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200)

* * *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던 김정일은 나를 바라보며 무겁게 말했다.

“말씀하셨다시피 우리네 식량 부족은 심각한 형편입네다.”

설마하니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자국의 식량 부족을 인정할 줄이야.

내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먹는 문제를 기어이 해결하려 발버둥 쳤지만, 여전히 부족합네다. 식량 문제뿐 아닙네다. 철강과 섬유, 전력까지 어데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지요.”

그가 이야기한 철강과 섬유, 전력은 강성 대국 건설을 위한 북한의 3대 국책 사업이었다.

그러나 주체 생산을 강조하던 철강과 섬유 사업은 완전히 실패했고, 남은 것은 전력 생산뿐.

그러니까 자강도에 위치한 희천 수력 발전소 건설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건설 사업의 총 책임자는 다름 아닌 김정은이었다.

성공하기만 하면 커다란 성과로 인정받아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탄탄히 보장받는 것은 물론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까지 단숨에 해결되니.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김정은은 군인과 노동자들은 물론 어린 학생까지 동원하며 수력 발전소 완공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인력을 투입한들 제대로 된 중장비가 없었다.

게다가 김정일이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시킨 탓에 김정은이 공사에 대해 갖는 무게감은 무척 컸다.

김설송은 내가 그녀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정은이 문제로 고민이 많습네다.”

“왜요? 이미 공식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네다만. 녀석에게 맡긴 과제가 좀 엉망이긴 합네다.”

“과제요?”

“네. 평양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희천 수력 발전소 공급이 정은이에게 내려진 숙제입네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원래는 10년 넘게 걸릴 일입네다. 하지만 아버지가 독촉하는 탓에 일정이 3년으로 줄였지요. 처음부터 어려운 과제였습네다.”

“저런. 그렇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걸 김 최고 지도자도 알고 시킨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녀가 대답을 주저하는 사이.

신복남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 녀석이 공사에 쓰일 고강도 시멘트를 다른 곳으로 빼돌렸습네다.”

“네? 그건 비리 아닙니까?”

“휴……. 고강도 시멘트는커녕 흙과 모래가 섞인 댐이라니. 명백한 부실 공사입네다.”

“안정성에 크게 문제가 있겠는데요.”

“완공도 쉽지 않겠지만, 완공이 되어도 문제입네다. 원래 계획된 발전량을 30%도 넘을 수 없다 하니…….”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김정일은 강성 대국 건설을 위해 희천 수력 발전소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원활한 권력 승계를 위해 후계자로 지명한 김정은에게 총 책임을 맡겼다.

그런데.

제대로 완공은커녕.

‘부실 공사에 시멘트 빼돌리기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요즘 김정일 동지께서 유독 건강이 악화된 이유는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큽네다.”

김설송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유독 그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지금 김정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경제 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김 최고 지도자님께서 비판했던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중국은 현재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인민들을 생각하신다면 다시 한번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김정일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나왔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공산주의 국가입네다. 그렇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 한때 시장 경제를 도입한 적이 있습네다.”

“네. 7.1 경제 개혁 조치 등이 그러한 조치의 일환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 무엇보다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습네다.”

“너무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중국도 자본주의를 배우고 학습하는 데 오랜 시간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다시 깊은 고민을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네다. 그럼 남조선이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갔습네까?”

“물론이지요. 저는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였습니다. 제가 꼭 남한의 이국대 대통령을 설득하여 북한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정일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래 이제 일어나도 되갔우?”

* * *

이국대는 아직도 그때의 감흥이 잊히지 않은 듯 말했다.

“재임 기간 내내 북한은 골칫덩어리였습니다. 핵 개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네. 북한이 세게 나왔죠.”

“인내와 관용은 북한의 도발만을 키운다는 생각에 대북 강성정책을 펼쳤습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북한이 이렇게 나올 줄이야.”

“북한 입장에서는 제발 우리 좀 봐 달라고 떼를 쓰는 건데. 그 방법이 너무 야만스럽고 거칠죠.”

“아무튼 정말 큰 일을 해내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국대가 말을 흐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씀하시죠.”

“혹시 정계에는 관심이 없습니까?”

“정계요?”

“네. 내 생각에 우 사장이 통일부 장관에 딱일 것 같은데.”

통일부 장관이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자리였다.

나는 단숨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프라인 사장으로서 아직 할 게 많이 남았고요. 제안은 감사드리지만, 저로서는 역부족인 자리입니다.”

“역부족이라니! 우 사장님이 역부족이라면 우리 대한민국에서 통일부 장관에 어울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황유명이 그리 말했지만, 전혀 끌리지 않는 자리였다.

‘이번 인터뷰로 국내외적으로 내 입지가 높아지자 통일부 장관으로 영입해서 정권 홍보에 쓰겠다는 거 아닌가. 누굴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이국대는 아쉽다는 표정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급한 건 아니니 차차 생각해 보시고……. 지금 광화문 앞에 특별 스튜디오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리로 갈 겁니다.”

“네? 청와대가 아니고요?”

내 질문에 황유명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손성택 차장이 이야기하지 않던가요? 오자마자 특별 생중계로 이번 대북 방문에 대한 발표를 하기로 했는데.”

“네?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저런. 손 차장이 깜빡했나 보군요. 광화문 광장에는 이미 100만 명의 시민들이 꽉 들어서 있습니다. 모두 우세진 사장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요.”

“그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오자마자 특별 생중계라니.

게다가 광화문 광장에 들어선 100만 시민은 또 뭐란 말인가.

나는 이마를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됩니까?”

“무슨 이야기겠습니까. 이번 북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지요. 너무 걱정 마세요. 우 사장을 잘 아는 두 명의 MC가 잘 이끌어 줄 겁니다.”

“두 MC요?”

그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광화문에 들어서자 어느덧 붉은 노을이 지고 어둠과 함께 형형색색의 전광판이 빛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인파가 광화문 광장 주변을 빼곡히 밀집해 있었다.

광화문 바로 앞에서 내린 나는 경호원들을 인솔을 받고는 광장 앞부분에 마련된 무대 위에 올라섰다.

“우세진!! 우세진!! 우세진!!”

“와아!!!”

100만이 넘은 인원이 동시에 질러 대는 함성.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핸드폰의 조명을 켜고는 하늘을 비추며 소리를 질러 댔다.

만약 이 모습을 하늘에서 보았다면 대단한 장관이었으리라.

나는 이 광경을 보고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일인 데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

내가 멍하니 서 있자 무대 왼쪽 끝에 마련된 탁자에서 익숙한 두 얼굴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한 명은 저번 IDFA 수상 축하 공연 무대의 사회를 맡았던 여배우 이슬아.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북한에서도 TV를 통해 보았던 홍지혜였다.

무대에서 쏟아지는 조명 탓이었을까.

두 명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눈부신 미모를 자랑했다.

홍지혜는 빨간 드레스.

이슬아는 파란 드레스.

둘 다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타이트한 원피스와 10㎝가 넘어 보이는 킬힐을 신고는 무대를 또각또각 가로질러 내 쪽으로 걸어왔다.

“우세진 사장님. 지금 막 서울에 도착하신 거죠?”

홍지혜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이슬아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서울에 도착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북한에 간 지 8일 만의 귀환이라 들었습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에서 워낙 강한 조명을 비추고 있었기에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인파의 두 눈이 지금.

오로지 내 입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떨리네요. 무척.”

내 말에 모두가 재미있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땅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100만 명이 하나의 주제로 한 공간에서 웃으면 이런 느낌이구나.’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슬아도 웃음을 보이고는 다시 물었다.

“북한에서 진행하신 생방송 인터뷰가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외신 인터뷰를. 그것도 생방송으로 진행한 것은 역사에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알고 계셨나요?”

“네. 평양에서도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더군요.”

“아무런 말씀도 없이 갑자기 북한에 가셨는데요. 이유가 있었나요?”

나는 김설송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북한에서 나를 찾았고, 그 이유가 오프라인의 평양 지사 개설과 김정일 인터뷰 건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놀랍다는 듯 모두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홍지혜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재차 반문했다.

“북한에서 일부러 우 사장님을 콕 집어서 불렀다고요?”

“네. 맞습니다. 저기 여러분! 이거 연기 아닙니다. 홍지혜 본부장님과 저는 같은 회사 소속이지만 오프라인 내에서도 전혀 공유되지 않은 정보였으니까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끄떡이며 반응했다.

나는 보안상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주제만 골라 40여 분에 걸쳐 자세한 내막을 들려 주었다.

사람들은 내가 북한에서 겪었던 일들을 들으며 마치 자신이 실제 북한에서 겪은 것처럼 때로는 놀라고, 때로는 웃으며.

그리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며 내 이야기에 집중해 주었다.

마지막에는 이국대 대통령이 무대에 잠시 올라와 앞으로 남한 정부에서 어떤 식으로 북한을 지원할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광화문은 마치 지금 당장 통일이라도 된 것처럼 뜨거운 환호와 열기로 가득 찼다.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음 날.

모든 지면의 헤드라인이 광화문에 밀집한 100만 명의 사진과 함께 내가 전한 이야기를 1면에 푼 가운데.

고려 일보만이 1면 톱뉴스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북한 로력 영웅 서훈의 의미……. 대한민국 주적(主敵)이 주는 훈장을 받아도 괜찮나>

로력 영웅이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서 군사(軍事) 이외 분야에서 조선 로동당을 위해 큰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칭호 및 훈장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주적 국가인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여하는 훈장을 대한민국 국민이 받는 것이…….

고려 일보는 북한은 반국가 단체로 국방 백서에도 우리의 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나를 공격했다.

즉 우리의 주적인 북한에게 훈장을 받는 것은 위법이며,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런 자가 사장으로 있는 오프라인이 평양에 지사를 개설하게 된다면 북한의 프락치로 전락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명백하게 사실을 날조하고 사람들은 선동하는 기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