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경우 오프라인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언론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온라인의 반대편에 있는 오프라인의 위치는 달랐다.
오프라인은 신문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종이 신문은 없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 특히 나이가 많은 이들은 온라인이 아닌 신문을 통해서만 뉴스를 보았다.
또한 정부 기관이나 기업 등에서 주요 결정을 내리는 임원급 인사는 대부분 고려 일보를 구독하고 있었고, 고려 일보를 통해 세상의 소식을 듣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의견은 고려 일보의 논조와 닮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고려 일보만으로 세상을 보니 다른 창이 보여 주는 세상이 보일 리가 있나.’
오프라인의 성장으로 국내 최고 언론사라는 타이틀은 반납해야 했지만, 고려 일보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이유였다.
고려 일보가 쓴 기사는 곧 그들의 충성 독자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광장 및 서울 광장 등 곳곳에 보수 단체들이 태극기를 들고는 나와 오프라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수가 많지 않았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아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끈질겼다.
북한이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이들이었다.
종로 센터 앞에는 보수 단체가 건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오프라인 사장 우세진은 빨갱이……. 북한이 좋으면 북한으로 꺼져라!>
<북한 훈장 받은 우세진은 자진 수감하라>
<태극기가 민심이다! 좌익 종복 우세진은 언론사를 당장 접어라!>
본부장급 긴급 회의.
백철웅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세진 사장이 정말 엄청난 성과를 올린 건데, 그걸 몰라주고…….”
안재영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거들었다.
“제 전 직장입니다만 정말 너무 부끄럽습니다. 사실 관계를 엉뚱한 방향으로 호도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그동안 철저히 폐쇄주의를 고집하던 북한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겠다는 건데…….”
“맞아요!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니라 같은 한민족인 남한의 도움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거잖아요! 이게 정말 엄청난 성과인데, 어휴……. 무슨 훈장 따위로.”
최루리 역시 분개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회의장에 모인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며 저들이 보이는 비이성적인 행태에 불만을 보였다.
‘문제는.’
북한과 관련된 사건은 단순히 논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비이성과 감성의 영역.
그게 컸다.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우선은 고려 일보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사를 쓰되, 절대로 태극기를 든 분들을 공격하거나 그들의 비이성을 지적하는 글은 쓰지 마십시오.”
“네? 아니 왜요? 그래야 그들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죠!”
홍지혜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한국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냉전의 비극과 아픔을 온몸으로 직접 체험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성이나 논리로 승부를 겨룰 순 없습니다.”
“그럼?”
“우리도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겠죠. 현장에서요.”
“네?”
* * *
탑골 공원.
어르신들이 자주 모이는 서울의 대표적인 노인 놀이터.
점심시간을 맞아 나는 몇몇 직원들과 함께 도시락과 음료수를 가득 챙겨 탑골 공원을 방문하였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몇몇 노인들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야야! 저기 빨갱이 우세진 아녀!”
“어이, 맞다. 저 새끼가 여긴 왜?”
나와 일행은 탑골 공원 가운데 위치한 팔각정에 자리를 잡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리쳤다.
“어르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프라인 공동 사장 우세진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하릴없이 장기를 두거나 담소를 나누던 노인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팔각정 쪽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준비한 도시락과 음료를 나눠주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이렇게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괜찮으시면 좀 드시면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경계하며 쭈뼛거리던 이들도 한 명 두 명 도시락과 음료를 챙겨 받자 자신들 몫이 사라질까 봐 서둘렀다.
“여기! 여기도 하나 주소!”
“나도! 어! 그거 그거! 불고기 맛! 어야!”
준비한 200개의 도시락과 바나나 우유는 금세 동이 났다.
나는 옆에 있는 직원에게 몇 박스를 더 사 오라고 시켰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 제가 생각이 짧아서 미처 많은 분량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곧 저희 직원이 더 가져올 예정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미 도시락을 받아 간 이들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녀. 이런 것도 나눠 주고 아주 나쁜 놈은 아닌가 보구만.”
“그러게. 난 또 북한에서 무슨 훈장을 받았다고 그래서 북한 간첩 같은 놈인가 생각했어.”
“아닙니다. 어르신. 저 대한민국 공군 출신입니다.”
“엇! 그래? 나도 공군 출신인데! 어디서 근무했어?”
“저 사천에서 근무했습니다.”
“사천이면 제3 훈련 비행단 아냐? 나랑 그리 멀지 않았네.”
“어르신은 어디 나오셨는데요?”
“나? 나는 진주에 있는 공군 교육 사령부 나왔지!”
내가 그와 근무했던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편의점에 간 직원이 도시락 3박스를 더 가지고 왔다.
우리는 추가로 도시락을 나눠 준 다음 나와 직원들 역시 남은 도시락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모두가 소풍에 온 듯 팔각정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절반 정도 먹었을 무렵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북한에 갔다 온 거야?”
“아. 혹시 그건 못 들으셨어요? 저 대북 특사 자격으로 다녀왔습니다.”
“대북 특사? 그럼 우리 정부에서 승인하고 보냈다는 거 아녀?”
“네. 맞습니다. 어르신. 이국대 대통령 지시하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들은 이야기랑 좀 다른데?”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데요?”
“나는 멋대로 월북해서 갔다고 들었어. 그러다가 또 제멋대로 남한에 내려왔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짜 뉴스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자신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는 북파 공작원이라고 들었는데?”
“내는 이중 스파이라고 들었데이. 북한도 공작하고 남한도 공작하고. 미국 CIA 출신이라던가?”
갈수록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노인들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에는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이번에 제가 다녀온 게 뒤늦게 알려진 건 제가 비공식으로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비공식? 와?”
“북한에서 저희 오프라인이 평양에 지사를 내주길 원했거든요. 또 김정일의 인터뷰도 제가 직접 해 주길 원했고요.”
“이야. 평양에 지사? 그게 가능하나? 김정일이 인터뷰는 또 뭐꼬?”
“뭐야, 김 씨. 당신 뉴스도 안 봤어? 저 사장 친구가 평양에서 김정일이 놈이랑 일대일로 인터뷰를 한 거 아녀.”
“뭐? 김정일이랑 인터뷰를 했다꼬? 내는 못 봤는데?”
“참나. 이 친구 티브이도 안보나.”
“그래, 인마! 내 집에 티브이도 없다! 그래서 니가 내한테 뭐 하나라도 보태준 기 있나, 이 자슥아!”
갑자기 두 노인이 멱살을 붙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직원들과 함께 그들을 말렸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아무튼 이번 방북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남한에 경제에 대해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따 대단하구먼. 나이는 쪼까 어려 보이는디 대단한 걸 했서잉.”
“그럼 사장 양반. 북한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겠다, 이 말이여?”
“네. 어르신. 자본주의로 전환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중국처럼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서 수정주의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수정주의는 또 뭐꼬?”
“아 네. 그러니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사회주의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한동안 그들에게 수정주의의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모두의 얼굴에서 감격스러운 표정이 보였다.
그때였다.
단정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백발의 노신사가 당당히 손을 올리며 질문했다.
“그런데 우 사장. 북한에서 훈장을 받은 건 참말인가?”
“아 네. 어르신. 그건 사실입니다.”
주변이 술렁거렸다.
노신사는 다시 물었다.
“그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나도 고려 일보 주장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네만 어찌 되었건 북한은 우리의 적 아닌가. 거기서 주는 상장을 받은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그러자 몇몇이 노신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맞아. 나도 그건 그렇다고 생각해.”
“하모!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겨!”
나는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제가 원해서 받은 훈장은 아닙니다. 훈장을 준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거고요. 그리고 고려 일보의 주장과 다르게 해당 훈장은 북한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수여된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에게도 수여된 적이 있다고?”
“네. 쿠바의 혁명가인 피델 카스트로가 그 예이죠. 물론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만 폐쇄 국가인 북한이 남한 언론사의 지부를 설립하고, 최고 지도자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지원을 끌어냈다는 점에서는 나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이제는 탑골 공원에 있는 모두가 나의 방북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이해하는 눈치였다.
몇몇이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뭐야. 이 친구 빨갱이가 아닌데?”
“고려 일보가 뭘 잘못 알고 썼구먼.”
“그니까 말여. 내 친구들헌티 빨리 아니라고 알려 줘야것어.”
이후 나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종묘, 동묘 구제 시장 등을 돌았고, 또한 자그마한 집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에 들러 나의 이야기를 전했다.
추운 날씨를 고려해서 도시락보다는 핫팩이나 목도리 등을 선물로 나눠 주었다.
처음에는 빨갱이, 북한의 첩자라며 나를 비난하는 이들도 내가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려 주자 태도를 바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나와 오프라인을 비난하는 집회는 열리지 않았다.
또한.
종로 센터 앞에 휘날리던 현수막들도 어느샌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몇몇 진보 언론들은 내가 어르신들이 모인 장소나 집회에 들려 도시락을 나눠 주며 이야기를 하는 걸 취재하더니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소통하는 언론사 대표……. 어르신들의 마음을 녹이다>
<진실은 승리한다……. 오프라인 우세진 사장의 현명한 대처법>
<우세진, 대역 죄인에서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젊은 손주로 대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
“뭐? 그게 정말입니까?!”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재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벌써 계약서 이야기도 오갔어요.”
오마이갓.
박창후가 찍고 민정희가 각본을 쓸 예정인.
제주 4.3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에.
무려 한국 최고의 여배우인.
이슬아가.
개런티 한 푼 없이.
우정 출연을 해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이슬아가 말이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녀와의 인연이라면 HBS 축하 무대와 얼마 전 북한에서 돌아왔을 때 환영 무대의 MC로서 본 것이 다였다.
‘출연 작품을 고를 때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슬아 아닌가.’
그러나 안재영의 설명을 듣고 나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안재영은 머쓱하게 코를 비비며 이야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