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200)

“휴…….”

그제야 엄마는 사건의 전말을 풀어놓았다.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가게 옆에 텃밭 있잖니.”

“주차장 옆에 있는 거요?”

“응. 그게 지적도상으로는 우리 땅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요? 그건 몰랐네요. 부동산 아저씨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너희 아빠가 다 알아봤어. 그래서 거기서 경작하는 사람이 누군가 알아봤더니 앞마을 농장 주인이더구나.”

“네.”

“그래서 너희 아빠가 거길 직접 찾아가서 여기는 우리 땅인데, 올해까지만 농사지으시고 내년에는 돌려 달라고 그러셨거든.”

“그런데요?”

“역정만 잔뜩 내셨다더구나. 외지 것들이 기본이 안 돼 있다면서.”

“하? 남의 땅을 멋대로 사용한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말을 해요?”

엄마의 말에 이덕오가 더 크게 화를 내었다.

엄마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꼭 제주만 그런 게 아니라 시골에서는 흔히 있다고 하더구나. 지적도랑 상관없이 땅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아빠는 어떻게 했는데요?”

“뭘 어떻게 해.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왔지. 그런데.”

“그런데?”

“이후부터 그 아저씨가 동네방네 우리 험담을 하고 다녔다고 해. 싸가지 없는 외지 것들이라고.”

“이…….”

“게다가 행정기관에 민원도 막 넣고 말이야.”

“민원이요?”

“응.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시끄럽다거나, 식당을 불법으로 지었다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다고 말이야.”

“아니 앞마을 농장이면 여기서 보이지도 않잖아요? 그런데 뭐가 시끄럽다는 거예요? 그리고 불법 건축은 뭐고 무단 투기는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엄마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근처에 농장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근처는 논밭뿐인 허허벌판이었으니.

“나도 모르지. 아무튼 요즘 좀 그래.”

“구청에서는 뭐래요?”

“우리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행정 조치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지. 그런데도 계속 민원을 넣으니 구청에서도 곤란해하더구나.”

엄마의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농장 아저씨 집이 어디라고요?”

“어휴. 세진아, 그냥 못 들은 거로 하고 넘어가 주면 안 되겠니. 괜히 그러다 너까지 다칠까 걱정이다.”

“아네요. 엄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제주도 괸당 문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미친 농장 주인 한 명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요.”

괸당이란 좁게는 친척, 넓게는 이웃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섬이라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제주도에선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과 같은 연고를 무척이나 중시했다.

그래서 괸당끼리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외부인은 배척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 이 사건은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만히 두면 큰일 낼 사람이네요. 이거 제가 제대로 해결하고 올게요.”

“아니다. 괜히 원주민 건드려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러지 말렴.”

나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장 가게를 나와 주변을 살폈다.

이덕오가 곧바로 내 뒤를 쫓아왔다.

마침 주차장 옆 텃밭에서 누군가가 농작물을 살피고 있는 게 보였다.

“저기요.”

“네?”

상대가 이쪽을 휙 돌아보았다.

아저씨가 아니라 젊은 여성이었다.

“혹시 앞마을에서 농장 하시는 분과 아시는 분입니까”

“농장? 우리 아빠요?”

“아빠?”

* * *

세진 해장국에서 차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면 작은 카페가 있었다.

인테리어가 서울의 카페처럼 화려하거나 현대적이진 않았지만, 아담하고 조용한 맛이 있어 제주에 내려오면 종종 들르는 곳이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3잔을 시키고는 자리에 앉았다.

“농장 아저씨 셋째 딸이라고요?”

“네. 막내딸이에요. 위에 언니만 둘 있죠.”

“혹시 정희 씨는 아버지한테 저희 가게 이야기 들으셨어요?”

자신을 앞마을 농장 주인의 막내딸이라고 소개한 민정희는 공교롭게도 나와 나이가 같았다.

그녀는 서울에서 드라마 작가를 하다가 휴식을 위해 제주도로 내려왔다고 했다.

“그거 말이죠. 네. 들었어요. 어휴. 제가 어찌나 속이 타던지. 죄송해요. 저희 아버지 때문에 곤란하시죠? 제가 대신 사과드리면 안 될까요?”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뇨. 정희 씨가 미안해할 건 아니죠.”

“아니에요. 저희 아빠 심보가 엄청 삐뚤어져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노친네! 그러니 주변에 가까운 이웃 하나 없지!”

“그런 것치고는 아까 형님네 땅에서 농작물을 살피시던데요?”

이덕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민정희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건.”

민정희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속으로 삼키더니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죄송합니다. 저도 저희 아빠 근처에 있고 싶진 않거든요. 좀 떨어진 곳에서 농작물도 키우면서 힐링을 하려던 건데. 죄송합니다. 정말.”

“흥. 농사가 무슨 힐링이라고.”

“아녜요. 이게 얼마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데요! 보세요. 9월에는 감자를 파종하는데…….”

민정희는 한참 동안 농사의 미학에 대해 설파했다.

농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와 이덕오지만 그녀가 어찌나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던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과연 드라마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한동안 즐겁게 이야기를 풀어놓던 민정희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혹시 오프라인의 우세진 사장님 아니세요?”

“맞습니다만.”

“역시! 분명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긴가민가 싶었거든요! 우 사장님 맞으시군요!!”

그녀는 화색이 가득한 얼굴로 두 손을 하나로 모으며 말했다.

“통신사 광고 맞죠? 그거 정말 대박이었어요! 포로 포지로 포에버!”

“아, 네.”

나는 이마에 손을 얹고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 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지난 우면산 산사태에서는 혼자서 차 안에 갇힌 여성을 구하셨잖아요!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는 해적들 사이를 뚫고 가다가 총에 맞으셨잖아요!”

“아뇨. 저 혼자 구한 게 아니었고, 해적들 사이를 뚫은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겸손은요! 정말 어쩜 좋아. 저 서울에서 드라마 작가 할 때 사장님 팬이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이야! 동료 작가들한테 이야기하면 아주 난리가 날 텐데 말이죠! 그런데 정말 저랑 동갑 맞으세요? 어쩜 같은 나인데 그럴 수가 있지!”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아녜요! 그러고 보니 실물이 훨씬 더 잘생기셨다. 우와. 대박!”

그녀가 나에 대해 기억하는 건 상당 부분 왜곡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 따윈 중요치 않다는 듯 자리에서 번쩍 일어서더니 내 뒤로 섰다.

“저기, 괜찮으시면 셀카 같이 찍으실래요?”

* * *

민정희를 농장 앞에서 내려 주고 집으로 오는 길.

이덕오가 묘한 표정을 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뭐냐, 그 표정은.”

“뭐긴요. 형님은 연애에 1도 관심 없다면서 어쩜 저리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진짜 신기하네.”

“뭔가 나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도나 보다. 너도 들었지? 내가 언제 해적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냐. 그리고 최 본부장님도 다 같이 구했지, 언제 혼자 구했어.”

“됐네요. 그게 중요한가요. 아무튼 저 여자가 자기 아빠한테 뭐라고 이야기할지가 관건이네요.”

“그러게. 본인은 반드시 설득시켜 보겠다곤 하는데, 별로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니겠죠?”

“자기만 믿어 달라고 했으니 두고 보자.”

“네. 그나저나 형님은 추석 지나고 올라갈 거예요?”

“응. 너도 별일 없으면 나랑 같이 있다가 올라가.”

“뭐, 저야 좋죠.”

그렇게 나와 이덕오는 집 근처의 오름을 오르거나 근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서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기에 이런 호사를 누려도 과연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제주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이.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다.

* * *

띵동~

가족과 함께 추석 제사상 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는데 누군가가 현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나 앞마을 농장에 민 씨올시다. 날봅서. 있쑤과?”

문을 여니 웬 대머리 중년 남성 한 명과 며칠 전 만났던 민정희가 나란히 서 있었다.

대머리 중년 남성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댁이 언론사 사장이 맞수꽈?”

“그렇습니다만. 혹시 앞마을 농장 주인이십니까?”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 선 민정희가 씨익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혹시 괜찮으면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제사 중이었다.

굳이 외부인을 집안으로 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집 안으로 들어온 민정희가 제사상을 바라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 맞다. 지금 추석이죠? 죄송해요. 저희가 그것도 모르고 찾아왔네요.”

이덕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는 볼멘소리를 냈다.

“아니,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깜빡할 수가 있습니까? 일부러 지금 찾아오신 건 아니죠?”

그러자 농장 주인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기차지다! 이놈아! 우리 조상님들이 느그 육지 것들에게 무차별 죽어나서 뫼실 조상이 없다, 이 장뚜룸아!”

그의 말에 당황한 이덕오가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아니, 이 아저씨가 지금 뭐라는 겁니까?”

“아이고, 아방. 경허지 맙서. 오늘 명절 아닙서. 다음에 옵수꽈.”

민정희가 농장 주인을 말렸지만, 농장 주인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도새기처럼 살이 뒤룩뒤룩 찐 놈아! 존동머리 후려 불카!”

나 역시 정확히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100%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그가 이덕오에 대해 욕설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아저씨, 명절에 남의 집에 와서 무슨 행패십니까. 하실 말씀 없으시면 따님 말처럼 다음에 다시 오세요!”

내가 크게 소리치자 농장 주인은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민정희가 몇 번이나 미안하다며 고개를 조아렸는지 모른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저희 집에 TV가 없거든요. 오늘이 추석인지 저도 깜빡해 버렸네요.”

“TV가 없다고요?”

“네. 아버지가 TV를 싫어하세요. 맨날 거짓말만 한다고요. 육지 사람들한테 당한 게 많아서 더 그러세요.”

“요즘 세상에 TV가 없는 집이 있다고요?”

이덕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민정희를 나무랐다.

민정희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이야기했다.

“진짜예요. 진짠데. 아닙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농장 주인은 민정희와는 정반대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이덕오가 더욱 열을 받고는 소리쳤다.

“아무리 육지 사람한테 당한 게 많아도 그렇지, 이건 정말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덕오가 뒤에서 씩씩거리자 엄마가 그를 진정시키고는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주셨는데, 차라도 한 잔씩 들고 가세요. 여보, 부엌에 물 좀 올려 주세요. 그리고 덕오랑 세진이는 입구에 멀뚱히 서서 그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고.”

엄마는 소란스럽게 주위를 정리하더니 두 사람을 부엌으로 안내했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갈등보다는 중재를.

싸움보다는 화합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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