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장님. 백 번, 천 번 동감합니다. 저처럼 개발자라는 직업이 나온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네, 그리고 갈수록 개발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대우받을 테고, 필요하게 될 겁니다. 이 이사는 전공을 잘 선택했어요.”
“아무튼 제 생전에 인간 기자가 사라지는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이번에 자연어 처리를 해 보면서 느낀 건데 아직 갈 길이 멀더라고요.”
“그건 그거 나름대로 다행이고요.”
우리는 곧 AI 기사를 스포츠 경기 결과, 날씨, 증시 현황 등 몇 가지 분야에 적용했다.
또한 AI 기사의 의미와 가능성 그리고 한계 등에 대해 심도 있게 정리한 기사를 송고하였다.
<헐! 이게 AI가 쓴 기사라고? 전혀 모르겠는데?>
<와 진짜 좋네요. 글도 술술 잘 읽혀요!>
<ㅋㅋㅋㅋ 앞으로 기레기들은 다 사라질 듯. 기계가 더 낫네>
AI 기사에 대한 사람들의 논란과는 별개로 많은 언론사에서 AI 기사에 대한 문의가 왔다.
내신은 물론이고 CNN, BBC,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도 흥미를 보였다.
CNN의 보도국장인 데이비드 커터는 직접 전화를 걸어와 당장 이 기술을 자기네도 도입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너무나도 멋진 기술입니다. 저희도 당장 도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비용이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DC 소프트의 정선호 대표와 논의하여 ‘AI 저널리즘 연구소’라는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CNN 등 AI 기사에 관심 있는 언론사와 MOU를 맺고 여기에 참여시켰다.
AI 기사가 세상에 발표되고 오래지 않아.
총 12곳의 국내외 주요 매체들이 우리와 MOU를 맺고 AI 저널리즘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술 교류를 시작하였다.
이덕오는 오프라인의 CTO이자 AI 저널리즘 연구소의 연구소장을 겸했는데 연구소에서만 그의 밑으로 30여 명에 달하는 전문 인력이 배치되었다.
“오프라인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파견직 사원이었는데요. 진짜 요즘은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아요.”
“만약에 그때 내가 안 잡았으면 지금도 어디서 그러고 있지 않을까?”
“아이고 형님도 참.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제 앞에서 하지 마십쇼.”
나는 그만두겠다는 이덕오를 제주도에 끌고 가서 설득시켰던 이야기를 하며 그를 놀렸다.
‘불과 엊그제 전의 일 같은데 벌써 1년도 더 전의 이야기구나.’
그와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사이.
갑자기 안재영이 문을 벌컥 열고는 들어왔다.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 3장 다시 평양
안재영이 전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곧 오프라인의 평양 지국을 개설할 예정인데 청와대에서 갑자기 뜬금없는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뭐? HBS도 함께 개설되는 게 아니면 허가를 못 내준다고?!”
“네, 공영방송인 HBS와 함께 개설하는 게 아니면 오프라인 단독으로만은 못 해 주겠답니다.”
“아니, 이전까지는 엄청난 성과라고 칭찬을 하더니 갑자기 왜요?”
“그게…… 300분 토론 이후에 대통령이 격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영 방송 지배 구조 개선 말인가요?”
“네, 내년이면 임기가 끝나는데 300분 토론이 자신의 레임덕을 앞당겼다고 생각하나 봐요.”
“허. 우리가 이국대를 공격하려고 한 게 아니잖습니까.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려고 그런 건데.”
“이국대 대통령 입장에서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당장 청와대에 연락해서 약속 잡아 봐요. 이게 당최 무슨 소린지.”
청와대는 바쁘다는 이유로 몇 번이나 약속을 미루다가 일주일 뒤에야 시간을 내줬다.
전화하면 바로 약속을 잡았던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었다.
나와 백철웅이 청와대 접견실에 들어서자 이국대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뱉었다.
“바쁜데 무슨 일로 이렇게 자주 보자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나와 백철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백철웅의 표정에서 당혹감이 보였다.
그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평양 오프라인 지국 건으로 뵙자고 하였습니다.”
“아 그거요? 분명 HBS도 함께 개설하는 게 아니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린 거로 아는데.”
“이전까지는 그런 말씀이 없지 않았습니까!”
내가 따지자 그제야 이국대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안경을 잡아 올리더니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프라인은 민간 언론사 아닙니까. 공영 방송인 HBS에서도 평양에 지국이 개설돼야 공적 책무를 다할 수 있겠죠. 오프라인만의 개설은 공정하지 못합니다.”
“이미 수차례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셨고, 북한에서 원하는 건 저희 오프라인이지 HBS가 아닙니다.”
“그러니 오프라인에서 북한을 설득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이번에 AI 연구소? 그런 것처럼 HBS와 합작 회사를 만들어서 지국을 개설하든가요.”
말도 안 되는 트집이었다.
북한에서 그런 걸 허락할 리 없었다.
또한 북한 취재 권리를 HBS와 공유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분명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까지 북한과의 관계가 걱정되었는데 저희 오프라인 덕분에 잘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처럼 억지를 부리시면 다시 남북 관계가 나빠질 개연성이 큽니다.”
“억지? 억지라 하셨습니까?”
이국대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 역시 물러설 수 없었다.
“네, 북한에서 지국 개설을 요청한 건 HBS가 아니라 오프라인입니다. 그것도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HBS도 지국을 개설해 달라고 하면 저쪽에게는 무척 실례되는 행동입니다.”
“이거 참. 오프라인은 남한 언론사인지 북한 언론사인지 모르겠군요. 좋습니다. 오프라인이 평양 지국을 개설해도 좋아요.”
그 말을 들은 나와 백철웅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이국대는 비열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정말?”
“네? 그게 무슨?”
“대한민국에는 국가 보안법이 존재합니다. 그 대부분이 북한과 연관된 내용이고요.”
“설마?”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디까지나요.”
이국대는 오프라인을 향해 명백하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국가 보안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가 사실 그대로 북한에 대한 기사를 쓰더라도 정부에서 북한을 찬양한다고 딴지를 걸면 국보법 위반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어.’
나는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물었다.
“지금 저희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협박이요? 이런. 그런 섭섭한 소릴.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아니 협박을 한 건 내가 아니라 그쪽이 아닙니까?”
“저희는 한 번도 대통령님에게 그런 짓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시종일관 차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내던 이국대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하? 최근 유튜브로 진행한 300분 토론이 그게 아니면 뭡니까?”
“대통령님이나 정부 여당을 겨냥해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반복될 일에 대한 지적이었죠.”
“그게 하필 제 임기 중에 말이죠.”
“단언컨대 대통령님께 위해를 가하려는 의도는 일절 없었습니다.”
“흥. 의도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리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님. 북한에 남한 언론사의 지국을 개설하는 일은 단순히 저희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남북 관계에 엄청난 진전이 있을 겁니다! 과거 서독 언론들이 동독에 상주하면서 보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독일의 통일은 훨씬 더 뒤의 이야기였을 겁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압니다. 그러니 민영 언론에서는 오프라인이 가고, 공영 방송인 HBS도 함께하자는 거 아닙니까.”
“북한에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고요!”
“좋아요, 좋아. 나도 한 말이 있으니 이 건은 오프라인이 단독으로 진행해 보세요.”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다만. 그건 잊지 마세요. 북한을 미화하는 건 명백한 국보법 위반사항이라는 걸요.”
청와대를 빠져나오는 차 안에서 백철웅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우리를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거 같은데?”
“임기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무턱대고 우리를 공격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클 테고, 그걸 떠나서 저희가 북한을 미화하려고 지국을 개설하는 건 아니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물론 압니다. 하지만 대통령 표정이 단단히 우리한테 삐진 거 같은데…….”
“흥. 일국의 대통령이 그런 사소한 거로 삐지기나 하고 말이죠. 큰 그릇은 아닙니다.”
“절름발이 오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권력입니다. 조심해야 해요.”
“네, 저도 신경 쓰겠습니다.”
* * *
우리는 정부의 허가 아래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육로를 통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백철웅을 비롯하여 본부장급 이상 인사는 모두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자 이들의 기대감은 대단히 컸다.
“비행기나 배가 아니라 버스를 타고 북한에 들어간다니, 엄청나게 설레요!”
이수빈의 말에 최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외국은 수없이 나가 보았지만 북한이라니. 뭔가 마법의 나라에 가는 기분이야.”
“정부에서 평양 지국 개설에 태클을 걸어서 걱정했는데, 두 분 사장님들께서 잘 푼 모양이네요.”
홍지혜의 말에 나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내 옆에 앉은 백철웅은 북한에 왔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긴장 푸세요. 백 사장님. 별일 없을 겁니다.”
“네, 부디 그래야죠.”
내가 백철웅을 진정시키는 사이 뒤에 앉은 박창후가 옆에 앉은 안재영의 등을 톡톡 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번에 안재영 본부장이 평양 지국장으로 가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 설마 몇 년간 북한에서 못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육로를 통해 남한으로 귀환할 겁니다. 안 본부장뿐 아니라 이번에 그와 함께 가는 영상본부의 지강원 기자도 마찬가지고요.”
오프라인의 평양 지국에는 총 다섯 명의 인원이 근무하기로 결정되었다.
지국장에는 취재본부장인 안재영이 특파되어 취재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진과 영상을 담당할 지강원 기자가 함께 파견되었다.
나머지 3명의 T/O는 현지에서 북한 직원을 채용하여 도움을 받을 예정이었다.
최루리가 안재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슬아 씨랑은 괜찮겠어요?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보는데.”
그러자 안재영이 웃으며 말했다.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전화나 문자도 가능합니다.”
“응? 북한인데요?”
“우 사장님이 이미 협상을 끝내 놓으셨더라고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슬아 씨랑은 어차피 요즘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못 만나요.”
“진짜? 너무 적게 보는 거 아닌가요?”
“저도 바쁘고 슬아 씨도 바쁘니까요.”
“아! 요즘 우리 영화 찍는 데에도 출연하고 계시죠? 박 본부장님 슬아 씨 어때요? 연기 잘하나요?”
화제가 제주 4.3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환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어느덧 우리를 실은 버스가 평양에 도착했다.
* * *
오프라인 대표단을 맞이하러 나온 이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김설송과 신복남.
그리고 김금철 중좌가 우리를 밝은 표정으로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설송 님.”
“오랜만입네다, 우세진 동무.”
나는 차례대로 오프라인 인사와 북한 측 인사를 소개했다.
북한 고위인사를 처음 보는 오프라인 대표단은 모두 얼굴에 긴장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신복남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긴장 푸시라우. 우리가 그쪽을 잡아먹을 것도 아니고 왜들 그리 놀란 토끼처럼 얼어 있는 겝니까.”
김설송은 우리를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한 건물로 안내하더니 말했다.
“여기가 오프라인의 평양 지국이 개설될 건물입네다.”
10층 높이의 현대식 건물은 평양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취재를 하기에도 용이해 보였다.
찰칵! 찰칵!
내가 건물을 올려다보자 강한 플래시와 함께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김설송의 뒤에 있던 일련의 취재진이었다.
내가 그들을 가리키며 묻자 김설송이 설명했다.
“평양에 지국이 있는 해외 언론사 기자들 그리고 조선중앙통신 기자들입네다. 한 말씀 하시라우.”
그녀의 말에 뒤에 있던 취재진이 우르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카메라를 둘러보며 개국 소감을 밝혔다.
“오프라인은 언제나 공정하고 올바른 기사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모습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국식을 끝낸 우리는 평양의 양각도 국제 호텔로 이동했다.
양각도 국제 호텔은 북한 최대의 호텔로 높이가 47층에 이르렀다.
백철웅이 그 웅장한 자태에 감탄하며 말했다.
“이야. 북한에서도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군요.”
“하하. 저쪽을 보시면 이거보다 훨씬 높은 건물도 보이실 겁니다.”
내가 북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