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유부녀라고 이야기해도 찝쩍거리는 남자들 정말 많았어요. 심지어 유명한 사람들조차 말이에요. 제 페북 메신저 보시면 기절하실걸요?>
프로필 사진에 미녀 사진이 걸려있으면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작업을 걸려는 한심한 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기사로 읽은 적이 있었다.
최루리는 실제로 빼어난 미녀였고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은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누가 봐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미녀로 보였겠지.’
유부녀인데도 작업을 거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셨군요. 예쁜 것도 피곤한 일이네요.>
<어머! 우 사장님 저 예쁘다고 하신 거예요?>
<물론이죠. 최 본부장님은 우리 오프라인 최고 미녀 중 한 사람이시잖아요.>
<한 사람이라면 음 또 누가 있을까요? 지혜?>
<ㅎㅎ 홍 본부장님도 미녀죠.>
<에이. 또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신다. 정말 못 당하겠다니까요.>
<몸은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어요. 의사 말로는 내일모레면 퇴원해도 된다네요. 1인실로 방 잡아 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그건 백 사장님이 해 주셨어요.>
<진짜 오프라인 사람들 제겐 너무 감동이고 항상 고마워요. 그중에 우 사장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고요.>
<분명 저한테 충성을 바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음. 그거 저한테 프러포즈하신 건 아니죠?>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아니라 최 본부장님이 먼저 꺼낸 말입니다.>
그녀와 한동안 다톡을 한 나는 스마트폰을 침대 옆으로 던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다음 날.
익숙한 얼굴이 집무실을 방문했다.
“오랜만입니다. 우 사장님.”
TP 텔레콤의 홍보 이사였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네. 여긴 또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요. 그냥 잘 계시나 싶어서 방문하였습니다.”
그가 그런 한가한 일로 여기를 방문할 리가 없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왜 오신 건가요?”
“하하. 이거 우 사장님 앞에서는 격식도 못 차리겠네요. 광고 때문입니다.”
“광고요?”
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자 그가 진정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우 사장님 덕분에 저희 TP 텔레콤의 인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게다가.”
“게다가?”
“최근에 내린 폭우에 회사직원이 위기에 빠지자 그녀를 구하는 모습이 전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도 보고 눈물이 다 나오더군요.”
“그래서요?”
“괜찮으시다면 해당 영상을 저희 TP 텔레콤에서 광고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해당 영상을요?”
그는 나와 다른 이들이 최루리를 구하는 모습과 내가 그녀를 둘러업고 미친 듯 뛰어가는 모습을 광고에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저번처럼 귀찮게 촬영 안 해 주셔도 됩니다. 단지 해당 영상이랑 내레이션만 해 주셔도 됩니다.”
그는 내게 광고 콘티가 그려져 있는 스토리보드를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TP 텔레콤>
“저보고 저 글자를 읽어 달라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떤가요? 저번처럼 힘들게 촬영도 없고 단지 한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좀 바빠서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물론이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 사장님!”
그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안고는 꾸벅 인사를 하며 내 방을 나갔다.
‘광고라.’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기업과 너무 엮이는 모양새가 싫었다.
‘나중에 TP 텔레콤에서 부정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 그게 오프라인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무엇보다 해당 영상은 우리가 찍은 영상이 아니었다.
물론 TP 텔레콤에서 해당 영상 촬영자를 찾아 적절한 보상을 하겠지만, 그렇게 됐을 경우 순수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었다.
‘우리도 그런 영상이 찍히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광고가 나간다면 우리를 의심하는 이들도 생길 테야. 저거 오프라인에서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의도하지 않았기에 감동이 나왔다.
‘이건 그냥 안 되겠다고 하는 게 좋겠군.’
백철웅에게 상의했다가는 그냥 찍으라고 할까 봐 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TV에서 익숙한 장면이 등장했다.
바로 최루리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뉴스 화면이 아닌 광고로 말이다.
<국민 통신은 항상 국민을 먼저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 여러분의 곁에는 국민 통신이 있습니다.>
이런 오글거리는 멘트와 함께 내가 최루리를 업고 뛰어가는 모습이 디졸브 되면서 국민 통신의 로고가 나타났다.
“아니, 이거 어떻게 된 거죠? 저희 허락도 없이 이런 광고가 나가다니. 여기에 대해 누구 아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백철웅이 헛기침을 하더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거, 얼마 전에 국민 통신에서 연락이 오길래 내가 하자고 그랬습니다.”
“네? 아니 그런 문제를 혼자서 이야기하시면 어떡합니까!”
“이미 영상 촬영한 사람과는 이야기가 끝난 문제였어요. 우리에게는 허락만 구하기에 내 그러라고 했어요.”
“그럼 광고료도 없이요?”
“우리가 찍은 영상이 아니잖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 오프라인 이미지도 좋아지고, 저쪽에서 공짜로 우리 광고를 해 주는 거니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혼자서 결정하시면 어떡합니까. 최소한 저에게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야죠!”
“흠. 그러는 우 사장도 나한테 TP 텔레콤 광고 건은 아무 말도 안 하지 않았소?”
“네? 그걸 어떻게.”
“그쪽 임원이 우 사장 좀 설득시켜 달라고 하도 전화를 하니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광고를 찍으면 TP 텔레콤 광고를 찍으면 되지 왜 라이벌인 국민 통신 쪽을 허락해 주신 거예요?”
“우 사장이 하는 염려를 내가 모를 리가 있겠소. 국민 통신 쪽은 우리한테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허락만 구한 거니 순수성이 훼손될 염려도 없고 하니 허락한 거요!”
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광고 건에 대해서 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나의 잘못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백 사장님. 그렇지만 이번 건은 좀 심하셨습니다.”
“우 사장이 그렇게 나를 못 믿으면 나도 같이 일 못 합니다. 우리는 공동 사장입니다. 각자 대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는 그 말만 남기고는 회의실 문을 쿵 닫고는 나가 버렸다.
대다수의 안건은 나의 의견대로 밀고 나갔던 터라 그 점을 깜빡 잊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대표가 아니라 공동 사장이었다.
각자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각자 대표와 다르게 공동 대표는 모든 업무를 같이 처리해야 했다.
단지 그동안 내가 주도했을 뿐.
그런 걸 떠나서 창업자는 내가 아닌 백철웅이었다.
‘백 사장님이 내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해 준 걸 착각하고 있었어. 그도 나와 같은 사장이고, 뭣보다 오프라인의 창업자인데 말이야.’
나는 백철웅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백 사장님. 우세진입니다. 오늘 괜찮으시면 저녁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곧 답장을 보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확답은 못 드리겠군요.>
문자와는 다르게 퇴근 이후 그는 나와 함께 근처 국밥집으로 이동했다.
뜨거운 국물과 건더기가 뚝배기 가득 채워져 나왔다.
“드시죠.”
“소주도 한 병 시키죠. 여기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백철웅은 직접 소주를 주문하더니 소주병을 까고 두 개의 잔에 각각 따랐다.
한동안 말없이 국밥을 먹던 우리는 소주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백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 우 사장이 뭘요.”
“광고 제의가 들어왔을 때 백 사장님과 같이 의논을 해야 했는데 제 단독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과드립니다.”
“뭘요. 나도 나 혼자서 결정했는데.”
“아닙니다. 제가 멋대로 혼자 결정해서 화가 많이 나셨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그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워워. 이러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도 보는데 왜 이러세요.”
“용서해 주실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아니 용서고 뭐고 지금. 알았어요. 알았어. 용서할 테니 제발 자리에 앉아 주세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앞으로도 우 사장이 하자는 대로 할 겁니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오프라인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우 사장 덕분이니.”
“아닙니다. 백 사장님과 다른 동료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하하. 그만합시다. 아무튼 나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우리는 공동 사장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해요. 우 사장이 뛰어난 건 알지만 내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진행하면 서운합니다.”
“네. 백 사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잠시 오만했습니다.”
“오만은 뭘요! 우 사장은 충분히 오만해도 됩니다. 하하. 그만하고 술이나 드십시다.”
나는 그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오프라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그 누구보다 높다는 것을.
종로의 밤이 깊어 갔다.
# 6장 하노이
오프라인의 첫 해외 지사이자 보도 자료 및 팩트 체킹 전담부서인 오프라인 베트남.
이곳의 지사장인 고희열은 간곡한 목소리로 청했다.
“이곳에 두 분 공동 사장님이 방문해 주시면 직원들도 힘이 날 테고, 베트남 정부에서도 다르게 볼 겁니다.”
고희열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와 백철웅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곧바로 베트남행을 결정했다.
오프라인의 첫 번째 해외 지사가 개국하는데 사장이 방문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백철웅에게 너무 무신경했어. 이번 기회에 공동 사장으로서 예우도 해 주면서 이야기도 더 해 보자.’
원화성도 함께 가면 좋았겠지만, 일정이 맞지 않았다.
나와 백철웅은 비서를 통해 비행기 티켓을 구한 뒤 빠르게 공항으로 이동했다.
“백 사장님과 단둘이 여행은 처음이네요.”
비행기 좌석에 앉은 내가 왼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걸었다.
백철웅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러게요. 매번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 여행은 기대가 큽니다.”
“제가 옆에서 잘 모시겠습니다.”
“모시긴 뭘요. 잘 부탁드립니다.”
밤늦게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현지 시각으로 새벽 1시 25분에 베트남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62세의 고희열이 직접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그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 좋은 얼굴.
온화한 미소.
듬직한 풍채.
부드러운 외모와는 다르게 그의 전신에서는 노련한 백전노장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하노이행 비행기가 늦은 밤에 도착하는 일정밖에 없어서 부른 쪽에서는 미안함이 앞섭니다.”
“괜찮습니다. 지사장님. 그나저나 늦은 시간에 직접 마중을 나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뭘요. 사장님들이 오셨다는데 지사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죠. 먼 길 고생하셨으니 바로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기사에게 능숙한 베트남어로 무언가 지시하더니 우리를 공항 인근의 한 호텔에 내려다 주었다.
“피곤하실 테니 오전 11시쯤 모시러 오겠습니다. 천천히 아침 식사하시고 준비하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네, 고 지사장님. 내일 일정은 곧바로 오프라인 베트남으로 이동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