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성이 건배를 제안하더니 불쑥 내게 물었다.
“그러면 오프라인은 앞으로 우 사장님 단독 체제입니까?”
# 6장 미래비전 선포식
종로센터 9층.
종로센터는 최첨단 랜드마크 건축물이었지만 아직 몇몇 층은 공실로 남아 있었다.
9층 역시 그랬다.
오프라인은 건축주의 허가 아래 전 직원을 공실인 9층으로 모았다.
창립 2주년을 맞아 미래비전 선포식을 개최하기 위함이다.
“사장님, 다 모였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홍지혜의 귓속말을 듣고는 단상 앞으로 올랐다.
300여 명 남짓 하는 인원으로 꽉 채워진 9층은 제법 덥다고 생각될 정도의 열기로 가득했다.
5월임에도 몇몇 직원들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자 나는 환기를 지시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단상에 오른 나는 마이크를 잡고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얼굴에서 오늘 선포식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은 중대한 발표가 있어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여러분들을 한곳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다들 괜찮으시죠?”
“네에!”
“물론입니다!”
나는 그들의 우렁찬 답변을 받고는 미소를 보였다.
“잘 아시겠지만, 공동사장님이신 백철웅 사장님께서 지난 제19대 총선에서 당당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사람들의 따뜻한 박수 소리가 9층을 가득 메웠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겸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희 오프라인은 앞으로 백철웅 우세진 공동 사장 체제에서 우세진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모르고 있던 몇 명은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힘찬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나는 박수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오프라인 창립 2주년입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초기 3명에서 출발했다가 20명이 되었고. 지금은 300명이 넘는 사원을 보유하게 되었죠. 모두 여러분들의 열정과 노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내 옆에 선 최루리가 울컥했는지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홍지혜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주었다.
나는 본부장들을 가리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중에서도 지금 이 앞에선 본부장님들의 고생이 가장 많았습니다. 본부장님께 따뜻한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구성원들은 본부장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손뼉을 치는 것으로 전했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 이제 오프라인은 국내 최정상 언론사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언론사로 발돋움하려고 합니다. 또한, IT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도 더욱 확고히 할 예정입니다!”
나는 우리가 세운 해외 시장 진출 계획과 IT 플랫폼 확장 계획을 임직원들에게 들려 주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게 가능하냐며 걱정 섞인 표정을 짓다가 나중에는 확신과 믿음으로 변했다.
우리 계획의 디테일함과 명확한 타임라인 덕분이었다.
단상에 오른 홍지혜가 나 대신 해외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올해 상반기 중 저희 오프라인의 제1 지사인 오프라인 베트남의 인력을 늘려 동남아 전역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그녀가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에서 현재 베트남 지사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동남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두 번째는 하반기 중 북미와 유럽을 공략할 예정입니다.”
“북미와 유럽이라고?”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동남아와 다르게 북미와 유럽 지역은 우리보다 훨씬 발달한 형태의 저널리즘과 선진 언론사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나아가 그곳은 현대 저널리즘의 출발점 아니던가.
“많은 분들이 저게 과연 가능할까 못 미더워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은 현재 미국과 독일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주요 언론 중 몇 곳을 인수하려고 접촉 중입니다.”
“이, 인수요?!”
홍지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다수의 구성원은 모르고 있었지만, 오프라인은 비밀리에 해외 주요 언론들을 인수하려고 물밑접촉을 하고 있었다.
“이미 협상은 50% 이상 진행된 상태입니다. 아직 대외비라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여름 즈음에는 공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저희가 인수하는 언론사의 이름만 들어도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홍지혜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문에 구성원들은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발표 도중 홍지혜가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홍지혜와 자리를 바꿔 다시 단상에 섰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발표하신 홍지혜 본부장님은 곧 미국 지사장으로 발령 날 예정입니다. 최루리 본부장님 역시 유럽 지사장으로 발령 날 예정이고요. 그 밖에 지사장의 자리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언론사의 인수도 놀랄 일인데 오프라인의 상징과도 같은 홍지혜와 백루리가 이곳을 떠나 해외 지사장으로 발령이 난다니.
“여러분들의 걱정과 불안을 이해합니다. 평양 지사장으로 떠난 안재영 본부장님에 이어 두 본부장님까지 한국 본사를 떠나게 된다면 여러분들이 느낄 상실감과 불안이 얼마나 클지 말입니다.”
내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아니면 그런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해주실 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프라인 구성원분들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준비요?”
“네. 떠나시는 분들을 대신해서 메이저 매체와 대기업 등에서 뛰어난 중간 관리자분들을 추가 채용할 예정입니다. 이미 면접을 진행 중이고 곧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중간 관리자 채용 계획을 소상히 밝혔다.
마지막 순서로는 이덕오가 단상에 올라 다톡 등을 활용한 IT 플랫폼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저기 제 발표 시간인데 그렇게 다들 슬픈 눈으로 저를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저도 본부장님들이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이덕오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보였다.
“일본에서 저희 다톡의 시장 점유율은 80%에 육박합니다. 올해는 이를 동남아와 북미 지역으로 확장하여 다톡을 전 세계 메신저 시장의 제왕으로 키울 계획입니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동남아 중 베트남에는 이미 작년 말 진출하여 시장 점유율이 11%에 달했다.
“앞으로 모바일은 PC보다 훨씬 더 많은 사용자가 이용하는 공간이 될 겁니다. 저희에게는 다톡이라는 이미 성공한 모델이 있고요.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오프라인이 만든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겁니다!”
공동 사장 체제에서 단독 대표 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해외 유명 언론의 인수 계획과 각 지사장 발령.
단순히 언론사의 지위에서 만족하는 게 아니라 IT 플랫폼 기업으로의 확장까지.
모두의 얼굴에서 오늘 발표에서 받은 충격과 불안이 그대로 전해졌다.
또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근거림 또한 함께.
창립 2주년을 맞은 오프라인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 * *
미래비전 선포식을 마친 나는 박창후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내게 담배를 한 대 건네며 물었다.
“발표하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장님. 아니, 이제 대표님으로 부르면 될까요?”
“편하신 대로 불러 주세요. 사장도 맞고 대표도 맞습니다.”
나는 그가 건넨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박창후가 내게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 안 피우시는 거 아는데 괜히 같이 가자고 우겨서 죄송합니다.”
“뭘요. 마침 마음이 헛헛했는데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본부장이랑 홍 본부장의 해외 지사장 발령 발표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나는 대답 대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빨지도 않았는데 불어오는 바람 탓에 담배가 빠르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내부에선 오래전부터 준비 중이었던 거지만 직원들 입장에서는 믿고 따랐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면 실망감과 배신감이 드는 게 사실이겠죠.”
“네, 그게 가장 큰 걱정이죠.”
“뭐 그래서 지금 좋은 분들 뽑으려고 면접도 보는 거잖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그나저나 박 본부장님은 아직 못 정하셨어요?”
“저요? 그러게요. 지인이는 그냥 한국에 있자고 그러고. 저도 잘 모르겠네요.”
박창후가 난간에 기댄 몸을 돌려 건물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담배를 깊게 한 대 빨더니 ‘후’하고 뱉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연기가 어지러이 흩어지더니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베트남에 계신 고희열 지사장님 같은 분들은 정말 예외적인 경우니까요. 본사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현장에 가야 하는 건 맞습니다. 저도 동의하고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박 본부장님이 편하신 방향으로 선택하시면 됩니다.”
“최루리 본부장은 프랑스 가고 싶다고 그랬죠?”
“네, 자기는 프랑스가 좋다더군요.”
“불어도 할 줄 아니까 그렇겠죠. 하하. 저는 사실 영어도 잘 못 하고 해외 지사에 나간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만약 가시게 되면 통역은 붙여 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남은 곳은 영국이랑 독일이군요.”
“네. 현지 체류비는 섭섭지 않게 지원할 예정입니다.”
“흐흐. 알겠습니다. 사장님은 저도 갔으면 하시는 거죠?”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가능하면 본부장급에서 지사장으로 가시는 게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요.”
박창후는 담배를 다 피웠는지 꽁초를 버리고는 다시 한 대를 꺼내 피웠다.
그는 내게도 한 대를 추가로 권했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영화는 다 찍으셨죠?”
“네, 이제 마무리 편집 단계입니다. 다음 주 정도면 종합 편집본 전달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내부에서 본부장급 이상으로 해서 미니 시사회를 여시죠.”
“좋죠.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 *
나는 함께 점심을 먹자는 박창후의 제안을 사양하고 인사동에 위치한 한 갤러리로 향했다.
북한에 사진 및 영상을 담당하러 떠난 지강원 기자의 북한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다.
종로센터에서 갤러리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가 걸리는 길이었다.
나는 혼자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최측근들을 멀리 발령 보내는 것은 사장으로서 무척이나 가슴 아픈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아니면 마땅히 보낼 사람이 없다.’
원인 모를 슬픔과 죄책감이 가슴을 옥죄었다.
이런 기분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게 단독 대표의 부담인 건가. 그동안 백 사장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구나.’
새삼 백철웅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오래지 않아 갤러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갤러리 입구에는 ‘위기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대형 걸개가 걸려 있었다.
걸개에 쓰인 ‘오프라인 평양 특파원’이라는 글씨가 이색적이다.
지강원의 사진전은 북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작품들로 채워져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나는 그가 찍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앗!”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백화원 영빈관이었다.
김정은을 추종하는 일부 세력이 무력 도발을 시도했던 일촉즉발의 상황들.
사진 속에는 당시의 긴박했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긴박한 가운데 업무를 지시하는 내 모습은 물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고, 카메라로 창밖의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 등.
나는 추억에 젖어 아련한 표정으로 사진들을 감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나는 누군가와 부딪혔고 상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튕겨 나갔다.
“아야.”
나와 부딪혀 뒤로 쓰러진 상대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깜짝 놀라 상대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갑자기 죄송해요.”
그녀는 자신이 쓰러졌음에도 내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긴 생머리와 요즘 유행인 베이지색 트렌치코트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녀.
반면 구두와 핸드백은 검은색으로 맞춰 도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젊은 여성을 쓰러지게 한 게 미안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는 내 팔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