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그녀는 인터넷 창을 하나 띄우더니 키보드로 무언가 입력하기 시작했다.
곧 익숙한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네. 오프라인 홈페이지입네다.”
“이걸 왜?”
“여가 지금 남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언론사 아닙네까? 관심이 있어서 오랫동안 지켜봤습네다.”
“그거 영광이군요.”
“영광까지야.”
그녀는 내 눈을 천천히 바라보더니 목소리 톤을 한층 높여 말했다.
“우리 북조선의 전자 통신 기술은 결코 남조선에 떨어지지 않습네다. 구글의 슈미트 회장도 소프트웨어 생산 공장을 북한에 두려고 할 정도입네다.”
“구글이요?”
“네. 우리 북조선의 혁명 해커 부대는 미제의 CIA보다 우수합네다. 콤퓨터, 직결 망, 자료 기지 모두 일류밖에 없디요.”
“기사로 남한 정부나 금융 서비스를 해킹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그런 건 그냥 아들 장난이디요.”
“아직 저를 이곳에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신 것 같습니다만.”
“급해 맞는 양반이로구만요. 알겠습네다.”
나의 다그침에 드디어 입을 연 김설송은 실로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 * *
다음 날.
새벽 늦게까지 김설송과 이야기를 나눈 나는 아침 9시가 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창문에서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자 어제와 다르게 평양의 하늘은 무척이나 화창했다.
눈앞에 보이는 대동강이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느껴졌다.
‘비로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처럼 보이는구나.’
첫 북한행에 김설송이라는 거물과의 만남.
어찌나 긴장했던지 아직도 어제 일이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 긴장이 숙면을 취하자 진정이 되었던 것이다.
똑똑.
말없이 대동강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저 일어났습니다.”
“나오시오.”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잠옷에서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러자 김설송과 함께 처음 보는 남자가 나를 맞았다.
그는 자신을 김설송의 남편이라 소개했다.
“신복남입네다.”
“우세진입니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드는 것 같던데?”
“혹시 어제 집에 계셨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성택이 준 가계도에서 김설송이 결혼한 몸이며, 남편인 신복남과 같이 살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어제 이 집에 같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사방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으니.’
심지어 어제는 보지 못한 가정부까지 거실로 나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가정부가 차려 준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먼저 입을 연 건 김설송이었다.
“어제 내래 이야기한 건 생각해 봤습니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건 서울에 돌아가 동료들과 논의를 해 봐야겠지만, 아마 만장일치로 통과하리라 생각합니다.”
“만장일치라. 그것 참 좋디요. 남조선에서도 만장일치가 나옵네까?”
신복남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김설송이 어제 내게 제안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평양에 오프라인의 지국을 개설하는 것.
놀랍게도 평양에는 중국과 러시아,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언론사는 있지만, 한국의 언론사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심지어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미국의 AP 통신이 올해 초 평양에 지국을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사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지.’
만약 오프라인이 한국 언론사 중 최초로 평양 지국을 개설하게 된다면 얻게 되는 이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북한 관련 소식을 가장 빨리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남북 관계에 이바지하고 글로벌 언론사로서 신뢰도가 높아지는 건 덤이고.’
게다가 단순히 지사만 설립하자는 내용이 아니었다.
“AP 통신이 올해 평양에 첫 지국을 개설했지만 거기 사람은 없습네다. 일본은 물론 서방 언론사들 모두 마찬가지데요. 중국과 러시아만이 평양에 특파원이 있는데, 오프라인에서 상주할 수 있는 인원이 있다면 엄청난 경쟁력이 될 깝니다.”
김설송의 말이 맞았다.
특파원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특파원이 있어야 훨씬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네. 너무 파격적인 제안이라 아마도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평양 지국 개설도, 특파원 파견도 전례가 없는 엄청난 특권이니까요.”
“하하. 내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 오프라인을 몇 번이나 추천드렸는지 모릅네다. 그런 탓인지 김정일 동지께서도 오프라인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십네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제안은 혹시 한국 아니 남측에서는 불가능하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김설송과 신복남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다.
김설송이 목소리를 잔뜩 깔면서 말했다.
“이유가 뭡네까?”
“우선 저는 이번 북한행에 그 어떤 카메라 장비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글로만 전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기회라서요.”
“하하. 카메라라면 우리 북조선에도 많이 있습네다. 인터뷰는 우세진 동지가 하고 촬영은 우리가 해서 주면 되지 않캈습니까?”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북한의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북한이 찍은 영상이나 사진이 첨부되는 것으로는 제가 쓴 기사의 신뢰도가 떨어질 겁니다. 그것보다는 직접 남측에 오셔서 저희 스튜디오에서 영상 인터뷰가 촬영된다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되겠죠.”
김설송이 던진 두 번째 제안.
그것은 바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에 대한 단독 인터뷰였다.
그녀는 나를 콕 짚어서 내가 인터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를 보고 무척 마음에 들었다면서.
그 인터뷰를 쓴 사람은 내가 아닌 홍지혜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오프라인의 사장인 내가 인터뷰어로 나서길 원했다.
“과도한 요구는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겝니다. 우세진 동무.”
신복남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역으로 이런 제안을 던졌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어떤?”
김설송과 신복남이 귀를 쫑긋 세우며 내 쪽으로 의자를 당겼다.
김설송의 집에 설치된 TV는 성삼 전자의 최신 제품인 84인치 TV였다.
화질이 선명한 것은 물론 커다란 사이즈가 인상적이었다.
“남한에서도 이렇게 큰 TV는 본 적이 없는데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내 물음에 김설송이 웃으며 답했다.
“중국에서 건너온 보따리 상인들한테 구합네다.”
“중국이요?”
“그티고 남조선에서 수입할 순 없잖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고 같은 동포인데도 제삼자인 중국을 거쳐서 물건이 오간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와 중국 보따리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이.
TV 화면에서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홍지혜였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모국어가 영어라도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로 발표를 시작했다.
김설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여기자가 미제의 우두머리 오바마를 물맥인 에미나이 아니오?”
“맞습니다. 홍지혜라고 오프라인에서 소셜 본부장을 맡고 있죠. 하버드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입니다.”
“하버드 전체 수석이라. 이야 똑똑한 친구입네다.”
홍지혜는 이번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SNS 전용으로 짧은 요리법 동영상을 노출하는 페이지인 ‘맛집’에 대한 성과를 소개했다.
TV 속 청중들의 표정은 처음에는 왜 미디어 행사에서 요리 동영상에 대해 소개를 하는지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홍지혜가 ‘맛집’의 성과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자 점차 납득한다는 표정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환호와 열광이 이어졌다.
“요리법이라. 기발합네다.”
“영어도 잘하시는가 보군요.”
“혹시 몰타라는 섬 아십네까?”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한 섬 아닙니까?”
“맞습네다.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나라입네다.”
“그런데 거기는 왜?”
“학창 시절을 거기서 나왔습네다.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도 배웠습네다.”
“아…….”
그러고 보니 몰타는 남한에서도 어학연수로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유럽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물가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 중 하나.
“그런데 우세진 동무가 이야기 아니하고 밑에 애들이 발표해도 상관없습네까?”
“그들이 저보다 더 전문가들이니까요. 그나저나 BBC가 어떻게 나오는 겁니까?”
내 말에 김설송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위성에서 받으면 됩네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지만 다른 북한 사람들은 못 보는 거 아닙니까?”
“후후후. 우세진 동무. 돌미륵도 앙천대소할 나발이요.”
김설송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한층 더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그런 오뉴월의 개꿈 같은 이야기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앞에서 하다가는 생방송 도중에 오물장에 내동댕이쳐집네다. 말을 삼가시오.”
나는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세계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국가.
북한이었으니까.
“인터뷰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제 고집을 들어주셔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걸 잘 안다면 혓바닥을 뽑아다가 파리채로 후려치기 전에 조심하라우.”
나는 김설송과 신복남에게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바로 유튜브 라이브를 통한 생중계 인터뷰.
북한의 스튜디오에서 북한의 장비를 통해 촬영하되 해외 플랫폼인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를 진행하는 것.
‘아무리 북한에서 이들의 장비로 촬영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삼자인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생방송을 진행한다면 그 누구도 인터뷰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의심하지 못할 터.’
나는 오랜 시간 김설송 부부를 설득한 끝에 결국 그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물론 김정일이 싫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천운이었을까.
김정일을 만나고 온 김설송은 자신도 믿기 어렵다면서 그의 컨펌을 받아 왔다.
“김정일 동지는 외신 인터뷰를 잘 안 하십네다. 작년에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도 9년 만에 있었던 외신 인터뷰였고, 그것조차 서면 인터뷰였습네다. 그런데 남조선 언론과 생방송 인터뷰라니…….”
그녀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언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최근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죠.”
김설송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아무튼 이번에 인터뷰해 보면 알겠죠.”
“거듭 경고합네다. 줴쳐 댔다가는 큰 수치와 망신만 당하게 될 겁네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현재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 언론사 사장이고요. 품격을 잃는 질문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제발 그러기를 바랍네다.”
* * *
내가 만든 사전질문지는 김설송을 통해 김정일에게 전달되어 피드백 과정을 거쳤다.
김설송의 경고가 수차례 있었으므로 가급적 북한과 김정일의 심기를 거스르는 질문들은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몇몇 질문들은 뺄 수 없었다.
“하. 그 두 개를 빼라고 하지 않았습네까? 왜 또 넣은 겁네까?”
김설송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 역시 그 질문은 결코 취소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