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200)

내가 이덕오를 바라보며 웃자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휴. 카메라 보고 이야기한다는 게 이렇게 부담스러운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 실수는 안 했나요?”

그러자 이덕오의 뒤에 있던 박창후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아뇨. 도저히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요. 이 이사님 우주 왕복선에 이렇게 해박한 지식이 있으실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헤헤. 어렸을 때 꿈이 우주 왕복선을 타고 달나라에 가는 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우 사장님은 이 이사님이 우주 왕복선 덕후인 건 어떻게 알고 그런 제안을 하신 거예요?”

나는 아틀란티스호 귀환을 앞두고 이덕오를 설득해 카메라 앞에 서게 했다.

“저번에 지구에서 아틀란티스호가 발사될 때 있잖아요.”

“저번 8일?”

“맞아요. 그때 이 이사가 TV에서 아틀란티스호 발사 장면을 보더니 케네디 우주 센터가 어쨌고, 우주 왕복선의 역사가 어쨌느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고 인류를 한 단계 나아가게 한 것인지 한참을 떠들더라고요. 그래서 제안했죠.”

이덕오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저는 그냥 관심 분야라 너무 신이 나서 얘기한 건데 우 사장님이 카메라 앞에 서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카메라 촬영은 됐고. 이제는 글도 써 봐야죠.”

“글이요?”

“영상 말고 기사도 써야 할 거 아니에요. 그 아까운 지식을 그냥 날릴 거예요? 이게 우주 왕복선 마지막이라면서요.”

“아니 그래도 저 기사는 써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봐줄 테니까 한번 써 봐요. 과학 및 IT 전문 기자 타이틀도 줬잖아요.”

“어휴. 그건 우 사장님이 그냥 꼭 이야기하라고 해서 한 거고요.”

“전문 기자가 뭐 별건가요. 해당 분야에 박식한 지식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됐지.”

“아니 그래도.”

“됐고. 빨리 써서 제출해요. 2시간 뒤에 점검할 겁니다.”

2시간 뒤라는 말에 이덕오는 깜짝 놀라 자신의 자리로 쏜살같이 이동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홍지혜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영상에서 말하는 거랑 직접 글로 쓰는 건 많이 다르잖아요. 괜찮을까요?”

“개발자가 글을 못 쓰리라는 편견은 버려요. 그가 올리는 보고서를 보면 웬만한 기자들보다 더 깔끔하고 논리정연합니다.”

“어머. 이 이사님 글 못 쓴다고 하지 않았어요. 기사는 처음 쓰시는 거라고 하니 그런 거죠.”

“저랑 홍 본부장님이 봐줄 텐데요 뭘. 그나저나 앞으로 디자이너나 개발자 등 다른 분들도 자기 전문분야가 있으면 이렇게 전문 기자로 등장해서 영상이든 글이든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

나의 제안에 홍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은 제안이네요. 우 사장님 말씀처럼 요즘은 전문가와 덕후의 경계가 미묘하기도 하고요.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설명을 해 준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네. 분명 각자 하나씩 다른 이들보다는 훨씬 더 전문적이고 애정이 있는 분야가 있을 겁니다. 게임이든 영화든 여행이든.”

전문 기자 제도 도입에 대해 홍지혜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좋은 아이디어라며 찬성했다.

백철웅은 자신은 영화 애호가라며 앞으로 영화에 대한 기사를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을 밝혔다.

“제가 참 영화를 좋아합니다. 우 사장 말도 있고 하니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 꼭지씩 영화 관련 기사를 한번 써 봐야겠군요.”

“좋네요. 저는 평소 MMORPG 게임을 좋아하는데 이쪽에 대해서도 기사를 한번 써 보고 싶네요.”

박창후의 말에 안재영이 자기도 게임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어? 박 본부장님 무슨 게임 좋아하세요? 저는 항해 시대를 좋아하는데요!”

“오! 그 게임 나도 알아!”

오프라인 사무실은 한동안 게임 이야기가 그칠 줄 몰랐다.

* * *

스낵 뉴스(SNACK NEWS).

오프라인은 언제 어디서나 간편히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뉴스 역시 짧고 재미있으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쉽게 즐길 수 있는 뉴스 플랫폼인 스낵 뉴스를 오픈하였다.

모든 기사는 간단한 영상이나 혹은 커다란 사진에 짧은 문구를 삽입하여 만든 카드 뉴스 형태로 디자인되어 가독성을 높였다.

본업인 뉴스 생산을 지속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오픈하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전 직원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조금은 가벼우면서도 애정이 깃든 기사를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작성함으로써 업무 부담은 낮으면서도 양질인 콘텐츠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주일마다 다양한 분야의 300개의 기사가 만들어진다, 라. 이거 재미있는 아이디어군요.”

백철웅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스낵 뉴스의 기사를 살펴보았다.

“현대인들은 항상 바쁘고 정신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출퇴근 시간 등을 활용하여 짧은 시간에도 집중할 수 있는 콘텐츠와 플랫폼을 제공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동족 포식(cannibalism)이 발생할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백철웅은 살짝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스낵 뉴스만 즐길 경우 기존의 오프라인 홈페이지나 SNS 등에 올린 기사를 보지 않게 되어 결국은 독자를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제 생각에는 타깃 독자가 다릅니다.”

“타깃 독자?”

“네. 스낵 뉴스를 좋아하는 이들은 10대나 20대. 그리고 시간이 별로 없는 이들이 대다수죠.”

“그러면 원래 우리 뉴스를 보던 이들은?”

“10대부터 80세까지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20, 30대입니다. 그리고 삶에 여유가 있거나 지식인들일수록 긴 글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요. 그러니 타깃 독자가 다릅니다.”

“그래요?”

“네. 게다가 중간 영역도 있을 테니까요. 스낵 뉴스도 사용하면서 기존의 뉴스를 이용하는 이들도 존재할 겁니다. 저희 입장에서야 큰 힘 들이지 않고 양쪽의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이득이겠죠.”

“흠.”

백철웅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카드 뉴스가 대체로 그렇지만 스낵 뉴스를 하다 보면 깊이가 부족하거나 팩트 체크에서 소홀해지진 않겠습니까?”

“홍지혜 본부장이 있는 소셜 본부에서 팩트 체킹을 한 번 더 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다행이군요. 소셜 본부가 약간의 업무 로드가 걸릴 수 있겠지만요.”

“네. 하지만 그리 크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네. 말씀하세요.”

나는 잠시 나의 집무실에 들러 책상 위에 뽑아 놓았던 서류를 들고 와서는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백철웅이 한 손가락으로 안경을 스윽 올리며 물었다.

“해외에 팩트 체킹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지국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해외 지국이요?”

“네. 보고서를 보시면 나와 있지만 로이터 통신의 경우 인도에 보도 자료 전담반을 두고 있습니다.”

“보도 자료 전담반? 그게 뭐죠?”

“전 세계에서 수없이 들어오는 보도 자료를 살피고 기본적인 팩트 체킹과 간단한 취재를 전담으로 하는 부서입니다.”

“오호라. 본사 기자들의 업무를 경감시키고 취재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1차 소스를 작성하는 곳이로군요!”

“맞습니다. 영어도 잘하면서 저임금인 노동자들이 인도에는 많죠. 시차도 다르니 24시간 능동적으로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보도 자료 처리와 팩트 체킹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 지사를 둔다, 라.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인데 가능할까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인도보다는 베트남 쪽을 공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베트남?”

“네. 요즘 한류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많이 늘었고,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 다른 동남아국가들과는 다르게 성실하고, 근면하죠.”

“임금도 한국보다는 싸다?”

“그렇죠. 최소 20배 이상 차이가 날 겁니다. 무엇보다 오프라인의 첫 해외 지사를 개국한다는 데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제가 늘 오프라인은 한국 언론사가 아니라 글로벌 언론사라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해외 지사라.”

백철웅은 두 눈을 조용히 감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5분여가 흐르고.

천천히 눈을 뜬 백철웅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진행해 봅시다!”

* * *

베트남에 해외 지사를 여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빠르게 진행됐다.

원화성에게 상담을 하니 하노이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건물이 있다면서 현지 전문가를 소개해 준 것이다.

그의 이름은 고희열.

올해 62살로 40살부터 베트남에 정착, 다양한 사업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안녕하세요, 희열 님. 오프라인 공동 사장 우세진입니다.”

-원 회장님으로부터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에 보도 자료 및 팩트 체킹 전담반을 두고 싶다고요.

“네. 베트남은 훌륭한 인재들이 많고 인건비가 싸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 우호적인 사람들도 많고요.”

-맞습니다. 특히 요즘 한류가 뜨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동경이랄까, 한국에 대한 선호가 강합니다.

“제가 조금 우려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주요 기사는 본사에서 처리하고 베트남 지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는 일을 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부분인데요. 어떠실 거 같습니까?”

-하하.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 안정적인 일거리가 제공된다는 것에 만족할 거고, 그게 요즘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오프라인의 지사라고 한다면 더욱 좋아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희열 님?”

-아 네.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이요? 어떤?”

-한국에서 이쪽으로 관리자분이 오시나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현지에 오는 것이 플러스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죠.

“그건 왜죠?”

-말도 안 통할뿐더러 현지 사정에 대해서 모르고 이야기를 하다가 현지 직원들과 오해가 생길 수도 있죠.

“아.”

-제가 오랫동안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가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일리가 있네요. 그러면 혹시 희열 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방안이 있을까요?”

-이런 말씀을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해 보세요.”

-제가 오프라인의 지사장으로 있는 건 어떻습니까?

“네?”

현지 전문가가 있으면 여러모로 해외 사업을 진행할 때 편하다.

그렇다고 그를 지사장에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단순히 건물 임대나 현지 정보 취득 그리고 인재 채용의 선에서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면?”

-원화성 회장에게 이 일에 대해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오프라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네.”

-정말 좋은 회사더군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기사나 포맷, 기술도 좋았습니다. 베트남에 보도 자료 전담반을 둔다는 아이디어도 획기적이었고요.

“감사합니다.”

-제가 사업을 한 경력만 40년 가까이 됩니다. 본능이 말하더군요. 여기서 일을 해야 한다고.

“흠.”

-저도 바로 답변을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저보다 더 이 업무에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게다가?”

-저도 젊었을 적에는 잠시 언론사 기자 생활을 하였답니다.

“그래요?”

-네. 소규모 월간지였죠. 정치나 사회 분야를 취재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사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이 문제는 내부에서 논의해 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희열과의 전화를 끊고 곧바로 원화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우세진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목소리가 제법 다급한 것 같군요?

“네. 소개해 주신 고희열 씨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해 주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요?

나는 그에게 고희열이 꺼낸 이야기를 전했다.

원화성도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허허. 그 아저씨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네. 현지 전문가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는데, 대뜸 베트남 지사장을 제안하셔서 놀랐습니다.”

-그렇군요. 그분이 현재 하노이에 있는 제 건물을 관리하는 것부터 이것저것 개인 사업을 하시는 게 좀 있습니다. 나름대로 다 잘되고 있고요.

“그렇다면 저희로서는 지사장을 맡기기에 더 부담되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하는 일 중 원 오브 뎀일 뿐이니까요.”

-만약 우 사장만 괜찮다면 저는 그분에게 지사장 자리를 주어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베트남에서 오래 사업을 하신 양반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잠시 기자 생활도 했고요. 인품이나 성격 그리고 실력까지 두루 갖춘 분이죠. 건물 관리 이전에는 저와 잠시 같이했던 사업도 있었고요.

“그런가요? 그렇지만 아까 말한 걱정은.”

-그건 걱정 마세요. 지사장과 건물 관리 이외의 일은 다른 분에게 넘기라고 이야기하면 충분히 수용하실 겁니다. 애초에 손이 많이 가는 일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저희도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 그런데 정말로 고희열 씨가 그런 이야기를 했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하하. 아뇨. 예전에 베트남에서 카페 사업을 제가 제안한 적이 있는데 몇 번이나 튕겼거든요. 제가 하노이까지 날아가서 그를 설득했던 기억이 떠올라 물어봤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