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200)

김설송은 회담 장소와 날짜.

그리고 방식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이미 전달했다면서, 내게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어서 빨리 발표하라고 말했다.

“그런 건 남한의 통일부나 북한의 조선중앙방송 등을 통해서 공표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정일 동지께서 오프라인 평양 지국 개설을 축하하며 드리는 선물입네다.”

이런 엄청난 뉴스를 오프라인에서 먼저 발표하라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발표가 오프라인에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건 명확했다.

“어디서 그걸 입력하라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는 노트북도 없이 혼자 이곳에 왔습니다만.”

“우세진 동무. 북한에서 가장 보안이 철통같은 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네까?”

“잘 모르겠군요.”

“바로 우리집입네다. 저걸 쓰시라우.”

그녀는 자신의 컴퓨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이번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관한 간단한 기사를 쓰고는 이를 회사 메일로 보냈다.

“CMS가 웹으로 접속하는 게 아닌가 봅네다?”

“네.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데 여긴 북한이라 깔아도 로그인이 안 될 겁니다.”

“아쉽습네다. 오프라인의 CMS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네다만. 그런데 메일로 보내면 남조선에 있는 직원들이 대신 쓰는 겝니까?”

“네. 그렇지만 기사는 이번에 오픈한 오프라인 평양 지국 홈페이지에도 함께 노출될 겁니다. 여기서 쓴 첫 기사니까요.”

나의 말대로 내가 메일을 통해 보낸 기사는 남한에 있는 오프라인 직원들을 통해 오프라인 홈페이지와 오프라인 평양지국 홈페이지에 둘 다 동시에 게재되었다.

특히 평양지국 홈페이지에는 첫 기사로 등재되었고, 직원들이 신경을 많이 쓴 듯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오가지 않은 탓이다.

내신은 물론이고 외신들도 모두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라며 오프라인이 발표한 기사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은 진보 정권이 집권한 2018년이 되어서야 이뤄지지 않던가. 왜 갑자기 지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김설송의 태도를 보았을 때 북한 내부가 심상치 않다는 건 분명했다.

내가 김금철의 호위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자 호텔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두가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우 사장.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거 진짜인가요? 아님 해킹인가요?”

백철웅의 말에 이덕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백 사장님. 해킹은 불가능합니다. 마르코 녀석한테도 정신 바짝 차리라고 해 두고 왔거든요. 이건 분명 우리 내부에서 올린 기사입니다.”

“맞습니다. 이거 제가 쓴 기사입니다.”

“네? 우 사장이 직접 쓴 기사라고요?”

“아니, 우 사장님. 그건 불가능할 텐데요? 노트북도 안 가지고 가셨잖아요? 외부 접속은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네, 그래서 메일로 보낸 겁니다.”

나는 김설송의 집에서 기사를 써서 메일로 보낸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덕오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그렇죠.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남북정상회담이라니. 그런 이야기 전혀 없지 않았습니까!”

“네, 우 사장님. 아시는 게 있으면 좀 이야기해 주세요!”

모두가 내게 궁금증을 토로했다.

나는 이들을 잠시 진정시키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자세한 사정을 지금 밝히기가 무척 곤란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요. 중요한 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주관 언론사로 우리 오프라인이 선정되었습니다.”

“주관 언론사요?”

“네, 그러니 모두 정신 바짝 차려주시기 바랍니다. 발표 보셨겠지만 바로 내일 오후 3시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요. 지금부터 비상 상황이니까 다들 미리 기사 준비해 주시고, 내일 있을 행사에 만전을 기해 주세요. 어서요!”

모두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내 지시에 따라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눈치를 챈 것이겠지.’

기자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내일 있을 남북정상회담은.

단순한 이벤트성이 아니라는 것을.

* * *

평양 순안 국제공항.

이국대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가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2000년에 있었던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12년 만에.

이곳 평양 공항에서 두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이 재개된 것이다.

“와! 와!!”

어마어마한 함성.

평양 공항에는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이국대의 북한 방문을 환영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내 옆에 있는 안재영이 조용히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요?”

“모르죠.”

“북한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특별기가 공항 쪽으로 다가오자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정일 위원장이 활주로로 걸어 나왔다.

그를 본 평양 시민들이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는 화답이라도 하듯 가볍게 손을 흔들었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김정일의 안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의 표정에선 조급함이 보였다.

‘나이가 많아 피곤한 건가?’

김정일의 나이는 적지 않았다.

벌써 70줄에 접어들었다.

‘아무리 명약을 먹는다 한들 기본적인 체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이국대가 비행기에서 내려오자 두 정상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격하게 포옹했다.

“반갑습네다. 어서 오시라우.”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 둘의 모습을 ENG 카메라로 찍는 박창후의 얼굴에는 감격이 가득했다.

아무 생각 없이 평양행에 따라왔는데 설마하니 남북정상회담을 자신의 손으로 찍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나와 안재영이 노트를 든 채 빠르게 현장 상황을 글로 정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국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정상은 남북한 주요 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북한군 의장대 사열을 받았다.

앞에 선 군인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도열하였습니다!”

의장대의 사열을 받은 두 정상은 공항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있던 북한 주민들을 향해 걸어갔다.

“와아아아!!”

두 사람이 주민들 곁에 가까워질수록 함성이 거세졌다.

이국대는 엄청난 환영 인파에 얼굴에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수많은 인파가 남자는 양복을, 여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는.

한 손에는 꽃다발과 다른 한 손에는 한반도기를 잡고는 사정없이 흔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참 기묘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말이지.’

북한은 이국대를 가리켜 민족의 대역죄인, 역도 등으로 불렀고.

이국대는 북한을 우리의 주적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렇게 험악했던 사이가 어찌 이리도 바뀔 수 있는지 남북 관계란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평양 시민들의 환대를 받은 이국대는 김정일과 같은 리무진에 올라탔다.

어딘가에서 다가온 김설송이 내게 귓속말로 알렸다.

“카메라는 안 되고 우세진 동무만 저 차에 같이 타시라우. 빨리!”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금철이 열어 주는 리무진 앞 좌석에 몸을 집어넣었다.

내가 리무진 안으로 들어서자 이국대가 반가움을 표했다.

“아! 우 사장도 같은 차에 타는 겁니까? 잘됐군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덕분에 이렇게 평양 땅도 밟아 보고, 김정일 위원장과도 만나 뵙게 되고. 고맙습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대통령님과 김 위원장님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내 말에 이국대가 옆에 앉은 김정일에게 감사를 표했다.

“힘든 결정이셨을 텐데 저를 평양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일은 말없이 씩 웃고는 오랜만의 외부 영접이 피곤했는지 두 눈을 감았다.

덕분에 리무진 안의 대화는 나와 이국대의 몫이었다.

“김 위원장님이 많이 피곤하신 것 같군요.”

이국대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고는 나를 향해 말했다.

“그나저나 평양지국 개설만으로도 대단한데, 남북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고. 정말 대단한 양반이오. 우 사장은.”

“아닙니다. 북측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 제가 감사드리죠.”

이국대는 옆에 앉은 김정일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저에게 뭐 더 알려 줄 건 없습니까?”

“저희가 이번 회담의 주관 언론사로 선정되어 모든 기사와 방송은 저희 오프라인에서 진행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좋은 일입니다. 그밖엔?”

이국대는 무언가 더 정보를 달라는 듯 물어봤지만 나 역시 더 이상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 역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는 수많은 인파가 리무진을 향해 꽃다발과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었다.

* * *

노동당 본부청사.

우리를 태운 차량은 지난 2000년과 2007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의 장소였던 백화원 영빈관이 아니라 김정일의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본부청사에 도착하였다.

이번 회담 역시 백화원 영빈관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이국대가 놀란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여긴 백화원 영빈관이 아닌 것 같은데?”

“네. 대통령님. 제 생각에 여긴 노동당 본부청사인 것 같습니다.”

“노동당 본부청사요? 북한의 심장이라는 곳 아닙니까? 우리로 치자면…….”

이국대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사이.

어느새 눈을 뜬 김정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맞습네다. 남조선 입장에서는 청와대입네다. 제 집무실이 있는 곳이디요. 우리는 1호 청사라고 부릅네다만.”

노동당 본부청사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로 외부인에게는 일절 공개되지 않는 미지의 땅이었다.

평양의 심장, 혁명의 수뇌부, 금단의 성역 등.

노동당 본부청사를 가리키는 수많은 말들이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를 알려주었다.

‘백화원 영빈관이 아니라 이곳에서 회담을 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회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 아닌가.’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심박수가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노동당 본부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온 박창후가 카메라를 찍고, 안재영과 홍지혜가 그 앞에서 소식을 전했다.

본부청사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된 벽면과 바닥. 그 위로 붉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된 고급스러운 카펫이 시선을 사로잡는 가운데, 샹들리에를 비롯한 각종 장식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청사 로비 앞에서 간단히 악수를 나눈 두 정상은 2층에 위치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했다.

평양 지국 특파원으로 배정된 지강원은 사진기를 들고는 반대쪽 계단으로 빠르게 올라가 2층으로 올라오는 두 정상을 찍었다.

다행히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 정상이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사이.

김설송이 또다시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내가 조용히 속삭였다.

“정상회담장 안에는 방송 카메라 한 대, 사진 카메라 한 대. 그리고 우세진 동무만 들어가라우.”

“알겠습니다. 또 누가 들어갑니까?”

“김정일 동지와 이국대 대통령 두 분만 들어갈 겁네다.”

“아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전혀?”

“네, 어차피 카메라는 실시간 생방송 아닙네까?”

“그렇습니다만.”

“그럼 됐습네다. 우린 밖에서 확인할 테니 빨리 들어가 보시라우.”

나는 안재영과 홍지혜에게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박창후, 지강원과 함께 정상회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백두산 그림이 우리를 압도했다.

‘김정일 일가는 백두산 혈통임을 강조한다더니 그림 크기가 실로 어마 무시하구나.’

백두산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화강암과 대리석 벽면은 마치 유리처럼 번쩍거렸다.

김설송이 말한 인원이 모두 방 안으로 들어서자.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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