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00)

“이미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틀 뒤면 후보자 등록 기간입니다. 저는 종로구에 나갈 겁니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 확고하여 이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이광우 의원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네, 이미 여러 차례 조언을 구한 상태입니다.”

“뭐라던가요?”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 제 진정성을 믿는다면서요.”

“진정성이라…….”

나는 그에게 건배를 제의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백 사장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뒤로 뮤지컬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명곡인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가 흘러나왔다.

오프라인의 공동사장인 백철웅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등록은 언론의 큰 조명을 받았다.

하나는 그의 출신이 언론사 대표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종로구라는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의 배짱 덕분이었다.

<오프라인 창립자.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 선언>

<정치 신인 백철웅이 종로구에 무소속으로 출마 선언한 이유>

<언론사 대표 출신 백철웅의 출마…… 다크호스인가 무모한 도전인가>

종로구는 대한민국 정치의 심장부답게 총 10명의 후보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당선이 유력한 인물은 국일당 6선 의원인 박전명 후보와 통합민주당 5선 의원인 부수호 후보였다.

“백 사장님 포함 무소속이 4명이나 나왔네요. 그래도 역시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박전명이나 부수호겠죠.”

“맞아요. 부수호는 통합민주당 대표 출신이기도 하고요.”

“박전명 의원도 만만치 않아요. 6선 의원이잖아요? 여당 내에서 실세 중의 실세죠.”

“하긴 오죽하면 대통령의 동생이라는 별명까지 있겠어요.”

“그 두 사람과 비교하니 우리 백 사장님은 고래 사이에 낀 새우 같네요. 맙소사.”

오프라인 직원 모두가 백철웅의 출마 선언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한마디씩 던졌다.

“그런데 백 사장님이 국회의원 당선되면 오프라인에도 무슨 혜택이 있을까?”

“에이 설마. 언론 개혁을 표방하시는 분인데 그런 건 일절 없을 듯.”

“아무튼, 우리 사장님이니까 잘되셨으면 좋겠네요.”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희철은 오랜만에 직접 커피를 들고는 내 방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이야, 우 사장. 여기 커피.”

“고맙습니다. 형님. 별일 없으시죠?”

“별일은 내가 아니라 오프라인에 있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백 사장님은 도대체 뭘 믿고 무소속으로 종로구에 출마하신 거야?”

김희철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나 역시 그와 속마음은 같았다.

그러나 며칠 전 백철웅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당에 모른척하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 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진정성? 이야, 우리 백 사장님 진짜 사나이 맞네! 싸나이! 모 아니면 도! 믓지다!”

“형님이 보기엔 어떨 거 같아요?”

“뭐? 이번 선거?”

“네. 백 사장님 당선 가능성이요.”

“내가 뭘 아나. 그런 건 나보다 우 사장 같이 배운 사람들이 훨씬 더 잘 알지.”

“그냥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요.”

“음. 잘 모르겠네. 뭣보다 나는 종로구 주민도 아니고.”

“그냥 단순하게 인지도 면에서 생각한다면요?”

“인지도라. 박전명 의원이나 부수호 의원은 이름도 많이 들어 봤고 TV에서 얼굴도 많이 봤지만, 백 사장님은 그 정도는 아니잖아? 물론 나야 잘 알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오프라인이 아무리 국내 최고의 언론사로 부상했다고 하지만 백철웅은 정치에 있어서는 아무런 경력도 없는 신인에 불과했다.

게다가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서 무소속 출마라니.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기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 * *

후보자 등록 이후 열흘이 지났다.

백철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처음하고 달리 백 사장님의 기사는 이제 거의 없네요.”

“인지도가 아무래도 많이 낮으니까요. 오프라인 설립자라는 것 이외에는 뭐 보여 줄 게 없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보수 언론에서도, 진보 언론에서도 기사를 거의 안 내고 있어요.”

“무소속이기도 하고, 종로구 출마잖아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거겠죠.”

“뭣보다 출마선언문에 언론 개혁을 당당히 선언하셨잖아요? 그게 언론사 입장에서는 좀 불편하고 꺼림칙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면이 있었다.

굳이 그를 조명해서 현재 언론 환경이 열악하다는 걸 드러내는 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홍지혜가 뿔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건 정말 문제인 거 같아요. 유력 후보 위주로만 보도가 이뤄지고 있잖아요.”

“맞아.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는 신문 지면이든 방송 보도든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나오기 힘든 상황이잖아? 너무 불리한 거 같아.”

최루리 역시 홍지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자 주전영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지면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분량에 제한이 있으니까요. 모든 후보를 다 다뤄 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어려운 게 사실이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중립성과 공정성 아닌가요? 모든 후보와 후보의 정책을 어떻게든 다 다룰 수 있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동의해. 그래서 우리 오프라인은 가급적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 등 인지도가 낮은 이들도 모두 기사로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래도 기계적인 중립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봐요.”

주전영은 상사인 홍지혜와 최루리에게 맞서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펼쳤다.

오프라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임직원 간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을 장려했다.

설령 상대가 사장이나 본부장이라도 막내 기자가 논리적인 의견을 개진하였을 경우 이를 힘으로 누르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오히려 수평적인 토론과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너무 장려한 탓에 사무실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일이 일상이 된 면도 있지.’

나는 뿌듯한 한편 곤란한 마음이 들어서 그들의 토론을 지켜보았다.

홍지혜가 얼굴과 손가락을 저으며 말했다.

“선거 관련 보도는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공정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요.”

“유명한 후보와 유명하지 않은 후보를 동등하게 취급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은 유명한 후보의 기사만 찾아볼 겁니다.”

“너무 염세적인 거 아닌가요?”

“염세적인 게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잖아요. 저는 한국 언론도 문제지만 독자들도 문제가 많다고 봐요.”

“독자들이요?”

“네, 결국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뉴스만 골라 보잖아요? 그러니 매체들도 독자를 잡기 위해 당파성 짙은 기사를 쓰는 면도 있죠.”

“그건 주 기자가 생각을 잘못하는 것 같네요. 언론이 기준을 잡아서 제대로 쓰는 게 우선이지 독자를 탓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매체가 독자 눈치를 안 볼 순 없으니까요.”

“아뇨. 저희는 그렇지 않잖아요? 독자의 말이 꼭 진실을 가리키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객관성과 저희만의 독창적인 시각이라고 봅니다.”

토론은 뜨겁다 못해 상대방을 말의 열기로 데어 버리게 할 기세였다.

결국 이번 토론은 내가 개입하고 나서야 진정될 수 있었다.

“주전영 기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이 지향하는 바는 공정하고 균형 있는 보도니까요. 가능하면 군소 정당이나 인지도가 낮은 후보까지 모두 골고루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하지만 우 사장님…….”

“우리가 하지 않더라도 대다수 언론에서 주 기자와 같은 생각으로 기사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좀 달라야겠죠.”

“네, 알겠습니다.”

주전영은 그제야 납득한다는 표정을 짓고는 한발 물러섰다.

그렇게 이번 토론이 끝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최루리가 다른 키워드로 토론에 불을 붙였다.

* * *

“그런데 우 사장님.”

“네?”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말씀하시죠.”

“지금으로서는 백 사장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사실이고요.”

“네.”

“그렇지만 백 사장님의 공약인 언론 개혁은 무척이나 중요한 내용이고 또한 우리 오프라인이 지지하는 가치이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그녀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공개 지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개 지지요? 우리가 백 사장님을?”

“네, 사실 외신. 특히 서양권 언론들의 경우에서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언론사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언론에서 후보나 정당을 공개 지지한다고요?”

“맞아요. 예를 들면 정론지로 유명한 뉴욕 타임스에서는 링컨 후보를 공개 지지한 이래 꾸준히 자신들이 미는 후보에게 지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최루리를 바라보았다.

뉴욕 타임스가 어디던가.

인쇄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게재한다는 좌우명 아래 전 세계 언론사 중 정론지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매체가 아니던가.

“뉴욕 타임스가 그렇게 특정 후보나 정당을 공개 지지할 줄은 몰랐네요.”

“뉴욕 타임스뿐 아니에요. 미국의 경우 많은 언론사가 사설을 통해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있습니다.”

“사설이요?”

“네, 이게 조금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기사는 어디까지나 공정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보도를 하고요. 사설을 통해서는 공개 지지를 표명하는 거죠.”

“아! 그러니까 기사와 사설을 다르게 다룬다는 말이로군요?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딴소리하기도 어려우니까요.”

“딴소리요?”

주전영이 최루리의 말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최루리가 씩 웃으며 답했다.

“잘 생각해 봐요. 만약 언론사에서 A라는 후보를 사설을 통해 공개 지지했어요. 그렇지만 A 후보에 불리한 기사도 그대로 보도합니다.”

“한국 언론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네요.”

“맞아요. 그러니까 떳떳한 거죠. A 후보를 지지하지만, A 후보의 단점까지도 다 밝히고 있으니 신뢰가 가는 거죠.”

“그런데 그것만으로 공개 지지를 한다는 건 이유가 부족한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공개 지지의 가장 큰 장점은 정책이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이에요.”

“정책이요?”

“언론사가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려면 적어도 이러이러한 이유로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바로 후보가 내미는 정책이죠. 정책을 근거로 지지하거나 반대 의사를 표하고요.”

“그거 대단히 좋은데요? 우리는 정책은 실종된 채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적 저주와 힐난만 가득하잖아요? 검증되지 않은 루머와 함께요.”

나는 주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주의적 언론 보도는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자 선거 기간에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였다.

사실 공개 지지만 하지 않은 것뿐이지 사설이든 기사든 죄다 편향적이고 당파적으로 글을 쓰는 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었다.

‘이게 정당 홍보지인지 언론사인지 감을 잡기 어려울 정도니까.’

홍지혜 역시 동감한다며 입을 열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고 들었어요. 자신들의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힘을 얻어야 정부 광고 등 혜택을 입을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혜택뿐 아니라 세무조사 등 압력이 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권력과 친분을 유지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죠.”

“회사 차원에서는 그렇고, 개인 차원에서는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걸 노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홍지혜의 말처럼 기자 출신 정치인은 생각보다 많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수시로 정치인과 기자를 오가며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파성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와 언론이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게 문제인 거죠. 서로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텐데.”

내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최루리가 다시 한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우 사장님. 이번에 저희가 한번 제대로 해 보는 게 어떨까요?”

“공개 지지요?”

“네, 기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를 하고요. 사설에서는 백 사장님에 대한 공개 지지를 표명하는 겁니다. 백 사장님의 주요 정책인 언론 개혁이야말로 저희 오프라인이 소망하고 지지하는 바이니까요.”

“으흠.”

그때였다.

취재본부의 이세윤이 번쩍 손을 들더니 말했다.

“다 좋은데요. 그거 현행법상 어렵습니다.”

이세윤이 나서자 최루리가 긴장한 듯 팔짱을 꼈다.

연대 신방과 출신의 이세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

반면 최루리는 감성적이고 텐션이 높았다.

때문에 둘은 토론 등에서 자주 부딪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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