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전문 회사의 설립이요?!”
국제 민간 환경 보호 단체인 블루어스 동아시아 지부의 사무총장에 불과했던 한산하가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UN 사무총장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몽골 사막화 저지였다.
한산하는 자신의 웅변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등지의 대기업으로부터 성공적인 후원을 끌어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몽골에 녹색 만리장성을 쌓는 데 성공한 공을 인정받아 UN 사무총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그 역시 아쉬움은 있었다.
<한산하 UN 사무총장 “녹색 만리장성은 절반만 성공한 프로젝트…… 아쉬움 커.”>
바로 회귀하기 며칠 전 내가 작성한 기사의 제목이었다.
‘한산하는 녹색 만리장성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몽골의 물 부족 현상 때문에 나무를 성장시키고 관리하는 데 애를 먹었지.’
몽골은 강수량이 부족하고 무더운 날씨로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낙후된 상수도 시스템으로 인해 중간에 물이 새어 나가는 것은 물론 국토의 대부분이 상수도로 이어지지 않아 애써 심은 나무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한산하는 간절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우 대표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 * *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일주일 후.
<도세기>는 한국 독립 영화 역사상 최초로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뤘다.
관객 수를 확인한 박창후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우하하하. 이거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기, 박 본부장님. 아무도 본부장님에게 안 된다고 한 사람은 없는데요.”
최루리가 혀를 차며 말했지만, 박창후는 들리지 않은 듯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나도 손뼉을 치며 그의 성과를 치하했다.
“대단합니다. 한국 독립 영화의 기념작인 ‘음매’가 개봉 3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으니 그보다 5배가 빠르군요.”
“물론이죠! ‘음매’가 300만 관람객이니까 단순 수치상으로만 계산하면 ‘도세기’는 1,500만 관객을 돌파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천만 관객.
2009년에 개봉한 <해운대>와 <아바타> 이후 아직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박창후의 말처럼 잘만하면 <도세기>가 독립 영화의 역사는 물론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쓸지도 모를 상황.
나는 환호하고 있는 박창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박 본부장님. 천만 관객도 좋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일을 벌여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천만 관객보다 더요?”
박창후가 놀란 금붕어 같은 표정을 하고는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전화 한 통이 전부였다.
그 뒤는 일사천리.
박창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앞에 앉은 강세연을 바라보았다.
“도세기가 아시아는 물론이고 북미나 유럽 등 70여 개 국가에서 관심을 보였다고요?”
“네, 해외 배급 업무는 영화 세일즈사에서 진행하거든요. 제 지인이 운영하는 세일즈사에 문의를 해봤더니 도세기에 대한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이 무척 높았어요.”
“저기 완성본을 공유해 드린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외소개를 했기에…….”
박창후가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강세연을 쳐다보자 그녀가 부드럽게 웃었다.
“포털에 노출된 트레일러랑 줄거리 정도를 간략히 요약해서 보냈답니다.”
“아니 근데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관심을 보인다고요?”
“음. 동족상잔이라는 가슴 아프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네.”
“유명 매체인 오프라인에서 제작 및 투자를 했다는 것도 관심을 보였던 것 같아요. 게다가.”
“게다가?”
“2011 암스테르담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박 감독님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포인트였죠.”
“정말요?!”
박창후는 흥분한 듯 두 손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그는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대표님. 제가 이 정도 레벨입니다. 보셨습니까? 하하하.”
나는 그의 손을 애써 뿌리치며 말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고려되었겠지만 역시 강세연 관장님이 도와주신 덕분이겠죠. 감사합니다. 관장님.”
영화는 단순히 좋은 영상을 만들었다고 흥행과 직결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배급이었다.
‘사실 박창후 감독이 고집했던 중소 배급사와 계속 진행했으면 국내에서 이 정도 성적을 내기는 어려웠겠지.’
게다가 해외 배급 쪽은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는 상태.
그럼에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해외 소식을 알아봐 주었다는 것은 세일즈사에서 <도세기>에 엄청난 관심과 힘을 실어 주었다는 의미다.
‘좋은 배급사를 만나는 것은 영화 쪽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는 엄청난 행운이다.’
내가 강세연에게 공을 돌리자 박창후도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관장님. 그럼 그 지인이 운영한다는 세일즈사와 저희가 다이렉트로 이야기를 나누면 될까요?”
“네. 연락처 알려 드릴게요. 제가 잘 이야기해 두었으니 아마 많이 저렴한 금액으로 진행해 주실 거예요.”
나는 박창후를 먼저 회사에 보낸 뒤 강세연과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장님.”
“뭘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그나저나 집이 제주도세요?”
“네?”
그녀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손가락 하나를 입 주변으로 올렸다.
그리고 마치 만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과장된 몸짓처럼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엉뚱 맞고 귀여운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니, 최근에 기사를 봤는데 우 대표님이 제주에 사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를 관람 중이라는 사진 캡션을 봐서요.”
“아…….”
일주일 전에 있었던 <도세기>의 첫 개봉 일에 기자들이 상영관 내부를 촬영하더니 그게 기사에 삽입된 모양이었다.
“고향이 제주도는 아니지만, 사정이 있어서 지금 부모님은 제주도에 계십니다.”
“그랬군요? 저도 제주도를 참 좋아해서 자주 놀러 가곤 해요. 제주에 집이 있으시다니 부럽네요.”
“관장님은 제주에 별장은 없으신가요?”
“별장이요? 아쉽지만 제 명의에 별장은 없네요. 이번 기회에 하나 장만을 할까 봐요.”
그녀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 * *
비 오는 금요일.
한남동에 위치한 한 클래식 바 주변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전체 좌석이 10자리도 되지 않을 만큼 좁았지만, 내부 인테리어와 조명은 마치 영국 현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휴가차 다시 남한으로 귀환한 안재영이 내게 고급 위스키를 따르며 말했다.
“그래서 기존 본부장들을 죄다 해외에 보내겠다고?”
“그래. 방법이 없잖아.”
“그러네. 하긴 그러니까 내가 지금 평양에 있는 거기도 하지만.”
안재영과 나는 곧바로 스트레이트 잔에 든 위스키를 그대로 목으로 넘겼다.
뜨겁고도 부드러운 위스키가 빠르게 몸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은 뭐래?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고?”
“불만이라기보다는 불안감을 보이는 이들은 있지. 박창후 본부장은 결혼도 했고, 한 번 유산하기도 했잖아. 출산 때문에 고민이 많나 봐.”
“그럴 수 있지. 긴급하게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인데 말이 안 통하면 곤란하기도 할 테고.”
박창후, 김지인 부부는 속도위반으로 빠르게 결혼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첫 번째 아이는 유산되고 말았다.
이후 그들은 꾸준히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저번에 언제 술 마시면서 박 본부장님이 그러더라. 시험관 아기도 생각해 보고 있다고.”
“그랬어? 그건 몰랐네.”
“지인 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봐. 시댁 쪽에서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나와서.”
“저런. 힘들겠네.”
“박 본부장님 본인은 뭐래?”
“고민 중이긴 한데 만약 가게 된다면 영국보다는 독일을 더 선호한다고 하더라. 최 본부장은 프랑스, 홍 본부장은 미국으로 결정 난 상태고.”
“독일이라. 일단 선진국이니까 의료 시스템이나 이런 건 한국에 절대 뒤지진 않을 텐데 한번 잘 설득해 봐. 이 기회에 해외 경험도 하면서 외국 생활도 해 보면 좋잖아. 아 맞다!”
“응?”
안재영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 외국에 가면 당분간 시댁 식구들 만날 일도 없을 거 아냐? 그런 걸로 지인 씨에게 어필해 보면 좋을 거 같은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아무튼 아이디어 고맙다.”
“근데 그럼 영국에는 누구 보내려고? 마음 같아서는 내가 영국에 갔으면 좋겠구먼.”
“미안하지만 넌 당분간 평양에 있어 줘야 해. 사실 거기가 가장 취재하기는 곤란한 곳이니까.”
“그건 그렇지.”
연거푸 스트레이트 잔으로 마신 우리는 바텐더에게 아이스 버킷과 온더록스 잔을 주문했다.
“영국에는 외부 인사를 보내려고.”
“외부 인사?”
“응. 이채선 기자라고 단향 신문 베테랑 기자 있어.”
“이채선 기자라면. 전에 우리 회사 견학 왔던 사람 아닌가?”
“맞아. 그때 인연으로 가끔 연락하고 있었는데 계속 우리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서.”
“그랬어? 내가 알기로는 실력도 있고 인품도 괜찮은 사람 같던데 불러오지 그랬어?”
“괜히 오프라인에서 메이저 매체 기자들 빼간다는 이야기 들리면 피곤해지니까. 너만 해도 고려 일보 에이스 빼갔다고 한참 말이 돌았잖아.”
“하하. 에이스는 무슨. 그런데 이채선 기자는 영국에 가겠대?”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닌데 예전에 영국 특파원 경험도 있다고 하니 괜찮을 것 같아.”
“그렇군. 단향 신문이면 진보 쪽에서는 가장 큰 신문이기도 하고 베테랑 기자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영국 특파원 경험도 있고.”
“그렇지? 우 사장님이 안 계시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 기존에 본부장들마저 다 해외로 보내면 어쩌려고?”
“극복해야 할 성장통이니까.”
성장통이라는 말에 안재영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대표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고생이 많다.”
“너야말로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 북한 쪽은 별일 없고?”
북한이라는 말을 꺼내자 안재영이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작은 바 내부에는 남자 바텐더 한 명이 전부였다.
그는 내 쪽으로 몸을 가까이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어느 정도로?”
안재영이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오늘내일하고 있어.”
“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팔짱을 끼고는 주황빛 조명을 바라보았다.
‘원래대로였다면 작년 겨울에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반년이나 더 살아 있으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진 않은데.’
문제는 북한 내부의 동요였다.
김설송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임명되었지만, 아직 여성 위원장을 겪어 보지 못한 북한이었다.
김정은이 아니더라도 내부에서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김설송 측은 어떤데?”
“매일 그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지. 권력 이양을 준비하는 것으로도 보이고 사실 지금 북한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그녀니까.”
“너한테는 따로 언질은 없고?”
“특별한 메시지는 없어. 언제나처럼 취재 편의는 잘 봐주고 있고.”
“북한 내부 상황은 어떤 거 같은데?”
“표면적으로는 다들 김설송을 차기 위원장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그 속까지야 알 수 없지. 저번처럼 김정은 추종 세력의 반란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그래도 내가 봤을 때는 김설송이 여간내기가 아냐. 웬만한 남자들보다 훨씬 더 잘한다. 개인적으로는 스무스하게 넘어갈 것 같고.”
“그렇단 말이지?”
재벌가에서 자란 안재영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김설송이 정말로 북한의 권력을 꽉 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강원 기자가 개최한 북한 사진전으로 옮겨왔다.
“지강원 기자는 어떤 거 같아? 만족하면서 다니나?”
“응. 북한 기자들하고 사이도 좋고, 본인 만족도도 높더라.”
“다행이네. 얼마 전에 북한 사진전도 보고 왔는데 좋던데?”
“그렇지? 사진은 나도 좀 봤는데 사진 기자만 하기에는 좀 아깝더라. 예술 작품에 가깝던데.”
“나도 그 생각했다. 지 기자한테는 혹시라도 나중에 작가할 생각 있으면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까 열심히 하라고 해 줘.”
“그래. 그 이야기 들려 주면 좋아하겠다. 그런데 너 말이야.”
“응.”
“혹시 세연 누나하고 만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