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는 사장이랑 본부장이랑 싸우니까 웃기냐!”
“왜요. 웃기니까 웃는 거지.”
“아오. 진짜 요걸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저 때리시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버릴 거예요!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 간부가 선량한 외국인 근로자한테 무자비한 폭력을 저질렀다고!”
“어이구. 이놈아. 네가 그러니 잡스가 퍽이나 예뻐했겠다.”
“이래 봬도 잡스가 저 해고하기 전에는 엄청 예뻐했다고요. 자기만큼이나 실력이 뛰어나다면서.”
“흥. 그걸 어찌 믿냐. 그런데 너 삼겹살은 먹을 수 있어?”
“와우! 원더풀 삼겹살! 끝내줍니다, 진짜! 완전 좋아해요!”
마르코는 그 말을 끝으로 현관 앞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던 이덕오의 옆으로 가더니.
불판에서 지글지글 익고 있던 삼겹살을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날름 집어 먹었다.
이덕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헤이. 낫 쿡 옛!(Hey. Not cooked yet!)”
하지만 마르코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고기가 어느 정도 구워지자 이덕오는 그제야 현관문을 닫고 거실에 마련된 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삼겹살이 접시 위에 가득 올려졌다.
“와. 덕오 고기 좀 구울 줄 아는구나?”
“물론이죠. 박 본부장님도 인정한 솜씨입니다. 오프라인에서 최고의 고기 장인이 바로 저라고요.”
“그 정도란 말이지? 그럼 어디 한번 먹어 볼까?”
우리는 삼겹살에 빠질 수 없는 소주도 곁들여 먹었다.
그렇게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 잔씩 마시다 보니 소주 세 병이 금세 자취를 감췄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를 무렵.
안재영은 소변이 마렵다며 자리를 떴고 나와 이덕오 그리고 마르코 셋이서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마르코에게 한국 생활이 어떠냐고 슬쩍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퍼펙!(Perfect!)”
타국살이는 쉽지 않은 법이다.
고향에 있을 때보다 외롭고 서러운 일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차별은 일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르코는 한국 생활에 정말 만족하는 듯 보였다.
‘녀석이 너무 조각같이 잘생겨서 회사에서도 다들 잘해 주지. 특히 여직원들은 더더욱.’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이덕오와 달리 마르코의 자리는 늘 수많은 여직원들로 붐볐다.
누군가는 마르코를 리포터로 하여 영상 뉴스를 내보내면 큰 효과를 보지 않겠냐고 주장할 정도였다.
아쉽게도 본인이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기에 성사되진 못했지만.
한편 마르코의 적응은 나에게도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마르코의 입사를 추천하고 확정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마르코의 빈 잔에 술을 따라 주는데.
갑자기 이덕오가 자신의 젓가락을 상 위에 탕! 하고 놓더니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Marco! Together live with me?(마르코! 나와 같이 살지 않을래?)”
마르코와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이덕오를 쳐다보았다.
이덕오는 또 한 번 같은 말을 꺼냈다.
마르코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이다.
마르코는 잠깐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Sorry. I’m not gay.(미안, 난 게이가 아니라서.)”
“What the……!!(무슨……!!)”
이덕오가 펄쩍 뛰며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제대로 뜻이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마르코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형님! 마르코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그런 뜻이 아니라고요!”
“미안한데, 나도 영어를 그리 잘하는 건 아니라서.”
“아이 진짜! 왜 우리 집에 오는 남자들마다 다 오해를 하고 그러는 거야!”
“네가 오해를 하게끔 이야기하니까 그렇지.”
이덕오는 억울하다며 안절부절못했지만 둘의 오해는 안재영이 와야지만 풀릴 분위기였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동아 보이지 않던 안재영이 현관문을 활짝 열더니 나타났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후후후. 이 불쌍한 솔로들아. 크리스마스이브에 진짜 지지리도 궁상이다, 궁상!”
“아이고. 형님도 며칠 전까지는 저희랑 같은 그룹이었거든요?”
“물론 며칠 전까지는 그랬지. 그리고 내가 뭐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냐! 인연을 못 만난 것뿐이었지.”
“쳇. 자랑은. 추우니까 문이나 닫아요.”
“아까는 그렇게 닫아 달라고 애원을 해도 안 닫아 주더니만.”
“아오! 오빠! 그만하고 우리 좀 들여보내 줘요! 추워요 추워!”
안재영의 뒤에서 갑자기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어쩐지 익숙한.
우리는 깜짝 놀라 입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안재영이 누군가에 의해 현관 안으로 불쑥 밀리더니 네 명의 여인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은.
안재영의 여자 친구이자.
보고 또 봐도 그야말로 미친 미모의 소유자.
이슬아였다.
“아니, 스, 슬아 씨?!”
이덕오의 집에 있던 남자 셋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슬아뿐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에 있던 여성 셋의 미모와 패션은 결코 이슬아에 뒤지지 않았다.
한밤중임에도 신분을 숨기기 위해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착용했지만 그녀들의 미모를 숨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슬아가 답답한지 마스크와 신발을 벗고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우 사장님! 어머 잘생긴 외국인 오빠도 있네? 재영이 오빠가 불러서 동생들 데리고 같이 왔어요.”
그녀의 말에 이덕오가 입에 넣었던 소주를 땅바닥에 질질 흘리며 중얼거렸다.
“화…… 화이트 스노우?!”
나는 녀석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한 뒤 슬그머니 물었다.
“누구? 아는 사람이야?”
“화이트 스노우요! 화이트 스노우!! 지금 무섭게 차트를 질주하고 있는 신인 걸 그룹 화이트 스노우 몰라요?”
안타깝게도 오프라인의 사장을 맡은 뒤로는 연예계와는 담을 쌓았다.
그렇지만 회귀 전에는 연예계 기사를 자주 썼기 때문에 웬만한 아이돌이라면 내가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름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정말 처음 들어 보는 아이돌인데.’
나는 이슬아의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셋을 자세히 살폈다.
그렇지만 정말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내가 그녀들을 살피자 안재영이 웃으며 말했다.
“우 사장님. 저 친구들 추울 것 같은데, 그만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죠.”
“아, 앗.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 * *
한기가 걷히자 방 안은 이전보다 훨씬 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좁은 옥탑방 위에 무려 8명이나 되는 성인이 따닥따닥 붙어 앉아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있었으니.
우리는 마치 단체 미팅을 하듯 한쪽 벽에는 여성들이.
반대쪽에는 남성들이 주르르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들은 이곳에 오는 길에 이것저것 다양한 간식거리와 캔맥주 등을 사서 가지고 왔는데 덕분에 술과 안주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이덕오가 앞에 앉은 화이트 스노우 멤버에게 부끄러운 듯 수줍게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용케 여기까지 오셨네요.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팬들의 눈은 속이지 못할 텐데.”
“아니에요. 슬아 언니 매니저가 바로 근처까지 태워다줬거든요.”
“그랬군요. 하긴 그렇게 안 했으면 동네가 난리 났을 겁니다. 이슬아랑 화이트 스노우가 신림에 떴다고요. 이게 꿈이야 생시야 정말.”
이슬아는 내가 함께 온 걸 그룹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자 웃으며 말했다.
“사실 다들 모르실 거예요. 저랑 같은 소속사 동생들인데, 오히려 이 이사님이 이 친구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놀랐어요.”
“에? 화이트 스노우는 사랑입니다. 형수님.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어머 얘들아. 너희 찐팬이 여기 계셨다. 호호.”
“그러게요 언니! 뿌듯하네요.”
화이트 스노우의 리더인 김혜원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4인조 걸 그룹인데 막내는 10대인 탓에 성인인 이들 셋만 이곳에 왔다고 했다.
마르코의 외모에 대해 모두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내 옆에 앉은 김혜원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가 인상적인 그녀는 10대 소녀처럼 어려 보이는 외모에 청순가련한 스타일이었는데, 요염함이 돋보이는 이슬아와 같은 자리에 있어서 그런지 청순함이 더 대비되어 보였다.
그녀는 나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듯 이것저것을 물어 왔다.
“올해 스물일곱 살이면 저보다 네 살 윈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편할 대로.”
저 외모에 벌써 스물셋이라니.
이건 사기였다.
“우와 신기하다 정말. 티브이 속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직접 보는 기분이에요!”
“응? 연예인은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잖아.”
“아니 저희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걸 그룹이고요. 오빠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잖아요! 이렇게 바로 옆자리에 앉다니! 너무 신기해요.”
그녀는 정말로 내가 신기한 듯 몇 번이나 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이거 누가 연예인인지…….’
그때였다.
불현듯 아까 일이 생각났는지 이덕오가 안재영을 붙잡고 말했다.
“형님! 저 진짜 억울합니다.”
“응? 왜?”
“마르코한테 저 남자 안 좋아한다고 좀 해 주세요.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응? 뭐야? 너 남자 좋아했었니?”
“앗! 뭐라고요? 덕오 오빠 남자 좋아해요?”
“와. 신기하다. 저 게이 처음 봐요!”
“당신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응원해요!”
이덕오의 오해가 풀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떠들썩한 신림동 옥탑방의 크리스마스이브가 깊어 갔다.
* * *
크리스마스이브와 크리스마스에는 바가지 상혼이 극성이었다.
연말 분위기에 취한 연인과 가족들이 연말의 특별함을 보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번처럼 토요일은 이브이고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인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있었던 회귀 전에도.
막상 이때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나는 안재영의 차를 타고 이슬아 그리고 김혜원과 함께 강원도 산골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세진이 오빠 바쁠 텐데 흔쾌히 수락해 줘서 고마워요.”
뒷자리에 이슬아와 함께 앉은 김혜원이 얼굴 가득 미안함을 담고는 내게 말했다.
이슬아는 뭐가 그리 웃긴 지 한참을 혼자 큭큭대더니 김혜원의 오른팔을 살짝 때렸다.
“혜원이 너 진짜 웃긴다.”
“네? 왜요?”
“아니 그렇잖아. 갑자기 세진이 오빠를 지목하고.”
“그건…….”
김혜원의 두 볼이 마치 어젯밤 술자리에서처럼 새빨개졌다.
to be continued
# 1장 별장
내가 평소 잘 돌아다니지도 않던 크리스마스에.
갑자기 안재영 커플의 차에 타서.
어제 처음 본 김혜원과 함께 더블 데이트에 나선 연유는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