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크. 알라 님은 뭐냐.”
“아무튼요! 진짜 아니라니까요! 돌겠네.”
“그럼 저녁은 네가 쏴, 인마.”
“네?”
“가자. 아까 순대 타운 지날 때 냄새 좋더라. 백순대에 소주 사면 오늘 일은 죽을 때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
“지…… 진짜죠?! 갑시다, 가요! 지금 당장 갑시다.”
* * *
휘적휘적.
아주머니는 스테인리스 뒤집개를 이용하여 능수능란하게 백순대를 볶기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이덕오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왜 그렇게 나랑 같이 살고 싶어 해?”
“진짜예요. 저 형님 같은 남자로서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거참. 나는 너랑 같은 개발자도 아니고, 게다가 직장 상사잖아. 같이 살아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
“아닙니다. 형님 같은 분이랑 같이 살면 저도 옆에서 보고 배우고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제 롤 모델이 누군지 아세요?”
“누군데?”
“바로 제 앞에 계시는 분이요.”
이덕오의 표정이 워낙에 진지해서 놀리고 싶었지만 그러기 어려웠다.
나는 말 없이 깻잎에 순대랑 야채 그리고 양념장을 올리고는 녀석의 입에 넣어 주었다.
“됐고. 먹기나 해.”
녀석은 내가 싸 준 쌈을 우걱우걱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런데 형님은 진짜 왜 그 냄새나고 좁은 고시원에 사는 거예요? 저는 진짜 이해가 안 가요. 연봉이 적은 것도 아니고, 주변에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편해서 그래.”
“와! 거짓말! 그 좁은 곳이 편하다고요? 개인 화장실도 없고, 개인 샤워실도 없는데?”
“익숙해지면 불편한 것도 몰라.”
“그럴 리가.”
“아무튼 나는 거기가 편하니까 그만 이야기해. 한 번만 더 그 이야기했다가는 너 남자 좋아한다고 회사에 다 소문낸다.”
“헉! 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그만 이야기해.”
“힝. 알았어요.”
녀석은 슬픈 표정을 하고는 순대를 한입 집어 먹었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부족해. 아직은.’
녀석은 모를 것이다.
회귀한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오프라인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최고 언론사의 지위에 올랐고.
이전 삶에선 결코 겪을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적어도 사는 곳만큼은 낡은 고시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세계 최고 언론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니까.’
이덕오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볶음밥이 완성되었다며 소리를 질렀다.
하긴 백순대 집에 와서 볶음밥을 먹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 * *
<[단독] 북한,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암살조 잠입>
고려 일보에서 낸 단독 기사.
기사에는 정해룡 국방부 장관을 암살하라는 지령이 북한에서 떨어졌다며 한국과 미국의 군·정보 당국이 암살조의 색출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한 정 장관 주변에는 사복 헌병 7명이 상시 무장 경호를 하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다수 언론에서 비슷한 기사를 우후죽순 써 대기 시작했다.
포털 뉴스를 비롯해 SNS 타임라인은 온통 국방부 장관 암살 뉴스로 도배되었다.
안 그래도 연이어 터진 여러 사건으로 남북한 긴장이 높아진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정해룡 국방부 장관을 옹호하는 동시에 북한을 비방하고 나섰다.
고려 일보 신문을 든 백철웅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북한, 이 자식들은 우리랑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을 암살하겠다니 지금이 어느 시댄데!”
“평소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말하고,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몇백 배로 강력히 응징하겠다던 정 장관이었습니다. 이에 북한에서도 즉시 처형해야 된다고 하거나 민족의 반역자라며 위협을 가해 왔고요. 서로 좋은 사이는 아니었죠.”
안재영의 말에 백철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 암살조를 파견하다니, 이건 정말 엄청나게 심각한 사안입니다. 잘못하면 전쟁이 날 수도 있단 말입니다!”
백철웅이 전쟁이라는 말을 꺼내자 회의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말 그랬다.
남과 북은 휴전 상황일 뿐 종전은 아니었다.
거기에 상대 국가의 국방부 장관을 암살하겠다?
이건 다시 전쟁하자는 말과 같았다.
문제는 이게 다 쇼였다는 거다.
‘기사가 나온 이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행동하던 정 장관이 일주일 뒤 국회 질문에서는 단지 추측성 보도라고 의견을 밝히면서 난리가 났지.’
회귀 전 오프라인에서 이 사건으로 수없이 많은 기사를 써 댄 탓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많은 국민들이 암살조가 언제 나타날지, 설마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닐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나 스스로도 북한을 욕하면서 정 장관이 별일 없기를 기도하지 않았던가.
상황이 뒤바뀐 것은 보도가 나온 지 일주일 뒤 진행된 국회 국방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였다.
여당 의원이 북한 암살조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암살조가 국내에 잠입했다는 게 정말 사실입니까?”
여당 의원의 질문에 정해룡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 아닙니다.”
“네? 그러면 이 기사는 오보인가요?”
“아마도 추측성 보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국정원이나 미국의 정보당국에서도 그런 단서를 잡은 사실이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원래 국방부 장관은 주요 경호대상입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에서 저에 대한 성토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던 차였고요.”
“그러니까 장관님. 암살조가 국내에 잠입했다는 기사는 단지 추측성 보도였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추측성 보도로 판단합니다.”
“그럼 한미 정보당국이 이 암살조를 색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 역시 추측성이다?”
“그렇습니다.”
일주일 동안이나 이어진 국민적 우려와 달리 단지 추측성 보도에 불과하다는 정 장관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마나 힘이 빠졌던가.
관련하여 내가 쓴 기사만 스무 개가 넘었었다.
이후 그가 인기를 높이기 위해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설에서부터 북한과의 긴장 상황을 이용하여 북풍 공작을 벌이기 위함이라는 설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알 리 없는 백철웅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사안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
나는 짐짓 무거운 표정을 짓고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정 장관이랑은 이전에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안면이 있으니 우리가 단독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떨까요?”
“정 장관 단독 인터뷰를요?”
“네. 군이랑은 딱히 사이가 나쁜 편도 아니었으니 우리가 부탁하면 해 줄 것도 같은데 말이죠.”
내 말에 박창후가 팔짱을 끼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보도를 하였잖아요. 약간의 악감정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의 옆에 선 안재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때 그 보도로 당시 빤스런 한 병사들이 엄중한 처벌을 받아서 오히려 군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으니까요. 저희한테는 여전히 호감이 높을 겁니다.”
일리가 있었다.
우리의 보도 이후 제대로 된 조사가 벌어지고, 도망간 병사들은 모두 군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을 받지 않았던가.
이후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오케이. 안 본부장님은 지금 국방부에 바로 전화해 보시고, 일정 잡히면 저도 함께 가는 거로 합시다.”
본부장급 회의가 끝나고.
안재영으로부터 답변이 오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다.
상대를 섭외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데 안재영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안재영이 메신저를 날렸다.
<사장님! 정해룡이 인터뷰하겠답니다! 우리랑 단독으로요!>
<잘됐네요. 언제 어디서요?>
<내일 오전에 자기 집무실에서 하면 좋겠다는군요.>
<오케이. 영상 촬영도 괜찮답니까?>
<상관없답니다.>
<그럼 일행은 나랑 백 사장님. 그리고 안 본부장이랑 박 본부장이랑 촬영 스태프 한 명까지 5명을 정해서 알려 주세요.>
<백 사장님이요?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굳이 백철웅을 데리고 갈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백철웅을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를 배려하는 한편 동년배인 정해룡과의 인터뷰 자리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 * *
다음 날 오전.
용산에 있는 국방부 장관 집무실.
붉은 색상의 책상을 뒤로하고 날렵한 체구의 정해룡이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우 사장님. 그리고 백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장관님.”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집무실 가운데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박창후와 촬영 기자는 카메라를 설치하고는 뒤에 서 있었다.
백철웅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북한의 암살조가 잠입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힘내십시오, 장관님!”
“고맙습니다. 백 사장님. 그 보도가 나간 뒤로 백 사장님처럼 저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현재 무탈하고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으로서 임무 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의 뻔뻔스러운 표정을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표정을 고치고 물었다.
“현재 국방부에서 파악한 암살조의 신원이나 규모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나의 물음에 정해룡은 카메라를 슬쩍 쳐다보고는 답했다.
“지금 카메라가 켜져 있는 상태인가요?”
박창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촬영 전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촬영 시작되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아 질문이 뭐라고요?”
“현재 국방부에서 파악한 암살조의 규모나 형태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 맞다 맞아. 그게 아직은 밝힐 단계가 아닙니다.”
“그럼 언제쯤 파악될까요?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군 당국은 최선을 다해 암살조에 대해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실체가 없는 암살조 아닌가. 파악은 무슨.’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책상 반대편에 북한군 인물로 추정되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과장되게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 웬 북한군 사진이죠?”
그러자 정해룡이 씨익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태노하 인민 무력 부장과 이전차 4군단장 사진입니다!”
“그렇다면 북한군 수뇌부 사진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게 왜 장관님 집무실에?”
정해룡이 내 질문에 만족스럽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to be continued
# 1장 뒤통수
“하하. 혹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를 아십니까?”
“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는 뜻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는 우리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적장의 사진을 매일 보며 저들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떻게 호시탐탐 대한민국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