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20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초점을 맞춘 자본주의 방식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우리식 사회주의 경제 관리 방식으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스튜디오 안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종간나새끼가…….”

“에미 고양도 없는 간나새끼가…….”

몇몇이 웅성거리며 불만을 토로했고, 사람들은 나를 찢어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나를 보는 김설송 역시 고개를 저으며 제발 그만하라는 눈치였다.

반면.

내 옆에서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김정일의 표정은 미묘했다.

그의 얼굴은 당황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는 역으로 내게 질문을 하였다.

“그렇다면 우세진 동무는 우리가 뭘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겁네까?”

“김정일 최고 지도자님과 덩샤오핑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와의 면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들어오는 길에 ‘이제 중국 공산당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자취를 감추었고, 존재하는 것은 수정주의뿐’이라고 비난하셨죠. 순수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수정주의라고 말입니다.”

“하하하하. 그게 남조선에서는 유명한 일화입네까? 엄청 오래전 일입네다. 그걸로 한동안 중국에 밉보였죠. 아버이 수령이신 김정일 주석께서 수습한다고 고생하셨습네다.”

“그러셨군요. 반면 덩샤오핑은 철모르는 아이로 인해 중국의 운명이 위협받는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한탄했다고 하죠.”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겝니까?”

“북한이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시도했던 개혁, 개방 조치를 다시 시도해 보시는 건 어떨는지요?”

“뭐?”

김정일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김 최고 지도자님께서 비판했던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중국은 현재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인민들을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번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순간 유튜브 라이브의 동시 접속자 수는 무려 100만 명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언제 서버가 뻗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

회귀 전만 하더라도 200만 명이 동시에 접속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유튜브에서 라이브 기능을 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사용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물론 기술적인 안정화가 이뤄지지 않을 시기.

‘구글에서 라이브를 쓸 때 최대치가 동접 100만 명이라고 그랬지.’

나는 동시 접속사 수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버텨라.’

한편 나를 바라보는 김정일의 표정은 복잡했다.

북한이 중국식 수정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수정주의를 받아들여 각종 개혁 및 개방 조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자 이를 포기한 뒤 2005년 말부터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복귀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화폐 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노동당 계획 재정부 부장은 반혁명죄로 총살당하기까지 하였다.

김정일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허허. 이거 원래 사전 질문지에는 없던 거 아닙네까?”

“맞습니다. 기자로서 궁금함이었습니다. 만약 실례가 되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실례라. 재미있는 사람입네다. 우세진 동무.”

내가 생방송을 고집했던 또 하나의 이유.

물어볼 것은 물어보면서도.

동시에 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생방송 없이 인터뷰가 진행이 되었다면.

이런 질문을 하지도 못했겠지만, 하더라도 박남기와 마찬가지로 총살당할지 누가 알겠는가.

심지어 나는 비공식 대북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상태였다.

소수의 몇몇을 빼고는 그 누구도 내가 북한에 온 줄 몰랐다.

북한에서 나를 죽이고 그냥 사고사라고 퉁 쳐도 남한에서 그걸 밝히기는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

‘전 세계 생방송으로 진행 중이니 방송이 끝나고 나를 해코지했다가는 큰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정일은 잠시 팔짱을 끼기도 하고 천정을 쳐다보다가 다시 바닥을 내려보기도 하는 등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했다.

그렇게 5분여가 흘렀을까.

5분이 마치 500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죽일 것처럼 쏘아 보고 있으니.’

그럼에도 그들은 김정일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섣부른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카메라 촬영 및 영상 송출 역시 그대로 진행 중이었다.

드디어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 * *

평양 순안 국제공항.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을 때와는 다르게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했다.

여전히 공항 주변은 허허벌판이었지만 그래도 쓸쓸하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앞이 보이지 않던 도착 때와는 다르게 일을 잘 마무리 짓고 떠나서일까.’

나는 김설송과 김금철의 배웅을 받으며 활주로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세기 앞으로 걸어갔다.

비행기 꼬리 날개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태극기를 보자 안도감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나왔다.

“휴.”

김설송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시종일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좋습네까?”

“그렇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하하. 아무튼, 우세진 동무는 정말이지 복덩이입네다. 복덩이.”

“네?”

“아니 그 누구도 못 했던 것을 이뤄내지 않았습네까? 김정일 동지께서 제게 뭐라고 한 지 아십네까?”

“뭐라 하셨는데요?”

“우세진 동무께 로력 영웅 훈장을 주자고 하셨습네다! 내가 죽기 전에 정말 귀한 사람을 만났다며 기분 좋게 웃으시면서 말입네다!”

자세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인터뷰이인 김정일도 기분이 좋았다니 다행이었다.

‘진짜로 방송이 끝난 직후 이대로 총살당하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진심이었다.

준비했던 12개의 질문을 모두 끝내고.

카메라와 조명이 꺼지더니 김정일이 일행과 함께 스튜디오를 나갔다.

그리고.

안에 남아 있던 모두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는 내게 다가왔다.

당장 이 자리에서 묻어 버리겠다는 자세로.

그걸 막은 사람이 김설송이었다.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는 유유히 스튜디오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사흘 동안 그녀의 집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만 했다.

김설송은 나의 안전을 이유로 스마트폰을 빼앗은 채 방문을 잠가 버렸다.

다행히 화장실이 딸린 방이었다.

식사는 배식을 받듯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어 가정부가 넣어 주었다.

삼 일이 되는 날 오후.

김설송은 어딘가로부터 전화를 받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우세진 동무! 남조선에서 지금 비행기를 보낸다 합네다! 평양 공항으로 지금 저랑 같이 갑세다!”

그렇게 전후 관계도 모른 채 부랴부랴 평양 공항에 온 것이었다.

“비록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설송 님 덕분에 정말 너무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뭘요. 저야말로 즐거웠습네다.”

“또 뵐 수 있을까요?”

“하하. 오프라인 평양 지국 개설의 총 책임자가 접니다. 또 만나지 않겠습네까.”

“아! 그렇군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그녀와 나는 활주로 위에서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옆에 선 김금철이 말없이 웃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씩 웃으며 그와 악수를 나눴다.

둘의 환대를 끝으로 전세기에 오르니 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성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보는군요. 반갑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와락 나를 껴안았다.

“헉.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남한 사람이 로력 영웅 훈장을 받다니요!!”

“네?”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겁니까?”

“그게 대체 뭔데요?”

“응? 뭔지도 모르고 받았다고요? 그걸?”

“조금 전에 김설송한테 잠깐 들었을 뿐입니다.”

“이런…….”

손성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게 설명해 주었다.

“로력 영웅은 북한에서 최고의 영예입니다. 공화국 영웅과 버금과는 칭호이자 훈장이죠. 경제나 문화, 건설 부문에 있어 특별한 공로를 세운 자들에게만 수여됩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이 사람이! 뭘 한 게 없기는 없다는 겁니까! 최초로 북한 최고 지도자 생방송 인터뷰를 한 거며, 하하하하.”

손성택은 한참 동안 나를 붙잡고 웃었다.

“대체 그 질문은 무슨 생각으로 한 겁니까?”

“뭘요?”

“지금 세계가 난리입니다. 아주 난리라고요. 유튜브 라이브 댓글 못 봤습니까?”

“아뇨. 촬영 이후에는 유튜브 접속이 막혔으니까요.”

“그랬군요. 그럼 인터뷰가 어떤 반응을 이끌었는지는 모른다?”

“네. 어땠습니까? 유튜브 라이브 동접자는 100만 명을 넘던데.”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남한에 도착하시거든 직접 보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일까.

손성택은 빙그레 미소만 지은 채 돌아가는 내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한 조각의 구름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마치 유빙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녔다.

# 6장 광화문 광장.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시각.

서쪽 하늘은 노란빛이 감도는 노을로 아름다웠다.

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서울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손성택의 뒤를 따라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예상치 못했던 이들이 나를 마중 나왔다.

이국대였다.

그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진짜 대단합니다. 민족의 영웅입니다, 영웅!”

“네?”

“춥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시죠.”

그는 나를 활주로 한쪽에 세워 둔 고급 리무진으로 안내했다.

활주로에 세워진 리무진이라니.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 아닌가.

평양에서도 북한의 실질적인 권력이라는 김설송의 리무진에 오른 것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뒤 공항 밖에서의 일이었다.

차에는 나와 이국대 대통령.

그리고 정해룡 국방부 장관과 황유명 국무총리가 탑승했다.

먼저 입을 연 건 정해룡이었다.

“아덴만 여명 작전에 합류했을 때부터 보통 담력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김정일의 면전에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었습니까?”

“생방송이었으니까요.”

나는 어떻게 하다가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지 그 사유를 밝혔다.

“과연! 아무리 폐쇄 국가인 북한이라도 전 세계에 얼굴이 나온 사람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순 없겠지요.”

황유명이 탁월한 결정이었다며 맞장구를 쳐 줬다.

이국대는 기분이 좋은 듯 내 손을 꼬옥 붙잡고는 말했다.

“정말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북한의 고통받는 인민들뿐 아니라 대한민국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전 세계 평화에 일조하신 겁니다.”

“제가 뭐한 게 있겠습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큰 결정을 해 주었습니다. 저 역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요.”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던졌던 마지막 질문에 대해.

김정일은 실로 놀라운 답변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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