많은 기자들이 방문해 기자 회견장은 기자 반 카메라 반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우 사장님! 우 사장님! 국한 일보의 도의명 기자입니다. 갑자기 왜 다른 소셜 언론사들을 인수·합병하시겠다는 건지 그 의도가 무엇인가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냈다.

“보도 자료에도 써 놨지만, 지금의 소셜 언론 구조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하에 상위 3개 업체를 인수하려는 겁니다.”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거죠?”

“최근 온리 원에 올라온 글로 누군가가 아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말씀은 그럼 다른 이유 없이 단지 그 이유로?”

“네. 그렇습니다.”

나의 말에 장내가 웅성거렸다.

다른 기자가 번쩍 손을 들고 물었다.

“노룩 TV 김한겸 기자입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에서는 절대 그런 일을 만들지 않는다, 뭐 그런 자기 확신이 있다는 말씀이실까요.”

나는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강하게 말했다.

“네. 저희 오프라인에서는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요.”

기자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짜증 섞인 표정이 올라왔다.

“자신감이 과한 거 아닙니까? 오프라인은 지금까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인수당하는 3개 업체는 모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컨트롤할 수 있다고요?”

“네. 기자님. 제대로 된 시스템과 정책만 있다면 누구도 기레기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희 오프라인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닌가요?”

나의 말에 모두 말문이 막힌 듯 다른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정적이 흐르고.

누군가가 내가 아닌 원화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 회장님. 이번 인수 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재정적으로 무리한 투자는 아닌가요?”

원화성이 환하게 웃으며 마이크를 켰다.

“요즘 소셜 언론에 대한 여론이 안 좋지 않습니까? 모두 적절한 가격으로 인수에 동의해 주셨고, 이후부터는 일절 간섭하거나 다른 소셜 언론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서에도 서명해 주셨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이번 인수 조건으로 다시는 소셜 언론에 투자하거나 설립에 나서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인수에 나섰다.

“인수한 세 곳은 모두 대기업이 투자한 곳들이라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입니다만, 여전히 많은 소셜 언론들이 잔존합니다. 그들을 인수할 생각은 없습니까?”

나는 원화성에게 사인을 보내 내가 대답하겠다고 알렸다.

“이번 사태로 이미 많은 소셜 언론이 문을 닫거나 앞으로 닫을 예정입니다.”

기반이 없는 곳들은 하루아침에 사무실 문을 닫고는 자취를 감췄고, 구조 조정을 하겠다고 밝힌 곳들도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다니는 기자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나의 말에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정신 사납게 터져 댔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다른 소셜 언론에 계신 모든 기자분에게 고합니다. 본인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왜 기자가 되려 하셨나요. 트래픽 때문이신가요. 아니면 불편부당하고 정론 직필을 위함입니까. 지금 당장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진짜 기자인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가 말입니다.”

기자 회견장은 돌연 숙연해졌다.

소셜 언론에 다니는 기자들에게 한 이야기였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향해 되묻고 있었다.

나는 정말 기자인가.

“만약 나는 기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저희에게 오십시오. 저희가 여러분을 참기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 *

“다음 75번 지원자 들어오세요.”

기자 회견 이후 오프라인은 계획에도 없던 면접으로 부산했다.

대부분 우리가 인수하지 않았던 중소 규모의 소셜 언론 출신 기자들이었다.

“참나. 이 친구는 여기 왜 왔어?”

박창후가 입사 지원서를 살피고는 혀를 찼다.

소셜 언론 기자들뿐 아니라 전통 매체, 그것도 메이저 언론사의 현직 기자들도 상당수 지원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원자의 수는 100여 명이 훌쩍 넘었고 이는 현재 대부분 남아 있는 소셜 언론 기자들로 추정됐다.

길었던 면접이 서서히 끝을 보이고.

나는 마지막 면접자를 내 방으로 불렀다.

“마지막 면접자시네요. 109번 지원자분 사장실로 들어가세요.”

비서의 안내에 키 작은 남성이 주춤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에 불안한 눈동자가 면접자의 현재 심리를 알렸다.

“네. 지원자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앗! 네…… 넵! 전(前) 온리 원 기자 주…… 주전영이라고 합니다!”

# 4장 사죄

방에는 나와 지원자인 주전영 둘 뿐이었다.

주전영이 주변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기.”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면접은 사장님과 일대일로 진행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주전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냥 다른 분들은 면접관분들이 3분 있다고 그러셔서…….”

“시간이 너무 늦기도 하고, 주전영 씨한테 궁금한 것도 있고 해서 제가 단독으로 면접을 보자고 했습니다. 불편하시면 다른 면접관들 불러 드려요?”

주전영이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사장님! 영광입니다.”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나 역시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괜찮으니까 사람 당황하게 하지 말고 빨리 앉으세요.”

“앗, 네.”

그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의자에 앉아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원래 여기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죠?”

“아 네. 자숙할 생각이었는데 이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누가 연락했는지는 압니까?”

“그건. 저도 잘…….”

“누구 연락했는지도 모르면서 지원을 했어요?”

“오프라인은. 제가 꼭 가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케이. 어렸을 때부터 꿈이 기자였다고요?”

“네넵! 어릴 때부터 정의로운 기자, 약자의 편에서 사회의 어둠을 비추는 그런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온리 원에는 어쩌다가 들어가게 된 건가요?”

내가 온리 원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게…….”

“괜찮으니 말해 봐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쭤봐도 될까요?”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머니가 암으로 입원하셔서요. 급전이 필요했습니다.”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혹시 지금은 좀 괜찮아지셨나요?”

“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그의 표정이 다소 밝아진 것을 확인한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기자에 대한 생각, 한국 언론에 대한 생각, 가치관, 인생관, 온리 원에서 했었던 경험 등등.

그렇게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면접 시간은 1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넵!”

그가 긴장한 듯 두 주먹을 꼬옥 움켜쥐었다.

“잘할 자신 있어요?”

“네?”

“여기 와서 잘할 자신 있냐고요? 주전영 씨가 지금 이 자리에서 저한테 말한 ‘참기자’ 할 수 있겠냐고요.”

“아…….”

그는 잠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멍하게 있다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할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것만이 피해자분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사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모두 퇴근해서 나가면 안내해 줄 분이 없을 겁니다. 그냥 알아서 왔던 길로 나가시면 됩니다.”

“아, 네. 저기.”

“또 하실 말씀이 있나요?”

그는 내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렸다.

“괜찮으니 말해 봐요.”

“그게 저…… 사장님은 저의 롤 모델이십니다. 진짭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저 말만 남기고는 휙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재미있는 사람이네.’

* * *

우리는 면접을 거쳐 30명의 추가 인원을 뽑았다.

가능하면 많은 인원을 뽑고 싶었지만, 자질이 부족한데 억지로 채용할 수는 없었다.

3개의 소셜 업체를 인수하면서 80명이었던 기존 인원은 270명으로 늘었고, 새로 뽑은 인원까지 더해 총 300명이 되었다.

‘3명에서 시작했는데 300명이라. 격세지감이군.’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최루리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꺄! 저 여기 입사했을 때 고작 20명이었는데 1년 사이 15배가 늘었어요!!”

그녀의 말에 백철웅도 웃으며 답했다.

“최 부장님 들어오기 전에는 3명이었으니 제 입장에서는 100배가 되었습니다. 하하.”

“우와! 진짜 그렇네요. 백 사장님, 우 사장님, 두 분 진짜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새롭다마다요. 제가 3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사장이 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나도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모든 게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백 사장님. 그리고 모두들.”

“에이. 이거 또 왜 그러세요. 여기서 우 사장님이 가장 고생하셨다는 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박창후의 말에 백철웅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오프라인 성공의 팔 할은 우 사장 때문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백 사장님까지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가 정색을 하며 말하자 백철웅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게 우 사장 컨셉이라는 건 잘 아는데, 그것도 너무 심하면 예의가 아닌 거예요. 오늘은 기분도 좋고 하니 부장급 이상 회식 어떻습니까, 여러분.”

백철웅의 말에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좋다며 동의했다.

특히나 홍지혜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네! 백 사장님. 저 곱창이 먹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좋습니다! 우리 홍 부장님이 먹고 싶다고 하면 반드시 거기로 가야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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