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200)

“보통 분이 아니신가 보죠?”

-그렇죠. 아마 유수의 대기업에서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자고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 중 하나일 겁니다.

나는 본부장급 회의를 소집하고 이 의제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고희열 씨의 제안.

그리고 원화성 회장의 추천.

백철웅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니 원 회장이 그렇게까지 말할 인사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듣자 하니 보통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오히려 그쪽에서 먼저 제안을 했다면 우리에게는 천운이죠.”

홍지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네. 그분 말씀처럼 저희가 그쪽에 관리자로 가는 것보다는 믿을 만한 현지 전문가가 톱으로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훨씬 더 안정될 거고요.”

다만 최루리의 표정은 조금 미묘했다.

“좋습니다만, 해외 지사의 관리는 국제 본부의 업무죠?”

“맞습니다.”

“그렇다면 면접은 저희 쪽에서 진행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면접이요?”

“네. 사장님 선에서 바로 채용을 하기보다는 저도 그분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진행이 된다면 조금 더 안심될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당연합니다. 그리고 해외 지사장이라지만 최 본부장님보다는 아래 직급으로 뽑을 생각이고요.”

“직급은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저보다 위라도 상관없고요. 다만 저희랑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는 분인지 체크를 해 보고 싶어서요.”

“이해합니다. 먼저 최 본부장님 면접 이후에 통과하면 2차 면접을 보는 거로 하시죠.”

이후 일정은 빠르게 진행됐다.

최루리의 면접을 통과한 고희열은 사장단 면접도 만장일치로 통과.

오프라인의 첫 해외 지사인 베트남 해외 지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원화성이 가지고 있는 건물의 한 층을 임대받아 사무실 역시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고 지사장님. 채용은 두 달 정도면 충분할까요?”

“두 달이요? 하하. 아닙니다. 한 달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두 달이나 두고 뽑았다가는 제 허리가 휩니다.”

“네?”

“오프라인의 인기는 여기서도 높습니다.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오프라인일 정도니까요.”

“그렇군요.”

“그런 곳에서 베트남에 지사를 열고 직원을 뽑는다? 아마 뛰어난 인재들이 물밀 듯이 밀려올 겁니다.”

“하하. 혼자서 하시기 버거우시면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어차피 베트남어가 가능한 건 저뿐이니까요. 이건 저에게 맡겨 주세요. 사람 뽑는 건 자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곧 15명의 정예 인원을 채용하여 업무를 시작하였다.

확실히 보도 자료 처리 및 팩트 체킹을 전담하는 부서가 생기니 업무 부담은 줄어들고 기사의 퀄리티는 눈에 띄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야. 자료 정리하다가 하루가 후딱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베트남 지사에서 이렇게 멋지게 정리해서 자료를 넘기니까 기사 쓰기 너무 좋은걸?”

“그동안 보도 자료 안 보고 기사 쓰기 너무 힘들었는데, 이렇게 정리해 주니 정말 최고다!”

“편해진 만큼 우리도 좋은 기사로 보답해야지!”

직원들의 만족도 역시 훨씬 높아졌다.

* * *

3곳의 소셜 언론을 인수한 이후 오프라인이 보유한 사무실은 총 4개였다.

종로에 있는 본사 사무실을 비롯해 광화문, 구로, 강남역까지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업무의 효율 및 직원 간 이해와 소통 그리고 소속감에서 한계가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전사 워크숍 때만 해도 형, 동생 하던 녀석들이 이제 데면데면하네요.”

이덕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도 취재 2부랑 3부에 지시 내릴 땐 뭔가 알 수 없는 거리감 같은 게 있습니다.”

“나도 그래. 눈앞에서 이야기를 하면 바로 이해될 내용도, 전화랑 메신저로 나누니까 쉽지가 않네.”

그런 문제를 넘어 일단 본사 사무실 공간은 포화 상태였다.

모두가 여유 공간 없이 따닥따닥 책상을 붙여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새로 인테리어를 바꾼 위층 사무실조차 기존 배치와는 다르게 책상을 배치하다 보니 카페 공간이 일정 부분 줄어들었을 정도.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창밖의 건물을 내다보며 말했다.

“이사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이사요?”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아무래도 사무실이 떨어져 있으면 소속감이나 애사심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고, 업무 효율도 떨어지고요.”

“그런데 저희 강남역에 사옥 짓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최루리의 말에 내가 난색을 표했다.

“사옥은 최소 3년은 걸릴 겁니다. 3년 동안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죠.”

“오래 걸리네요.”

“그나마 건축 기술이 발전해서 그 정도죠. 시공 전에 구청이랑 서울시랑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남았고요.”

“그런데 이사를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홍지혜의 말에 내가 창밖의 건물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향하는 곳에는 최근 완공된 종로의 랜드마크, 종로 센터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 종로 센터요?!”

박창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종로 센터는 지상 35층에 지하 10층 규모의 프라임급 오피스였다.

종로는 물론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비싸지 않을까요?”

최루리가 기대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건물 임대료만 네 곳이 나가고 있어요. 그럴 바에는 그냥 한 곳에 입주하는 게 좋죠. 지금 종로 센터도 임대 이벤트도 한창이고요.”

“임대 이벤트요? 그게 뭐죠?”

“이제 막 완공이 되었으니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인을 구하는 거죠. 대형 오피스이니만큼 공실이 나면 그만큼 손해니까요. 지금 들어가면 주변 사무실보다 그리 비싸지도 않을 겁니다.”

“와! 그렇다면 저는 찬성이요! 저런 랜드마크에서 일한다면 뭔가 뿌듯할 것 같아요!”

이덕오가 신이 난 듯 어깨춤을 추며 말했다.

모두의 표정에서 새 오피스에 대한 기대감과 랜드마크 입주에 대한 설렘이 보였다.

단 한 사람.

백철웅만이 고민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 * *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낡고 오래된 건물.

오프라인 사무실이 위치한 이곳은 알고 보니 백철웅의 친척이 건물주로 있는 빌딩이었다.

“네? 여기 건물주가 백 사장님의 이모님이시라고요?”

나의 물음에 백철웅이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임대료가 너무 싸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낡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종로 한복판에 있는데.”

“와 백 사장님. 제 꿈이 건물주인데, 건물주의 친척이라니. 뭔가 새롭게 보이십니다.”

박창후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백철웅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이모님이 여간 깐깐하신 게 아니거든요.”

“응? 그게 무슨 뜻이죠? 이모님 입장에서는 좋으신 거 아닌가요?”

“그러게요. 그동안 조카라서 저렴하게 임대료를 받았는데 우리가 빠지면 원래 가격으로 받을 수 있잖아요? 좋아하실 거 같은데.”

백철웅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자신의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전에 있던 임차인 중에 임대료를 제때 내지 않는다거나 갑자기 사무실을 비운 경우가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임차인에 대한 노이로제 같은 게 있으시죠.”

“저런.”

“그런데 제가 사업을 한다고 하니 싼값에 빌려주는 대신.”

“대신?”

모두가 궁금하다는 듯 한목소리로 물었다.

“오랫동안 사용하라는 전제 조건이 붙었거든요. 위층의 사무실을 빠지자마자 빌릴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고요.”

백철웅의 말에 모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렴한 임대료의 이유는 단지 백철웅이 건물주의 친척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사용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그런데 우리가 빠지면 이모님이 곤란하시겠군요. 믿었던 조카가 배신하는 느낌도 드실 테고요.”

안재영의 말에 백철웅이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바로 그겁니다. 위층 사무실 임대할 때도 10년은 문제없이 쓴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는데, 갑자기 빠진다고 그러면. 휴.”

새로운 사무실에 갈 생각에 들떠 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가운데 입을 연 자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로 이수빈이었다.

“저기 백 사장님.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 * *

오프라인은 빠르다.

기사가 나오는 속도도 그렇지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리고 무언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그것을 실행하는 속도도.

사무실을 통합 이전하기로 합의한 이후 우리는 빠르게 이전 사무실들을 정리하고 종로 센터로 모였다.

“이야 초고층 빌딩의 2층이라니. 이거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박창후의 말에 내가 웃으며 답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도 갈 수 있으니 이득이죠. 2층에 있는 야외 정원을 통해 1층에 내려가지 않더라도 바로 흡연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요.”

“그래도 고층에서 바라보는 도심의 야경을 기대했는데, 그런 건 아쉽네요.”

“하하. 강남역에 저희 사옥 건설되면 우리 오피스는 꼭 고층으로 하겠습니다.”

“네. 꼭 최고층으로 부탁드립니다!”

종로 센터는 새로 지어진 프라임 오피스이니만큼 300명의 인원을 한 층에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첨단 기술의 집합체였다.

주위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전력과 냉난방 시스템이 가동되고, 원격 보안 및 주차 관리 등 다양한 최신 솔루션이 탑재되어 있었다.

“지금 임대 할인 이벤트를 한다고 하지만 프라임 오피스치고는 너무 저렴한 거 아니에요? 종로의 랜드마크 건물인데.”

최루리가 임대료 이야기를 듣더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건물주가 오프라인이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엄청 싸게 주더군요.”

“응? 설마 우리가 언론사라서 그랬던 걸까요?”

“그런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죠. 잘 봐 달라는 의미의?”

“흠. 그래도 저희는 공명정대한 언론사니까 그런 것 가지고 봐주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하죠.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니까요. 별일 없을 겁니다.”

종로 센터의 건물주는 국내 대형 증권사인데 깨끗하고 투명한 운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최 부장님. 아직 이전 사무실에서 안 가지고 온 물건 있다고 그랬죠? 같이 가실까요?”

“와. 우 사장님이 직접 가 주시는 거예요? 저야 좋죠!”

최루리가 와락 내 팔을 붙잡고는 즐거워했다.

나는 그녀와 종로 거리를 걸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사무실 근처에 청계천도 있고, 역도 가깝고, 맛집도 많아서 저는 정말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강남 쪽은 왠지 어색한데 강북은 친숙해요.”

“호호. 젊은 분이 애늙은이처럼. 그런데 그건 저도 그래요. 강남보다는 강북이 뭔가 정겹고 편해요.”

“이전 사무실이랑 가까운 공간이라 다행이죠?”

“그렇죠. 갑자기 출근 환경이 달라지면 적응이 필요했을 텐데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지금 건물은 너무 최첨단이라 신기하긴 하지만.”

“갑자기 인원이 늘어서 많이 바쁘시죠?”

“아녜요. 성장하는 느낌이 드니까 힘이 나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무엇보다 다들 너무 똑똑하고 열정이 넘치세요. 제가 부족하죠, 뭐.”

“이런. 최 본부장님이 부족하다고 하시면 우리 회사에 잘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에이~ 우 사장님은 정말 못 당하겠다니까요. 호호.”

10여 분을 걷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정든 곳인데. 떠나니까 아쉽네요.”

“네.”

나는 말 없이 낡은 건물을 바라보았다.

회귀 전 10년.

회귀 후 1년.

총 11년을 이 건물에서 지냈었다.

좋은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다.

정이 안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내가 가만히 건물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최루리가 어깨를 두드렸다.

“우 사장님이 많이 아쉬운가 봐요. 그렇게 그윽한 표정으로 바라보시고. 1년만 더 있다가 나왔으면 눈물을 흘리셨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아닙니다. 그냥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서요.”

“여러 가지?”

“네. 떠나는 게 아쉽기도 하고, 또 성장해서 가는 거니까 뿌듯하기도 하고요.”

“맞아요. 저도 복잡다단한 기분이네요. 그래도 이곳을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잖아요. 이수빈 본부장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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