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주전영이 오프라인에 입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죄였다.
나는 주전영과 함께 피해자 유족을 찾아가 함께 무릎을 꿇고는 사죄했다.
“제가 드리는 그 어떠한 말도 유가족분들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부디 저희의 사죄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유족들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유족 대표로 참석한 피해자 아버지가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진짜 오프라인과 우 사장 봐서 이렇게 나온 거지, 아니면 절대로 이런 자리에는 안 나왔을 겁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이런 기레기 자식을…… 도대체 왜 오프라인에서 뽑는 겁니까? 쓰레기만도 못한 자식! 퉷!”
그는 주전영이 엎드린 자리 바로 앞으로 침을 뱉었다.
내 옆에 엎드린 주전영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몸은 경련이 일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좋은 기사로 사죄드리는 것만이 그와 저희 소셜 언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거예요.”
“제가 정말 한번 잘 키워 보겠습니다. 저와 오프라인을 한번 믿어 주십시오.”
피해자 아버지는 한참이나 주전영을 노려보았다.
그는 조금 화가 가라앉은 듯 다소 누그러진 톤으로 말했다.
“에혀. 이미 다 죽었는데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작은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다른 소셜 언론을 인수한 이유도 그런 이유가 컸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네. 우린 우 사장님만 믿을게요. 그리고.”
“네.”
“자네도 그만 좀 떨고 얼굴 들어 봐.”
그의 말에 주전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놀란 쥐새끼 같은 주전영의 얼굴을 본 피해자 아버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그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다시는 이런 짓 말어. 그리고 우 사장님 밑에서 잘 배워. 알겠어?”
“네네.”
“우리 딸이 억울하게 죽은 게 아니라는 거 댁이 반드시 증명해야 해. 알았지? 응?”
“네네, 꼭…… 꼭 증명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딸하고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친구가 참. 그동안 마음고생 했다. 이제 들어가.”
그 말에 억눌린 긴장이 터져 버린 걸까.
주전영의 눈과 코에서 쉴 새 없이 눈물과 콧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유족들에게 다시 한번 큰절을 한 뒤 피해자가 묻힌 무덤으로 향했다.
주전영은 멍하니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냅다 절을 두 번 하고는 일어섰다.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결심한 게 느껴졌다.
“전영 씨.”
“네, 사장님.”
“잘합시다, 우리.”
“네. 사장님. 고맙습니다.”
* * *
동료들보다 하루 늦게 회사로 출근한 주전영은 소셜 1부로 발령이 났다.
다른 소셜 언론을 인수하면서 본사 소셜부는 소셜 1부로 두고, 소셜 2부와 3부가 추가된 것이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주전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작은 키.
숫기 없는 목소리에 동글동글한 몸매.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온리 원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아는 다른 직원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홍지혜만큼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주 기자님. 소셜 본부장 홍지혜입니다. 좋은 기사 써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홍지혜가 소셜 1, 2, 3부를 총괄하는 소셜 본부의 소셜 본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소셜 1부의 부장은 홍지혜의 오른팔이었던 배지민이 맡았다.
“저는 소셜 1부장 배지민입니다. 전영 씨 자리는 여기예요. 오늘은 입사 첫날이니까 SNS 모니터링 좀 부탁드릴게요. 하는 방법은 아시죠?”
“네, 부장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배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과 점심 한 끼 했으면 좋겠는데, 배 부장님 어떠세요?”
“정말요? 저희야 물론 좋죠! 다른 분들도 선약 없으시죠?”
배지민의 말에 모두가 선약이 없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이죠! 우 사장님이 사 주신다는데 있던 약속이라도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날 점심은 인근의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소셜 1부원들에게 근무하면서 겪는 애로 사항에 관해 묻고 새로 합류한 분들하고도 잘 지내 달라고 당부했다.
모두가 기꺼이 그러겠다며 웃음을 보였다.
점심을 먹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빵빵해진 배를 문지르고는 기지개를 켰다.
‘이상하게 스파게티만 먹고 오면 배가 더부룩하더란 말이지.’
근본은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통합 뉴스에서 온 속보 문자였다.
<해병대 총기 난사 사고 발생……. 7명 사상(1보)>
즉시 부장급 회의를 잡았다.
다른 건물에 있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컨퍼런스 콜로 진행이 되었다.
“지금은 상황이 이래서 컨퍼런스 콜로 진행을 하게 되었으니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나의 말에 다른 건물에 있는 이들 모두 괜찮다고 답했다.
“우선 박창후 본부장님과 안재영 본부장님은 당장 인력 꾸려서 현장 취재 준비해 주시고요.”
“네, 사장님!”
“홍지혜 본부장님은 기사 작성하는 한편 SNS 여론도 함께 살펴 주세요. 어떤 반응이 있는지도 소개해야 할 테니.”
“네! 사장님.”
“이덕오 이사님은 아시죠?”
“네. 특별 게시판 만들라는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메인 화면에는 영상하고 SNS를 적절히 배치해 주시고요.”
“네. 지금 바로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우리 직원 중에서 가장 최근에 전역한 사람이 누굽니까?”
나의 말에 안재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주전영 기자 같은데요. 서류 보니까 올해 초에 제대했더군요. 공군 출신인가 그럴 겁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배 부장님. 이번에 주전영 기자한테 기사 작성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배지민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안 될 건 없습니다만, 그건 왜죠? 주전영 기자는 오늘 막 들어와서 당분간은 모니터링하면서 업무도 익히고 사내 분위기도 익히게 할 요량이었습니다.”
“군대 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거든요. 저만 해도 입대했을 때와 제대할 당시의 군 문화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최신 군대 문화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기사를 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실제로 내가 입대할 당시였던 2005년만 하더라도 고참이 까라면 까야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역할 무렵에는 고참이 하자고 해도 싫다면 그걸 억지로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군대 문화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빠르게 변했다.
‘하물며 2011년이다. 내가 전역한 지도 5년이나 지났어.’
최근 군대 문화에 대해 잘 아는 이가 기사를 작성한다면 조금 더 현장감이나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습니다.”
“네. 그럼 안 본부장님은 주전영 기자도 이번 취재에 함께 데려가 주세요.”
“취재에도요? 알겠습니다. 주 기자가 어지간히 우 사장님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됐고, 잘 좀 가르쳐 줘요.”
“물론이죠. 그럼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주전영을 현장에 보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오프라인에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처럼 미친 듯한 속도로 기사를 써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었다.
글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문장도 좋고, 오타도 없고 깔끔한데?’
게다가 사진도 직접 찍어 올렸고, 포토샵을 이용하여 간단한 그래픽 기사까지 첨부하는 게 아닌가.
‘능력자네, 능력자.’
내가 그가 올린 기사들을 살피며 혀를 내두르는 사이.
홍지혜가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시죠? 홍 본부장님.”
“본부장님이라는 말. 참 입에 안 붙네요.”
“하하. 익숙해지셔야죠.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그녀는 내 쪽으로 오더니, 오른쪽 귀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내가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빙그레 웃고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곧 밝고 경쾌한 음악이 나오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들의 뉴스 친구, ‘헬로우 뉴스’의 홍지혜입니다. 헬로우 뉴스는 여러분들에게 신선한 뉴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이해하게 편하게 정리하여 전달 드리는 시사 교양 팟캐스트입니다. 오늘 전달 드리려고 하는 첫 번째 순서는 바로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입니다…….>
한동안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한 나는 이어폰을 빼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요?”
“신입도 저렇게 미친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는데 본부장이라는 사람이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이거 팟캐스트로 만든 거죠?”
“어머.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홍지혜는 비장의 카드를 들킨 사람처럼 놀라며 물었다.
“왜요. 너꼼수 유명하잖아요.”
“이런. 이미 알고 계셨네요.”
홍지혜의 표정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팟캐스트는 아직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매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상 매체인 유튜브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구독해서 받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지식이나 교양 분야는 기존 방송 대비 표현의 자유가 높고 정해진 틀이 없었기 때문에 유명 팟캐스트의 경우 독자들의 충성도가 무척 높았다.
“홍 본부장님이 직접 녹화한 건가요?”
“네. 어떠세요? 조금 전에 녹화해서 막 가지고 온 건데.”
“좋은데요? 목소리도 좋고, 발음도 좋고. 뭣보다 내용도 좋아요. 아직 사건 초기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내용에 대해서는 알차게 잘 정리된 것 같아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걱정했는데.”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려고요?”
“우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괜찮네요. 이번 사건은 사상 초유의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이니까 국민적인 관심도도 높고요.”
“네. 그럼 제목은 어떠세요?”
“제목이요? 아! 처음에 나온 헬로우 뉴스?”
“맞아요! 어떤가요?”
“하하. 저는 좋아요. 이건 저보다는 다른 친구들 의견도 함께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는 곧 사내 메일을 통해 홍지혜가 만든 팟캐스트를 공유하고 제목에 대한 의견을 받았다.
직원들의 피드백은 빨랐다.
신선하다거나 새롭다, 재미있다 등의 반응이 많은 가운데 제목에 대한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원제목인 헬로우 뉴스가 좋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팟캐스트가 대중적으로 흥하기는 어렵겠지만, 소수 마니아의 팬덤을 얻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매체죠. 홍 본부장님이 잘 이끌어 보세요.”
“네, 우 사장님. 너꼼수 따위는 비교도 안 되게 만들어 볼게요!”
그녀가 방에서 나간 뒤.
총기 난사 사건의 기사를 살펴보던 나는 안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장은 어때요?”
-별다른 건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해안 초소는 삼엄한 경비 속에 사고 수습한다고 분주하고요.
“국방부에는 몇 명 나가 있어요?”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군의 입장을 전하는 일은 사고 현장이 아니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국방부에서 브리핑이 진행되었다.
-네. 거긴 하 기자랑 준수, 도경이까지 세 명 나가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국방부 측은 문제없고. 현장은 안 본부장이랑 박 본부장이랑 또 누가 있죠?”
-사장님이 보낸 주전영 포함해서 평기자는 총 다섯 명입니다.
“주 기자 좀 바꿔 봐요.”
-전영이요? 네. 잠시만요. 전영아 사장님이 너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