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사진을 보며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할지 역으로 추측한다는 말씀일까요?”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향한 복수심과 분노를 갈고 닦죠. 대한민국의 원수를 말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백철웅은 나와 달리 그의 말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과연 정해룡 장관님! 올해 신년사에서는 이순신 장군님이 말씀하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그러니까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대한민국 국방부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이죠.”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그 정신. 정말 타의 모범이십니다.”
백철웅과 정해룡은 한동안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나 사실 그가 이야기한 신년사는 정해룡이 직접 쓴 내용이 아니었다.
부관이 써 준 내용을 보고는 좋다며 감수한 정도에 불과했던 것.
‘저 정도면 허세가 보통이 아닌데.’
1시간에 걸친 그의 인터뷰는 오프라인에 실리자마자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북한에 대해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터진 암살조 잠입 기사.
그리고 북한에 대한 단호하고도 확고한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 영향일까.
인터뷰 이후 한 여론 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정해룡은 30%를 돌파하며 선두를 차지한다.
이전에는 후보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인사였는데 말이다.
인터뷰 이후 정해룡은 백철웅을 통해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후속 보도를 준비하고 있는지.
* * *
6일 뒤.
국회 국방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정해룡은 장관 암살조 잠입 보도에 대한 질문에 사실이 아니라며 잘라 말했다.
“그러면 그 기사가 오보란 말입니까?”
“아마도 추측성 보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 국정원이나 미국의 정보당국에서도 그런 단서를 잡은 사실이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원래 국방부 장관은 주요 경호 대상입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에서 저에 대한 성토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던 차였고요.”
“그러니까 장관님. 장관님을 암살하기 위한 암살조가 국내에 잠입했다는 기사는 단지 추측성 보도였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추측성 보도로 판단합니다.”
“그럼 한미 정보당국이 이 암살조를 색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보도 역시 추측성이다?”
“그렇습니다.”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이번에는 야당 의원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그런데 오프라인의 단독 인터뷰에서는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겁니까?”
“어떤 말씀이시죠?”
“우리가 미국 정보당국과 함께 암살조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보안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보도가 나왔으니 파악해 보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장관 개인께서 그 상황을 너무 즐기신 것 아닙니까? 본인 스스로도 북한 암살조 국내 잠입을 기정사실화하여 인터뷰를 하였고, 그런 영향으로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차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의원님. 저는 최선을 다한 죄밖에 없습니다.”
“장관 집무실에 북한군 수뇌부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게 어떤 의도였던 간에 방송을 통해 인터뷰에 내보낼 내용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동안 정해룡에 대한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졌다.
‘정해룡이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찍으면서 경계하는 거겠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듣기로는 청와대에서도 정해룡의 단독 인터뷰가 나온 뒤로 화를 냈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다.
자신들과 사전 협의 없이 언론 플레이를 했다고 말이다.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가 끝나고.
우리는 전체 회의 스케치 기사와 함께 준비했던 후속 기사들을 연이어 올렸다.
<정해룡 장관, 신년사에서 이순신 장국 어록 이야기한 적 없어>
<암살조 없다는 거 알면서도…… 북풍인가, 언론 플레이인가>
<[오프라인 팩트 체크] 정해룡 장관의 말·말·말>
정해룡에 관한 기사뿐 아니었다.
<정해룡 장관 암살조? 언론의 거짓말>
<무책임한 익명 소식통 인용……. 문제없나>
<아니면 말고식 대북 보도……. 이제는 자중해야>
직접적으로 고려 일보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금의 보도 사례에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 언론의 각성을 촉구했다.
오프라인의 영향력이 커진 탓일까.
후속 보도에 대한 반응은 예상외로 컸다.
정해룡은 즉각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였다.
또한, 이례적으로 주요 메이저 매체에서 앞으로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는 보도 방식에 대해 자중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각자의 홈페이지에 올리며 반성에 나섰다.
‘가상의 인물인지 진짜 인물인지 불분명한 익명의 소식통과 관계자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면서 기자 뇌피셜로 소설을 쓴 기사가 차고 넘치니까 말이야. 이번 기회에 한국 언론이 크게 달라지면 좋겠군.’
다만.
유일하게 맨 처음 단독 보도를 날렸던 고려 일보만이 언론의 이번 반성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 * *
“서울시의 무상 급식 정책 논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양측의 주장과 근거는 무엇인지 들어 보겠습니다.”
홍지혜의 진행으로 사회 복지 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기자가 전문 기자로 등장하여 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도정훈 기자님. 도대체 이 사안의 쟁점은 무엇일까요?”
“네. 가장 큰 논란은 비용 문제와 차별 문제입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우선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무상 급식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논란의 파장이 컸던 것에 비해 결과는 허탈했다.
주민 투표가 실시되었지만, 투표율이 개표 가능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서 투표 자체가 무효화 된 것이다.
이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울 특별시 시장이 사퇴하면서 논란이 된 것은 있지만 무상 급식에 대해서는 별말 없이 지나갔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던 내가 무심히 모니터를 보고 있는 사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안녕하세요우. 우 싸장니임.
“네? 누구시죠?”
-쩌어 AP 통씬의 로버트 앨런이니다아.
로버트 앨런.
그는 세계 최대 뉴스통신사인 AP 통신의 서울지국장이었다.
“아! 지국장님. 안녕하세요.”
-네에. 호오씨 찌금 시간 괜찬우쎄요?
“지금이요?”
시계를 슬쩍 보았더니 벌써 점심시간이 코앞이었다.
다음으로 넘기고 싶었지만 이미 그와의 약속을 몇 번이나 미룬 게 생각났다.
‘어쩌지. 여기로 오라고 할까?’
나는 고민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혹시 이쪽으로 와 주실 수 있으세요?”
-오프라인으로우요? 물론이쬬. 저 그 근처입니다아.
나는 그와의 약속을 잡고 최루리에게 다톡을 보냈다.
<최 본부장님. 혹시 점심 약속 있으세요?>
<아뇨. 저 한가한데. 왜요? 혹시 지금 저한테 데이트 신청하시는 건가요?!>
<아쉽지만 그건 아니고요. 업무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ㅜㅜ 뭐야. 일이었잖아.>
<바쁘시면 홍 본부장님에게 부탁하고요.>
<아녜요. 뭔데요?>
30여 분 뒤.
로버트 앨런이 나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오우! 캄사합니다. 바쁘실 텐데에 초대해 주셔서요우.”
“아뇨. 매번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해서 죄송했는데 먼저 연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하. 아닙니다아. 그런데 여페 게씬 미녀부운은 누구?”
그는 내 옆에 선 최루리를 보며 물었다.
나는 싱긋 웃고는 답했다.
“저희 오프라인의 국제 본부장님이신 최루리 본부장님이십니다. 그런데 지부장님. 혹시 영어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오! 쩌어야 좋죠!”
나는 최루리에게 통역을 부탁하고는 그와 영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직접 영어로 이야기를 하지 않자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제 한국어가 많이 서투르죠?”
“이편이 지부장님이 더 편하실 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열심히 배운다고 배우고 있는데 아직 부족하네요.”
“아닙니다. 정말 잘하시던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한국어는 듣기 조금 괴로웠다.
‘뜻은 이해하겠는데 억양이나 톤이 너무 괴상해.’
나는 그에게 녹차를 한 잔 따라 주고는 물었다.
“그래서 오늘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뭐죠?”
“미스터 우에게 꼭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네. 편하게 물어보세요.”
AP 통신은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비영리 뉴스 통신사였다.
전 세계 243개의 지국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직원 수만 해도 3천여 명에 달했다.
전 세계 최고의 통신사이니만큼 공신력 또한 높았다.
언론 보도라면 불신하는 이들도 AP 통신의 기사만큼은 고개를 끄덕이고 인정해 주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AP 통신의 유일한 수익원은 기사 사용료입니다.”
“네.”
“비영리 통신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재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광고주에 의한 압박도 덜하고요.”
“네. AP 통신의 객관성과 정확성은 모든 언론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AP 통신의 기사 쓰기 매뉴얼은 미국 언론의 기사 쓰기 표본일 정도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지만 역시 회사는 수익이 나야 하니까요. 혹시 저희와 같은 비영리 언론사에서 할 만한 좋은 아이템이 있을까요?”
AP 통신은 미국 내 방송국과 신문사의 협동 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언론사 조합원들이 AP 통신의 기사를 받아 자사에 발행하면 발행 부수에 따라 AP 통신에 비용이 지급되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언론을 위한 언론.
한국의 통합 뉴스와 비슷한 형태의 언론사였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후원 제도는 어떻습니까?”
“후원이요?”
“네. 이미 조합원들에게는 기사 사용료를 받고 있으니까요. 그 외에 AP 통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후원을 받는 겁니다.”
“후원의 대가는 뭐죠?”
“AP 통신이 지금처럼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쓰는 거죠. 한 달에 한 번씩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덕분에 우리가 이러이러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식의 뉴스 레터를 발행한다면 그것도 좋은 보상이 될 수 있겠죠.”
“으흠. 일종의 보고서군요.”
“그렇죠. 너희가 후원해 준 덕분에 이렇게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다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인데, 어찌 이리 빠르게 의견을 주시는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미스터 우!”
앨런과의 인터뷰는 1시간여 정도 이어졌다.
우리는 미디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좋은 인사이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위에서 어찌나 저를 쪼던지요.”
“지사장님을 쪼아요?”
“네. 한국에 뉴미디어의 엄청난 전문가가 있는데 왜 그를 찾아가서 고민을 물어보지 않냐고요.”
“과찬이십니다. 저희는 여전히 신생 매체이고 아직 더 성장할 매체입니다. 세계 최고 통신사인 AP 통신과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죠.”
“아닙니다. 수익 구조나 유통 방법이 다를 뿐 둘 다 언론이란 것은 변함이 없지요.”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다음에는 이렇게 늦게 약속을 잡지 않고 빨리빨리 일정을 조율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