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도시락은 안 되나? 나 컵라면 말고 도시락 먹고 싶은데.”
몇몇 스포츠지 기자들이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는 거만한 표정으로 조직 위원회 조호원 미디어 지원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호원은 당황하며 말했다.
“아이고, 김 기자, 이 기자. 다들 어른이면서 왜 그래. 다리 좀 내려. 외신 기자들이 보고 뭐라 그럴라.”
“아이참. 조 국장님. 아직도 저희가 당신 후배로 보여요? 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런데 김 기자가 뭐예요? 김 기자가? 김 기자님이지!”
“아, 네, 김 기자님.”
기자 출신인 조호원은 인정에 호소하였지만 먹히지 않았다.
‘과거에 기자였더라도 지금 기자가 아니면 선배 대접받기는 어렵지.’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언론계는 자기 영역을 떠난 이들에게 냉정한 곳이었다.
그렇더라도 자신들보다 10살은 위인 조호원을 상대로 그들은 너무 무례했다.
“제 말 못 들으셨어요? 저 컵라면이랑 캔맥주 좀 가져다주시라니까요?”
“아, 네.”
조호원은 얼굴을 푹 숙이며 냉장고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몇몇 기자들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대다수는 거기에 동조하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안고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만.’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 * *
나는 지금까지 준비한 외신 기자 인터뷰를 오프라인에 게재했다.
<외신 기자 100명의 인터뷰……. 뷰티풀 대구! 칭찬 일색>
국내 언론의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운영 미숙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대구 시민들의 시민 의식이 낮다고 지적하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나왔다. 그러나 외신 기자들은 일부 아쉬운 점이 있지만 대체로 잘 준비되고 성공적인 대회라며 입을 모았다.
나는 틈틈이 인터뷰를 한 100명의 외신 기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하나의 결론을 끌어냈다.
외신 기자들은 숙소와 교통 그리고 음식 등 일부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대회 운영이나 시설, 통신, 시민 의식 등 전반적인 항목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기사 중간중간에는 인터뷰한 기자들의 멘트가 인포그래픽으로 보기 좋게 실렸다.
“영어가 안 되지만 어떻게든 저를 도와주려는 대구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브라질에 돌아가서도 꼭 연락을 주고받을 겁니다.”
-브라질 국영 TV 텔레비사오 루이즈 기자
“셔틀버스가 없는 늦은 시각이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한 시민이 저를 숙소에까지 태워다 주더군요. 아직도 그때 그 기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스페인 엘 파이스 마떼오 기자
“역시 한국의 인터넷과 인프라는 엄청났습니다. 속도도 빠르고 쾌적했습니다.”
-일본 아사히 신문 신이치 기자
내가 쓴 기사가 나가자 여론은 금세 방향을 바꾸었다.
실명을 거론한 100명의 외신 기자들의 인터뷰가 실리자 국내 언론의 지적이 과했다는 반응이 우세한 것이다.
사람들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 준 대구 시민들을 응원하는 한편, 비록 부족한 부분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열린 국제적인 행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렇게 9일간의 대회가 지나가고.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아쉽게도 당초 세웠던 10종목 10위권 목표는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몇몇 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202개 나라에서 1,945명의 선수가 출전한 것은 물론 누적 입장객 41만 명을 달성.
역대 최대 규모의 흥행 성적을 거두며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폐회식이 있는 4일 저녁.
이날 황유명 국무총리는 폐회사에서 특별히 오프라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짧게 남겼다.
“이번 대회는 모든 세계 육상인들의 꿈의 경연이자 지구촌이 하나 되는 화합의 축제였습니다. 여기에 큰 도움을 주신 오프라인의 따뜻한 보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으로 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의 폐회를 선언합니다!”
옆에 선 박창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세계적인 대회의 폐회사에서 총리가 언론사를 딱 하나 지명해서 고맙다고 말하는 건 아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겁니다. 아무렴요.”
* * *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조금씩 얼굴을 내미는 9월의 어느 날.
나는 이덕오와 함께 제주로 향했다.
“헉헉. 형님. 좀 천천히 가요.”
나의 뒤, 그러니까 한참이나 아래에는 숨을 헐떡거리며 천천히 가라고 애원하는 이덕오가 있었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앞으로 걸었다.
이제 조금만 더 나아가면.
슈우우웅.
거대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전신의 땀방울을 멀리 날려 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상에 있는 한 바위에 걸터앉아 이덕오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몇 분쯤 기다렸을까.
멀리서 이덕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쪽으로 기어 오듯 걸어왔다.
“하아. 하아. 다…… 다 왔다.”
“살 좀 빼라 인마.”
“진짜 여기는 몇 번을 와도 힘드네요. 후우.”
“야, 너는 집이 그렇게 언덕 위에 있으면서도 이게 힘드냐?”
“당연하죠! 저희 집이랑 여기가 같나요!”
“적응할 만도 한데 이상하다.”
“됐어요. 힘드니까 말 걸지 마세요. 휴.”
이덕오가 내 옆에 풀썩 주저앉더니 크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목이 타는지 가방에서 물을 꺼내 냉큼 마시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 진짜 제주 하늘은 언제 봐도 너무 예쁘네요.”
나 역시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랗게 맑은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나와 이덕오는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덕오야.”
“네.”
“제주가 그리 좋냐?”
“그러네요.”
“나중에 은퇴하면 여기서 살아.”
“그러게요.”
“그러니까 돈 많이 모아. 엉뚱한 데 쓰지 말고.”
“사장님이 돈 좀 많이 주세요.”
“열심히 해, 인마.”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면 쓰러져 죽을걸요.”
“됐고, 여자는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사귀어도 늦지 않아.”
“아유. 그 소리 한 번만 더 들으면 이천만 번은 듣는 거니까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짜식. 오버하기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덕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한 바퀴 걷자고 말했다.
이덕오도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다랑쉬오름을 세 바퀴 돌고 아래로 내려왔다.
“배고프지?”
“네. 엄청요.”
“해장국 어때?”
“형님 부모님 가게요?”
“응.”
“좋죠!”
나는 곧장 차를 몰아 세진 해장국을 향했다.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가자 엄마가 우리를 반겼다.
“벌써 다녀왔어?”
“엄마 우리 해장국 2개만 주세요.”
“그래그래. 배가 많이들 고프지? 엄마가 금방 해 줄게!”
엄마는 주방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해장국 특대로 2개! 빨리요!”
이덕오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이상하게 주변에 손님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저번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가게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 않았던가.
나는 옆자리에서 빈 그릇을 치우는 아주머니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주머니. 요즘 가게에 손님들 많이 없어요?”
“그게…….”
아주머니는 카운터에 있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속삭였다.
“요즘 문제가 하나 생겨서 말야.”
“문제요?”
“응.”
그녀는 최근 있었던 일을 내게 상세히 알려 주었다.
“이 동네가 원래 조용하잖니. 그런데 우리 가게 들어오고 나서 손님들이 하루 종일 길게 줄을 서고 그러니까 그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생긴 거야.”
“저런.”
“거기에 너희 부모님이 육지 사람들이잖니.”
“설마.”
“그래. 마을 사람들 중에 힘 있는 누군가가 외지 것이 시끄럽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 뭐야.”
제주도는 다른 지역보다 유독 텃세가 심한 곳이다.
지리적으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서울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풍족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 동네였다.
또한 거친 바다로 가로막혀 있는 지형 탓에 고려와 조선 시대 때부터 제주 사람들이 받은 지역적 소외감은 컸다.
오죽했으면 조선 시대의 법전인 ‘대전회통’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겠는가.
‘제주에는 죄명이 특히 중한 자가 아니면 유배 보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차별한 학살이 자행된 4·3 사건 등 아픔이 여전했다.
자연스레 원주민들은 외지인을 경계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민원이 막 들어오고, 경찰이 오고, 얼마 전에는 가게 앞에서 막 살벌하게 싸우고 그랬어.”
그녀의 이야기에 현재 사정이 대략 짐작이 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덕오가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
“아오. 이 천하의 나쁜 놈들. 같은 대한민국 사람인데 외지 것이 뭡니까 도대체!”
이덕오의 말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나쁜 놈들은 아니고. 그냥 한 사람이야 한 사람.”
“한 사람이요? 그게 누굽니까?”
아주머니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엄마가 와서는 눈치를 줬다.
“흠흠. 아주머니. 일 안 해요?”
“에구머니나. 사모님! 아드님이 뭘 물어봐서요. 저 갑니다.”
그녀는 급히 빈 접시를 가지고는 자리를 떴다.
나는 엄마에게 옆자리에 앉으라고 말하고는 물었다.
“사실이에요?”
“뭐가?”
“텃세 때문에 손님 줄어든 거요.”
“그건 아니고…….”
엄마가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조금 더 강한 말투로 물었다.
“누구예요? 엄마는 알고 있죠?”
“아냐. 난 아무것도 모른다. 텃세는 무슨. 그런 소리 하지 말렴.”
“자꾸 모른다고 하시면 아빠한테 물어볼 거예요. 아빠도 대답 안 하면 식당 아주머니들한테 물어볼 거고요. 네?”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엄마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앞마을에 농장이 하나 있거든.”
“네.”
“거기 주인아저씨가 괜히 시비를 걸더구나.”
“왜요?”
“그게 좀.”
“괜찮으니까 시원하게 이야기 좀 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