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프라인 대표단이 머무는 방 쪽으로 이동했다.
모두 몸을 숙인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박창후와 안재영 그리고 이덕오를 부르고는 물었다.
“다들 허리 최대한 숙이시고요! 지금 인터넷 연결되어 있습니까? 방송되냐고요?”
“아 네네. 다행히 인터넷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럼 박 본부장님은 조심해서 창문에 카메라 설치하신 다음 유튜브로 당장 생방송 중계해 주세요. 이 이사님이 중계 도와주시고요.”
“네 넵!”
“그리고 안 본부장님은 바짝 엎드려서 노트북으로 기사 써서 당장 출고하세요. 빨리!”
박창후는 절대 창문 위로는 몸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삼각대를 올려 카메라를 세웠다.
그러자 노트북 화면을 통해 창밖의 풍경이 보였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북한군끼리 총을 쏘며 서로 싸우고 있음은 분명했다.
나는 여직원들을 최루리가 머물던 방으로 한데 모은 뒤 주의를 줬다.
“절대 창문 위로 몸을 올리지 말고 이 방에서 나오지 마세요. 홍 본부장님과 최 본부장님은 노트북 인터넷 연결되니까 가능한 한 빨리 SNS랑 번역 작업 진행해 주시고요.”
모두가 벌벌 떠는 와중에서도 침착하게 노트북을 열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이 기자라는 걸 망각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백철웅 역시도 노트북을 열어 기사를 쓰기 시작했고, 지강원도 부지런히 오가며 현재 오프라인 대표단이 취재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프라인이 진행하는 유튜브 생방송은 그야말로 엄청난 동시 접속자로 인해 방송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댓글을 통해 현재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그리고 오프라인과 이국대의 안부는 괜찮은지를 물었다.
<쿠데타입니까? 쿠데타인 거죠?>
└ 아뇨.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오프라인 분들 모두 괜찮으세요? 제발 아무 일 없기를>
└ 네. 다행히 저희는 모두 무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국대 대통령은 어디 있나요? 위험한 상황 같은데!>
└ 대통령님은 안전한 곳에 피신 중입니다. 걱정 마세요.
이덕오는 중계를 하는 틈틈이 유의미한 질문에는 답변하면서 소통을 이어나갔다.
약 한 시간가량 이어지던 총성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며 어둠이 몰려오자 점점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계가 저녁 7시를 가리킬 무렵.
방 안으로 김금철이 들어왔다.
그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가득 안고는 기쁘게 말했다.
“제압했습네다! 이제 걱정들 마시라우!”
제압했다는 말에 모두가 뛸 듯이 기뻐했다.
최루리는 어찌나 기뻤던지 생면부지의 김금철을 꼭 껴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오래지 않아 김설송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로비에 이국대를 비롯한 오프라인 대표단을 모은 뒤 사건의 정황에 대해 밝혔다.
“많이 놀라셨디요? 이번 사건은 김정은의 추종 세력이 벌인 장난질입네다.”
“장난질이요? 쿠데타가 아니고요?”
이국대가 반문하자 김설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북조선에서 쿠데타는 불가능한 일입네다. 단지 정은이를 추종하던 일부 잡것들이 마지막 발악을 한 것이디요.”
“발악치고는 너무 전면적이던 것 같습니다만.”
나의 물음에 김설송이 씩 웃으며 답했다.
“김정은을 지지하는 일개 부대가 오금이 저려 미쳐 날뛴 것이디요. 일 없습네다.”
“그럼 김정은은?”
“조금 전 제 발로 저한테 와서는 항복 의사를 표했습네다. 자기는 이 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면서 말입네다.”
“그랬군요. 반란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반란은 무슨. 그런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네다.”
그녀의 말을 종합하면 김정은을 추종하던 일개 세력이 김설송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자 벌인 반란이었다.
김설송은 끝까지 반란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게 반란이 아니면 뭐가 반란이란 말인가.
총성이 울리는 내내 죽을상을 하고 있던 이국대도 이제야 얼굴을 활짝 피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승리입니다. 아니, 한반도의 승리예요!”
* * *
오프라인 대표단은 이국대 대통령과 함께 특별기를 통해 귀국했다.
이국대 대통령의 지지율은 단숨에 70%를 뛰어넘으며 임기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도 겨우 50% 수준이었는데 임기 말에 70%를 넘다니. 이 정도면 진영을 떠나 대부분이 이국대를 지지한다고 볼 수 있겠지.’
전 세계가 남북 화해와 협력을 이뤄낸 이번 정상회담에 많은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귀국 다음 날.
높아진 지지율에 기분이 좋아진 이국대가 우리를 청와대 축하 파티에 불렀다.
이번 평양행에 함께하였던 본부장급 이상 모든 대표단이 초대 대상이었다.
파티에 도착하니 정관계 고위인사들과 재계 총수들이 가득했다.
원화성 회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우리를 발견한 그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이게 누구십니까!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히어로 우세진 사장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원 회장님.”
“평양 지국 개설만 해도 엄청난 성과인데 이건 진짜 대단합니다.”
“저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게 정말이지 속전속결로 이뤄졌죠.”
“그게 다 우 사장이 뛰어나서가 아니겠습니까? 북한의 차기 지도자인 김설송에게도 단단히 눈도장을 찍혔다고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백철웅이 웃으며 답했다.
“네, 회장님. 김설송이 우 사장 옆에 딱 달라붙어서 귓속말하는데 보통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하하.”
“대단한 일입니다. 북한 차기 지도자와 그런 관계를 맺다니.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죠. 큰일 하셨습니다.”
원화성과 이번 평양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이광우 의원이 야당 의원들과 함께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게 자신의 커다란 오른손을 내밀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우 사장님! 역대 그 어떤 진보 정권도 해내지 못한 일을 우 사장이 해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필 왜 이번 정권에…….”
그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흐렸다.
그러나 그의 속뜻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왜 진보 정권이 아닌 보수 정권에. 그것도 그동안 북한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국대 정부에서 해냈느냐는 거겠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응?”
“북한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 때 남북 협력을 이뤄내서 좋고, 보수 정권하에 이뤄진 협력이니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지금 회담의 결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깎아내리지 못할 겁니다.”
내 말에 주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화성도 내 말에 동의하며 말을 보탰다.
“그렇죠. 보수 정권 집권 시기에 이뤄낸 성과이니 추후 또 보수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말을 바꾸기는 어려울 겁니다.”
보수 언론사에서도 이번 회담의 성과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고려 일보조차 말이다.
이광우 의원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국대를 비롯하여 여당 쪽 인사들이 내 쪽으로 와서 이번 회담의 성과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들은 임기 말 지지율이 높아져서 국정을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북한에서 비명횡사할 뻔한 것도 사실이지만 덕분에 국정 수행에 탄력을 받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잘 좀 부탁합니다.”
백철웅이 호텔 부근에서 총싸움이 벌어진 것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릅니다. 대통령님을 비롯하여 모두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
“그 와중에 생방송을 진행하고 기사를 쓴 오프라인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기자 정신이라는 게 뭔지 저도 이번에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우 사장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무튼 오늘 행사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마음껏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그가 사라지자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던 이들이 나타났다.
재계 총수들이었다.
그들은 정관계 인사들과는 다르게 북한과의 경제 협력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최대 대기업인 성삼 그룹의 총수인 인준영은 개성공단에 관심이 많다며 취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을 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중국이나 베트남은 아무리 인건비가 싸다고 해도 결국 외국이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그동안 믿을 수 없는 곳이었지만,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말을 들으니 크게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네, 회장님. 김설송이 권력을 잡으면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됩니다. 남측 회사에도 큰 기회가 되겠죠.”
“그래요.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주세요.”
재계 2위인 미래 그룹의 총수 명태산도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선친께선 늘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죠. 그 오랜 숙제를 재계나 정치권이 아닌 언론에서 이뤄내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별말씀을요. 선친이신 명공소 어르신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하던 일은 아직도 제 뇌리에 선명합니다.”
“하하. 전에 어떤 기사를 보니 당시 아버님께서 소 떼를 옮길 때 사용한 방북 트럭을 북한에서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많이 낡았습니다. 북한에 저희의 최신 트럭이나 자동차를 팔 수 있다면 북한 주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죠.”
“네, 이번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한 경제 교류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 올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나는 조금 피로감을 느꼈다.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 호스트인 이국대가 아니라 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행사장을 나와 바깥에서 바람을 쐬었다.
주변을 둘러싸던 공기가 차츰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군.’
하늘을 보니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멍하게 보름달을 쳐다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와인잔을 건넸다.
원화성이었다.
“고맙습니다.”
“뭘요. 피곤하죠? 다들 돈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우 사장님 주변을 떠나지 않는군요.”
“각오는 하고 왔지만 피곤하긴 하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번 회담 성과가 너무 엄청났으니까요. 저도 설마하니 김정일이 그런 파격적인 제안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게요. 저도 당시 현장에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저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요.”
“북한 전문가들이 그러더군요.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 전에 자신의 과오를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고 결심을 굳힌 것 같다고.”
“네, 저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더군요. 북한의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은 것 같았고요.”
“그래도 아들인 김정은이 아니라 딸인 김설송을 후계자로 선택한 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뛰어난 사람입니다. 북한 해커부대의 우두머리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조심해야겠네요.”
“뭘요?”
“우 사장에게 밉보이면 북한 해커 부대가 총출동해서 제 개인 정보를 다 털어 버리는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하하. 농담입니다. 드시죠.”
우리는 가볍게 건배를 하고는 와인을 마셨다.
달곰한 첫맛에 이어 풍부한 과일 향이 입속 가득 올라왔다.
원화성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보름달이 참으로 아름답군요. 그런데 우 사장님.”
“네.”
“우 사장님은 꿈이 뭡니까?”
“꿈이요?”
꿈이라니.
그런 건 10대 청년들에게나 묻는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니었던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가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밤하늘을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제가 오프라인에 투자한 건 우 사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올드미디어는 쇠퇴하고 뉴미디어가 흥할 거라는 이야기는 일말의 관심 사항도 아니었어요.”
“그러셨나요? 의외네요. 원 회장님은 뉴미디어에 관심이 많으신 줄 알았는데.”
“물론 관심이야 있죠. 그렇지만 그보다 우 사장님에게 더 관심이 갔습니다. HBS를 수석으로 합격한 양반이 신생 매체의 사장으로 간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뭐랄까. 이 사람은 좀 특이하구나 싶었죠.”
“특이하다라. 구체적인 예가 있을까요?”
“그게 참 저도 뭐라고 하기가 어려운데. 도사? 신선? 아무튼 뭔가 다른 차원의 사람 같았습니다. 하하. 제가 꺼내놓고도 말이 이상하군요.”
회귀의 영향일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는 그냥 보통 사람입니다. 금수저도 아니고 뭣도 아녜요.”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자신의 야망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능력이 중요하죠. 그런데 제 말에 아직 대답 안 하셨습니다만.”
“아. 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