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200)

김설송은 자신의 집에서 창밖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이대는 내게 몇 번 주의를 준 적이 있다.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좋습네다. 옥류관은 평양의 자랑입네다. 남조선에 가거든 마음껏 자랑하시라우.”

덕분에 나는 아직 입에 대지 않은 김설송의 냉면을 비롯하여 옥류관 내부의 모습을 몇 장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 * *

옥류관에서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다시 김설송의 차에 올랐다.

나는 두둑해진 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그릇을 비웠는데도 아쉽네요.”

“얄상하게 생겨서 의외로 포식가로구만요.”

“남한에 가져다 식당을 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하. 우세진 동무가 만족했다니 내래 기분이 좋습네다.”

우리를 태운 차는 금방 김설송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설송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 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익숙한 멜로디가 시끄럽게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이거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아닌가?’

그 순간.

김설송의 옆에 앉은 신복남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빨리 죽이라우! 빨리 죽이고 내립세다!”

나는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다.

‘설마 저 핸드폰을 신호로 나를 죽이려는 건가? 그래서 김금철은 오늘 부른 거고?!’

옥류관의 냉면을 먹고 만족스러웠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하지만 그런 것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나.

이곳은 북한이었다.

긴장한 나는 살며시 자동차 손잡이를 잡고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굳게 잠긴 문은 열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신복남과 김설송 쪽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그들은 내게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조수석에 앉은 김금철 역시 부동자세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설송이 난처한 듯 중얼거렸다.

“식당이 소란스러워 진동에서 벨로 바꿔 놨더니만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손전화가 시끄럽습네다.”

그녀는 태연하게 벨 소리를 낮추더니 전화를 받았다.

‘뭐야. 죽이라는 말이 나를 죽인다는 게 아니라 소리를 줄인다는 뜻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불안했던 마음을 쓸어내리는데 이번에는 김설송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김정은 동지! 내일 인터뷰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거라우! 왜 자꾸 사사건건 방해를 합네까!”

김정은이라니.

설마 김정일의 아들이자 미래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을 말하는 건가.

나는 신복남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정은이라면…….”

“네. 이복동생인 김정은 당 중앙 군사위 부위원장입네다.”

“누나와 별로 사이가 안 좋은 겁니까?”

“그런 건 아닙네다. 고 자식이 누나인 김설송 동지를 잘 따릅네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 인터뷰는 전적으로 김설송 동지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뭔가 서운했던가 봅네다.”

“아…….”

김설송은 우리보고 먼저 차에서 내리라는 듯 손짓했다.

나와 신복남 그리고 김금철은 차에서 내린 뒤 헤어졌다.

김설송은 우리가 집에 들어온 뒤 30여 분이 지나서야 다소 힘이 빠진 얼굴로 돌아왔다.

* * *

조선 중앙 텔레비죤.

북한 문화성 직속의 국영 방송인 조선 중앙 방송의 텔레비전 방송으로 김설송의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평양 모란봉 구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정부가 차려준 아침을 든든히 먹은 나는 점심은 거른 채 스튜디오에 혼자 앉아 리허설을 거듭했다.

조금 있으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이자 초대 최고 지도자인 김일성의 아들.

바로 김정일과의 단독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생방송으로!’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쾌거였다.

이것에 비한다면 글로벌 미디어 콘퍼런스에 정식 초대받은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새삼 김설송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IT에 정통한 그녀가 아니었다면 김정일 역시 오프라인의 존재를 전혀 몰랐겠지.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나와 오프라인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 준 덕이 크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김설송이 내 앞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생방송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한 표정이었다.

“고저…… 북조선 최고 지도자가 외국의…… 그것도 남조선의 언론사와 직접 육성으로 생방송 인터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네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늦게까지 계속 리허설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나는 어제 늦은 시각까지 김설송과 함께 오늘 인터뷰를 대비한 리허설을 했었다.

김정일 역을 맡은 김설송은 질릴 법도 한데 다시 하자는 내 말에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압네다. 준비 많이 한 거. 그래도…….”

“잡스랑 이야기할 때도 괜찮았습니다. 잘할게요.”

내가 두 손을 마주 잡고 가볍게 흔들자 그제야 김설송이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웅성거리더니 실내 공기가 무거워졌다.

‘뭐지?’

나도 모르게 스튜디오 문을 주시한다.

나 이외에 스튜디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로 잔뜩 긴장한 채로 일어나서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스튜디오 문이 활짝 열리더니 누군가가 뒤로 수많은 군중을 이끌고 내게 다가왔다.

뒤로 넘긴 곱슬머리.

커다란 네모 안경.

회색 인민복 가운데에 툭 튀어나온 배.

그동안 TV에서만 보아 왔던.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었다.

그는 몸이 불편한 듯 왼발을 살짝 끌면서 다가왔는데 그럼에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과연 일국의 지도자다웠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겠군.’

그는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의 뒤에 선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조선 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국방 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 인민군 최고 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입네다!”

“대한민국 대북 특사이자 오프라인의 공동 사장, 우세진입니다.”

우리는 가벼운 눈인사를 마친 후 스튜디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둘다 고급 가죽으로 된 의자였지만 김정일 쪽의 의자가 내가 앉은 의자보다 미묘하게 더 높았다.

잠시 뒤 현장 책임자의 큐사인과 함께 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또한 위성을 통해 송출된 영상은 남한의 오프라인을 거쳐 유튜브를 통해 다시 전 세계로 방영되었다.

나는 준비해 왔던 첫 번째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다.

“반갑습니다. 김정일 최고 지도자님. 오늘 이렇게 김정일 최고 지도자님과 단독으로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이 인터뷰를 수락해 주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생방송으로 외신 인터뷰를 하신 건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의 질문에 김정일이 천천히 입을 떼며 말했다.

“며칠 전에 TV에서 남조선 HBS를 보는데, 그 다큐 감독이 말하는 게 아주 멋졌습네다.”

“박창후 감독을 이야기하시는 걸까요?”

“거 뭐라더라? 구라파에서 하는 무슨 행사였는데…….”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입니다.”

“맞아! 거기서 상을 탔다고 했서.”

“네. 그분이 저희 오프라인에서 영상 본부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평소에도 오프라인 기사를 잘 보고 있었는데, 아주 직원들이 패기 있고 능력도 있고 좋습네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습네다.”

“오프라인에 대해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오프라인에 대한 호감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으실까요?”

“내래 불만이 하나 있았으.”

“어떤?”

“외신들이 나보고 맨날 은둔의 지도자래. 은둔은 무슨. 중국도 가고 러시아도 가고 그러는데. 그래서 이참에 남조선에서 가장 잘나가는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한번 하면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가지 않겄습네까?”

“물론입니다. 지금 남한은 물론 전 세계에서 유튜브를 통해 저와 김 최고 지도자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앞에는 총 3대의 대형 TV가 카메라 뒤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대는 스크립트가 나왔고 두 번째 TV에서는 현재 카메라에 비친 우리 모습이 5초마다 여러 각도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TV에선 오프라인이 올린 유튜브 라이브 모습이 화면에 노출되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된 지 10여 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동시 접속자는 벌써 10만 명을 넘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댓글 창은 누가 무슨 글을 썼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렇게 열 번째 질문까지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김설송과 몇 번이나 다투었던.

그 문제의 질문을 할 차례가 되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핵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조선 중앙 텔레비죤 생방송 스튜디오 안은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나와 김정일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당혹스러움과 긴장감이 읽혔다.

핵무기는 북한의 전부이자 상징과도 같았다.

핵이 있음으로써 북한은 전 세계 질서에서 홀로 동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즉 핵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씨 왕조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해당 질문을 알고 있었던 김정일은 만면에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선 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초대 최고 지도자의 유훈이며 우리 공화국 정부가 시종일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입장입네다.”

“그렇지만 여전히 북한은 핵 개발을 위한 핵실험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세진 동무도 잘 아시갔지만, 조선반도의 핵 문제는 그저 우리 때문이 아닙네다.”

“그럼?”

“우리 인민의 자주권과 안전을 항시적으로 위협하는 미제에 대한 우리의 방어권이자 의지입네다.”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정일은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는 력사의 진실을 전도하는 파렴치한 미제의 끊임없는 적대시 정책과 노골적인 핵 위협으로부터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을 지키려 핵 억제력을 보유하고 있습네다.”

“그러니까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억지력(抑止力)으로서 핵을 이용하겠다는 말씀일까요?”

“그렇습네다! 핵은 우리에게 공격을 위한 무기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무기란 말입네다.”

억지력은 냉전 시대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이 핵을 보유한 이유에 관해 설명할 때 흔히 하는 주장이었지만 핵보유국이 늘어난 현재는 핑계일 뿐이었다.

‘평화를 위한 무기라.’

무언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고는 전 세계 생방송을 통해 이야기할 순 없을 테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이고는 다음 질문을 이어 나갔다.

“답하기 곤란하셨을 텐데 답변 감사드립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다음 질문입니다. 북한은 올해 인민 생활 향상과 강성 대국 건설을 제일 목표로 정하고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그렇습네다.”

“실제로 최근에는 경제 관련 현지 지도를 가장 많이 하고 계시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지지부진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질문을 마치자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아까보다 훨씬 더 차갑게 경직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얼굴에서 경악스럽다는 표정이 비치었고, 몇몇은 분노로 치를 떨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질문에 답했다.

“북조선은 핵무장을 통해 군사 강국의 목표는 이미 실현하였습네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은 경제 강국 건설에 주력을 하고 있지요. 우리는 비료, 철강, 공작 기계, 화학 섬유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주체적인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물자 부족을 해결할 예정입네다. 또한 나선 특별시 지정, 조선 대풍 국제 투자 그룹 설립 등도 추진하고 있자요. 조만간 좋은 성과를 올릴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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