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7화 (87/200)

‘혁신을 넘어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니까.’

그뿐인가.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애플 2 컴퓨터를 비롯하여 음악 감상 방식을 바꾼 아이팟.

그리고 소파에 누워 편하게 컴퓨터 활동을 할 수 있게 해 준 아이패드까지.

애플은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한.

그래서 단순히 IT 기업이라고만 표현하기 어려운.

세계 정보 기술 업계의 신화였다.

점심 무렵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공항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택시를 타고 애플의 본사인 애플 캠퍼스로 이동했다.

애플 캠퍼스에 도착하자 전화로 약속을 잡은 홍보 담당 직원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을 엠마라고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우. 그리고 오프라인 여러분. 애플 홍보 직원 엠마입니다.”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은 엠마는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그녀의 머리 색은 강렬한 붉은색이었다.

그녀를 보고 빨간 머리 앤과 닮았다고 생각한 까닭은 붉은색 머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빨간 머리 앤처럼 온통 주근깨투성이였다.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이 그녀의 미모를 가리는 데에는 어떠한 장애가 되지 않았다.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보는군.’

모두 엠마의 미모에 넋이 나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엠마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빨간 머리는 자외선에 민감하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죠.”

그녀의 말에 따라 우리는 애플 캠퍼스 안으로 이동했다.

애플 캠퍼스는 기대와 다르게 내·외부 모두 평범했다.

주전영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뭔가 엄청난 외관이나 인테리어를 기대했는데, 우리 종로 센터보다 형편없네요.”

그 말에 최루리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여긴 실리콘 밸리의 심장이잖아요. 종로 센터랑 비교하면 곤란하죠.”

“어머. 언니도 저랑 폴 프리드먼 교수랑 비교하고 그러셨잖아요. 우리 오프라인이 왜요? 세계 최고의 뉴미디어 언론사인데.”

홍지혜의 말에 한 방 먹은 듯 최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건 인정.”

엠마는 애플 캠퍼스 곳곳을 소개해 주었고, 30여 분간의 투어 끝에 한 사무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제 Q & A 시간을 가질까요?”

“엠마, 당신이 직접 답변하는 건가요?”

“네. 저는 홍보 직원이니까요. 애플에 대해서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그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내가 물었다.

“잡스보다요?”

“웁스! 정정할게요. 그분만 뺀다면요.”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해 온 질문을 던졌다.

엠마는 그녀가 보여 준 자신감처럼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준비한 질문에 일말의 막힘없이 대답해 주었다.

‘대답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들까지. 고수다.’

실제로 그녀가 대답한 답변 중 일부는 애플에 민감하거나 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었음에도 그녀는 피하지 않고 노련하게 답을 해 주었다.

“저기 엠마? 혹시 임원이신가요?”

“임원이요? 그럴 리가요. 저는 올해 애플에 입사했습니다.”

“올해요?!”

“네. 애플은 저의 첫 직장이에요.”

“이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교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죠.”

“무…… 물리학 박사요?”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 그런데 왜 홍보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제 피는 6가지 색이거든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 주전영을 빼고는.

나는 웃으며 그녀가 말한 의미를 알려 주었다.

“오래전에 잡스가 애플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일화는 아시죠?”

“아! 알아요! 자신이 영입했던 펩시의 CEO와 마찰 끝에 결국 자신의 회사에서 쫓겨났잖아요?”

“맞아요. 그러다 파산 위기에 몰린 애플에 다시 CEO로 귀환하죠. 그때 애플에 돌아온 잡스가 깜짝 놀란 게 있었어요.”

“그게 뭐예요?”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갖춘 많은 직원이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었던 것이죠.”

“와! 충성심이 엄청나네요.”

“네. 궁금했던 잡스가 직원들에게 물어봤어요. 도대체 왜 아직 애플에 남아 있냐고. 그때 그들이 이렇게 말했대요. 표정을 보니 주 기자는 아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주전영이 씨익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여섯 가지 색의 피를 흘리니까요! 애플의 초기 로고를 보면 지금과 다르게 레인보우 색상이었거든요. 초록, 노랑, 주황, 빨간, 보라, 파란색으로요.”

그의 말처럼 애플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회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충성을 바쳤다.

최루리가 나와 주전영의 말을 통역해 주자 엠마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야, 멀리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저희 회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계시는군요?”

“오랫동안 애플 제품을 좋아했으니까요. 그나저나 엠마, 당신이 저희가 준비한 질문에 대해 매끄럽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네요.”

“그게 뭐죠?”

엠마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애플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제품과 회사에 대한 학자적인 이해.”

“음. 맞아요. 저를 이 자리에 뽑은 커뮤니케이션 총괄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정말 탐나는 인재네요.”

“호호. 오프라인에서도 저 같은 분이 입사하기를 바라요. 그런데 언론사도 홍보 팀이 있나요?”

아쉽지만 대부분의 언론사는 홍보 팀을 따로 두지 않았다.

매체가 매체를 취재하는 일은 잘 없으니까.

대개의 언론사들은 ‘우리가 미디어인데 홍보는 무슨…….’이라며 홍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언론사도 엄연한 기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회사 브랜딩과 PR을 위해서 독자적인 홍보 팀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 * *

애플 캠퍼스의 취재를 마치고 엠마와 헤어질 시간.

모두가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녀도 아쉽다는 듯 선물 상자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게 뭐예요?”

“아이패드2요. 애플 캠퍼스 방문 기념 선물입니다.”

“와우! 대박!”

모두가 엠마가 건넨 선물에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묘한 웃음을 짓더니 내게 손짓했다.

그녀는 내 귀에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정말 행운아시네요.”

나는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 소리 없이 두 글자를 뱉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입 모양만 보고도 단번에 알아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냈는데, 그게 통하다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홍 본부장님만 빼고 모두 샌프란시스코의 숙소로 돌아가 계세요. 홍 본부장님과 저는 여기서 남은 일 좀 처리하다 가겠습니다.”

“네? 갑자기요?”

주전영의 말에 최루리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밖으로 이끌었다.

“물론이죠. 자, 우리는 이만 철수합시다. 홍 본부장이랑 우 사장님이랑 남은 일이 있다니까요. 그럼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무언가 오해를 하는 것 같지만 덕분에 나와 홍지혜만 남을 수 있었다.

홍지혜도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갑자기 저는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엠마의 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났다.

15분여를 달렸을까.

그녀는 나무로 울창한 한 저택에 우리를 내려 주고는 다시 차를 가지고 사라졌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담장 안에는 특이한 모양의 지붕과 아담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홍지혜가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우 사장님. 도대체 여기가 어딘데요?”

“쉿. 조금만 있으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띠.

낮은 기계음과 함께 검은색 쇠창문이 열렸다.

우리는 작은 정원을 지나 붉은색 벽돌집 앞에 섰다.

곧 대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왔다.

검은색 티셔츠에 동그란 무테안경.

막대기처럼 깡마른 체구에 핏기없는 얼굴은 병색이 짙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바다처럼 넓고 부처님처럼 부드러웠으며 나찰처럼 날카롭고 보살처럼 빛나고 있었다.

홍지혜는 얼어 버린 듯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상대가 상대였으니 말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의 창업주.

위대한 혁신가.

시대의 혁명가.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말은 이 페이지를 빼곡히 채워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의 등장에 놀란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엠마가 넌지시 알려 줄 때만 하더라도 설마설마했는데.

‘실제로 잡스를 두 눈으로 볼 줄이야.’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8월 말 애플의 CEO 자리에서 물러난 뒤 두문불출 중이었다.

간혹 파파라치에 의해 그의 초췌한 모습이 찍힌 사진이 언론에 공개된 것 이외에는 어디서든 그의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나와 홍지혜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잡스가 웃으며 말했다.

“뭐 하세요? 아픈 사람 서 있게 할 겁니까?”

우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잡스의 집은 과연 세계 최고 기업의 CEO가 사는 집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소박했다.

새하얀 벽과 오래된 나무로 짜인 천장.

집안 곳곳에는 그의 인생 철학인 미니멀리즘(최소주의)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구는 단출했고, 어질러진 것 하나 없이 깔끔했다.

주변에 둘러본 나는 홍지혜에게 통역을 부탁하고는 말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데,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 편지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저한테는 6개의 피가 흐르지 않는 거겠죠. 하하.”

“편지요?”

홍지혜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잡스는 방에 들어가 편지를 한 통 들고 나와 홍지혜에게 건네주었다.

편지를 본 홍지혜가 깜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이 편지, 우 사장님이 직접 쓰신 거예요?!”

폴 프리드먼의 인터뷰가 끝난 직후.

나는 부족한 영작 실력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편지를 한 통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잡스. 저는 한국의 오프라인이라는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는 우세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는 당신과 애플의 팬이었습니다. 당신이 만든 컴퓨터로 게임을 즐겼고, 당신이 만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었으며, 당신이 만든 아이폰으로 문자를 보내죠. 요즘은 아이패드로 업무를 보고 있답니다. 저는 애플이 가진 심플한 디자인과 제품 철학을 무척 좋아합니다. 덕분에 당신이 강조하는 단순함과 창조성 그리고 인류애에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중략)…… 저는 이제 곧 미국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만약에,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 제가 당신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다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 제발 그 기적이 이뤄지길 바라며. 우세진 올림.>

편지는 A4 용지 12장 분량이었다.

영작을 잘하는 사람에게도 만만치 않은 분량이었을 것이다.

나는 밤을 새워가며 혼자 편지를 완성하였고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러다 월가 점령 시위와 관련하여 전문가 인터뷰에 나선 다섯 번째 인터뷰이.

바로 경제 잡지 ‘포브스’의 유명 기자인 휴이 브렌트에게 은밀히 편지를 건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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