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200)

반지하 창문 쪽의 흙을 파내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가 뜀박질하며 주택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급하게 그녀를 불러 세우고 물었다.

“저기 아주머니!”

“응? 누구? 나 급해!”

“혹시 여기 30대 여성분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반지하에 혼자 사는 아가씨?”

“네? 혼자 사는 분은 아닙니다만.”

“그러면 없수다. 근데 아이코 잘됐다. 지금 여기 사는 아가씨가 차 안에 갇혔는데 나 좀 도와주슈!”

그녀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내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달렸다.

그녀와 향한 곳에는 나무와 토사에 부딪혀 여기저기 파손된 흰색 자동차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여성 한 명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최루리였다.

“최 본부장님! 최 본부장님!”

내가 급히 뛰어가 차 문을 열려 했으나 파손된 문은 빗장이 걸린 듯 열리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안을 살펴보니 토사와 빗물이 최루리의 허리까지 차 있었고, 계속하여 깨진 창문을 통해 유입되고 있었다.

“아줌마! 아까 그 집에 성인 남성 3명이 있습니다! 그들이랑 군인들 좀 당장 불러 주세요!!”

나는 떠밀듯이 아주머니를 보낸 뒤 여러 차례 차량 앞 유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최루리는 미동조차 없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부서진 나뭇가지, 진흙 범벅의 돌들 가운데 녹슨 철근이 보였다.

“이거다!”

나는 부러진 철근을 줍고는 하늘 높이 올렸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하고는 조수석 창문 가장자리를 세게 내리쳤다.

가장자리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면적이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수기 쉬운 부분이었다.

그렇게 십여 차례를 내리치자 차량 유리에 거미줄이 친 듯 금이 가더니.

바사삭.

차량 유리가 설탕 가루처럼 조각나며 깨졌다.

“우 사장님!”

뒤를 돌아보자 박창후와 안재영 그리고 주전영과 몇 명의 군인들이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빨리요! 지금 차 안으로 토사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산사태가 끝난 이후라 대량의 토사가 더는 급격하게 내려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루리의 차가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운전자석 너머에는 흙이 높게 쌓여 있었고, 이 진흙이 깨진 창문을 통해 계속 차량 내부로 유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리 높이였던 펄은 어느새 기절한 최루리의 가슴높이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다가는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

“거기 군인 아저씨! 뒤쪽 창문을 깨 주시고 삽으로 안의 진흙 좀 퍼 주세요!”

나는 안의 상황을 살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한 군인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위기 상황에서는 특정 누군가를 정확히 지명하여 지시해야 효과가 있지, 아니면 다들 길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거기 셋은 운전자석 쪽에 토사를 퍼 주시고, 거기 둘은 앞 유리를 깨 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나와 함께 사람을 꺼냅시다!”

모두가 사태의 위험성을 직감한 듯 빠르게 움직였다.

차량 내부 토사에 손을 집어넣어 조수석 문을 열려고 했지만, 파손이 심하게 되었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이 안 열리니 창문을 통해서만 구출할 수 있겠네요.”

내 말에 박창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안전 벨트를 풀죠.”

나는 토사 안으로 다시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진흙으로 가득 찬 차량 내부에서 안전 벨트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안으로 들어오는 토사의 양과 퍼내는 양이 비슷한지 더는 토사가 쌓이지 않았다.

“우 사장님 조금만 힘내세요!”

내 뒤에 있던 주전영이 두 주먹을 굳게 쥐고는 외쳤다.

얼마나 손으로 진흙탕 안을 들쑤셨을까.

딸칵.

버튼 같은 게 눌리면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

“열렸다!”

내가 소리치자 모두가 자기 일인 듯 기뻐했다.

이후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영차! 영차!”

성인 남성 여러 명이 힘을 합해 그녀를 들자 진흙 깊이 박혀 있던 그녀의 몸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5분가량이 흐르고.

우리는 펄 속에서 최루리를 들어 올려 밖으로 빼낼 수 있었다.

최루리는 마치 머드 축제에 온 관광객처럼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다.

나는 급히 그녀의 호흡을 살폈다.

최루리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살아 있어!”

크게 소리친 나는 그녀를 등에 업고는 헬기가 있는 홈 쇼핑 방송국으로 전력 질주했다.

도로는 질척거리고 곳곳에 진흙과 파편들로 어지러웠지만 거칠 게 없었다.

그저 무작정 달렸다.

시야에는 온통 붉은 진흙만이 보이는 가운데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

그리고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오직 하나.

그녀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전부였다.

* * *

폭우는 다음 날까지 계속됐다.

3일 동안 서울에 쏟아진 강우량만 무려 587.5㎜.

이 수치는 서울에 내리는 한 해 평균 강수량의 약 40%에 육박할 정도로 지난 3일간 내렸던 폭우는 일반적인 상식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이번 폭우는 사망 82명, 실종 7명, 이재민 5천여 명 등 많은 인명 피해를 냈고…….”

TV 화면의 리포터는 이번 폭우의 피해를 무미건조하게 읊조리고 있었다.

“다음은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서 자사 직원으로 알려진 여성을 구하는 오프라인 사장 우세진 씨의 모습입니다. 함께 보시죠.”

뉴스에서는 나와 몇 명의 남성들이 최루리를 구하는 장면이 저화질로 방영되었다.

최루리를 구할 당시 박창후는 다세대 주택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온 상황이라 우리가 찍은 영상이 아니었다.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

이 영상은 어제저녁부터 계속해서 모든 언론사 뉴스에 단골손님처럼 방영되었다.

저화질이었지만 모두의 표정에서 당시 얼마나 상황이 긴급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보자 옆에 있던 백철웅이 내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우 사장. 괜찮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말고 이제 집에 들어가 봐요. 여기는 내가 지킬 테니.”

“아닙니다. 백 사장님. 제가 지켜야죠. 먼저 들어가세요.”

“그러다 우 사장이 쓰러지겠소! 집에 안 가겠다면 병실 하나 빌릴 테니까 거기 눈 좀 붙이고 있어요!”

“괜찮다니까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어제 그 생쇼를 다 하고,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그러다 큰일 난다고!!”

백철웅의 목소리가 병원 복도를 가득 메웠다.

“그러다 큰일 난다고!!”

백철웅이 병원 복도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이쪽을 쳐다보았다.

“으아아앙!”

그가 어찌나 크게 소리를 쳤던지 지나가는 아이 중 한 명이 울음을 터트릴 정도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최 본부장님 눈 뜨면, 그것만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최루리는 어제 이곳으로 실려 온 이후 하루가 넘게 눈을 뜨지 않았다.

집에서 걱정할 바에는 이곳에 있는 게 더 나았다.

“아니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진흙투성인 채 꼴딱 날을 새서는 다크서클이 입까지 내려온 사람이 뭐라고요? 누가 누굴 걱정해?!”

백철웅은 당장 나를 한 대 칠 것처럼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이렇게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최루리가 입원한 병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안에서 간호사가 뛰쳐나왔다.

“최루리 환자 보호자분!”

나와 백철웅은 간호사를 따라 병실로 들어섰다.

초췌한 몰골의 최루리가 우리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네요.”

그녀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최 본부장! 몸 좀 괜찮아요? 어디까지 기억나는 겁니까?”

백철웅의 말에 최루리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차를 타고 시동을 걸려는데 갑자기 토사가 덮쳤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요.”

“그럼 그 이후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요?”

“네. 깨어 보니 병실이라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덤덤히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여기 우 사장이 최 본부장 구했습니다. 그것도 기억 안 나요?”

“네? 우 사장님이요?”

그제야 최루리는 이쪽을 바라보았다.

“우 사장이랑 박 본부장, 안 본부장, 주전영 기자가 같이 구했어요.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요.”

백철웅은 한동안 최루리를 붙잡고는 당시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답답했던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거기서는 나와 사람들이 그녀를 구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그녀를 둘러업고 미친 듯이 뛰어가는 모습이 나왔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최루리가 침대 앞에 선 내 손을 꽈악 붙잡았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이 들더니 이내 흐느낌이 들렸다.

“고, 고맙습니다, 우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흐흐흑.”

그녀는 오랫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래서 옷이…… 저런. 그런데 지금 며칠이죠?”

“28일입니다.”

“어머나! 그럼 벌써 하루가 지난 거예요?!”

“그래요. 최 본부장 쓰러지고 만 하루 만에 눈 뜬 겁니다.”

“아니 그럼 우 사장님은 하루 내내 여기 계신 거예요? 옷도 안 갈아입으시고?!”

백철웅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나를 끌어안고는 더욱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진정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 *

나는 최루리와 백철웅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근의 호텔을 잡아야만 했다.

“비용은 회사에서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푹 쉬어요. 옷이랑 속옷, 기타 필요한 것들은 내가 사다가 로비에 맡겨 둘 테니.”

백철웅은 더는 절대 양보하지 못한다면서 강제로 나를 호텔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씻고 난 다음 자는 것까지 보고 가겠다면서 팔짱을 끼고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쏴아아아.

따뜻한 물이 온몸을 적시자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전신에 묻어 있던 진흙 덩어리와 땟국물이 바닥을 통해 빠져나갔다.

쌓인 피로와 불안까지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말끔히 샤워를 마치고 흰색 샤워 가운으로 갈아입은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백철웅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고하는데, 오늘은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푹 자야 합니다. 내가 호텔 직원들한테 확인할 겁니다.”

그는 그 말만 남기고는 방문을 쾅 하고 닫고는 사라졌다.

강압적인 말투와 태도였지만 그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물로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난 다음 이어진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나는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 잠의 세계로 빠졌다.

침대가 그렇게 푹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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