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 제가 소설가지만 이런 글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추도문도 멋졌고요. 한 번뿐인 만남이었지만 오빠가 오프라인에 빠진 이유를 알겠더군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잡스와의 만남 기사의 메인 사진을 잡스의 독사진에서 잡스와 함께 찍은 셀카로 교체하였다.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가자 글이 훨씬 더 생생하고, 현장감이 더해졌다.
그렇게 장례식을 마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국제 전화가 울렸다.
이덕오였다.
“응. 덕오야. 무슨 일이야?”
-형님! 지금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인데?”
-지금 오프라인 홈페이지가 해커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에 파견된 특별 취재 A 팀과 B 팀은 각자 있는 곳에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서울로 돌아왔다.
트위터, 페이팔, 이베이, 델 등.
더 취재하고 싶은 기업들은 산더미처럼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 서버가 다운되면 기사를 써도 의미가 없으니까.’
다행히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오프라인은 문제없이 접속되었다.
나는 즉시 이덕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울린 지 오래지 않아 이덕오가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도착하셨어요?
“응. 방금. 디도스 공격은 잘 막고 있어?”
디도스(DDoS) 공격.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attack)을 뜻하는 말로 시스템을 악의적으로 공격하여 사이트를 접속하지 못하게 하는 사이버 범죄였다.
기사로는 많이 접해 봤지만 정작 실제로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덕오도 디도스 공격은 처음이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공격을 막기에 급급한 형편이에요.
“그럼 원인 파악이나 조사는?”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는 해 둔 상태인데 그들도 정확히 언제 해결할 수 있다고 확답은 못 하더라고요.
“버틸 순 있겠어?”
-일단 서버 용량이랑 회선을 늘려 뒀고, 서버에 과도한 요청을 유발하는 IP는 차단하는 중이에요.
“호스팅 업체에서는 따로 디도스 방어 서비스 없어?”
-있긴 한데 저희 트래픽이 워낙 높아서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오프라인의 트래픽은 평소에도 무척 높았다.
한 온라인 트래픽 분석 업체에 따르면 오프라인의 트래픽은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전체 사이트 중 3위에 해당할 정도로 높았다.
언론사 사이트 중에서는 부동의 1위였고, 전체 사이트 중 오프라인의 앞에 있는 건 Never와 넥스트.
두 포털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굵직굵직한 디도스 사건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관련해서도 수많은 기사를 썼었다.
“클라우드 블록을 이용해 보는 건 어때?”
-크…… 클라우드 뭐라고요?
“클라우드 블록. DNS 및 CDN 서비스를 해 주는 곳인데 디도스 방어 서비스도 제공해.”
-처음 들어 봤어요.
“디도스 방어로는 나름 유명한 업체야. 설립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 회사야?”
-네. 회사예요.
“오케이. 나 지금 바로 회사로 갈 테니까 이따 봐.”
나는 특별 취재 팀과 헤어져 혼자서 종로 센터로 갔다.
최루리와 홍지혜가 무리하지 말라며 말렸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이었다.
‘서버가 다운되면 단순히 접속이 안 되는 문제가 아니라 회사 이미지가 떨어질 수 있어.’
퇴근 무렵 회사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이덕오를 찾았다.
그는 나를 보더니 대뜸 와락 껴안았다.
“사장님!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야야! 장난하지 말고.”
“장난 아니에요. 진짜! 공격 시작되고 이틀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걸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확실히 미국에 가기 이전보다 초췌해져 있었다.
“상황 보고해.”
나는 내 집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이덕오의 보고를 들었다.
“네. 형님이 잡스 장례식에 있을 무렵이었어요. 안 그래도 애플 특집 페이지 때문에 평소보다 트래픽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태였거든요.”
“얼마나 늘었는데.”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어마어마한 트래픽이 몰렸어요. 잡스 죽고 하루 동안 소통 트래픽 양만 1만 기가비피에스(Gbps)였으니까 말 다 했죠.”
Gbps(Giga bits per second)는 1초에 10억 비트의 데이터를 보낼 수 있는 전송 속도를 뜻한다.
1만 Gbps를 누적 전송 데이터(Byte)로 환산하면 최대 일간 108,000테라바이트.
당시 가장 많이 팔리는 컴퓨터 하드 용량이 500기가바이트에 불과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데이터였다.
“인터넷 데이터 센터(IDC)에서 난리가 났겠군.”
“네. 임시로 몇 개 더 빌려서 겨우 막고 있어요.”
“우리도 이번 기회에 IDC나 따로 만들까?”
인터넷 데이터 센터란 인터넷과 연결된 데이터를 모아 두는 시설로 서버를 모아 둔 호텔이라는 의미로 서버 호텔이라 부르기도 한다.
“IDC를 따로요? 국내 기업 중에 자체 IDC를 보유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걸요? Never도 외부에 빌려서 사용할 텐데.”
“이번처럼 또 그렇게 전 세계 트래픽이 몰릴 일이 있을지 누가 또 알겠어. 그러니까 미리 투자하는 거지.”
“당연히 자체 IDC가 있으면 좋죠! 데이터 처리 속도도 높일 수 있고, 데이터 관리도 쉽고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디도스부터 막는 게 우선이라고요.”
이덕오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실 디도스 공격은 그 이름에 비해서 무척이나 단순한 방법이었다.
특정 서버에 어마어마한 양의 트래픽이 몰리면.
해당 트래픽을 견디지 못하고 사이트가 마비되는 원리다.
문제는 악성 코드에 감염된 좀비 PC 등을 이용하여 공격자를 잡기가 어렵고, 만들기는 쉬워도 막기는 무척이나 어렵다는 데 있었다.
“디도스 공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잖아?”
“네. 3/4 계층 공격이랑 7계층 공격이요.”
“그래. 3/4 계층 공격은 우리 사이트에 쓰레기를 퍼붓는 거고, 7계층 공격은 가짜 방문자들이 오는 거지.”
“네. 맞아요. 보통은 3/4 계층 공격이 더 까다롭죠. 쓰레기가 마구 쌓이니까요.”
“그래. 그런데 클라우드 블록은 그 두 공격을 모두 막을 수 있어.”
나는 이덕오에게 클라우드 블록의 원리와 서비스에 대해 상세히 알려 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덕오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형님.”
“응.”
“진짜 문돌이 맞습니까?”
“그래. 나 신방과 졸업했는데?”
“이건 뭐 누가 서버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인지.”
* * *
클라우드 블록을 사용한 지 오래지 않아 오프라인에 대한 디도스 공격은 중단되었다.
사이버 수사대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내고는 이번 공격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잠정 발표하였다.
<조사 결과 이번 오프라인에 대한 디도스 공격은 2009년 7월 7일 발생한 북한발 디도스 공격과 그 방법이나 구조가 비슷합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합니다.>
오프라인 직원들은 종일 이 이야기로 떠들기 바빴다.
“설마 우리 내부 자료나 회원 정보가 북한에 털린 건 아니겠지?”
“북한 놈들 우리가 얼마나 빨리 대응하는지 테스트하려고 이런 짓 벌인 거 아냐?”
“걱정된다. 나 회사 컴퓨터에 공인 인증서랑 개인 정보 다 보관해 뒀는데. 힝.”
그러나 경찰의 발표 다음 날.
오프라인의 공식 이메일 주소로 온 하나의 이메일이 모든 것을 뒤엎었다.
자신을 이탈리아에 사는 개발자라고 밝힌 용의자 A는 자신이 이번 디도스 공격의 주범이라고 밝혔다.
<저는 애플의 광신도입니다. 그렇지만 잡스는 싫어하죠. 아주 아주 싫어합니다. 왜냐고요? 회사에서 제게 인격 모독적인 폭언을 서슴지 않은 악덕 기업주거든요. 결국 저는 애플을 나와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미화하는 오프라인이 꼴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이번 디도스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하하. 어때요? 따끔하죠? 이번 공격으로 오프라인 역시 충분히 반성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다음에 또 만나요.>
영어로 쓰인 이메일은 가짜 계정을 통해 발송되었다.
그 황당한 내용을 보고 오프라인 직원들 모두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본부장급 회의가 소집되고, 이덕오가 내게 물었다.
“그 이메일 내용이 사실일까요? 경찰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그랬는데.”
“뭐 가능성은 있지. 잡스는 생전에 직원들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했으니까.”
“엄격 정도가 아니죠.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바람직한 리더 상은 아니잖아요.”
최루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용의자 A가 디테일한 정보를 넘기지 않는 이상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번 건은 그냥 조용히 넘어갑시다.”
나는 괜히 이 이메일을 밝혀서 경찰에게 망신을 주거나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범인이라고 자칭한 해커가 자신의 이메일 주소는 물론 디도스 공격에 대한 자세한 근거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도 부족했다.
이렇게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 정도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당시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이탈리아 개발자를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 것인지.
* * *
치이이익.
철판 위에서는 맛깔나게 삼겹살이 익어 가고 있었다.
박창후와 김지인은 결혼 이후 북촌 한옥 마을에 집을 얻었다.
김지인의 고집 때문이었다.
이덕오가 고즈넉한 한옥을 둘러보더니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우와! 박 본부장님! 장난 아닌데요! 저 한옥은 처음이에요!”
“뭘요. 지인이가 자기는 결혼하면 꼭 한옥에서 사는 게 로망이라고 그래서 무리 좀 했죠.”
“무리요? 여기 비싸요?”
“한 10억 정도?”
“네? 이런 낡은 집이 10억이라고요?!”
이덕오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낡은 외관과는 무관하게 북촌 한옥 마을은 그 희귀성 때문에 날로 가치가 높아졌다.
“엄청 좁아 보이는데. 몇 평이에요?”
“평수로 계산하면 대략 18평 정도?”
“에? 엄청 좁네요.”
“둘인데요, 뭐. 마당이 있어서 이렇게 고기도 구워 먹고, 비 오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저는 만족합니다.”
박창후는 정말로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방긋 웃고는 고기를 뒤집었다.
박창후가 고기를 굽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김지인과 홍지혜가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잔뜩 들고는 거실로 나왔다.
“꽃게탕 나왔습니다! 모두 이쪽으로 모이세요!”
두 사람이 내온 쟁반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그릇이 놓여 있었다.
붉은 국물에 붉은색 게딱지가 탐스러운 가운데 푸르른 쑥갓과 하얀 팽이버섯이 입맛을 자극했다.
“이야 꽃게탕이라니, 제철 음식이네요.”
“역시! 우 사장님. 뭘 좀 아시네요. 10월엔 역시 꽃게죠.”
김지인이 활짝 웃으며 국자로 내 앞 그릇에 커다란 게딱지를 퍼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바깥에 있던 이덕오가 깜짝 놀라며 내 옆자리로 왔다.
“아니! 형님만 이렇게 큰 걸 주시고! 저도 하나 주세요!”
“에이. 안 그래도 드리려고 했어요. 여기요. 이 이사님도 받으세요.”
잘 구워진 삼겹살과 제철인 꽃게탕.
그리고 얼음통에 담겨 차갑게 식힌 사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잔을 비우고 또 음식을 비웠다.
김지인이 비워진 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우 사장님 덕분에 저희 오빠가 목숨을 구했는데, 매번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항상 마음속 깊이 부채감이 가득 있었어요.”
“별말씀을요. 사장으로서 당연한 도리죠.”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늘 바쁘셔서 말이죠. 이번에 저희 집에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초대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