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급하게 둘을 찾기 시작했다.
“백 사장님! 고 지사장님!”
얼마나 크게 소리를 쳤을까.
반대쪽에서 크게 소리가 들렸다.
“우 사장님! 저 고희열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혹시 백 사장님은 그쪽에 안 계시나요?”
“백 사장님은 이쪽에 없습니다. 그쪽에도 없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들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아직 몇몇이 여전히 강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강으로 뛰쳐나갔다.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하며 나를 말릴 새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몇 명이나 사람들을 구했는지 모르겠다.
시야에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구해 배 위로 올리고 나니 나 역시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큰일 나겠는걸.’
결국 나는 10m쯤 떨어진 곳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는 젊은 여성을 마지막으로 다시 배 위에 올라와야만 했다.
“어이쿠.”
힘이 다해 도저히 배에 오르지 못하겠는데 사람들이 내 손을 잡아 끌어올려 주었다.
몇몇은 거친 강물로 뛰어들어 내 몸을 붙잡고 밑에서 올려주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뭔가 결의가 느껴졌다.
‘내가 자국 사람들을 구해 줘서 고마움의 표시인 걸까.’
나는 고맙다는 인사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지 않아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구조 보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헬기까지 뜬 상태였다.
헬기를 보니 묘하게 안심이 됐다.
나는 멍하게 헬기를 올려다보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다시 눈을 떠 보니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곳이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번쩍 몸을 일으키자 오른팔에 꽂힌 링거가 같이 움직였다.
주변을 살피니 고희열 그리고 백철웅의 모습이 보였다.
“백 사장님!”
“우 사장! 정신이 들었습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헤어진 가족이 재회를 하듯 격하게 포옹했다.
“아니! 도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저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에서 너무 멀어져 있어서 그냥 선착장 쪽으로 헤엄쳤습니다.”
“그럼 직접 헤엄쳐 나오신 거예요?”
“네, 저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탈출해 나왔습니다.”
“휴. 다행입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강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했다고요?”
“네, 누가 백 사장님인 줄 알고 고르겠습니까.”
그 말에 백철웅이 울컥했는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흠흠. 고생하셨습니다. 역시 저한테는 우 사장밖에 없습니다.”
“뭘요. 그나저나 다른 승객들은 어떤가요? 모두 다 괜찮나요?”
그 말에 고희열이 웃으며 말했다.
“네. 우 사장님이 대활약을 해 줘서 승객들 모두 다 구출된 상태입니다! 진짜 이 시대의 영웅입니다. 영웅이세요!”
아무런 인명 피해가 없다는 이야기에 온몸에 힘이 죽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침대 깊이 몸을 눕히는데 갑자기 옆으로 낯선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자신을 다낭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소개하며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이번 사고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정말 큰일을 해내셨습니다.”
무언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피곤했다.
내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고희열과 백철웅이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스르르 눈이 잠겼다.
* * *
다음 날 아침.
병원에서 주는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고희열과 백철웅이 와서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 사장님! 경사 났습니다. 경사요!”
“네?”
나는 먹던 그릇을 잠시 치우고 입을 닦고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세요?”
하지만 두 노장의 표정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기쁨과 설렘이 잔뜩 묻어 있었다.
고희열이 두 손을 맞잡고는 말했다.
“어제 우 사장님이 많은 인명을 구해 준 덕분에 베트남 정부에서 훈장을 주겠다고 합니다.”
“네? 훈장이요?”
“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주는 훈장이 있습니다. 우의훈장이라고, 외국인에게 주는 상 중에서는 가장 으뜸인 상이죠.”
“우의훈장이요?”
“네, 저도 정말 어안이 벙벙합니다. 어제 잠시 병실에 들른 사람 기억합니까?”
“아…… 무슨 위원장이라고?”
“네, 다낭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우리로 치자면 다낭 시장이랄까요?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한테 오늘 연락이 와서는 중앙정부에 그리 추천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별일 없으면 아마 곧 훈장을 받으실 겁니다.”
훈장이라니.
얼마 전에 북한에서 로력훈장을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다른 국가의 훈장을 받는단 말인가.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백철웅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 사장은 어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하하하하.”
그러게나 말이다.
# 2장 파업
“왕석천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공정방송 회복하자! 회복하자!”
“WBS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베트남에서 돌아왔는데 지상파 공영 방송사인 WBS가 파업 중이었다.
WBS 뉴스가 결방된 가운데 HBS 뉴스에서 WBS의 파업을 다루는 모습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WBS가 난데없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WBS 구성원들의 자괴감이 컸다.
이국대 대통령의 낙하산 인사인 왕석천 현 WBS 사장이 취임한 이후 WBS는 시민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제적 WBS냐. 정권의 나팔수지>
<현대판 대한늬우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해도 해도 너무 빨아 주는 거 아님? 적당히 해야지!>
오프라인에서도 WBS의 파업은 주요 이슈였다.
“WBS 사장이야 대대적으로 정권 낙하산 출신이었지만 왕석천 사장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요.”
“그러게. 완전 현 정권의 홍보 채널이잖아. 예전의 WBS가 아니지.”
“사장 하나 바뀌었다고 저렇게 모든 프로그램이 다 바뀐다는 게 저는 더 신기해요.”
“사장이 내부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까. 자기편만 주요 자리에 앉혔겠지.”
“보복성 인사로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다고 그러더라고요. 사장 눈 밖에 난 사람들은 지방으로 발령내 버리고요.”
수신료로 운영되는 HBS와 다르게 WBS는 광고가 주 수입원이었다.
그럼에도 대주주가 공익 법인인 방송문화진흥회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민영 방송이 아닌 공영 방송에 해당하였다.
또한 사장을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방송문화진흥회가 가지고 있었기에, WBS의 사장 자리에는 정권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안재영이 내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도 같은 언론산데 뭔가 한마디 거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박창후가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 있어. 지네들 일은 지네들이 처리해야지.”
“명분은 노조 측에 있습니다. 공정 방송을 회복하자는 슬로건은 같은 언론사이자 기자인 저희들에게도 중요한 안건이니까요.”
“우리는 이미 공정하게 보도를 하고 있잖아. 오히려 우리한테는 기회가 아닐까?”
“기회요?”
“그래. WBS에서 뉴스를 결방하니까 그쪽 시청자들이 우리 오프라인에 올지도 모르지.”
“그건 좀 비겁하지 않습니까.”
“비겁은 무슨. 우리가 무슨 고려 일보처럼 그런 편향적인 기사를 쓰는 곳도 아니고 평소에 좋은 뉴스를 만들고 있는 곳인데. 오히려 기회는 그들 스스로가 우리에게 주는 거잖아.”
안재영과 박창후는 이 문제로 오랫동안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에는 호형호제하며 친하게 지내는 두 사람인데 WBS 파업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둘의 의견을 잠자코 듣다가 둘에게 물었다.
“잠시만요. 우리가 WBS 파업을 지지했을 때 얻는 이득과 손실은 무엇이고, 반대로 지지하지 않을 때는 뭐죠?”
안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실을 추구하는 같은 언론사로서의 연대가 크죠. 파업이라는 건 월급 안 받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찰시키겠다는 건데 WBS 노조원들에게 힘을 실어 줄 수도 있을 테고요.”
“이를테면?”
“너희는 혼자가 아냐. 오프라인도 너희를 지지해. 이런 느낌으로요.”
“흠. 그밖에는?”
“시민들에게도 오프라인은 WBS를 지지한다, 공정 방송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고요. 여론은 대체로 WBS 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손실은요?”
“WBS 파업의 가장 큰 이유가 왕석천 사장의 임명 때문이니, 그를 임명한 현 정권. 그러니까 이국대 대통령과는 척을 질 가능성이 높죠. 집권 여당과도 마찬가지고요.”
안재영이 말을 마치자 곧바로 박창후가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여당이나 대통령에게 밉보이는 게 끝이 아닙니다. 같은 언론사일 뿐 엄연히 다른 조직입니다. 저희가 지지를 표방해 봤자 실질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왜요? WBS 노조에게는 그 사소한 지지가 큰 힘이 될 겁니다.”
“큰 힘은 무슨! 우리가 걔네들 월급 보전해 줄 거야 아님 같이 파업이라도 할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이 파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심정적으로 힘을 실어 준 순 있는 거죠.”
“에헤이. 안 본부장 이 친구 너무 순진한 거 아냐? 괜히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평소와는 다르게 다른 본부장들 역시 의견이 분분했다.
숫자로는 박창후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의견이 5로 안재영의 의견에 동조한 3보다 많았다.
본부장들이 물러난 뒤 나는 백철웅과 둘이 이 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백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자신의 턱을 천천히 쓰다듬더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박 본부장 의견과 같습니다. 대통령이나 여당에 밉보이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굳이 남의 집안일에 끼어드는 게 맞나 싶습니다. 우리가 파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렇군요.”
나는 팔짱을 끼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 파업은 단순히 WBS만의 파업에서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공영 방송인 HBS 그리고 보도 전문 채널인 TTN 등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국가 기간 통신사인 통합 뉴스까지 파업에 동참하며 언론계 전반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모두 정부의 입맛에 따라 사장이 들어선 곳이었고, 이번 정권 들어 친정권적인 뉴스가 크게 늘어난 곳이었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채 갈등만 커졌지.’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사측은 공정 방송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노조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파업 기간 월급을 못 받은 것은 물론 부당 해고를 당하거나 징계를 받은 이에 대해 파업이 끝난 뒤로도 원만한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파업의 후유증이 컸다.
무엇보다도 메인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방송의 공정성 문제는 그 어느 하나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 본부장 말도 맞지만, 박 본부장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영 방송의 지배 구조를 개편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WBS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곳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니까요. WBS 뿐 아니라 HBS나 TTN도 그렇고요.”
“그렇죠. 그걸 바꾸지 않고서야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야당도 지금은 WBS 편을 들고 있지만, 자신들이 집권하면 또 말을 바꿀 겁니다. 그건 여야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의 본질 같은 거겠죠. 영향력이 큰 방송을 자신의 통제 밑에 두고 싶을 테니까요.”
“동의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저희가 끼는 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해관계가 복잡해요.”
“백 사장님.”
“네.”
나는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저희가 이번에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여론을 형성한다면 앞으로는 뭔가 바뀌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WBS 파업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제공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 측의 잘못을 다루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관해 설명을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