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메인 작가는 당연히 아니고요. 막내 작가로 활동했어요.”
“막내 작가라. 그 이전에는요?”
“뭐 이것저것 막내로 활동했어요. 예를 들면…….”
민정희는 자신이 막내 작가로 참여한 작품들을 주욱 열거했다.
하나같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들이었다.
박창후는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았다.
“흠. 그런데 4.3 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십니까? 젊은 분이라 잘 모르실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저희 집안이 4.3 사건 피해자예요.”
“아?!”
박창후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조금 무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주도 출신이라 혹시 다른 지역 분이시면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네요. 사실 제 또래 대부분이 잘 모르는 사건이고요. 제주도에서도 4.3에 대해서는 다들 쉬쉬하잖아요.”
“그렇죠. 아픔이 너무 컸으니까요.”
둘은 어느덧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오누이처럼 4.3 사건과 제주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창후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민정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료 조사는 저희 내부에서도 관련하여 TF가 만들어져서 기자분들이 함께 찾아주실 겁니다.”
“다행이네요. 오프라인 기자분들이 자료 조사에 함께 참여해 주신다면 훨씬 더 객관적이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은 짧게 악수를 나눴다.
나와 민정희는 멀리 사라지는 박창후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휴.”
민정희가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했어요?”
“그럼요! 감독님이시잖아요. 감독님.”
“하하. 그런 것 치고는 둘이 죽이 잘 맞던데요?”
“저는 속으로 긴장해 죽는 줄 알았어요. 감독님 얼굴이 무섭기도 했고요.”
나는 곰곰이 박창후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꾸 본 탓에 친숙해져서 그렇지 처음 보는 사람이면 겁을 먹을 만도 했다.
“하긴 저도 박 본부장님 처음 면접 봤을 때 무슨 조폭이 온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도 이제는 그냥 동네 아저씨 같고 그래요.”
“동네 아저씨요? 우 사장님 말이 너무 웃기네요.”
그녀는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 모습이 궁금했는지 김희철이 이쪽으로 오더니 스윽 물었다.
“아니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웃고 그래요? 우 사장. 그리고 저분은 누구야? 나는 처음 보는 분 같은데, 박 본부장님하고도 이야기 나누는 거 보면 외부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김희철은 오프라인에 모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도 모르는 신입 직원의 이름과 나이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오프라인의 인사 본부장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나는 민정희에게 김희철을 간단히 소개하고는 말했다.
“이번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하나 만들 건데요. 거기 참여해 주실 작가분이세요.”
“아! 박 본부장님이 또 암스테르담에 갈 작품 하나 추가하시는 거군!”
“암스테르담이요?”
민정희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라? 몰랐어요? 이전에 아덴만 여명 작전 다큐랑 얼마 전 일본 대지진 때 도쿄에 가서 촬영한 다큐가 모두 박 본부장님 작품인데.”
“정말요?! 몰랐어요.”
“얼굴을 저래 보여도 보통 솜씨가 아니에요. 장인(匠人)이야 장인.”
김희철의 말처럼 박창후는 영상에 있어서는 무서울 정도의 집착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부서원들에게도 대체로 관대했지만, 영상에 있어서는 사소한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런데 형은 도대체 박 본부장님 성격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아요? 같이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하하. 나야 밑에 친구들하고도 이야기하고 박 본부장님하고도 이야기하고, 자네하고도 이야기하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니까.”
신기한 사람이었다.
김희철은 민정희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이것저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다큐멘터리 작가에는 어쩌다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게 좀 복잡해요.”
민정희가 나를 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대신 내가 입을 열었다.
“민 작가님 아버지랑 딜했거든요.”
“작가님 아버지랑 딜?”
나는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래서 아버지가 무슨 딜을 하셨는데?”
“농장 주인아저씨는 땅을 돌려주는 대가로 두 가지를 요청하셨어요.”
“두 가지?”
“하나는 4.3 사건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
“응.”
“나머지 하나는 딸을 좀 서울로 데리고 가 달라는 것.”
“서울로?”
농장 주인은 젊은 나이에 제주에 내려와 농사를 짓는 자신의 막내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도망치듯 제주를 빠져나온 민정희였다.
혼자 힘으로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하고 나름의 자랑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서울 생활을 다 접고는 쉬겠다며 제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안쓰럽기도 하고 옆에서 어찌나 잔소리를 해 댔던지 귀찮았던 모양.
“그래서 제가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 거예요. 제주도 출신에 4.3 사건 피해자 집안이니까 이 사건에 대해서도 잘 알 테고요. 무엇보다 드라마 작가 경력이 마음에 들었고요.”
“우 사장님, 너무 그렇게 비행기 태워 주시면 저 글 못써요. 다큐는 처음이라고요.”
“드라마랑 다큐는 모두 같은 영상 포맷이잖아요. 게다가 시놉시스도 결국 텍스트. 글로 이뤄지는 거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아니에요. 열심히 해 볼게요.”
민정희가 각오를 다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었다.
갑자기 김희철이 므흣한 표정을 짓고는 내게 속삭였다.
“그런데, 우 사장. 설마하니 본처 놔두고 뉴페이스랑 바람피우는 건 아니지?”
“아이 좀!”
내가 버럭 화를 내자 김희철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며 손을 흔들었다.
창밖에서 비치는 햇살에 먼지들이 눈처럼 반짝이며 떠다녔다.
* * *
4.3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 Task Force.
박창후를 팀장으로 하여 각 본부에서 4.3 사건에 관해 관심이 있는 기자 총 18명이 모였다.
여기에 민정희가 작가로.
그리고 내가 특별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참석.
총 20명의 인원이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석하였다.
열기는 뜨거웠지만 공통적으로 나오는 걱정은 하나였다.
“지금도 논란이 있는 사건이잖아요? 그렇다고 양측의 입장을 나란히 전달하기만 해서는 기계적 중립이 될 테고요.”
“작년 연말인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벌어진 국제 학술회의에서 진실 화해 위원회 위원장이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어떤?”
“4.3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모반이자 폭동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에요!”
박창후와 민정희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4.3 사건은 사실 그 명칭부터 문제가 있어요. 사건의 발단은 남로당의 무장 봉기일인 4월 3일 이전에 이미 한국 정부와 미군정의 실정이 이어지고 있었단 말이에요!”
“맞습니다. 1년 전인 1947년 3월 1일에 이미 경찰들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발포하여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회의실은 일순 무거워졌다.
박창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걸 다 떠나서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이건 학살이에요. 학살!”
“이건 남로당이 잘못했다, 토벌대가 잘못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살해당한 사람들의 80%는 토벌대가 벌인 짓이었어요. 당시 그 상황에 대해서는 미군과 한국군 모두 토벌대의 과잉 진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상태였고요.”
나는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새로운 의견을 내었다.
“그럼 피해자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피해자의 시각이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네. 그러니까 우리는 정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지 않고, 피해자인 무고한 제주도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겁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로요.”
“어떻게요?”
“예를 들어서 내가 당시 제주도 사람 A라고 해 봅시다. 그런데 갑자기 바닷가에서 일정 범위 떨어진 지역에 있는 이들은 모두 폭도로 여긴다는 이야기가 돌아요. 어떨 것 같습니까?”
“음. 무서워서 산으로 도망칠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들은 도대체 이 소문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실제로 모르니까요. 단지 살기 위해 무작정 산으로 도망치는 겁니다.”
“관객들이 피해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경험하게 하는 거군요?”
“네. 그런데 이들은 우리랑 똑같은 일반 사람이에요. 피난하는 와중에도 서로 웃고 떠들며 감자도 나눠 먹고 집에서 키우던 돼지 걱정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는데?”
“갑자기 군경 토벌대가 와서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
“저런!”
모두가 내 말에 상상이라도 한 듯 몸서리를 쳤다.
내가 한 이야기는 실제로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의 한 동굴로 피신한 주민들의 실화였다.
‘그리고 2013년 개봉하여 큰 파장을 일으킨 다큐멘터리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지.’
굳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
피해자의 이야기.
피해자의 시선에서 당시의 사건을 재현한다면 그것보다 더한 진실과 울림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당장 4.3 사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제주도 출신인 박창후와 민정희가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TF를 발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참 자료 조사를 하던 박창후와 민정희가 갑자기 내 방으로 뛰어오더니 동시에 소리쳤다.
“우 사장님! 제사!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네?”
“제사요?”
“네! 영화를 일종의 위령제(慰靈祭), 그러니까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의 의미로 바치는 겁니다.”
“맞습니다. 영화를 통해 4.3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이 편하게 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거죠. 관객들 역시 영화를 통해 제사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도록 하고요.”
제사라.
일리가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건을 객관적으로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의미를 담는 게 중요했다.
“좋은데요?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내가 입을 열자 박창후와 민정희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영화의 맨 처음, 그러니까 프롤로그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는 겁니다.”
“제사상이요?”
“네. 제사상이 멀리서 천천히 클로즈업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 거죠.”
“오! 괜찮은데요?”
“그리고 중간마다 제사와 연관된 느낌이 들도록 연출을 하고, 엔딩에서는 향을 끄면서 제사를 마무리. 어떤가요?”
“와우! 멋진데요?”
민정희가 두 손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박창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우 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저희 스무 명만으로는 영화 촬영이 어렵습니다.”
“부족하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이번 영화는 아덴만이나 일본 대지진과는 다르니까요.”
“어떻게 말이죠?”
“그건 그야말로 있는 현장을 그대로 촬영한 것이고, 이건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을 재현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려면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도 구해야 하고, 촬영 스태프나 장비도 훨씬 많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영화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찍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