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화 (106/200)

“저 청포묵처럼 생긴 하얀 건 뭐예요?”

김혜원이 개복치 회를 가리키며 물었다.

“개복치야.”

“개복치요? 그 엄청나게 큰 물고기?”

“응. 회 센터에서 팔기에 신기해서 조금 사 왔어.”

“우아! 저 개복치 처음 먹어 봐요!”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개복치를 초장이나 간장에 찍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으웩! 이게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지?”

“아무런 맛도 안 나는데?”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해했다.

그야말로 무색무취.

아무런 맛도.

아무런 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청포묵처럼 말랑말랑한 식감과 초장의 매운맛만이 입안을 아쉬운 듯 감돌고 있었다.

안재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역시. 사람들이 추천하지 않는 이유를 알겠군. 다시 또 사 먹나 봐라!”

결국 도미와 광어만이 빠르게 사라진 가운데.

개복치 회만이 쓸쓸히 방치되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오후 8시 반 무렵 안재영의 별장을 출발.

불과 2시간 반 만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에 탔던 곳과 같은 곳에서 차에서 내린 나는 일행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오늘 재밌었어. 다들 피곤하겠다. 푹 쉬어.”

“네 오빠! 다음에 또 이렇게 놀아요!”

“그래. 혜원아. 조심히 들어가.”

“푹 쉬세요!”

“내일 보자 세진아!”

“응. 얘들 조심히 데려다줘. 운전한다고 고생 많다.”

“세진 오빠 쉬세요~”

나는 안재영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손을 흔들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묘한 기분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시계를 보니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였어.’

이덕오의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던 어제도 그렇고.

안재영의 별장에서 오랜만의 휴식을 취한 오늘도 그렇고.

다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을 정도로.

‘특이한 경험이었다, 정말.’

긴장이 풀렸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잠이 달았다.

다사다난했던 2011년이 지나가고.

2012년 임진년이 밝았다.

오프라인도 설립된 지 벌써 3년 차를 맞이하고 있었다.

새해를 맞은 오프라인은 해가 바뀌자마자 두 번째 전사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로 말이다.

“300명이 넘는 규모의 전사 해외워크숍이 있다는 건 내 살다 살다 처음입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건 아닐까요?”

박창후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하. 이제 박 부장님도 사원 입장이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 비용을 걱정해 주시는군요.”

“그럼요. 원년 멤버 아닙니까. 몇 억 깨졌겠는데요?”

그의 말대로 이번 전사 워크숍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워크숍 장소는 베트남의 유명 휴양지인 다낭.

오프라인 국내 직원 310여 명의 왕복 비행기 티켓과 숙박 및 식비, 교통비 등이 모두 회사 차원에서 지원되었다.

지금 타고 있는 50인승 버스만 7대를 빌려야 했으니.

“그래도 작년 매출이 어마어마했잖아요. 2010년 대비 성장 폭도 컸고요. 이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안 그런가요?”

“맞아! 이제 오프라인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서도 다들 부러워하고, 회사 인지도로 따지면 국내 최상위급이지 않을까? 뭐 이쯤이야.”

홍지혜와 최루리의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임직원이 최선을 다해 준 결과입니다. 회사의 미션을 공유하고, 그동안의 고생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정도는 약소하죠.”

“저야 회사가 성장해서 좋은데…… 굳이 해외에서 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거죠. 뭐 그래도 나오니까 좋긴 좋네요. 이국적이고.”

박창후가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들 위로 새파란 하늘이 선명했다.

“그나저나 오프라인의 전 직원이 모두 모였네요.”

박창후의 말처럼 이곳에 모인 이들은 국내에서 온 310명이 끝이 아니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하루 먼저 도착한 오프라인 베트남 직원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반겼다.

그 선두에 선 고희열이 내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우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사장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하하. 저야 뭐 언제나 마음만은 청춘이니까요.”

국내 직원들은 베트남 전통 복장을 하고 나온 베트남 직원들이 신기한지 근처를 자꾸 기웃거렸다.

한 남직원이 용기를 내어 미모의 베트남 여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Hello. I’m Choi! Nice to meet to you.”

“안녕하세요. 최 기자님! 베트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응우옌입니다.”

영어로 소통을 시도하는데 상대가 한국인보다 더 능숙한 한국어로 화답하자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베트남 직원들의 분위기가 어떤가요? 전사 워크숍 한다고 하니 좋아하던가요?”

“물론이죠. 한국에서 본사 직원들 모두가 베트남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들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었답니다.”

“뭘 벼른다는 말이죠?”

“여러분들에게 베트남의 매력을 제대로 전하겠다고 말이죠. 모두 의욕 충만 상태예요.”

“좋네요. 본부가 총 8개니까 한 본부당 한 분씩 배정하고, 저랑 백 사장님한테 한 명씩 붙어서 통역을 맡아 주면 좋겠네요.”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요. 두 분 사장님들은 제가 모시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저보다는 어린 친구들이 곁에 있는 게 더 좋겠죠.”

“하하.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지사장님 편할 대로 해 주세요.”

“아닙니다. 우 사장님에게는 한국어도 잘하고 가장 똑똑한 친구를 붙여 드릴게요.”

우리는 총 8개의 조로 팀을 나눴다.

국제본부, 소셜본부, 영상본부, 개발본부, IT개발본부, 취재본부, 디자인본부.

그리고 최근 경력직 위주로 채용하여 신설한 마케팅본부까지.

3박 5일간의 일정 대부분은 그동안의 성과를 보상하는 차원의 휴식 시간이었지만.

사실 이번 워크숍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날인 과제 발표에 있었다.

각 본부장은 서로 1등을 차지할 거라며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이번 발표는 작년 여름보다 더 치열하겠는데?”

“네, 본부도 늘어서 8개 조의 경쟁이니까요. 만만치 않겠어요.”

“저희 구성원 중에는 벌써 발표에 전념하려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예요.”

“진짜요? 디자인 본부 장난 아니네.”

“하긴 인센티브 수준도 더 커졌고, 1등은 진짜 탐나던데요?”

“그렇죠? 사내독립기업(CIC)을 만들어 그걸 지원해 준다니. 생각도 못 했어요.”

“내 말이. 그러니까 나한테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회사에서 돈도 주고 밀어준다는 의미지?”

박창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박 본부장님. 수익성이 괜찮다 싶으면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도 하고 지원을 할 예정입니다.”

“어이쿠. 우 사장님에게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그런데 만약에 사업이 잘 안 되면요? 그런 경우는 뭔가 대비책이 있나요?”

“만약 사업이 어렵다거나 안 맞다 싶으면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도 있는 시스템을 짜고 있어요. 일종의 안전망이죠.”

“와우! 진짜 좋네요. 저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하는 영상업체 하나 차려 보고 싶은걸요.”

“하하. 그럼 이번 발표에서 꼭 1등 하세요.”

1등을 한 본부에는 부상으로 휴가와 상금.

거기에 사내독립기업을 만들 수 있는 특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모두 눈에 불을 켜고 1등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자자. 발표도 좋고 1등도 좋지만, 우선은 첫날이니 좀 여유를 가지고 즐기세요. 그럼 다들 짐 풀고 이따 만나요.”

그제야 어수선하던 로비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고희열이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하. 정말 오프라인 직원들은 보통이 아니네요. 휴양지에 와서 놀 생각은 안 하고 1등 할 생각만 하고. 저희도 분발해야겠는데요?”

* * *

한국 직원들이 모두 물놀이 삼매경에 빠진 것과 대조적으로.

베트남 직원들은 두꺼워 보이는 겉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는 한 발자국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나는 통역을 맡은 현지 직원인 주엉에게 물었다.

“베트남 친구들은 수영을 별로 안 좋아하나 보죠?”

그러자 주엉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아뇨. 현재 베트남은 겨울이라서요. 평소보다 무척 추운 날씨거든요.”

“그래요? 어쩐지 여기 올 때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죄다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던데. 그런 이유였군요?”

“네, 맞아요. 저도 지금 꽤 추운걸요?”

주엉은 정말로 춥다면서 자신의 두 팔을 꼭 껴안았다.

1월의 다낭은 최고 기온은 25도, 최저 기온은 19도 정도로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한겨울인 한국에서 온 우리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따뜻한 기온이었지만, 베트남 사람에게는 일 년 중 가장 추울 때인 것이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주엉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미안하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날이 좀 풀리면 올걸.”

그러자 주엉이 두 팔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우 사장님! 저희는 이곳에 오프라인의 모든 직원분이 와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에요!”

“그래요? 그렇담 다행이고요. 그런데 주엉 씨.”

“네.”

“우리가 와서 뭐가 그렇게 행복한 거예요? 나 잘 이해가 안 가서.”

나의 질문에 주엉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오프라인은 저희의 자부심이니까요!”

그녀는 베트남에서 한국이 얼마나 선진국으로 인식되는지.

오프라인이라는 매체가 베트남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에서도 얼마나 유명하며 인지도가 높은지.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오프라인 베트남 지사의 직원이라는 데에서 오는 높은 프라이드에 관해 설명했다.

“월급도 엄청 높고, 한국의 보도 자료도 너무 재미있어요. 일하는 것도 즐겁고요. 저희 베트남 직원 모두 감사하고 있어요.”

그녀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물었다.

“고희열 지사장님은 어때요? 잘 챙겨 주시나요?”

“물론이죠! 아버님, 아니 할아버님처럼 저희를 보살펴 주시고 계세요. 회사 운영도 잘해 주시고요. 저희가 고 지사장님을 부를 때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뭐라고 하는데요?”

“고당손!”

“고당손? 그게 무슨 뜻이죠?”

“고는 고 지사장님 성이고요. 당손은 ‘운이 좋을 때’라는 베트남어에요.”

“음……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그러니까 고 지사장님이 저희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분이라는 뜻이에요. 너무너무 고마운 분이세요.”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백철웅이 기분 좋은 듯 툭 뱉었다.

“역시 형님이네요. 저희가 정말 좋은 분을 만났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 복이 좋은 건지 참.”

그는 그런 말을 던지고도 아무렇지 않은지 선베드에 누워 태연히 칵테일을 들이켰다.

한편, 고희열과 베트남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베트남의 역사나 현황에 대해 소개하는 미니 세미나를 여는 등 베트남에 대해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에서 온 본사 직원들 역시 그들의 설명에 집중하며 본사와 지사의 직원들이 엇갈리지 않고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이번 워크숍을 베트남으로 오길 잘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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