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200)

“네. 그걸 서울이나 아니면 종로 이렇게 한정해서 지역별로 여러 콘텐츠를 만들면 그것도 괜찮겠네요.”

“종로 맛집이라! 정말 좋은데요?”

최루리는 자타 공인 미식가였다.

퇴근하면 늘 맛있는 식당과 카페에 가는 걸 낙으로 삼는 사람이라 그런지 내가 던진 제안이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언니, 우리 저번에 갔던 파전집도 괜찮지 않았어요?”

“오! 맞아. 거기도 진짜 맛있더라. 어때요? 사장님. 다음에 같이 가실래요?”

“하하. 두 분이서 자주 한잔하시나 보죠? 다음에 기회 있으면 초대해 주세요.”

내가 웃으며 이야기를 하자 이덕오가 슬쩍 끼어들었다.

“뭐야! 저도 끼워 주세요! 저도 파전 먹을 줄 안다고요.”

“히히. 좋아요. 그런데 파전은 비 오는 날 먹어야 딱인데. 오늘은 비가 안 와서 아쉽네.”

최루리가 아쉽다는 듯 바깥 풍경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더운지 도로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는 퇴근 무렵부터 순식간에 돌변했다.

미친 듯이 퍼붓던 비는 새벽을 지나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우면산이 무너졌다.

* * *

하루 강수량 301.5㎜.

그리고 3일 합계 강수량 587.5㎜.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폭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강원도 일부 지방에 퍼부은 집중 호우는 그 강수량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피해를 끼친다.

특히 우면동 산사태는 서울.

그것도 부촌으로 알려진 서초구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그 충격과 공포가 컸다.

심상치 않은 폭우에 새벽 일찍 고시원을 나왔다.

장대 같은 빗줄기를 뚫고 출근하는데 사무실 근처 청계천이 보통 때와는 달랐다.

산책길은 물론 5m가 넘는 벽면을 지나 도로 근처까지 가득 찬 흙탕물은 마치 계곡처럼 소용돌이가 곳곳에서 휘몰아쳤다.

‘젠장. 뭔가 찝찝했던 게 이거였구나!’

작년 가을에 있었던 광화문 물 폭탄 사건은 추석 기간에 걸쳐 있었고, 해당 기사를 통해 오프라인이 주목을 받았던 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폭우는 평일에 벌어졌던 탓에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이덕오를 시켜 폭우와 관련된 전용 게시판을 만들고 사람들의 정보를 모았다.

작년에 있었던 광화문 물 폭탄 사건의 기억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현재 주변의 모습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강남역은 마비 상태. 도로에 차들이 잠겨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습니다.>

<선릉역 주변도 난리예요. 이게 강인지 도로인지 모르겠어요.>

<어떡해요! 저희 아파트는 산사태가 덮쳐서 1층으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있어요! 제발 저희 좀 구해 주세요!>

그는 자기 집 베란다에서 찍었다며 새벽에 있었던 산사태 영상을 전용 게시판에 남겼다.

쿠아아아앙.

마치 영화처럼 산에서 하얀 물보라가 일더니 엄청난 양의 토사가 쏟아져 내려왔다.

그리고 도로를 지나 아파트를 덮쳤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공포에 떨었는지 촬영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어어어어어! 어떡해! 어어어어어!”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비명만 질러 댔다.

전용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을 본 오프라인 직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재난 영화도 아니고 이게 뭐야!”

“소름이 다 돋네. 어떡하냐 진짜.”

모두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영상을 다시 보고 또 봤다.

나는 모두를 진정시키고는 재빨리 업무를 지시했다.

“지금 영상 바로 메인에 올리고, 박 본부장님은 이거 빨리 편집해 주세요. 소셜 본부는 혹시 다른 영상이나 사진은 없는지 더 찾아보고요!”

모두 정신없이 업무를 진행하는 가운데 유난히 한 자리가 비어 보였다.

국제 본부를 통솔하는 최루리였다.

“최 본부장 오늘 출근 안 했어요?”

“아, 네. 연락을 안 받으세요.”

“응? 연락이 안 된다고요?”

“네. 문자도 남기고 톡도 남기고 전화도 했는데 다 안 받으세요.”

지난 1년간 지각 한번 없었던 사람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급히 집무실로 뛰어간 나는 컴퓨터를 뒤졌다.

직원 주소가 담긴 파일이었다.

“어디 보자, 최루리, 최루리.”

Ctrl F를 눌러 최루리의 주소를 찾았다.

“젠장!”

모니터 화면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마우스 커서는 최루리의 집 주소에서 깜박인 채 멈출 줄 몰랐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 마을 2○○○-○○번지>

바로 우면동 산사태가 일어난 지역이었다.

# 5장 남태령 전원 마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 마을 2○○○-○○번지>

바로 우면동 산사태가 일어난 지역이 아니던가.

남태령 전원 마을은 우면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시골 마을로 산사태로 쏟아진 토사가 마을을 덮쳐 이번 폭우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였다.

곧바로 포털 지도를 이용하여 그녀의 주소를 쳐 보니 하필 우면산 자락 바로 아래의 집이었다.

나는 급히 본부장급 회의를 열고 사안에 대해 알렸다.

“최루리 본부장이 지금 연락이 안 되는데, 집 주소가 산사태 피해가 일어난 남태령 전원 마을입니다.”

내 말에 모두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박창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남편분에게는 연락이 안 되나요?”

“아쉽게도 남편분의 연락처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거 큰일인데요. 당장 경찰이랑 소방서에 신고해야…….”

“아뇨. 우리가 갑시다.”

“네?”

“그게 무슨?”

나는 팔짱을 끼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인근의 수도 방위 사령부와 경찰에서 현장에 출동했을 겁니다. 중요한 건 지금 일손이 모자란다는 겁니다.”

“우 사장. 마음은 알겠는데 그 근처 교통이 마비 상태입니다. 어떻게 가겠다는 겁니까?”

백철웅이 근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실제로 남부 순환로 일부와 우면산 터널이 토사로 매몰되면서 차가 오갈 수 없는 상태였다.

지하철 역시 사당역 주변 선로로 물이 들어차면서 운행이 중지됐다.

“피해 지역뿐 아니라 강남역, 강변북로. 광화문 등 곳곳이 물바다라 차들이 못 다니고 있습니다.”

안재영 역시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하늘로 갈 겁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창밖의 하늘을 가리켰다.

* * *

투두두두두투두.

헬기 탑승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최영함을 오갈 때 두 번 탔다.

물론 총에 맞아 실신 후 병원에 실려 올 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뭘 어떻게 하면 헬기를 이렇게 택시 부르듯 금방 빌릴 수 있습니까?”

박창후가 헬기 밖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는 물었다.

“산림청에 연락하니 빠르네요.”

“산림청이요?”

“네. 산림청 산하 산림 항공 본부에서는 산불 방지 등 산림 및 국민 생명을 보호로 헬리콥터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산불 난 것도 아닌데 응해 주네요?”

“산사태로 사람 목숨이 위험한 상태니까요. 거기에.”

“거기에?”

“오프라인이라고 하니까 바로 오더군요.”

“거참.”

사람 생명이 달린 일이었다.

산사태로 사람이 죽게 생겼다고 크게 소리를 치자 곧바로 서울 산림 항공 관리소에서 종로 센터로 헬기를 보내 주었다.

“우 사장님 아니었으면 절대 안 빌려줬을 겁니다. 새삼 언론사의 위력을 느끼네요.”

“그저 고맙죠.”

헬기는 빠른 속도로 전원 마을을 향했다.

다행히 하늘이 뚫린 듯 거세게 퍼붓던 새벽 시간에 비해 빗줄기는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남태령 전원 마을이면 부자 동네 아닙니까? 예술가나 재계,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들었는데요.”

안재영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도심 속 전원생활이 가능하다고 해서 논밭이었던 곳에 하나둘 전원주택이 생기면서 조성된 곳이죠.”

“그런 곳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무력하네요.”

박창후의 말처럼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있었던 광화문 물 폭탄 사건이나 얼마 전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 앞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무기력하던가.

비탄에 잠겨 있는 사이.

앞에 있던 헬기 조종사가 소리쳤다.

“우세진 사장님! 전원 마을은 토사가 가득 차 도저히 착륙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죠?”

“아! 그럼 근처에 TV 홈 쇼핑 업체가 있습니다. 거기라면 헬기 착륙이 가능할 겁니다.”

회귀 전 남태령에 위치한 한 TV 홈 쇼핑과 콜라보 콘텐츠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남태령 전원 마을의 존재를 안 것도 그때였다.

남태령역을 나오면 바로 전원 마을이 나왔고, 거기를 지나야 홈 쇼핑 회사에 갈 수 있었다.

“아! 거기라면 착륙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쪽에 내리겠습니다.”

“네. 혹시 모르니 괜찮으시면 좀 대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저희도 상황을 살펴보고 괜찮다면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헬기에서 내린 나와 박창후 그리고 안재영과 주전영은 곧바로 지도 앱을 켜고는 최루리의 집으로 향했다.

전원 마을 쪽으로 다가갈수록 피해는 참혹했다.

마을은 온통 붉은 진흙으로 덮여 있었다.

자동차들이 토사에 밀려 전봇대 인근에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은 물론 담장이 무너지고 여기저기에 파손된 차와 나무가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도로보다 낮은 반지하 집에는 토사가 밀어닥쳐 형체를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쩝.”

박창후가 장면을 찍지 못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곳에 온 건 취재 목적이 아니었다.

‘당장 최루리를 찾아서 안전을 확보해야 돼!’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과 군인들은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채 비를 맞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최루리의 집 앞에서 힘겹게 삽질을 하는 군인들에게 물었다.

“혹시 40대 여성, 아니 30대로 보이는 여성을 보지 못했습니까?”

“30대 여성 말입니까? 모르겠습니다.”

군인들은 토사를 파내는 데 정신이 없는 듯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툭 뱉었다.

“안 되겠습니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 보죠.”

우리는 최루리의 주소가 찍힌 집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벽돌로 치장된 오래된 다가구 주택은 반지하부터 1층과 2층 그리고 옥탑방으로 이뤄져 있었다.

반지하는 이미 토사로 출입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번지수만 있으니까 몇 층에 사시는지를 모르겠네요.”

안재영이 토사로 가득 찬 반지하를 들여다보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저는 반지하 쪽을 살필 테니까, 세 분은 1층과 2층, 옥탑방을 살펴봐 주세요.”

“네!”

모두 신속히 다가구 주택을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최루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투다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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