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200)

그제야 원화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쪽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꿈이라.

회귀 이후 내 꿈은 언제나 명확했다.

‘기레기가 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걸 말하자니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이미 기레기는 아니지 않나. 더 이상 기레기가 아니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고 보니 스스로도 최근에 기레기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계 최고 언론사. 아니, 세계 최고 퀄리티의 기사가 유통되는 플랫폼을 제 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플랫폼이요?”

원화성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네,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앞으로의 언론사는 기사만 잘 써서는 한계에 부딪힐 게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죠?”

“아무리 좋은 기사를 써도 독자들이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기사를 쓰는 매체도 너무 많고, 매체를 떠나서 요즘은 개개인이 미디어인 세상이니까요.”

“그렇죠. 굳이 기사로 정보를 안 봐도 블로그니, SNS니, 유튜브니. 각 개인이 양질의 정보를 생산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전제 조건일 뿐이고요. 중요한 건 좋은 기사를 유통하는 플랫폼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플랫폼이라…… 다톡 같은 메신저를 통해?”

“다톡도 좋은 플랫폼이죠. 일본에서는 기사를 다톡의 일본판인 잇쇼니를 통해 많이 보고 있다고 합니다.”

“네. 저도 그 기사 봤습니다. 갈수록 PC보다는 모바일을 통해 정보를 접할 테니까요. 아주 좋은 현상 같습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모바일도 중요하지만, PC의 수요도 결코 적지 않고요. 또한 국내만으로는 한계가 크니까요.”

“그래서 베트남 지사도 만들었던 것 아닙니까. 요즘은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 뉴스도 다루는 것 같던데.”

“네, 인력을 늘려서 동남아 전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의 본고장인 북미나 유럽 쪽에서는 미약합니다.”

“하하. 그거 압니까, 우 사장님?”

“어떤?”

“외신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매체가 바로 오프라인이라는 걸.”

“그런가요? 그건 몰랐군요.”

“제 지인 중에 외신 기자가 참 많습니다만 그들은 늘 오프라인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 작은 매체가. 그것도 한국이라는 변방에서 저렇게 뉴미디어를 잘 다루는 거지? 라면서요.”

“그래도 아직 일반 대중들은 잘 모릅니다. 갈 길이 멀죠.”

“그겁니다. 제가 그래서 우 사장님을 존경하고 또 좋아하죠. 그 지치지 않는 열정과 엄청난 스케일의 야망!”

“부끄럽습니다.”

“부끄럽긴요. 진심입니다.”

그와 나는 한동안 보름달을 바라보며 남은 와인을 홀짝였다.

스치는 바람에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오프라인은 회담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미칠 성과와 향후 영향을 분석하는 시리즈 기사를 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순서는 바로 이번 회담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이국대 대통령.

우리는 청와대 접견실에서 그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는 옷깃에 핀 마이크를 착용한 채 장비를 점검했다.

그 모습을 본 주전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홍지혜 본부장님이 인터뷰어를 하시기로 했다면서요?”

나는 인터뷰에 앞서 메이크업을 받는 이국대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런데 인터뷰이께서 저를 콕 짚어서 이번 인터뷰는 제가 꼭 했으면 한다고 요청하시더군요.”

“우 사장님이 홍 본부장님보다 더 인지도가 높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이런 건 저보다는 주 기자가 직접 하는 게 미래를 위해서는 더 좋을 텐데 아쉽죠.”

“아네요. 저따위가 감히요. 그리고 저 카메라는 여전히 무서워서요. 그냥 당분간 글만 쓰겠습니다.”

주전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국대의 메이크업이 끝났다는 사인이 보였다.

“오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뭘요. 오프라인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 관련 시리즈 기사를 낸다고 들었는데, 그 첫 주자로 저를 지목해 주셔서 제가 영광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내 말에 이국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면 그동안 불안정했던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국내의 안보 불안 요소가 말끔히 사라진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이 북한을 흡수 합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도 불식시킬 수 있었고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북한과 많이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 대표적인 예이고요.”

“네, 북한과 관련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혹시라도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가 불안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역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며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습니다. 또한 이번 회담을 통해 앞으로는 남북이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전 진보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실속 없는 퍼주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국대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답했다.

“네, 그런 우려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과거 정상회담과는 여러 가지로 크게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요?”

“우선은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과거와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개방적이고 열린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국대를 시작으로 황유명 총리와 주요 정당의 대표들.

그리고 인준영과 명태산 등 주요 그룹의 총수들은 물론 이슬아와 김제철 등 연예계 인사들까지.

오프라인은 각 분야의 최고를 찾아가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유명인사의 인터뷰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광화문 광장에 임시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지나가는 시민들 누구나 이곳에 들어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처음에는 뻘쭘해하던 시민들도 자신들의 모습이 오프라인 홈페이지와 유튜브 등에 게시되자 흥미를 보였다.

나중에는 임시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어찌나 길던지 광화문 광장을 꽉 채울 정도였다.

우리는 조를 나눠 이곳을 가이드하는 직원을 상주시켰다.

취재본부의 이세윤이 시민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시민 여러분! 한 사람당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은 딱 3분입니다. 뒷 분들을 위해 시간을 제한하고 있으니 하고 싶으신 말씀은 미리 잘 준비하고 촬영에 임해 주세요!”

발표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였지만 그럼에도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못했다.

“우 사장님, 지금 스튜디오에 설치된 카메라가 겨우 3대잖아요? 조금 더 공간을 좁혀서 5대로 늘리면 안 될까요?”

“그럼 다른 사람 목소리가 간섭을 해서 촬영이 어렵습니다.”

“임시 스튜디오를 늘리면 좋을 텐데요.”

“그 정도의 인력과 여유는 없으니까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죠.”

내가 웃으며 말하자 이세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때 우리 앞에 온 여고생이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펜과 종이었다.

“우세진 사장님! 사인해 주세요!”

“저도요!”

커다란 안경을 낀 둘은 같은 학교의 친구인 것 같았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고 친한 사이인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고는 그녀들이 건넨 종이에 사인하였다.

“이름이?”

“저는 천유리이고요!”

“저는 한희진이에요!”

“두 분 다 이름이 예쁘시네요.”

“헤헤. 고맙습니다!”

해맑은 미소를 보인 두 사람은 차례대로 임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속이 뚫려 있는 임시 스튜디오 안은 카메라 셋과 의자 셋이 전부였다.

그들은 미리 알려 준 대로 의자에 앉고는 짧은 심호흡과 함께 카메라와 연결된 리모컨을 눌렀다.

카메라의 LED에 붉은색 등이 켜지면서 녹화되고 있음이 표시되었다.

단발머리를 한 한희진이 낭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안녕하세요! 대현 고등학교 2학년 3반 한희진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합의서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녀는 전날 준비를 많이 한 듯 전혀 긴장한 기색 없이 당당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저희 세대는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아니거든요. 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별개의 국가, 그것도 자기 멋대로의 이상한 나라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녀의 말에 임시 스튜디오 앞에서 촬영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웃었다.

“하하. 저 아가씨 참 당돌하구먼.”

“그러게요. 귀엽네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리 없는 한희진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이 되어서 가장 기쁜 건 다름 아닌 기회의 확장입니다. 저희 세대는 정말이지 취업이 너무 어렵거든요. 그런데 만약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 남한 사람들만이 아닌 북한 사람들까지 고객이 되는 그런 세상이 된다면 엄청난 기회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너무 기쁘고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똑 부러진 아이였다.

“아무튼 이국대 아저씨 고맙고요, 김정일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아 참! 우세진 오빠도 사랑합니다! 오프라인 파이팅!!”

한희진의 발언은 현장은 물론 온라인상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발언도 발언이었지만 그녀의 당돌한 태도와 귀여운 외모가 한몫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깜찍하다, 귀엽다, 솔직하다 등 여러 댓글을 남겼다.

<크아! 삼촌이 아주 희진이한테 푹 빠졌다! 솔직담백 4차원 아주 매력적이야!>

<그녀 말대로 북한하고 잘 되면 젊은 세대한테는 북한이 새로운 기회의 땅인 거 사실 아님?>

<ㅋㅋㅋ 이국대는 아저씨고 김정일은 할아버진데, 왜 우세진은 오빠임? 삼촌일 것 같은데.>

물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보는 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중절모를 쓴 한 노인은 오프라인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갑자기 임시 스튜디오에 난입하여 소란을 일으켰다.

“야! 야! 이 썩어빠진 빨갱이 자식들아! 북한하고 김정일이 얼마나 사기꾼 놈들인지도 모르고 이 빌어먹을 놈들아!”

다행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만류하여 소란은 빠르게 정리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장 그를 찾아갔다.

내가 오른손을 내밀자 그는 내 손을 뿌리치더니 내 얼굴을 잘 알고 있다며 삿대질을 했다.

“이놈! 이놈! 하늘이 무섭지 않더냐! 어떻게 그 빌어먹을 북괴 놈들하고 같이 짜고 이런 장난을 벌인단 말이냐!”

“어르신. 북한은 이제 더 이상 소련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독립적인 국가이죠.”

“요놈 봐라! 들었소? 경찰관 나리들! 요놈이 아주 위험한 사상을 가진 놈이오. 체포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이놈이라고!”

“진정하세요, 어르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불만이 있으신 것 같은데 좀 기다려서라도 줄을 서서 의견을 내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이놈아! 그런 요상한 것들로 선량한 국민들을 현혹하면 안 된다! 이놈아!”

“어르신, 제가 어르신을 모시고 임시 스튜디오에 갈 테니 카메라 앞에서 의견을 말씀하시는 건 어떨까요?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것보다 전 국민을 향해 이야기하시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카메라가 전 국민들한테 방송이 된다고?”

“네. 물론입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고요, 나중에 저희가 편집해서 녹화본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고요.”

“그래에?”

그는 그제야 약간 목소리 톤을 낮추고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특별히 어르신은 줄 서지 않고 바로 발언할 수 있도록 해 드릴 테니까, 같이 가시죠.”

어차피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촬영하려는 이는 많지 않을 터이다.

같이 가자는 내 말에 주변의 경찰관들이 움찔거렸다.

“여기 어르신은 제가 모시고 갈 테니 그냥 풀어 주실 수 있나요?”

경찰관들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네. 여기 서명만 해 주시면 되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제가 모시고 갈게요.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어이구, 뭘요. 혹시 모르니 저희도 동행하겠습니다. 박 순경! 나랑 같이 가세.”

파출소를 나온 우리는 곧장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임시 스튜디오로 향했다.

촬영하려는 이들은 거의 없어 한산한 가운데 임시 스튜디오에 설치된 조명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경찰관 두 명이 뒤에서 대기한 채로 중절모를 쓴 노인이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그는 조금 전 소란을 일으켰을 때와는 다르게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를 뒤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카메라를 보고 말하면 된다고?”

“네, 어르신. 준비되시면 그 버튼 누르시고 카메라 보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는 크게 침을 삼키고는 버튼을 눌렀다.

“흠흠.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저는 임태식이라고 합니다. 들리십니까?”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괜찮은지 물었다.

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재작년에 있었던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제 아내를 잃은 사람이올시다.”

그 말에 나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사연이 있는 분이었구나.’

그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화가 난 듯 카메라를 향해 쏘아붙였다.

“북한은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미개한 국가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 남한 사회를 공산화하려고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어요! 제 아내도 그렇게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절대 북괴 녀석들은 믿어선 안 됩니다!”

그는 약속된 시간인 3분이 훨씬 지난 10여 분 동안 북한에 대한 저주 섞인 발언을 사정없이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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