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5화 (85/200)

오래전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우리가 조사한 사실에 따라 재현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는 물었다.

“그래서 뭐가 더 필요합니까?”

내가 단칼에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던지 박창후가 한층 표정이 밝아지더니 말했다.

“돈입니다. 돈. 연기자를 모으는 것도, 촬영 스태프를 모으는 것도, 장비와 섭외도. 다 돈이죠.”

“돈이라. 얼마 정도가 필요하죠?”

“그게 참. 딱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네요. 감독 입장에서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한데.”

“그래도 대략 어느 정도면 찍을 수 있겠습니까?”

박창후는 한참 고민하는 것 같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3억. 3억이면 될 것 같습니다.”

3억.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액수.

일반적으로 제작비가 10억 원에 미달하면 독립 영화라 불렸다.

그중에서도 3억 원 이하의 영화는 저예산 독립 영화로 보았다.

‘캐나다 토론토 독립 영화제에서도 3억 원 이하의 제작비가 든 영화는 저예산 독립 영화로 분류해서 심사하니까.’

몇천만 원짜리 영화도 많았지만, 최소한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최소 3억 이상의 비용은 필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일관된 진술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둘에게 이런 의견을 제안했다.

“물론 회사가 3억 원을 몽땅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의미가 조금 퇴색되지 않겠습니까?”

“퇴색이요?”

“네. 4.3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의미가 깊고, 또한 피해자분들도 많은 사건이고요.”

“흠. 그럼 우 사장님은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요즘은 영화 제작에서도 소셜 펀딩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맞아요. 영화뿐 아니라 출판이나 음반, 디자인 등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죠.”

민정희가 요즘 문화 전반적으로 소셜 펀딩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니 저희 단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번 영화 제작에 함께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소셜 펀딩 등 후원을 받아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 그거 괜찮은데요? 다 함께 만드는 영화라.”

박창후가 흥미 있다는 표정을 짓더니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회삿돈으로만 진행하다가 망하면 제가 난처해질 텐데, 진짜 명안입니다, 명안!”

“아뇨. 그 반대죠.”

“네?”

내 말에 박창후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삿돈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후원을 통해 진행하니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이 말씀입니다.”

“앗. 그런.”

박창후가 당황스럽다는 듯 나와 민정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민정희는 재미있다는 듯 박창후의 두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와! 좋네요, 그거! 박 감독님! 우리 꼭 이 영화 성공시켜요! 네?”

* * *

<제주의 아픔을 기록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바랍니다. 후원하기/공유하기>

오프라인 홈페이지에 걸린 커다란 후원 배너.

이를 클릭한 많은 이들이 4.3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후원 페이지에 접속하였다.

후원 페이지에는 이 영화를 왜 만들게 되었는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될 것인지, 언제 개봉할 것인지, 그리고 4.3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게 과연 사람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회의적이었던 이덕오의 태도는 금세 달려졌다.

“이야. 저는 진짜 잘 모르겠네요. 어떻게 이런 수치가…….”

배너 게재 몇 시간 만에 후원금은 벌써 2천만 원을 가볍게 돌파하고 있었다.

또한 지금도 무섭게 숫자가 올라가며 목표치였던 2억 원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를 응원한다는 댓글 수는 3천여 개, 공유 수는 1천 건에 달했다.

“이런 관심이면 2억은 금방 모이겠는데요?”

박창후가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2억 넘어도 계속 받을 겁니다.”

“네? 목표치가 2억 원인데요?”

“자세히 보시면 목표치를 초과하더라도 제한 없이 받겠다는 문구가 있어요.”

박창후가 깜짝 놀라며 홈페이지에 쓰인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진짜네요? 이거 이러다가 막 10억 원을 넘는 건 아니겠죠? 하하.”

“그거야 마감 기간인 한 달이 지나 봐야 알겠죠. 아무튼, 회사에서 이번 영화에 1억 원 투자하는 건 확정되었으니 나머지는 시민들이 얼마나 후원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우어어!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 신령님께서는 제발 저희를 보살펴 주시고…….”

박창후가 두 손을 비비며 중얼거리는 모습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전체 제작비가 3억에 미달하면 나머지는 DC 소프트에서 투자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DC 소프트에서요? 거긴 게임회사잖아요?”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더군요. 정선호 회장이 이번 영화에 투자를 너무 하고 싶어 했는데, 그러면 제가 의미가 퇴색되니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3억 못 채우면 그때 투자해 달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네요. 이거 뭐, 영화 성공 못 시키면 대역 죄인 되는 분위기인데요?”

박창후가 두 눈을 껌뻑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물론이죠. 실패하면 감봉 처리할 겁니다.”

“크윽. 잘해 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오후에 미국 간다는 거 정말입니까?”

박창후가 더 이상의 관심과 집중은 곤란하다는 듯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네. 사람들이 드디어 움직였으니까요.”

“아니 그래봤자 고작 30여 명이 다잖아요. 그거 찍으러 굳이 미국까지 갈 필요가…….”

박창후는 잘 몰랐다.

이번 사태가 얼마나 크게 전 세계로 확장될 것인지.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 movement).

처음에는 박창후의 말처럼 단순히 30여 명의 사람들이 월가에 모여 벌인 소규모 시위였다.

이들은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미국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주 월가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곧 전 세계 400여 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져서 수십만 명이 이 시위에 동참하게 되지.’

시위대가 내건 구호는 단순했다.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세계 경제를 무너뜨리고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탐욕에 찌든 최상위 1%를 향한 일반 시민 99%의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

“박 본부장님은 이번 영화 때문에 바쁠 것 같으니까 촬영 팀은 이번 영화에 참여하지 않는 분들 위주로 꾸몄습니다.”

“네. 뭐 어쩔 수 없죠. 제가 틈틈이 팔로우업하겠습니다.”

나를 필두로 총 8명.

월가 점령 특별 취재 팀이 꾸려졌고, 우리는 저녁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출발했다.

* * *

월가 점령 시위가 빠르게 확산한 이유는 명확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문제는 부자가 될 기회가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는 현실이었다.

상위 10%가 가진 미국 전체 재산만 무려 73%에 달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수많은 시위대를 인터뷰하고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였다.

많은 이들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월가 금융 회사들이 벌인 탐욕과 부패에 치를 떨었다.

자신을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이라 소개한 마이클은 왜 이번 시위에 참여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월가의 금융 회사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 위기를 초래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들을 구제했죠.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과와 반성은커녕 보조금으로 연일 보너스 잔치를 벌이고 있어요. 한마디로 미친 거죠.”

그는 일목요연하게 현재 왜 시위대가 분노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우리는 현장을 라이브로 중계했는데, 덕분에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우리의 중계를 실시간으로 접속해 보았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감하며 댓글을 달았다.

<마이클의 말에 동의해. 빈부 격차는 인간의 긍지를 파괴하지. -일본, 히로시>

<상위 1%가 다스리는 세계는 잘못되었어. 우리가 바꿔야만 해! -호주, 올리버>

<나는 부자를 지지해. 부자라는 건 노력의 결정체니까.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해선 안 돼. -미국, 니컬러스>

댓글은 금세 전 세계인들이 보내는 공감과 응원으로 가득 찼다.

우리의 방송 덕분인지 월가에는 점점 더 많은 시위대가 몰렸다.

또한 우리를 알아보는 시위대도 따라서 늘고 있었다.

“와! 저기 오프라인이다!”

시위대는 카메라에 붙은 오프라인의 로고를 보고는 호감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덕분에 촬영은 훨씬 더 쉬워졌다.

더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줬고, 자신들의 사정과 의견을 자세히 소개해 주었다.

어느덧 오프라인은 월가 점령 시위를 대표하는 언론사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24시간 내내 시위대와 함께 있었던 덕분이다.

* * *

취재 오 일째.

새벽에도 취재하기 위해 오프라인은 당번제로 현장을 취재했다.

3개 조로 나눠 8시간씩 현장을 전담하고는 다음 조와 교체했다.

이번에는 나와 주전영의 차례였다.

월가 현장에 가려는데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주전영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던졌다.

“사장님. 현장도 좋지만, 이번에는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는 건 어떨까요?”

“전문가?”

“네. 시위대의 의견은 충분히 기사로 다룬 것 같습니다만 아직 전문가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지는 다루지 못한 것 같아서요.”

전문가라.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무 현장의 모습을 담는 데에만 집중한 느낌이 적잖이 있었다.

나는 더 말해 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를 들면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 상을 수상한 폴 프리드먼을 인터뷰한다든지요.”

“괜찮은데? 그와 같은 전문가들이 이번 월가 점령 시위를 어떻게 분석하고 보는지도 중요한 관점이 될 테니까.”

“네. 다만 그는 너무 유명인이니까요. 저희의 인터뷰에 응해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나는 옆방의 최루리에게 달려가 상황을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오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등장했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군요. 미스터 우. 월가 점령 보도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미국에 왔으면 바로 연락을 주시지 그러셨어요. 안 그래도 왜 이렇게 연락이 없나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미국에 오자마자 취재한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바로 CNN의 부사장인 크리스티안 케이서스였다.

“갑자기 연락드려 이런 부탁드리는 건 죄송합니다만.”

최루리는 내가 이야기하는 바를 곧바로 영어로 통역하여 그녀에게 전했다.

“괜찮습니다. 저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무엇이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폴 프리드먼 뉴욕대 교수를 아십니까?”

“‘위대한 비판자’ 말입니까? 알다 마다요.”

그는 기존의 경제 개념은 물론 정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여 ‘위대한 비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네. 혹시 그를 저희에게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번 월가 점령 시위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현장 취재는 충분히 했으니 이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고 싶어서요.”

수화기에서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케이서스조차도 폴 프리드먼 섭외는 쉽지 않단 말인가.’

초조하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기다리는데.

케이서스는 이따 다시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홍지혜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역시 폴 프리드먼 교수는 섭외가 쉽지 않은 모양이네요.”

“미국 최고의, 아니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이면서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는 자니까. 쉽지 않겠지. 그래도 아쉽네.”

“뭐가요?”

“우리한테는 하버드대 전체 수석이 이렇게 떡하니 있는데 말야.”

“휴. 언니.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마세요!”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폴 프리드먼 교수는 24세에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에요. 저 같은 건 비교 대상조차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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