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문을 닫았다.
김정일이 나를 쳐다보더니 재차 물었다.
“이거 저번 인터뷰처럼 생방송 맞습네까?”
“네, 위원장님. 생방송 맞고, 전 세계가 두 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알겠습네다.”
그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방송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 * *
회담은 약 1시간 30여 분 동안 이어졌다.
두 정상은 남북한 교류와 협력에 대해서 파격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제안은 거의 김정일의 입에서 나왔고 이국대는 그저 놀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끊어진 동해북부선을 잇고 한반도 철도망을 연결하는 겁네다. 남북이 철도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로도 뻗어나갈 수 있디요.”
그뿐 아니었다.
개성공단 개발 및 육로관광 노선 확대,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남북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남북 관계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 주었던.
북핵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꺼낸 것도 바로 김정일이었다.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 김일성 주석의 유훈입네다. 이번 북남정상회담을 계기로 꼭 실현을 하겠습네다. 내 약속합네다.”
이국대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의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게 전혀 없는 제안이었다.
‘손해는커녕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교류를 끌어낸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겠지.’
자신의 집권 이후 험악해진 남북관계로 진보 진영의 비난이 거세진 가운데.
이전 정부에서 이뤄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보다도 훨씬 더 진일보한 내용들이 아니던가.
이국대는 기쁨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너무 좋은 제안이십니다. 제 귀에는 김 위원장님의 제안이 마치 우리 곧 통일하자는 것으로만 들립니다.”
“통일…… 통일이라…….”
김정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입을 닫았다.
1시간 반 동안 쉴 새 없이 이야기를 꺼낸 김정일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이가 70세나 되었고 여러 지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그는 원래 작년 겨울에 심근경색으로 사망을 해야 정상이었다.
내가 평양을 방문해 단독 인터뷰를 따낸 시기였다.
‘무언가 역사가 바뀌었는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몸이 좋은 건 아니로군.’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정일을 바라보는 사이.
그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내가 근처로 다가가자 그는 내 귀에 대고 귓속말을 전했다.
“우세진 동무. 카메라를 나와 이국대 대통령 둘이 아니라 나 혼자만 잡아 줄 수 있갔습네까?”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다 죽어가는 호랑이와 같았다.
말할 기운조차 없는데 억지로 영혼을 짜내는 것처럼.
“김 위원장님 혼자만요?”
“내 중요한 할 말이 있카서.”
나는 이국대에게 김정일의 말을 전했다.
이국대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우리는 이국대가 앉아 있던 자리로 카메라를 옮겼다.
카메라 안에는 김정일 혼자만이 단독으로 잡혔다.
우리가 사인을 보내자 김정일은 헛기침을 잠깐 하더니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 그러니까 나의 유일한 계승자를 내 딸 김설송으로 정한다.”
비록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명확하게 들렸다.
카메라를 잡고 있던 박창후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 역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김정일과 이국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아야만 했다.
얼어붙은 이국대의 표정이 지금의 상황을 그야말로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었다.
김정일의 폭탄 발언이 있고 나서 회담장 안은 꽤 오랜 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엄청난 수의 군인들이 회담장 안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다.
척, 척, 척!
군화 소리가 실로 요란했다.
이국대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내 팔뚝을 붙잡았다.
박창후와 지강원 역시 어쩔 줄 몰라 하며 카메라를 허공에다 이리저리 흔들었다.
북한 군인들이 회담장 안을 빼곡히 메우자 마지막 인물이 들어왔다.
김설송이었다.
“고생들 많으셨습네다. 피곤하실 터니 각하께서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하시디요. 오프라인 분들도 같이.”
김설송은 나와 오프라인 대표단 전원의 숙소를 양각도 국제 호텔에서 백화원 영빈관으로 옮기라 말했다.
“대체 왜 갑자기 숙소를 옮기라는 겁니까?”
“그쪽이 더 안전합네다. 이국대 대통령 각하와 남측 수행 인원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저희도 관리하기 용이합네다.”
김설송은 더는 이야기해 주지 않고는 빨리 버스에 오르라 말했다.
짐은 자기네가 옮겨 줄 테니 우선은 몸만 먼저 가 있으라면서.
노동당 중앙청사에서 백화원 영빈관까지 가는 거리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열광하던 평양 시민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야말로 유령 도시가 따로 없었다.
“조금 전까지 엄청난 인파로 들썩이던 곳 맞죠? 지금은 개미 한 마리 안 보이는데요?”
박창후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나 역시 방북은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북한의 시스템은 내 머리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사라진 평양 시민 대신.
엄청난 수의 군인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며 호위에 나섰다.
지금 타고 있는 버스 안에도 총을 든 북한 군인들이 5명이나 탑승하여 긴장감을 높였다.
목적지인 백화원 영빈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곳곳에 보이는 인물들은 모두 군복을 입은 군인들로 마치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우 사장, 괜찮겠지요?”
백철웅이 불안한 듯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북한의 공식 후계자는 김설송이 되었고, 우리는 그녀의 비호 아래 있었다.
불안한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각자 방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와 이국대를 영빈관 로비로 불렀다.
김설송이었다.
그녀는 우선 우리에게 사과했다.
“갑작스럽게 일정이 진행된 점, 사과드립네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후계자는 뭐고 지금 이 상황은 또 뭐고요?”
이국대가 따지듯 물었다.
“그대롭니다. 제가 북조선의 새로운 후계자로 지명된 겁네다.”
“공식 후계자는 김정은 아니었습니까?”
“조금 전까지는 그랬디요.”
“거참…….”
“사실 정은이 녀석은 잦은 실책으로 김정일 동지의 눈 밖에 난 지 오래입네다.”
“네?”
김설송은 나와 이국대에게 왜 자신이 북한의 새로운 후계자로 지명되었는지.
그리고 왜 기존 후계자였던 김정은이 신뢰를 잃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김정은은 이복 누나인 저보다 9살이나 어리고, 아직 실무 경험이 많지 않습네다. 게다가 김정일 동지께서 내리는 과제를 번번이 실패해 신임을 잃었디요.”
“그래도 김정은은 남자이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여자가 후계자로 지명된 적이 있습니까?”
“남자고 여자고 고거이 뭐가 중요하겠습네까? 백두혈통이라는 게 더 중하디요.”
“백두혈통?”
“내래 김일성 주석이 인정한 유일무이한 백두혈통의 손녀입네다. 일본인 여자의 피를 이어받은 김정은이 따위한테 비교할 수 없습네다.”
김정은을 낳은 고용희는 조선계 일본인 무용수였다.
‘혹자는 김정은을 백두혈통이 아닌 후지산 혈통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지.’
반면 김설송의 모친인 김영숙은 김정일의 본처로 아버지인 김일성이 맺어 준 인연이었다.
김설송이라는 이름 역시 김일성이 직접 지어 줄 정도로 김설송은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아버지인 김정일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백두혈통이라는 건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도 김 위원장이 당신을 차기 후계자로 지명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이국대의 말에 김설송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답했다.
“물론입네다! 저는 콤퓨터와 인터네트에 밝고 김정일 동지께서 내주신 숙제에 실패해 본 경험이 없습네다. 인민군 소속 해커부대는 모두 저의 지시를 따르고 있습네다.”
“허허.”
“게다가 시대가 북남 화합과 교류를 원하고 있습네다. 콤퓨터와 인터네트가 가장 중요한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핵무기로 버티는 건 자멸의 길이라는 게 김정일 동지와 저의 생각입네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발표를 꼭 오늘 회담에서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이국대가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김설송이 미안함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미안합네다. 각하께는 정말이지 죄송하게 되었습네다. 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었답네다.”
나는 김설송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사유라도?”
“오늘 보셨겠지만, 김정일 동지의 몸 상태가 좋지 않습네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래도 움직일 기력이 있으실 때 북남정상회담이라는 큰 자리에서 이를 발표해 그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습네다.”
“오프라인에게 방송하게 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까?”
“맞습네다. 남조선 최고의 언론사인 오프라인에서 진행한 생방송을 통해 온 천하에 자신의 입장을 전하신 겁네다. 이쯤 되면 누구도 딴지를 걸 순 없겠디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처럼 폐쇄적인 국가에서 남성도 아닌 여성이 지도자가 된다고 하면 그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김정은은 물론이고 고위층 중에서도 반발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이국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이야기로 궁금증은 풀렸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보안이 강화되었는지 알려 줄 순 없습니까? 어느 정도의 보안은 이해하지만 심히 불쾌할 정도입니다.”
“네. 각하. 죄송하게 되었습네다. 고저 아직 당내에서 정은이를 지지하는 세력이 있습네다.”
“그 말인즉 우리 모두가 위험할 수 있다?”
“일 없습네다. 제가 책임지고 여러분들을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우!”
그렇게 말하는 김설송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옅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국대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남북 교류도 좋고, 여자 후계자도 좋고, 핵무기 포기도 좋습니다만 지금은 저희가 어서 남한으로 돌아가는 게 더 좋을 것 같군요.”
“당 내부가 정리되는 대로 공항으로 모셔다드릴 겁네다. 저희…….”
김설송의 말이 채 끝나기 전.
탕! 탕탕!!
숙소 인근에서 커다란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국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 * *
김금철이 와서는 김설송을 어디론가 데려갔고, 남측 경호원들이 우리를 둥그렇게 둘러쌌다.
이국대가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젠장, 북한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경호처장이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피다 들어갈 테니까 어서 대통령님을 모시고 들어가세요.”
경호원들은 즉시 이국대를 데리고 로비에서 사라졌다.
호텔에 있던 군인들이 죄다 총소리가 난 곳으로 사라져 호텔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다행히 밖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호텔 입구에서 밖을 살며시 내다보았다.
멀리 군인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쿠데타는 아닌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탕! 탕! 탕탕!!
다시금 총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나는 깜짝 놀라 로비 안으로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