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누가 가면 좋을까요? 제가 꼭 발표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네. 본부장 몇 명이 나눠서 발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발표자도 함께 정리해서 보내 주세요.”
모두들 알겠다며 회의장을 나섰다.
이덕오가 내 쪽으로 오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형님. 런던에 저도 함께 가도 될까요?”
“왜? 마르코 면접 같이 보려고?”
“물론이죠. 개발자는 개발자가 면접을 봐야 실력을 알 수 있으니까요.”
“오케이. 비서한테 이야기해서 비행기 티켓 함께 끊어.”
“넵!”
* * *
겨울의 런던.
서울보다 더 추운 건 아니었지만, 마치 밤이 끝나지 않은 듯 한낮에도 해가 비치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와 눈.
그리고 늦게 뜨고 일찍 지는 해로 인해 런던은 어둡고 우울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홍지혜와 박창후가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이.
나와 백철웅 그리고 이덕오와 최루리는 런던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마르코를 만나 면접을 진행했다.
마르코는 암스테르담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마르코를 처음 본 최루리는 시종일관 입에서 미소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내 생전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 보네요. 안 본부장님도 한 인물 하지만 마르코 앞에서는 그냥 오징언데요? 하하.”
최루리의 말을 이덕오가 퉁명스럽게 받았다.
“저기 최 본부장님. 중요한 건 얼굴이 아닙니다. 실력이죠.”
이덕오 역시 마르코가 이 정도로 잘생긴 사람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마르코가 자신과 비슷하게 덩치가 크고 약간은 덕후스러운 면이 있지 않나 생각을 했나 보다.
“흠흠. 마르코 씨. 저는 오프라인의 CTO인 이덕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 당신이 오프라인의 홈페이지를 개발한 사람이군요.”
“그렇습니다. 간단히 코딩 테스테를 해 볼까 하는데 노트북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마르코는 문제없다는 듯 자신이 가져온 노트북을 꺼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마르코가 짠 코드를 살펴본 이덕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완벽하네요. 완벽해. 이렇게 깔끔한 코드는 처음 봅니다.”
“그렇게 좋아?”
나의 물음에 이덕오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해도 이것보다 잘할 자신은 없는데요?”
“그래? 그럼 CTO 자리 마르코한테 줘도 상관없나?”
“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덕오가 울상을 짓자 나는 농담이라고 말하고 마르코에게 질문을 던졌다.
“CTO께서도 좋다고 하니, 어때? 내년부터 우리와 함께하는 게?”
내 말에 마르코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저, 정말요? 완전 좋습니다!”
“오케이. 연봉이나 자세한 근무 조건은 우리 쪽에서 따로 메일을 보낼 테니까, 그동안 한국으로 떠날 준비 잘하라고.”
나는 마르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백철웅이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베트남에도 지사가 있고, 일본에도 서비스하고. 이제는 이탈리아 개발자도 합류하고. 뭔가 이제 오프라인은 글로벌 회사라고 해도 문제없겠는데요?”
“물론이죠. 백 사장님. 이미 글로벌 서비스를 하고 있고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잖아요. 처음부터 오프라인의 목표는 글로벌이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단지 조금 실감이 안 나서. 하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인 개발자라니.
그때였다.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서울 외신 기자 클럽 회장이자 요미우리 신문의 기자인 김재수였다.
“네. 회장님. 우세진입니다.”
-우 사장님! 급한 일입니다. 정말 급한 일이에요! 통화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만.”
-그럼 지금 당장 볼 수 있습니까?
“네? 지금 당장이요?”
서울 외신 기자 클럽 회장인 김재수가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는 지금껏 오프라인이 다뤘던 사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일이었다.
마르코와 이덕오 그리고 최루리를 보낸 나는 백철웅에게 김재수가 꺼낸 이야기를 전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이 위독하다고 합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백철웅은 자신이 카페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는 크게 소리쳤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정보원이 누굽니까?”
“요미우리 신문 기자이자 서울 외신 기자 클럽 회장인 김재수입니다.”
“요미우리 신문이면 일본 최고의 신문 아니오.”
“네. 백 사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북한 쪽 이야기는 한국보다 일본 기자들 취재력이 더 뛰어납니다.”
북한 관련 기사는 한국보다 일본 언론이 훨씬 빠르고 정확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북핵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니었다.
분단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북핵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불감증이 생긴 탓이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북핵의 사정거리 안에는 일본이 포함되었고, 일본은 북한이 동족인 남한에 핵을 쏘기보다는 자신들을 겨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본은 한국을 침략했었고, 북한은 과거 일본인을 대상으로 납치를 벌이기도 하는 등 두 국가 간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해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본 언론의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김 회장이 이야기한 게 사실이면 지금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가 중요한 게 아닌데…….”
“네.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우선 저 먼저 한국에 급히 귀국하는 건 어떨까 싶네요.”
“우 사장 혼자요?”
“네. 김 회장이 찾는 사람이 저이기도 하고, 우선은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 연사 자격으로 초대받았으니까요. 갑자기 모두가 빠지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걱정 마세요. 우선 김 회장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고 급할 경우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여기에 남아서 일정을 마무리할 테니 북한 건은 우 사장이 잘 좀 챙겨 주세요.”
“네. 변동 사항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즉시 숙소에서 짐을 챙겨 인천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 * *
“런던에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미안하게 됐군요.”
“아닙니다.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별말씀을요. 전화가 아니라 구두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보안을 요하는 건이었습니까?”
나의 질문에 김재수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가 하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만나자고 하기에 익선동의 한 허름한 다방을 약속 장소를 정한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주의를 경계하고 또 경계했다.
“제 행동이 좀 우스꽝스럽게 보이겠지만 정말로 조심스러운 안건이라서 말이죠. 지금도 도청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도청이요? 그렇다면 저희 사무실이나 김 회장님 사무실에서 보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사무실이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있는 오프된 공간이 오히려 더 안전하죠.”
그가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는 일본 최고의 신문사에 다니는 베테랑 기자였다.
그는 재차 주변을 확인하고는 낮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위독하다는 말씀은 드렸죠?”
“네. 그것 때문에 런던에서 바로 온 거 아닙니까.”
“잘하셨습니다. 북한의 VVIP가 우 사장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북한의 VVIP요?! 설마?”
나의 질문에 김재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생각하시는 그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현재 몸이 그리 좋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김재수는 내 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속삭였다.
“김설송. 김정일의 첫째 딸입니다.”
“김설송이요?”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정말이지,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네. 북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휴. 남한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왜 저렇게 북한을 경계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겠지만, 역으로 일본인들은 왜 저렇게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관해 관심이 없고, 경계심이 부족한지 의아해합니다.”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너무 오랫동안 휴전선을 마주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불감증도 불감증이지만 피로도가 높아진 탓이죠. 정치권에서 툭하면 북풍을 이용해 공포 정치를 벌인 탓도 크고요.”
김재수는 주문한 십전대보탕을 삼키고는 입가에 묻은 음료를 소매로 닦았다.
“김설송은 김정일이 가장 사랑한 자식입니다. 김일성 역시 손주 중에 김설송을 가장 사랑했다고 하죠.”
“네?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현재 북한의 후계자는 김정은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배후에는 김설송이 있다는 게 저희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심지어.”
“심지어?”
“김정일이 한때 자신의 후계자로 김설송을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까요.”
“엄청난 이야기로군요.”
“뭐 일본에서 북한을 전문으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는 흔한 이야기지만요.”
김설송이라.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기자 생활을 오래 했지만 북한 관련 기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니.’
김재수가 십전대보탕을 한 입 더 들이켜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건 정말 엄청난 뉴스입니다. 김설송이 남한의 언론사인 오프라인을, 그것도 우세진 사장님을 지목해서 찾는다는 건 말이죠. 게다가.”
그는 다시 한번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시국이 시국이지 않습니까. 하필 김정일이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북한의 No. 2가 남한의 언론사 사장을 부른다? 무슨 일인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그의 정말이지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회장님.”
“네.”
“혹시 저 말고 다른 이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회사에도. 주변 지인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흠. 청와대에 이야기를 꺼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좋아할까요? 자신들을 거치지 않고 일본 쪽 정보원을 통해서 접선을 시도했는데.”
“남과 북의 관계도 우리 일본과 북한의 관계처럼 좋지 않으니까요.”
“제게 이 정보를 건네준 대가로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나의 물음에 김재수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씨익 웃고는 말했다.
“물론 첫 보도는 오프라인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두 번째만큼은 요미우리가 되었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정보가 있다면 제일 먼저 넘겨 드리죠.”
“고맙습니다. 그럼.”
그는 남아 있는 십전대보탕을 순식간에 해치우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그날 저녁.
나는 이국대 대통령에게 급한 일이 있다고 면담을 신청했다.
청와대는 별다른 질문 없이 곧바로 나와 이국대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오랜만이군요.”
이국대가 만면에 웃음을 잔뜩 안고는 말했다.
그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했다.
“네. 대통령님. 급하게 뵙자고 했는데 곧바로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우 사장이 그리 급하게 연락한 걸 보면 분명 보통 일이 아닐 겁니다.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