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200)

곳곳에서 연기가 올라오더니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호텔 수영장을 사이에 둔 바비큐 파티는 호사스럽기 그지없었다.

바비큐뿐 아니라 각종 진귀한 요리와 열대 과일 및 디저트.

그리고 와인과 맥주 등 다양한 음료들이 무제한으로 제공되었다.

흥겨운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떠들며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나는 백철웅과 함께 공연 무대 바로 옆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와인잔을 든 채 직원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백철웅의 표정에는 아빠 미소가 가득했다.

“행복하세요? 백 사장님?”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요. 직원들이 이리 행복해하는데 사장으로서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백 사장님은 아닌가요?”

“저도 물론 행복하죠. 다들 너무 잘해 주고 있어요.”

“그러니까요. 우 사장. 그거 압니까?”

“네? 뭐를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거 말입니다.”

“오프라인 만든 거요?”

“아뇨.”

“그럼요.”

그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우 사장 만난 거요.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입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대꾸 없이 와인을 마셨다.

제주의 아름다운 밤이 깊어 갔다.

* * *

전사 워크숍이었지만 오프라인은 언론사였다.

당번제로 3시간씩 돌아가며 주요 이슈를 모니터링하고 기사를 썼다.

다행히 워크숍 기간에는 큰 이슈가 터지지 않았다.

“별거 없는데요. 형님도 들어가 주무세요. 밤이 깊었습니다. 하아암.”

이덕오가 노트북을 닫으며 크게 하품을 했다.

“응. 조금만 더 보고 들어갈 테니까, 이 이사도 들어가 자요.”

“네, 형님. 저 먼저 들어갈게요. 과식해서 그런지 너무 졸리네요.”

“과식해서 졸리다는 건 금시초문이다만.”

“흐흐. 굿나잇입니다!”

그가 꾸벅 인사를 하며 호텔 2층에 위치한 콘퍼런스 룸에서 사라졌다.

모두 꿈나라로 간 가운데 육중한 덩치의 이덕오가 사라지니 콘퍼런스 룸이 더욱 비어 보였다.

슬쩍 시계를 보니 어느덧 2시를 가리켰다.

“으아.”

나는 괴성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마지막으로 이슈가 없나 살핀 나는 노트북 덮개를 닫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응? 이 시간에 누구지?’

로비를 지나 수영장 근처에 이르니.

십여 명의 인원이 이 늦은 시각까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큰소리로 나를 반겼다.

“어이구! 우 사장님 오셨습니까!”

나는 황당하다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 여러분. 시간이 몇 신데 아직까지 술을 마셔요.”

“에이! 왜요. 우 사장님도 같이 드시죠!”

“저는 괜찮습니다. 여러분들도 적당히 하고 주무세요.”

적당히 나무라며 주변을 살피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주전영이었다.

“아니, 주 기자. 주 기자도 이 판에 있었던 거예요?”

화산이 폭발하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주전영이 기분이 좋은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사장님이 같이 어울리라 하셔서 그렇게 마시고 있습니다. 아예. 그렇죠.”

“하하. 그래도 내일도 있잖아요. 오늘은 이만하고 파하세요. 잠자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내 말에 모두가 알았다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떠난 것을 확인한 나는 윗옷을 번지고 수영장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온몸이 청량감으로 상쾌했다.

나는 가만히 누워 수영장에 둥둥 뜬 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쏟아질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많이 컸다. 오프라인.”

* * *

전날과 마찬가지로 자유시간을 즐기던 이들이 하나둘 호텔 지하에 위치한 대강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덩치가 커지면서 아직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기에 공식적인 자기소개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인원이 300명이나 되는 만큼 한 사람당 자기소개로 주어진 시간은 단 30초.

그렇게 해도 모두가 발표하려면 3시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자유일정 동안 서로 친해졌는지 어색하거나 부담스러운 자리는 아니었다.

각자 짧게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하고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렇게 299명의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다가왔다.

백철웅이 마이크를 내게 넘겼다.

나는 가볍게 좌중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우세진입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대강당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나는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제가 어떤 말을 할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까 봐 같은 말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인수 합병되거나 처음 들어온 이들은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두 눈을 깜빡이며 들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열심히 해 주십시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이 말만 하고 고개를 숙이자 기존 직원들은 알고 있었다는 듯 웃으며 따뜻하게 손뼉을 쳤다.

새로 온 직원들만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는 주변을 살폈다.

* * *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던 셋째 날은 둘째 날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모두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본부 단위로 의견을 모아 이어진 발표 시간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했다.

모든 본부가 좋은 의견을 냈지만 1등은 소셜 본부의 차지였다.

“저희는 이번에 본부 내에 ‘맛집’이라는 TF 팀을 만들 예정입니다.”

홍지혜의 말에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서 이름이 맛집이라니.

“저희가 지난 1년 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콘텐츠를 살펴본 결과 유저들은 음식, 특히 1분 정도의 짧은 요리법 동영상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홍지혜는 조사한 자료를 빔프로젝터에 띄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것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맛있으면서도 간편한 음식을 좋아하죠. 특히나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보면서 행복해했습니다.”

그녀는 화면에 한 영상을 띄웠다.

추억의 양배추 샌드위치 레시피였다.

대강당에는 침을 삼키는 소리로 가득했다.

심지어 조금 전 저녁을 먹고 왔음에도 말이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장난 아니네요.”

홍지혜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보였다.

“네. 그래서 저희는 이번 실험이 꽤나 흥미롭고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회 수와 재미, 그리고 수익으로까지요.”

그녀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홍지혜는 손가락을 하나 올리더니 말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언론사에서 왜 저런 걸 하지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취재 부서 분들은요.”

홍지혜가 안재영을 바라보며 묻자 안재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정보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그녀의 발표가 끝나가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아쉽게도 꼴등을 차지한 취재 본부는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꼴등 소감을 묻자 안재영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겨울에 있을 전사 워크숍에서는 절대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저희 본부가 또 꼴등을 한다면!”

모두가 그가 꺼낼 말을 궁금해했다.

“팬티만 입고 혼자 춤을 추겠습니다.”

대강당은 폭소로 뒤집혔다.

그러나 안재영의 표정은 그의 말과는 다르게 진지했다.

특히나 홍지혜를 노려보는 표정이 압권이었다.

홍지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그리고 그걸 저희 홈페이지와 SNS에 올리자고요. 괜찮죠?”

두 사람의 재치로 살벌했던 대강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어서 내가 회사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주제로 발표를 맡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자세히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이.

오프라인은 갑작스레 덩치가 커졌지만.

커진 만큼 단결력과 공동의 목표 역시 선명해졌다.

아틀란티스호.

미국이 만든 5대의 우주 왕복선 중 4호기.

1985년 최초 비행 이후 총 33회의 임무 수행을 통해 지구를 4,648바퀴 돌며 1억 9,416만 8,813km를 비행했다.

이 아틀란티스호가 역사적인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귀환하는 모습은 마치 역전의 용사가 임무를 완수하고 집으로 돌아오듯 깊은 떨림을 주었다.

“와아아아!!”

아틀란티스호가 활주로에 무사히 내려앉자 우주 왕복선의 마지막 귀환을 보러온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곧이어 아틀란티스호의 선장이 우주 왕복선에서 나오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계를 위한 30년 동안의 봉사로 우주 왕복선은 역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아틀란티스호를 박물관으로 보내 다음 세대들이 보고 고마움을 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선장의 인터뷰가 끝나자 곧 익숙한 얼굴이 화면에 등장했다.

바로 홍지혜와 이덕오였다.

홍지혜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국의 우주 왕복선 아틀란티스호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면서 30년 동안 이어져 왔던 미국의 우주 왕복 프로젝트도 끝났습니다. 이덕오 기자님, 이게 어떤 의미일까요?”

“네. 오프라인에서 과학 및 IT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덕오입니다. 아틀란티스호가 지구로 귀환하면서 미국 우주 왕복선의 135번째 비행이자 마지막 비행이 종료되었습니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와 같은 형태의 우주선 여행은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인데요.”

“그럼 앞으로 우주 왕복선을 더는 볼 수 없다?”

“네. 미국이 우주 왕복선을 개발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일회용 로켓보다 경제적인 효과가 월등할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생각해 봐도 한 번보다는 반복 사용을 할 수 있다면 더 유리할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었습니다. 우주 왕복선의 본체는 계속 사용할 수 있었지만, 발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평균적으로 4억 5천만 달러가 필요하죠.”

“한화로 환산하면 대략 5천억 정도일까요?”

“네. 이는 러시아의 소형 우주선인 소유즈의 발사 비용 대비 약 12배에 해당합니다.”

“비용 차이가 크군요.”

“우주 왕복선에는 최대 10명의 승무원과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반면, 소유즈는 정원이 3명이고 화물 탑재 공간도 작죠.”

“미국은 그동안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한발 앞서 있다는 자존심의 상징으로 우주 왕복선을 꼽았는데요. 예산 문제가 크다지만 이런 미국의 자존심을 중단케 한 가장 큰 원인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유럽 재정 위기를 비롯하여 미국의 경기 침체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도 굉장히 높고요.”

이덕오는 처음에는 긴장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유롭고 편안하게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미국이 더 이상 우주 왕복선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어떤 우주 계획을 잡고 있을까요?”

“네. 미국은 2천 30년대까지 우주인들을 화성 궤도에 보내기로 정책을 변경하였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은?”

“조만간 NASA에서 수천 명이 해고될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이죠.”

방송을 마친 이덕오가 어색하게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이 이사. 처음치고는 굉장히 잘하는데?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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