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이는 잡스의 절친으로 유명했다.
휴이의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인터뷰 룸을 나가는 순간.
나는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이 편지를 스티브 잡스에게 꼭 좀 전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휴이는 예상치 못했던 나의 행동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내 표정에서 절실함과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 * *
잡스는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 휴이가 저에게 이 편지를 건네며 그러더군요. ‘스티브, 머나먼 동방의 나라에서 당신의 열혈 팬이 등장했어!’ 라고요.”
나는 편지를 전해 준 휴이 브렌트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편지를 읽고 나의 요청에 응해 준 잡스에게도.
“고맙습니다. 잡스. 초대해 주실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하하. 못 본 척하기에는 편지가 너무 애절했거든요. 저와 애플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한동안 애플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잡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미스터 우가 아니라 어째서 미스 홍이 이야기를 하는 거죠? 편지를 보면 영어를 못하는 것 같진 않은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통역을 부탁했다.
“제가 읽고 쓰는 건 조금 하는데 스피킹과 리스닝이 부족해서요. 요즘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가! 이토록 멋진 편지를 직접 쓰신 분이 말하기와 듣기가 잘 안 된다니 무척이나 슬프군요.”
나는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그런 거 말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
대신 홍지혜에 대해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말 뛰어난 인재입니다. 오늘 함께 불러 주셔서 감사드려요.”
“별말씀을요. 휴이와 폴의 인터뷰는 정말이지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저도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고요. 현재 미국의 자본주의는 문제가 많아요.”
“저희 인터뷰를 보셨다고요?”
“물론이죠. 인터뷰뿐 아니라 여러 기사도 직접 찾아보았습니다. 오프라인이라는 매체는 정말이지 놀랍더군요. SNS를 이용한 기사의 생산과 유통이라니! 과연 언론계의 혁신, 아니 혁명이라 할 만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뇨. 정말이에요. 저도 지금의 미디어가 정체되어 있다는 데에 깊이 공감하고 있거든요.”
평소 잡스는 미디어에 대해 많은 독설을 날리기로 유명했다.
그만큼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에 월스트리트 저널의 발행인과 대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죠. 나는 공원에서 개에게 막대를 던져 물어 오게 하는 놀이를 좋아한다고요. 그리고 이런 놀이가 계속되길 바란다고요.”
“와우. 정확합니다. 오래된 이야기인데 그걸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이 지속하길 원하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월스트리트 저널 발행인에게 인쇄 신문은 곧 망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 줬어요. 안타깝게도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요. 하하.”
그는 직접 미디어를 운영하거나 언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무척이나 높았다.
‘하긴 그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의 수장이기도 했지.’
나와 홍지혜 그리고 잡스는 2시간여 동안 그의 집에서 미디어의 미래와 IT의 중요성 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잡스는 때때로 기침과 함께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가족들이 그의 안위를 걱정했지만, 그는 끝까지 우리를 내쫓지 않았다.
꿈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 * *
그와의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에는 이미 주변이 어둠으로 짙게 칠해져 있었다.
잡스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문 앞까지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다.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지만 병색이 깊은 그의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해 보였다.
나는 그에게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오늘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은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별말씀을요. 정말 간만에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 콜록!”
그가 기침을 심하게 하며 허리를 숙였다.
우리가 그를 부축하려 하자 그가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좋은 사람들, 좋은 이야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보이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우리가 문밖으로 나가려고 발을 딛는 순간.
그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여기 오신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지 않겠습니까? 제 아이폰으로요.”
“얼마든지요. 영광입니다.”
그는 힘겹게 아이폰을 머리 위로 올렸다.
아이폰을 쥐고 있는 손이 바람에 휘날리는 갈대처럼 세차게 흔들렸다.
보다 못한 홍지혜가 대신 그의 아이폰을 잡고는 말했다.
“자! 웃으세요! 치즈~!”
우리는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미리 불러 둔 택시에 탑승했다.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따른 여운 때문이었을까.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정적의 분위기를 깬 건 홍지혜였다.
“정말……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왜요?”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잡스를 실제로 볼 줄이야. 그런데 왠지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어요.”
“저도 그래요.”
분명 우리가 아니었다면 잡스는 침대에 누워서 가쁜 숨을 허덕이며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픈 내색 하나 없이 의연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나는 홍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홍 본부장님.”
“네.”
“오늘 그와의 인터뷰. 기사로 잘 만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홍지혜가 즉답을 피하며 주저했다.
인터뷰라 생각하지 못하고 아무런 메모나 녹음 없이 현장을 즐겼기 때문이리라.
나는 다시 한번 그녀를 다그쳤다.
“가능하겠죠?”
“우 사장님이 이리 말씀하시니. 해 봐야죠.”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와의 만남 이후.
우리는 구글과 인텔, 페이스북 등 실리콘 밸리에 입주한 IT 거대 기업들을 방문하며 현장 인터뷰에 나섰다.
페이스북의 홍보 담당과 만족스러운 인터뷰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애플 홍보 직원인 엠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옆에 있는 홍지혜에게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엠마와 대화를 나눈 홍지혜의 표정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경악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짧게 신음하며 스마트폰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힘없이 말했다.
“잡스가…….”
“네?”
“그가 죽었답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대략 이때 즈음.
그가 죽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걸 위해 온 미국 아니었던가.’
그렇다.
월가 점령 시위는 표면상의 이유였고, 진짜는 바로 잡스의 죽음을 현장에서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정확한 날짜는 특정하지 못했다.
아니 그것보다 며칠 전에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그렇게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었던 사람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현실감이 없었다.
아무 말이 없는 내게 홍지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잡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어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부고를 오프라인에 가장 먼저 올려 달라고요.”
“네?!”
내 기억이 맞다면 잡스의 부고는 애플의 홈페이지를 통해 가장 먼저 알려졌다.
이후 유족들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무슨 이유로요?”
“엠마도 잘 모르겠데요. 단지 그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합니다.”
“끄응.”
나는 팔짱을 끼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은요?”
“지금 당장 발표해도 상관없답니다. 다만 발표 전에 먼저 초안을 보여 줄 수 없냐고 하더군요.”
“그런 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이건 제가 지금 작업하겠습니다.”
나는 즉시 노트북을 열어 그의 죽음에 대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오늘.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명확한 비전과 창의성을 지닌 천재를 말입니다. 그는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에게 강력하고도 따뜻한 영감을 주는 멘토였습니다. 그의 영민함과 열정, 그리고 에너지는 멈추지 않는 혁신의 원천이 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은 한결 풍부해지고 향상될 수 있었습니다. (중략)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가 일생을 바친 애플에 애도를 표합니다. 또한, 그가 우리에게 남긴 놀라운 유산에 찬사를 보냅니다.>
내가 쓴 부고문을 본 애플은 이견 없다는 말과 함께 기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5일.
잡스의 죽음은 오프라인을 통해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에 깜짝 놀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의 나이 향년 56세의 일이었다.
* * *
이틀 후인 7일.
잡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나와 홍지혜는 향을 태우며 고인을 추모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생전 고인이 믿었던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향내로 가득한 식장은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가족 및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된 이 날 장례식에는 우리 말고도 익숙한 얼굴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우리를 잡스에게 소개해 준 휴이 브렌트 기자였다.
그가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는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 옆에 바짝 다가서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 그렇게 준비한 겁니까?”
“뭐를요?”
“인터뷰 기사요. 그리고 잡스와 애플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들 말입니다.”
오프라인은 부고 기사 이후 빠르게 애플 특집 페이지를 개설하고는 여기에 다양한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홍지혜가 쓴 잡스와의 만남을 메인으로 하여 애플의 역사, 잡스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등.
그동안 특별 취재 팀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기사들이 마치 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국문은 물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빠르게 올라왔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잡스와의 만남을 기록한 기사는 에세이의 느낌도 가득하여 전 세계 잡스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 충분했다.
“어찌나 감성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예리한지. 저도 모르게 기사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휴이는 정말 대단했다며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기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추도사를 마친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와 홍지혜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더니 무엇인가를 건넸다.
잡스의 아이폰이었다.
나와 홍지혜가 영문을 몰라 서로를 쳐다보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마지막에 찍은 사진이 뭔지 아세요? 바로 여러분과 함께 찍은 셀카랍니다.”
“아…….”
“그러니 그 사진은 여러분께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녀는 우리에게 잡스와 찍은 사진을 건네주었다.
“미스 홍이 쓴 기사 정말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 어쩜 그렇게 실감이 나도록 쓰는지. 혹시 소설가세요?”
“아뇨. 저는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