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원이 안내한 자리는 식당 구석의 조용한 방이었다.
문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주위가 벽으로 막혀 있어 아늑함과 편안함을 주었다.
메뉴판을 살펴보던 홍지혜가 내게 물었다.
“음. 우 사장님은 여기 와 보신 것 같은데, 뭐가 맛있나요? 추천해 주실 만한 음식이 있나요?”
“네. 이 집은 탄탄면이 괜찮아요. 소롱포도 유명하고요.”
“탄탄면? 소롱포? 둘 다 처음 들어 보는 음식이에요!”
“그럼 한번 시켜 보시죠. 만족하실 겁니다.”
우리는 소롱포 1접시와 탄탄면 2그릇을 주문했다.
이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소롱포가 대나무 찜통에 담겨 나왔다.
“와! 소롱포가 만두였군요?!”
“맞아요. 다진 돼지고기에 얇은 만두피 그리고 뜨거운 육즙의 조화가 실로 뛰어나죠. 한번 맛보면 절대 그 맛을 잊지 못하실 겁니다.”
“와! 좋아요!”
홍지혜는 어린아이처럼 소롱포를 보고 좋아했다.
그녀는 두 눈을 번뜩이며 젓가락으로 소롱포를 한 개 집고는 입에 넣으려 했다.
“어어! 안 돼요! 큰일 납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말렸다.
홍지혜가 깜짝 놀라더니 소롱포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식탁 아래로 떨어진 소롱포가 뜨거운 육즙과 함께 ‘퐁’ 하고 터져 버렸다.
“어머! 어떡해요. 아까워라…….”
홍지혜가 실로 아깝다는 듯이 식탁 아래에서 터져 버린 소롱포를 보고 아쉬워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갑자기 그러시면 어떡해요. 깜짝 놀랐어요.”
“저야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네?”
“소롱포 안에는 뜨거운 육즙이 있거든요. 한입에 먹다가는 입천장을 다 델 수 있다고요.”
“아.”
홍지혜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먹어야 하는데요?”
“우선 소롱포를 식초에 살짝 묻힌 다음에 숟가락 위에 얹어요.”
나는 그녀의 이해를 위해 직접 소롱포 하나를 들어 식초에 살짝 묻힌 다음 속이 깊은 중국식 숟가락 위에 얹혔다.
“그리고 만두 옆을 젓가락으로 살짝 찢어서 육즙이 나오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요.”
내가 만두피를 찢자 그 안에서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와 숟가락을 가득 채웠다.
“이걸 살짝 마신 다음 생강을 위에 얹어서 먹으면 됩니다.”
나는 생강채를 몇 점 만두 위에 올려서 그대로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뜨거운 육즙과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만두피, 그리고 고소한 만두소가 입안에서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며 알찬 감동을 선사했다.
내가 황홀한 표정을 짓자 홍지혜를 침을 꿀꺽 삼키더니 그대로 나를 따라 했다.
소롱포를 삼킨 홍지혜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아아! 이거 정말 엄청나게 맛있어요!!”
“그렇죠? 홍 본부장님 표정이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대로 보여 주고 있네요. 배우 해도 되겠는데요.”
“정말요? 진짜 맛있어서 그래요!”
그녀는 그대로 또 한 개의 소롱포를 집어 옆구리를 터트린 다음 재차 입안에 털어 넣었다.
덕분에 노란 대나무 찜통 가득 나온 8점의 하얀 만두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소롱포의 여운이 아직 입안에서 가시지 않은 가운데 탄탄면이 나왔다.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말 그대로 일품이었다.
홍지혜는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외쳤다.
“우 사장님! 진짜 여기 최고! 최고!!”
탄탄면의 붉은 국물이 절반쯤 비워졌을 무렵.
나는 천천히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홍 본부장님이 밥을 다 사 달라고 하시고요.”
“음, 제가 밥 사 달라고 한 게 그리 이상했나요?”
홍지혜가 젓가락을 잠시 식탁에 내려놓고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네. 제 기억에는 아마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신 게 처음인 걸로 아는데요.”
“그런가요? 제가 그랬나?”
홍지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그러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오늘 좋은 아이템도 소개해 주셔서, 타이밍도 딱 맞는 것 같아요.”
“좋은 아이템이요?”
“네. 여기 음식들이요. 소롱포랑 탄탄면.”
“네?”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홍지혜가 재미난다는 듯 방긋 웃었다.
“맛집 말이에요. 맛집.”
“맛집?”
나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집이 맛집인 건 사실인데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저희 TF 팀이요. 전사 워크숍에서 제가 발표해서 1등 했던 주제 있잖아요.”
“아! 그 맛집이요!”
나는 그제야 홍지혜가 꺼낸 맛집의 실체를 깨달았다.
SNS 전용으로 짧은 요리법 동영상을 제작해서 올리자는 아이디어.
홍지혜의 소셜 본부는 그 아이디어로 전사 워크숍에서 1등을 하였고, 이후 꾸준히 실험하며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저도 몇 번 봤는데 조회 수나 반응이 폭발적이더군요.”
“네! 일반 기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에요. 한국 독자들뿐 아니라 글로벌 유저들 반응이 더 폭발적이고요.”
그녀의 말처럼 맛집 페이지는 페이스북 개설 보름 만에 오프라인의 본 계정인 뉴스 페이지의 절반에 육박하는 팔로워를 달성하며 폭풍 성장하고 있었다.
“제휴 문의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어요. 자기네 음식이나 레시피를 소개해 줄 수 없겠느냐고요.”
“이건 뉴스가 아니니까 그런 PPL 등을 통해 수익화에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네. 지금 본부원들과 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에요. 내부에서 가이드를 제작 중이고요.”
“좋네요. 가이드 작성되면 저한테도 메일로 보내 주세요.”
나와 홍지혜는 한참 동안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수익화 이야기, 맛집 TFT 이야기, SNS 이야기, 오프라인 이야기, 콘텐츠 이야기 등.
어찌나 이야기가 즐거웠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점원이 와서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손님. 즐겁게 이야기하시는 데 죄송합니다만 혹시 더 시키실 건 없으실까요?”
* * *
홍지혜와 이야기를 나눈 지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최루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사장실을 방문했다.
“우 사장님. 이번에는 영국입니다.”
“네? 영국이요?”
최루리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분명 뭔가 커다란 건임이 분명했다.
“작년에 미국에서 열렸던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 있잖아요?”
“CNN이 주관한 행사 말이죠.”
“맞아요! 덕분에 오프라인이 해외 미디어에 눈도장을 받은 동시에 저랑 홍 본부장이랑 정신없이 바빴던 출장 말이에요.”
“알다마다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전 세계 주요 미디어 국장들이 모여 있던 스페셜 스위트룸의 뜨거웠던 분위기가 떠오르며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세계 최고 언론사 고위 인사들의 뜨거운 러브 콜.
미디어의 변방인 한국에서.
그것도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매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있었던가.
“이번에는 CNN이 아니라 영국의 BBC와 가디언이 공동 주최한다고 해요. 런던에서 말이에요.”
“이번 행사는 영국이군요. 그런데요?”
“아시아 언론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저희를 초청했습니다. 정식 멤버로 말이에요! 오직 저희 오프라인 하나만 콕 짚어서 말이죠!”
최루리가 흥분할 만큼 이 건은 충분히 대단한 업적이었다.
작년에 있었던 행사가 주최사인 CNN에서 다른 언론사의 양해를 구한 다음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 우리에게 일부 양보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정식으로 행사에 초대하여 발표 시간을 넉넉히 주겠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일회성 초청이 아닌 정식 멤버로서의 초대로 말이다.
“큰 진전이네요. 행사는 언제인데요?”
“12월 10일이에요.”
“대략 4개월하고 조금 더 남았군요. 그 정도면 발표 준비하기에는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 전에는 일주일 만에 부랴부랴 발표 자료를 만든다고 정신없었는데 4개월이면 완전 넉넉하죠!”
“네. 그럼 최 본부장님이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는 좀 맡아서 진행해 주세요. 발표 주제는 본부마다 각자 하나씩 준비해 달라고 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최루리가 방에서 나가자 나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조용히 응시했다.
작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받은 제안.
처음 겪어 보는 큰 행사.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소수의 인원.
얼마나 정신없이 자료를 모으고 발표 준비를 했던가.
‘자려고 눈을 감으면 절로 발표하는 모습이 떠오를 정도였지.’
그에 비하면 이 얼마나 여유로운 일정이란 말인가.
‘사람이든 조직이든 크고 유명해져서 나쁠 건 없구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루미 한 마리가 청계천을 따라 낮게 비행했다.
* * *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고급 주거지를 시작으로 코엑스 등 대형 복합 문화 시설과 고층 오피스가 밀집한 강남의 심장.
이곳에 DC 소프트의 본사 건물인 DC 타워가 있었다.
대표실이 있는 17층에서는 삼성동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층 오피스가 참 많네요.”
내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고 말하자 DC 소프트 정선호 회장이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삼성동이니까요. 다들 여기에 들어오려고 난리죠.”
그의 말처럼 삼성동 오피스 지구는 많은 업체가 선호하는 공간이었다.
교통과 상권이 발달한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의 중심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입주하려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덧 내 옆에 선 정선호가 함께 창밖을 바라보았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너무 복잡해요. 소음에, 매연에, 차량 정체에.”
“업무 밀집 지역은 대체로 그렇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고 합니다.”
“이사요?”
“네. 경기도 판교로 말이죠.”
“판교?”
판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2기 신도시였다.
올해 하반기 강남과 정자를 잇는 신분당선의 개통이 예정되면서 강남역에서 판교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12분 30초에 불과했다.
교통 문제가 해결되자 게임 회사 등 첨단 기업들은 앞을 다퉈 판교로의 이전을 선언했다.
“강남은 임대료가 너무 비쌉니다. 가산이나 구로 쪽은 시설이 너무 노후하였고요. 하지만 판교는 지가도 싸고 임대료도 저렴하죠. 신분당선이 개통되면 교통도 편리해질 테고, 주위 환경도 쾌적합니다. 저희를 비롯한 많은 게임사가 판교로 이전할 예정이죠.”
정선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판교는 이후 한국판 실리콘 밸리라는 평을 받으며 심지어 강남보다 집값이 뛰는 등 새로운 부촌으로 자리매김하지 않던가.
“이해합니다. 지금은 지가랑 임대료가 저렴하겠지만, 향후에는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죠. 첨단 기업들이 몰리면 판교의 일자리 질이 강남을 능가하면서, 쾌적한 주거 환경을 원하는 이들도 이쪽으로 몰릴 테고요. 그럼 자연스레 집값도 뛸 테죠.”
내 말에 정선호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당장 저렴한 임대료와 쾌적한 주위 환경을 보고 가는 거라 향후 땅값이 오를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만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군요.”
“네. 분명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기술 혁신의 상징이 될 겁니다. 그럼 성공에 힘입어 무척 부유한 동네가 될 거고요.”
정선호가 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우 사장님은 보면 볼수록 놀랍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