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200)

* * *

달콤했던 휴식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의 시간이 찾아왔다.

발표 시간은 한 조당 15분씩.

이어서 10분의 Q&A 시간이 주어졌고, 5분의 휴식 뒤에 곧바로 다음 조가 발표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4시간의 긴박감 넘치는 발표가 끝나고.

무대에 오른 내가 마이크를 들고 결과를 발표했다.

“3등은 지난 전사 워크숍에서 1등을 차지한 소셜본부입니다! 모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소셜본부는 현재 홍지혜가 운영하고 있는 팟캐스트 고도화에 대한 발표로 심사위원들은 물론 직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2등은 다톡의 UI/UX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평가받는 디자인부! 디자인본부장님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심플하면서도 큼지막한 픽토그램을 적절하게 사용한 구성이 한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대망의 1등은! 두구두구~ 바로오~!!”

베트남 지사와의 소통을 높이겠다는 국제본부의 몫이었다.

내가 최루리를 단상 앞으로 부르자 그녀는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동안 저희 국제본부 구성원들은 뭔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쉬움이라는 말에 모두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취재본부나 영상본부처럼 기사를 취재하러 현장에 나가는 일도 적고, 그렇다고 소셜본부처럼 SNS를 통해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도 적었습니다. 그들이 작성한 콘텐츠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주였죠.”

그제야 사람들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루리의 말처럼 국제본부는 메인이라기보다는 서포터의 느낌이 강했다.

“이번 발표에 앞서 저희 구성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최선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현재 시스템에서 보다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베트남 지사와의 소통 최적화입니다. 저희는…….”

최루리의 발표가 끝나자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 주었다.

그녀가 이야기한 발표의 요지는 베트남 직원들의 서포트를 국제본부에서 전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외국어니까. 100%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

그래서 문맥을 파악하기 어렵다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는 국제본부에서 그들과의 소통에 나선다는 것이 주였다.

사실 국제본부는 오프라인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조직이었다.

이곳에서 다국어로 번역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오프라인은 글로벌 미디어라고 표방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국제본부 구성원들에게는 저런 아쉬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서운하지 않도록 더 잘 케어해야겠어. 이번 워크숍은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큰 성과야.’

한편.

꼴등은 저번 워크숍과 마찬가지로 안재영의 취재본부에게 돌아갔다.

출입처 폐지 운동을 진행하겠다는 그 취지는 무척 좋았지만, 현장 취재가 적은 다른 본부원의 공감을 사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안재영은 울상을 지으며 무대 앞에 섰다.

그가 마이크를 잡자 갑자기 박창후가 무대 앞으로 카메라를 들고는 후다닥 뛰어갔다.

그는 안재영을 놀리듯 말했다.

“뭐해? 빨리 벗어야지.”

박창후에 이어 곳곳에서 안재영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벗어라! 벗어라!”

“춤춰라! 춤춰라!”

“안 본부장님은 약속을 지켜라!”

안재영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결심한 듯 이내 몸을 뒤로 돌렸다.

그러더니 옷을 벗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윗옷을 벗은 그는 바지까지 아래로 내렸다.

“꺄아!”

“와! 멋있다!”

무대는 그야말로 열광과 환호로 가득했다.

결국 안재영은 310여 명의 오프라인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속옷 차림으로.

천천히 그루브를 타더니.

본 적 없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춤동작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직원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함께 춤을 출 정도였다.

“안 본부장 춤 잘 추는데?”

“그러게요. 저도 춤추는 건 처음 보는데 속옷 차림만 아니었다면 수준급 춤 솜씨라고 칭찬했을 듯하네요.”

안재영의 춤을 지켜보던 백철웅이 갑자기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우 사장. 안 본부장은 대체 왜 저러는 겁니까?”

“저번 제주도 워크숍에서 홍 본부장이랑 약속했잖아요.”

“응? 무슨 약속?”

“이번에도 꼴등 하면 팬티만 입고 혼자 무대에서 춤춘다고.”

“아!”

백철웅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열심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미 대부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 함께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본사 직원과 지사 직원 모두.

꿀렁꿀렁.

광란의 밤이 깊어갔다.

* * *

다음날.

모두가 오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간 가운데.

나와 백철웅만이 베트남에 남아 고희열과 열띤 토론을 나눴다.

“스무 명으론 부족할 것 같습니다.”

“현재 인력의 두 배입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할까요?”

“네, 베트남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를 커버하려면 적어도 서른 명은 추가로 채용해야 합니다.”

“서른 명이라. 너무 많은 것 같긴 한데…….”

우리는 오프라인 베트남의 추가 인력 채용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트남 지사를 동남아시아 총괄 지역으로 승격시키고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에 대해 기사를 맡길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건비가 싸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인력을 그렇게 늘리는 건 좀 부담스럽습니다.”

“우 사장 말이 맞아요. 차츰차츰 늘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뇨. 한 번 뽑을 때 다 뽑고 일을 맡기는 게 새로 오는 친구들이 적응하고, 또 일을 맡기기에도 유리할 것 같군요.”

우리는 한참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25명을 새로 뽑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하였다.

고희열은 만족스러운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두 분 모두 내일 오후 비행기로 떠나시죠?”

“네, 오늘 이거 결정하려고 하루 미룬 거니까요.”

“그럼 저녁 먹고 나서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오시는 건 어떠세요?”

“바람이요?”

“네, 베트남의 바다는 실컷 보셨으니 이번에는 강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은 우리는 고희열이 부른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다낭은 곳곳이 개발 중이었다.

택시 밖으로 보이는 풍경의 대부분이 공사 가림막일 정도로.

‘이곳도 과거의 한국처럼 변화가 빠르다는 거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구경하는 사이.

택시는 우리를 한 선착장 인근의 주차장에 내려다 주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고희열의 안내에 따라 밖으로 나오자 강 주변 특유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네요.”

폭이 넓은 강이 다낭시 한가운데를 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마다 온갖 조명이 반짝거리는 통에 그리 어둡지 않았다.

고희열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여기가 한강입니다.”

“한강이요?”

“네, 서울에 있는 한강이랑 이름이 같습니다. 영어로는 Han River죠.”

“신기하군요. 어쩐지 강폭이나 느낌도 서울의 한강과 비슷합니다.”

“네, 다만 서울의 한강은 남북을 가로지르지만, 여기 한강은 동서를 가로지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희 배 타는 겁니까?”

백철웅이 앞에 있는 자그마한 유람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고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람선에서 보는 다낭시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티켓 3장을 끊고는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선착장 인근은 우리 말고도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들이 많네요?”

“네, 이곳은 한국과 달리 밤에 즐길 거리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타시죠.”

고희열의 말에 따라 배에 오르니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다낭의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서울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뭔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군요.”

“그렇죠? 앞으로 용다리가 완공되면 더 멋질 겁니다.”

“용다리요?”

“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트남에서는 용을 무척 신성시하거든요. 그래서 용 모양으로 다리를 만들고 있죠. 입에서는 불도 뿜는다고 합니다.”

“언제 완공되는데요?”

“아마 내년쯤?”

“못 봐서 아쉽네요.”

“뭘요. 다음에 또 오셔서 보시면 되죠.”

“그런데 한강은 원래 이렇게 물살이 거친가요?”

내가 난간을 꽉 잡으며 묻자 고희열이 이상하다는 듯 대꾸했다.

“아뇨. 원래 이렇게 너울이 심하진 않은데……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물살이 좀 거센 것 같군요.”

선착장을 떠난 배는 심하게 좌우로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였다.

선착장에서 출발한 지 불과 5분이나 되었을까.

배가 격하게 흔들거리더니.

“어어어어어어!”

배에 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배가 뒤집혔다.

마치 거짓말처럼.

* * *

생각지도 않던 침몰.

저녁의 한강은 제법 쌀쌀했다.

게다가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난 가운데 급류가 거셌다.

나는 서둘러 정신을 차린 뒤 뒤집힌 배 쪽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어푸, 어푸!”

수영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생존 수영이라면 어릴 적부터 물놀이 한다고 계곡에 자주 다닌 탓에 익숙했다.

나는 뒤집힌 배 밑바닥으로 몸을 들어 올렸다.

배 밑바닥은 미끈거려서 올라오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힘들게 위로 올라오자 나보다 먼저 배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그들은 멍한 표정으로 지금 자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뇌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몇이 나와 같이 강에서 배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보이는 대로 그들의 손을 끌어 배 위로 올려주었다.

다만 배 밑바닥은 미끈거리는 것은 물론 평평하지 않고 경사가 진 상태였기에 위에서 끌어올리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사람들을 끌어올렸을까.

지친 몸을 눕혀 주위를 살피는데 백철웅과 고희열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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