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200)

최루리가 1층에 주차된 공사 차량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를 오프라인 프렌즈 종로 스토어로 하자니.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저도요. 한남동에 있는 스토어가 너무 잘되니 안 그래도 한두 군데 더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타이밍도 그렇고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죠.”

“백 사장님 이모님도 그래요. 우리가 빠지는 대신 5층 전체를 다 빌려서 스토어로 만든다니까 어쩜 그리 좋아하시는지.”

“좋으셨겠죠. 단일 임차인에 리모델링하면 건물 가격도 엄청 오를 테고요.”

“맞아요! 이모님에게 오프라인은 로또네요, 로또!”

우리는 사무실에서 몇 가지 물건을 챙겨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왔다.

“화분은 그냥 이사 업체에 맡기시지 직접 오신 거예요?”

“네. 아무래도 파손의 위험이 있으니까요. 제가 미리 챙겼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챙기네요. 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우 사장님.”

“뭘요. 저는 또 무거운 짐이 있는가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무거운 짐이면 우 사장님 안 시키죠! 설마 저를 그런 악독한 여자로 보시는 건 아니죠?”

“설마요. 농담한 겁니다.”

우리는 웃으며 종로 센터로 돌아왔다.

로비를 지나 2층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최루리가 내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우 사장님. 괜찮으시면 저희 저기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실래요?”

“커피요? 좋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로비에 위치한 카페 공간으로 향했다.

그러자 반가운 얼굴이 손을 흔들었다.

김희철이었다.

“여! 데이트 중이신가?”

“네. 사장님과 데이트 중이었는데 딱 걸렸네요!”

최루리가 괜히 더 내 쪽으로 몸을 밀착시키며 장난을 쳤다.

“하하. 이전 사무실 다녀오신 거 아니에요?”

“어머.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우 사장님이 들고 있는 화분이요. 그거 최 본부장님 책상에 있던 거잖아요.”

“와. 소름! 그걸 기억하고 계세요?”

“물론이죠. 최 본부장님 자리에 그 화분 보고 보통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응? 왜요?”

“그거 키우기 어렵기로 유명한 다육이잖아요.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맞아! 오십령옥?”

“와! 맞아요. 이걸 아시는군요!”

김희철과 최루리는 한참을 다육 식물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둘 다 다육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네.’

둘이 식물 이야기로 정신이 없는 사이.

나는 천천히 카페 공간을 둘러보았다.

공간 자체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은 물론.

알바생으로 보이는 인물도 3명 정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아메리카노가 5천 원을 비롯하여 심지어 만원을 넘는 음료도 있었다.

그런데도 빈자리가 드물 만큼 카페에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어느새 내 옆에 선 김희철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흠흠. 어때? 제법 고급 카페 같지?”

“네. 인테리어도 호텔 카페처럼 고급스럽네요. 가격도요.”

“하하. 그래도 오프라인 직원들에게는 예전과 똑같은 가격 받기로 했잖아. 자네는 언제나 공짜고.”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김희철과의 사내 카페 계약은 파기되었다.

아쉽게도 2층 사무실에 카페를 둘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건물주를 설득하여 1층 로비 공간 한쪽에 카페를 두기로 하고 김희철에게 그곳에 입주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던 것이다.

건물주 역시 로비 공간에 카페를 찾고 있었던 중이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김희철이었다.

아무리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임대료가 이전 사무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전 사무실에서는 공짜로 임대해 주고 있었고.’

나는 김희철에게 우리가 임대료의 일정 부분을 내주는 대신 음료 가격을 이전과 동일하게 해 주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던졌다.

김희철은 1초의 고민도 없이 좋다고 답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쪽으로 이사 오면서 오프라인의 사내 카페였던 ‘오프’ 역시 종로 센터 1층으로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오프라인의 사내 카페가 아니라 이제는 종로의 랜드마크인 종로 센터의 대표적인 카페로 말이다.

“진짜, 우 사장 덕분이야. 대학로 구석에서 조그맣게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건물 1층에서 카페를 열 줄이야.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형님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죠. 손님들도 좋아하시죠?”

“응. 여기는 비쌀 만하다고 납득하는 분위기?”

“하하. 그렇죠. 비싸기만 하고 맛없는 가게가 지천으로 널렸으니까요. 여기 커피는 확실히 다르죠.”

“아무튼 고마워. 데이트도 좋지만, 남편 있는 분에게는 적당히 하고.”

그가 나와 최루리를 향해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어머! 저 유부녀라고 놀리시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요. 다음에 또 내려오세요. 다육이 이야기나 더 해요.”

“호호. 좋아요. 수고하세요.”

최루리와 함께 2층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사무실 곳곳에서 한탄 소리가 들렸다.

“아이! 진짜!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이렇게 많은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는 거야!”

“이런 대형 포털에서도 유출될 정도면 다른 곳들은 어떨지 두렵네요. 두려워.”

“아니 이틀 전에 해킹당했다면서 왜 이제야 발표하냐고!”

대한민국 3대 포털 중 하나인 ‘네온’과 국산 SNS의 대명사인 ‘사이버토리’의 해킹.

그로 인해 회원 4,00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단순히 이름뿐 아니라 주민 등록 번호와 비밀 번호, 아이디, 휴대폰 번호, 메일 주소 등 주요 개인 정보가 모두 털린 것이다.

“아니 보안 업체에서 제공하는 압축 프로그램 서버가 해킹된 거랑 포털 업체 해킹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거예요?”

박창후의 말에 이덕오가 설명했다.

“그러니까 해커들이 해당 압축 프로그램의 업데이트 서버를 해킹해서 이용자들이 업데이트를 받으면 자동으로 사용자 컴퓨터에 해킹 프로그램이 깔리게 한 거죠.”

“아니 그러니까, 그건 압축 프로그램 서버의 해킹이고, 포털 업체랑은 다르잖아요.”

“그 압축 프로그램을 포털 업체 직원들도 쓰니까요. 그때 포털 업체 내부 관리자 계정이 해킹당한 거죠.”

“저런. 완전 트로이 목마네!”

“트로이 목마요?”

“그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목마 있잖아요. 신을 위한 선물로 위장해서 안에는 병사들이 타고 있던 거.”

“아하! 그러고 보니 악성 코드를 실행하는 프로그램도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라고 불러요.”

“암튼, 대형 포털에서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개인 정보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이야기군요?”

박창후의 말에 이덕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보안 업체도 뚫리고 대형 포털도 뚫렸으니 다른 곳에 보관된 개인 정보도 안전하다고 하기는 어렵겠죠.”

이덕오의 말처럼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킹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대형 사이트가 보관한 개인 정보가 연이어 해커에게 털리면서 한국인의 주민 등록 번호는 공공재라는 잘못된 인식이 심어지는 계기가 되니까.

“이 이사님, 우리는 괜찮은 거예요? 우리도 유저들 개인 정보 수집하고 있잖아요?”

이수빈의 말에 이덕오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우리는 고급 암호화 표준인 256-bit key AES로 암호화해서 여간해서는 해독이 불가능해요. 그걸 떠나서 내부 백신이랑 네트워크 보안도 세계 최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요. 또.”

“또?”

“제가 네트워크랑 직원들 컴퓨터도 틈틈이 체크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요? 와 멋지다!”

이수빈의 칭찬에 으슥해진 이덕오가 기분 좋은 듯 하늘 높이 코를 치켜세웠다.

그때 최루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네트워크는 그렇다 치고, 직원들 컴퓨터도 체크하고 있다고요? 그거 내 컴퓨터를 감시하고 있다는 소린가?”

“엑!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이덕오는 한참이나 자신은 직원들 컴퓨터 화면을 감시한 적이 없다며 진땀을 뺐다.

‘사실 보려면 볼 수는 있지만, 양심상 안 그런 거겠지.’

나는 무언가 한마디를 해 주려다가 괜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자코 둘의 모습을 지켜봤다.

보안상의 이유로 회사는 직원의 모니터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이를 일일이 확인할 인력이나 시간이 없을 뿐 네트워크망을 갖춘 대부분의 회사에서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물론 직원의 동의 없이 봤다가는 정보 통신망 법 위반죄와 형법상 비밀침해죄가 걸릴 수 있으니까 아무도 봤다고는 말 안 하겠지만.’

회의가 끝나고 맨 마지막으로 방을 나가려는 이덕오를 붙잡고는 넌지시 말했다.

“시스템상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직원의 동의 없는 감시는 헌법상 보장되는 통신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를 이 이사가 만들어 보세요. 회사 보안도 지키면서 직원들 사생활도 지킬 수 있도록요.”

“아, 사장님! 알고 계셨군요?”

“내가 짬밥이 몇 년짼데.”

“네?”

“됐어요. 나가 보세요.”

이덕오가 나간 뒤 한동안 오프라인에 올라온 해킹 뉴스를 살펴보았다.

나의 지시대로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풀어 쓴 기사들.

그래서인지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오프라인 기사는 한눈에 쏙쏙 들어와. 덕분에 암호화 기술에 대해서도 이해했어!>

<그동안 인터넷 보안에 대해서 별생각 없었는데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오프라인은 최신 암호화 기술을 쓰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안타까운 건 네온과 사이버토리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네온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는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고, 사이버토리는 분사 이후 끝내 서비스를 접고 만다.

대형 IT 회사의 몰락.

온라인으로 서비스를 하는 이들에게 보안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는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자꾸 반복되어 터져서 한국에서 개인 정보는 공공재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게 되지만 말이지.’

* * *

올해 여름은 유독 비가 잦았다.

한 달 내내 장마가 이어지면서 비 오는 게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올해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왔네요. 덕분에 시원해서 좋았지만.”

“그래도 이제 장마 끝났잖아요. 햇볕 좀 쬐야죠.”

“우리도 이제 동남아처럼 국지성 폭우가 잦아진다고 하니 조심해야지.”

“에이! 오랜만에 비도 안 와서 기분도 좋은데, 비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팥빙수나 먹죠!”

이덕오가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팥빙수를 재빠르게 비비더니 첫 숟가락을 떴다.

“아이! 이 이사님. 여기 숟가락 따로 있는데 자기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어떡해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최 본부장님. 너무 맛있어 보이길래, 헤헤.”

이덕오와 최루리, 그리고 홍지혜와 나는 종로 센터의 1층에 있는 카페 ‘오프’에서 팥빙수를 시켜 놓고는 점심 식사 시간 이후에 찾아온 한낮의 여유를 즐겼다.

‘국지성 폭우라.’

나는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 로비 벽을 통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어디론가 이동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국지성 폭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화창한 날이었다.

‘무언가 잊고 있는 기억이 있는데 그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단 말야.’

내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 홍지혜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 사장님. 뭘 그리 멍하게 보세요. 그렇게 가만히 계시다가는 팥빙수 한 입도 못 드실 거예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팥빙수를 바라보니 어느새 절반이 비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덕오는 뭐가 그리 급한지 허겁지겁 팥빙수를 떠먹었다.

“이 이사님. 천천히 좀 드세요. 그러다가 체할라.”

“헤헤. 괜찮습니다. 여긴 커피도 좋지만, 팥빙수도 끝내 주네요!”

갑자기 이덕오가 몸을 빙글 돌리더니 김희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덕오를 발견한 김희철이 멋지게 거수경례를 하며 손을 날렸다.

최루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맛있는 건 인정. 여기 커피 맛집이랑 팥빙수 맛집으로 온라인에서도 유명하더라고요.”

“그래요? 역시 콘텐츠가 중요하군요.”

“콘텐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콘텐츠라는 말을 꺼내자 최루리가 물었다.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커피랑 팥빙수가 맛있으니까 사람들이 몰리잖아요. 카페의 본질이 커피이듯, 언론사의 본질은 뉴스. 그러니까 그 근본 콘텐츠가 어떠냐에 따라 사람들이 몰린다는 의미죠.”

“아하! 이해했어요. 오프라인은 뉴스가! 오프는 커피가 중요하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말이 나온 김에 우리 팥빙수 맛집이나 커피 맛집 같은 콘텐츠를 기획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오! 좋아요. 이전에 제주도 갔을 때 제주 맛집 지도 만들었을 때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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