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200)

“하하하하. 우세진 사장님 소문처럼 유머러스한 분이로군요. 그런데 이미 백철웅 사장님은 칼럼니스트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칼럼니스트로요?”

“같은 언론사에 계시면서 모르셨습니까? 백 사장님 칼럼에 공감하는 지식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강연도 자주 하시는 거로 알고요.”

그의 칼럼이 무거운 주제와 난해함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NS에서 많은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학자들까지 그의 의견에 동조하고, 그가 강연까지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포항공대에서 뇌연구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학준 교수가 말을 보탰다.

“몇 달 전에 저희 센터에 오셔서 뇌과학 연구의 가능성과 문제점에 대한 강연을 하셨는데 정말 인상적인 발표였습니다. 그때 감동을 받고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죠.”

“뇌과학이요?”

“네, 개인적으로는 이과 출신이 아니셔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정말 해박하시고 인사이트가 가득한 강연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주변 교수들도 백철웅 사장님 팬들이 참 많더군요.”

나는 이게 진짜 맞냐며 백철웅을 쳐다보았다.

백철웅은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 답이 없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름 없는 지방지의 한 무명 기자가.

나이 50이 넘어 설립한 매체가 국내 최고 언론사가 되고는.

수많은 지식인의 존경을 받는 칼럼니스트의 반열에 오를 줄.

“백 사장님이 칼럼을 잘 쓰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념을 떠나 좌우를 아우르고, 선생님들 같은 분들까지 팬으로 두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끼리는 백 사장님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신국기가 선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대기만성의 표본이라고요. 큰 그릇은 늦게 채워진다는 말에 이토록 잘 어울리는 분이 계실까요?”

해물파전과 동동주.

그리고 각종 안주가 끊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술자리가 이어졌다.

* * *

한동안 신문 지면에서 사라진 백철웅의 이름이 다시 올라온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것도 고려 일보가 1면으로 낸 특집 기사.

‘정치 1번지 종로 선거 판세 분석’이라는 거창한 제목 아래 후보자 10명에 대한 분석이었다.

박전명과 부수호 후보에 대한 설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백철웅은 가장 하단에 위치한 조그마한 공간에 배치되었다.

<오프라인 창립자이자 공동사장인 백철웅은 언론 개혁을 내세우며 무소속으로 나섰다. 그러나 언론 개혁을 내세운 것과는 다르게 그는 언론의 사명에 역행한 대표 주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설립한 오프라인은 소셜언론의…….>

그 짧은 공간에 백철웅에 대한 험담과 저주가 가득했다.

그뿐 아니었다.

뒷장을 넘기니 2면에는 어제 유세 현장에 있었던 내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다.

또한 ‘오프라인 선거법 위반 논란’이라는 허위 사실과 함께 나와 오프라인이 공정 보도 의무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기사가 한 면 가득 실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놈들!!!”

나는 즉각 고려 일보의 보도를 반박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메인 페이지에 노출하였다.

<고려 일보의 왜곡 보도에 대해 오프라인의 반박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첫째 소셜언론은 언론의 적폐가 아닌 미래입니다. 둘째 오프라인은 단 한 번도 언론의 사명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셋째…….>

<오늘 자 고려 일보 2면에 있는 기사는 명백한 왜곡입니다. 오프라인 우세진 사장은 백철웅 종로구 후보자의 유세 현장에 있었지만, 단순히 지켜보았을 뿐 유세를 지원하거나 지지를 표명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선거법과 아무런 관련이…….>

오프라인이 낸 반박 기사에 사람들이 흥미를 보였다.

<오! 오프라인이랑 고려 일보랑 오랜만에 또 붙었다!>

<흥미진진! 팝콘각!>

<백철웅이 누군지 잘 모르지만 어째 오프라인 말에 더 신뢰가 간다>

<헐. 백철웅 오프라인 공동사장이자 설립자임. 님은 우세진만 아는 듯?>

국내 최고 언론사의 지위를 다투는 오프라인과 고려 일보의 전면 전쟁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백철웅에 대한 인지도는 크게 상승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내세우고 있는 언론 개혁과 관련된 여러 정책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제19대 총선 특별취재팀장을 맡고 있는 최루리가 내 방으로 달려와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우 사장님! 백 사장님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20%를 돌파했습니다!”

“오! 누가 제일 앞서는 건가요?”

“통합민주당 부수호 후보가 33%로 선두고, 뒤이어 국일당 박전명 후보가 28%로 2위입니다.”

“그럼 백 사장님이 3위인가요?”

“네, 맞아요! 22%로 3위고, 그 밑에 후보들은 죄다 한 자리 숫자이거나 그 아래입니다!”

“반박 기사 효과가 크군요.”

“그것도 그렇지만 잊혀가고 있던 지면에 백 사장님 이름을 1면에 올려 준 고려 일보가 일등 공신이죠!”

“일리가 있네요. 덕분에 다른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이 일을 전하고 있으니.”

“나중에 두 분 사장님이 고려 일보 서동탁 사장에게 한턱 쏘셔야겠는걸요?”

“하하. 고려 일보가 X맨인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도 아직 1위와는 격차가 많아요. 이 기세가 계속 이어지면 좋으련만.”

“그러게요. 그렇다고 공개 지지를 선언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고.”

내 말에 최루리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 사장님. 공개 지지에 대해 내부에서 투표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투표요?”

“네. 구성원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겁니다.”

“구성원 의견이라……. 그렇지만 현행법상 곤란하지 않습니까?”

“우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법조문에는 그런 문구가 없잖아요? 단순히 선관위의 유권 해석일 뿐이고요.”

“고려 일보에서는 단순히 제가 유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썼습니다. 위험할 수 있어요.”

“그래도…….”

“자칫하면 백 사장님까지 곤란해질 수 있고요.”

그제야 최루리가 한발 물러섰다.

처음에는 총선 팀장 자리에 부담감을 느끼더니 막상 자리에 오르자 누구보다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최 본부장님이 이번 총선 관련하여 최선을 다해 주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공개 지지 제안도 정말 좋고요. 하지만 저희뿐 아니라 백 사장님까지 관련되어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네, 우 사장님 말에 동감합니다.”

“오히려 방금 최 본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난 건데 이런 건 어떨까요?”

“어떤?”

최루리가 내가 하는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 * *

오프라인은 팩트체크 전담부서인 오프라인 베트남의 힘까지 빌려 ‘제19대 총선 언론사 팩트체크’라는 항목을 신설하고는 분석에 나섰다.

각 언론사 기사에 대한 팩트체크 분석이었다.

<고려 일보: 총선 관련 총 384건 기사 제작. 편파적인 기사 87%. 왜곡 및 오보 23%. 근거 없는 기사 26%>

<한민족 신문: 총선 관련 총 301건 기사 제작. 편파적인 기사 85%. 왜곡 및 오보 12%. 근거 없는 기사 35%>

정파주의적 언론 보도에 지쳤던 사람들은 우리가 분석한 기사에 열광했다.

SNS 공유와 댓글이 어마어마했다.

홍지혜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거 정말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요. 우리가 직접 정당과 후보자에 대해 분석하지 않아도 주요 언론사가 낸 기사를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미난 결과가 나올 줄이야.”

“맞아. 우 사장님이 주신 아이디어였는데 이제야 깨닫는 거지만 공개 지지보다 이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었던 거 같아.”

“네, 오히려 언론사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럴 거면 그냥 공개 지지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가 낸 분석 기사는 한국 언론사의 이중적인 모습을 제대로 들춰내고 있었다.

보수 언론사에서는 보수 정당 후보의 좋은 점에 대해서만.

반대로 진보 언론사에서는 진보 정당 후보의 좋은 점에 대해서만 기사를 쓰고 있었다.

반면 상대 정당의 후보에 대해서는 기사로는 불리한 모습만을 꼬집었으며, 사설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야말로 공개 지지와 반대를 하지 않았을 뿐 기사와 사설 모두에서 노골적으로 정파성을 드러내고 있었던 사실이 증명된 것이었다.

여론은 기성 언론의 정파성과 편파성에 대한 불만으로 거셌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진실이지 이념이 아니다. 이건 정말 너무 실망이로군>

<심정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각 언론사별 보도를 분석해서 인포그래픽으로 내주니까 한눈에 확 들어오네. 반성해라 한국 언론!>

<야. 위에 댓글아. 거기서 오프라인은 빼야지!!>

여론의 어느 정도 고조되자.

나는 사설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하였다.

<한국 언론에 공개 지지를 허하라>

<이번 오프라인의 팩트체크를 통해 대한민국 언론사의 낯 뜨거운 이중성과 정파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론은 이럴 바에는 언론이 정당과 후보에 대해 공개 지지를 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공개 지지의 장점은 단순히 이중성의 해소에 있지 않다.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 * *

선거 하루 전.

백철웅 후보자 사무실은 늦은 시간까지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나는 최루리와 홍지혜와 함께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최루리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여기 오프라인프렌즈 스토어 종로점 창고 아니었나요?”

“맞아요. 일부 정리하고 이렇게 사무실을 내었죠. 종로 지역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말이죠.”

“죄송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요.”

“아닙니다. 공정 보도 의무가 있는데 주변 눈치도 살피고 그래야죠.”

백철웅은 과거 오프라인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 5층을 일부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무실 한편에는 오프라인프렌즈 스토어의 굿즈로 가득 차 있었다.

백철웅은 이전보다 훨씬 야위어 있었다.

나는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백 사장님. 식사는 제대로 하시고 계신 거죠?”

내 물음에 한 지지자가 백철웅 대신 대답했다.

“후보자님께서 밥은 제때 다 드시는데 매일 현장에 나가서 유세를 하시니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백 사장님. 지금 심정은 어떠세요?”

“뭐랄까요. 담담합니다.”

“네? 내일이 선거일인데 담담하다고요?”

최루리의 말에 백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점 후회도 없고. 결론이 어찌 나오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 사장님…….”

최루리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백철웅을 꼭 안아 주었다.

백철웅은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더니 이내 최루리의 등을 따뜻하게 토닥여주었다.

“허허. 다 큰 아가씨가 이렇게 마구 포옹을 하고 다니면 곤란합니다.”

“뭐예요 정말! 얼굴도 그렇고 몸도 미라처럼 마르고선! 안 되겠다. 우 사장님 우리 백 사장님 뭐라도 좀 먹여요! 네?”

나는 그러라고 하고는 카드를 건넸다.

최루리는 내가 건넨 카드로 피자와 치킨을 잔뜩 시켰다.

생각지도 못한 간식에 백철웅의 사무실에 있던 선거 지지자들이 환호했다.

나는 한쪽 벽에 걸려 있던 여론 조사 결과를 살펴보았다.

<통합민주당 부수호 32%>

<무소속 백철웅 29%>

<국일당 박전명 27%>

누가 당선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2012년 4월 11일 저녁 11시 59분.

개표율은 90%가 넘었지만, 여전히 결과는 안개 속이었다.

부수호와 박전명.

그리고 백철웅 3자 대결이 치열한 가운데 득표율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수시로 1등 자리가 바뀌었다.

“치열하네요. 정말.”

“으아! 빨리 퇴근하고 싶다!”

주전영의 말에 전날 야근을 했던 이덕오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나는 이덕오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TV 화면을 주시했다.

한때 백철웅의 득표율이 1위를 한 적도 있지만 금세 부수호나 박전명에게 역전을 당했다.

그리고 지금은 1등인 부수호 후보의 뒤를 이어 0.7% 차 2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홍지혜가 나에게 뜨거운 홍차를 건네며 말했다.

“정치 1번지 종로는 대대로 보수의 텃밭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박전명 후보가 유리할 거라고 봤는데 의외로 결과는 부수호 후보가 선전하네요.”

“부수호도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었거든요. 고향인 전북 지역에서 편하게 6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종로에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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