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뭐야, 이슬아는 또 왜?>
<오 누님! 오늘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오프라인에는 무슨 일로?>
<누나 나 죽어…… 어쩔!>
큐사인이 떨어지자 그녀는 천사 같은 미소를 보이며 스튜디오가 후끈 달아올랐다.
나도 덩달아 미소를 보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슬아 씨. 오늘 폭탄 발언을 하실 게 있어서 오프라인을 찾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우세진 사장님.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요. 어제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면서 생각을 굳혔습니다.”
“어제 사건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제가 소속된 토닉 엔터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김대진 대표가 강제 추행 혐의로 긴급 체포된 건이요?”
“맞습니다. 차마 제 입으로 꺼내긴 그랬는데 먼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렇게 급하게 저희를 찾아주셨을까요?”
이슬아는 말없이 카메라를 바라보더니.
우아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샐쭉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얼마 전 오프라인에서 저희 소속사와 관련하여 기사화했던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화이트스노우는 불공정 계약의 피해자입니다.”
“네?”
갑자기 댓글 창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뭐?뭐뭐뭐뭐?!>
<헐! 그게 진짜였음?>
<와 슬아 누나 팀킬 쩐다! 반전미 죽이네!>
이슬아가 나를 바라보며 빠르게 윙크를 날렸다.
# 5장 총선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12월에 있을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실시되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중요한 선거였다.
오프라인은 제19대 총선 특별취재팀을 설립하고 팀장으로 최루리를 임명했다.
“하아. 어쩌다 제가 이번 총선 팀장을 맡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그녀는 정치 쪽에 관심이 많고 생활 정치를 누구보다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구당 당원 활동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 중에서는 정치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입니다.”
“뭘요. 그저 유령 당원일 뿐이에요.”
“주말마다 지구당 주요 강령인 쓰레기 수거 자원 봉사 활동 다니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당은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보다 환경 보호를 중요시하는 정당이었다.
최루리는 부끄러운 듯 팀에서 만든 자료를 서둘러 화면에 띄운 뒤 발표를 진행했다.
“아시겠지만 이번 선거는 향후 대선의 향방을 가늠할 전초전이자 올해 상반기에 치러지는 국내 행사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이벤트입니다.”
그녀의 말에 백철웅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루리는 이내 화면을 바꾸어 이국대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을 보여주었다.
“원래라면 그 어떤 정부가 되었든 임기 마지막 해의 지지율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그녀가 레이저포인터로 이국대 옆의 숫자를 가리켰다.
“73%. 그야말로 압도적인 숫자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번 총선에서도 여당인 국일당의 압승을 예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자 홍지혜가 손을 들고는 반문했다.
“하지만 정권심판론 역시 만만치 않잖습니까? 야권에서는 선거 연대를 통해 지지층을 끌어모으고 있고요.”
“맞아요.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야권 연대가 기대만큼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유는요?”
“우선 남북정상회담의 후광이 너무 크기에 정권심판론이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게 하나고요. 대선과 다르게 총선은 지역 단위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시합이니까요. 연대하더라도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음…… 일리 있네요.”
홍지혜는 백철웅의 얼굴을 살짝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제1야당인 민주통일당에서는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광우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국일당에 지면 정치계를 은퇴하겠다는 작심 발언을 했을 정도니까요.”
최루리도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그래도 아시잖아요. 정치인들 은퇴 발언은 대부분 쇼라는 거. 실제로 은퇴를 하더라도 곧 국민이 원해서라는 미명 아래 돌아오겠죠.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요?”
하지만 백철웅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광우 의원도 고민이 많습니다. 당대표로서 역량의 한계를 느낀다며 힘들어하더군요. 만약 이번 총선에서 민주통일당이 지면 정말로 은퇴하려고 할 겁니다.”
나는 이광우 의원을 떠올리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고, 거물급 정치인이었지만 딱히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남북정상회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 상황에서 이광우의 은퇴는 기정사실이로군.’
나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뉴스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해 주세요. 이기고 지는 건 민심이 결정할 일입니다.”
“네! 사장님.”
그렇게 회의가 정리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백철웅이 헛기침을 하더니 할 말이 있다고 하였다.
모두가 다시 자리에 앉아 백철웅의 입을 주시했다.
“흠흠. 갑작스럽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돼서 좀 미안하기도 한데.”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죠.”
“그…….”
백철웅이 평소와 다르게 지나치게 뜸을 들였다.
그는 답답했는지 넥타이를 풀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여러분. 저 이번 총선에 출마합니다.”
“네?!”
* * *
퇴근 후.
나는 백철웅과 함께 그가 자주 들르는 광화문의 LP 바에 왔다.
술집 주인이 우리를 반겼다.
“와! 우세진 사장님. 정말 오랜만에 오셨군요!”
“허허. 이 사람 참. 정작 단골인 나는 눈에 안 보이는가 보지?”
“아이참. 백 사장님은 그제도 오시지 않았습니까. 제 마누라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때 마시고 남은 거 바로 세팅해 줘요.”
“네, 편한 자리에 앉으십시오.”
우리는 예전에 앉았던 곳과 동일하게 창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된 나무 테이블은 손님들이 흘린 위스키로 얇게 코팅이 된 듯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곧 위스키와 안주가 세팅되었다.
나는 백철웅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치…… 포기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자 백철웅이 묘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포기라. 아뇨. 단 한 순간도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잠깐 잊었던 적은 있지만요.”
“집에는 이야기하신 겁니까?”
“물론이죠.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여러 번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뭐라던가요?”
“오래전부터 제 꿈이 정치라는 걸 알기에 별다른 반응은 없더군요.”
“그랬군요.”
“오히려 아들 녀석이 그러더군요. 잘해 보라고요.”
“그런데 백 사장님.”
“네.”
“지금도 예전에 이 자리에서 제가 물어봤던 거랑 같은 이유입니까?”
“그때 제가 뭐라고 그랬죠? 하하.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정점에 오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묻자 백철웅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그런 건 꿈꾸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선배인 이광우 의원이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보니까 더더욱 그렇고요. 그 양반. 정말 학창 시절 당시 엄청난 인재였거든요. 인근에 적수가 없었습니다. 또래는 물론 선배들까지요.”
그가 말한 바를 알 것도 같았다.
초엘리트였던 이광우도 힘들어하는 정치를 자신이 한다고 해서 정점에 오르는 건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어떻게 말이죠?”
“제가 그동안 하고 싶어 했던 걸 해 보는 걸로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 사장도 잘 알다시피 제가 지방지 기자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최초의 소셜언론인 오프라인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고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언론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힘쓰고 싶습니다. 기자들이 더 좋은 생활을 하고,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요.”
“멋지십니다. 백 사장님. 그런데 그건 지금 오프라인을 통해서도 충분히 실현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내 말에 백철웅이 고개를 저었다.
“오프라인 이외의 언론사는 여전히 예전의 적폐와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이 갖는 열패감과 무기력함은 날로 커지고 있고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기자협회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오프라인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사 기자들의 만족도는 기대 이하였다.
그들은 오프라인처럼 좋은 기사를 쓰지 못하고, 각종 이해관계에 따라 기사를 생성하고 있었다.
낙후된 시설과 오래된 사내 복지정책, 날로 어려워지는 근무 환경 등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기레기라고 손가락질받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우 사장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기자란 사회의 횃불과도 같은 존재였어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정의를 추구하는 그런 선지자에 가까웠죠. 메이저 언론사 기자 대부분이 스카이 출신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네, 사장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에 대한 큰 기대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기자가 언젠가부터 기레기라고 불리며 무시당하고 천대를 받고 있어요. 이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네, 그래서 저희 오프라인은 그런 한국 언론 환경을 바꾸자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네네. 그런데 이제 오프라인 이외의 기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말이죠. 오프라인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싶습니다.”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단순히 정점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닌.
한국의 언론 환경과 기자들을 위해 힘을 쓰고 싶다는 그 마음.
나는 그에게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래서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기로 하셨습니까?”
내 말에 백철웅은 단숨에 스트레이트 잔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국일당?”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으며 내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무소속으로 나갈 생각입니다.”
“무소속이요?”
“네. 그것만이 한국 언론을 개혁하자는 제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그건 너무 어렵…….”
나는 말끝을 흐렸다.
이번 선거에 나가려는 백철웅 본인이 나보다 그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소속보다 유력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게 좋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는 여당인 국일당의 공천을 받는 게 유리했다.
그게 아니면 이광우 의원과의 인맥을 통해서 제1여당인 민주통일당의 공천을 받거나.
무소속은 정말이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당선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선거구는 어디로 생각하시는데요?”
“종로구.”
“네?! 여기 종로구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종로구가 어떤 곳인가.
청와대를 비롯하여 각종 정부 시설은 물론 주요 언론사의 본사가 즐비한, 대한민국과 서울의 심장부였다.
오죽했으면 출마자 대부분이 거물급 정치인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고 불리겠는가.
“굳이 종로구에서 출마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이죠. 대한민국 메이저 언론사 대부분이 종로구에 밀집해 있어요.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주한미국대사관 등 중요 시설이 모두 이곳 종로구에 있기 때문이죠.”
그의 말이 맞았다.
중요 시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취재의 편의성과 신속성을 위해 주요 메이저 언론사들은 이곳을 베이스로 하여 본사를 세웠다.
하여 종로구는 정치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언론의 심장부이기도 했다.
“말씀은 동의하지만 그래도 너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로 당선을 꿈꾸시는 거라면 다른 지역으로 출마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백철웅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