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00)

“그건 좀 신기하네요.”

“그렇죠?! 제가 아랫사람들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 혼자 왕따는 아닌지 걱정도 돼요.”

강세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육각 모양의 지붕이 겹쳐 있는 정자의 난간에 살짝 걸터앉았다.

하이힐에 눌려 비명을 지르던 그녀의 발가락이 잠시 한숨을 돌리는 것 같았다.

정자 앞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이 운치 있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저희 회사 안재영 본부장이랑은 어릴 때부터 잘 아는 사이라면서요?”

“네?!”

강세연은 깜짝 놀란 듯 내 쪽을 보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 넘어졌다.

나는 빠르게 두 손을 내밀어 그녀의 등을 받치고는 다시 위로 올려주었다.

강세연이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가다듬었다.

하마터면 연못에 빠져 봉변을 당할 뻔했다.

“괜찮으세요?”

“네에. 덕분에요. 고, 고맙습니다.”

“제가 괜한 질문은 했나 보군요. 이쯤 해서 다시 돌아가시죠.”

강세연이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우리는 다시 돈화문으로 걸어 나와 각자 택시를 잡고는 헤어졌다.

창문 밖으로 조금 전까지 강세연과 함께 걸었던 익선동 거리가 보였다.

나는 조금 전 입 밖으로 뱉은 말에 두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괜한 이야기를 했나.’

클래식 바에서 안재영이 누차 강세연에게 자기가 한 말을 절대 말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세진아. 세연이 누나가 너에 대해 나한테 물어봤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알았지? 그럼 나 진짜 죽어! 응?!”

# 2장 죽음

내 사무실에는 전화기가 두 대다.

일반 전화 한 대.

그리고 북한 지사와의 직통 전화한 대.

사실 두 번째 전화기를 사용한 것은 설치 후 딱 한 번뿐이었다.

실제로 연락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설송의 배려로 다톡과 같은 메신저는 물론 스마트폰 통화, VoIP를 통한 화상 전화, 인터넷, 메일 등이 모두 연결될 상태에서 굳이 일반 전화를 쓸 일이 없었다.

그랬던 직통 전화가.

부리나케 울리고 있었다.

나는 사태의 긴박성을 깨닫고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

“우세진입니다.”

-대표님! 평양 지사 안재영입니다!

“네, 갑자기 무슨 일로?”

-우려하던 일이 결국 일어났습니다.

“설마?”

-네, 김정일이 조금 전 자택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 지도자이자 국방위원회 위원장.

유일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강압적인 통치를 일삼고 북한 주민들을 억압한 것은 물론, 국제 단위의 테러를 자행함으로써 세계의 지탄을 받는 등 그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오프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남북정상회담에서 획기적인 제안을 한 것은 분명 그의 공이었다.

“북한 매체에서도 발표했습니까?”

-저희랑 같이 내보내기로 입을 맞췄습니다. 전화 끊으면 곧바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사망 이유는 뭡니까?”

-급성 심근경색이라고 합니다. 평소 심장이 좋지 않기도 했고요.

“김설송은요?”

-장의위원회를 구성 중입니다. 장의위 가장 꼭대기에 이름이 있는 거로 봐서는 공식적인 후계자로서 발표될 것 같고요.

“알겠습니다. 또 연락하겠습니다.”

안재영과 전화를 끊자 묘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그래도 직접 인터뷰를 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죽었군.’

김정일과의 인터뷰를 회고하는 사이.

오프라인 평양지사에서 긴급기사가 떴다.

안재영이 쓴 기사였다.

<[속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심근경색으로 사망>

나는 즉시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다.

거치는 사람 없이 곧바로 이국대가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님. 북한 소식 들으셨습니까?”

-네, 방금 안기부 통해서 보고받았습니다, 응?

잠시 수화기에서 정적이 흘렀다.

-허허. 오프라인 기사도 바로 떴군요. 오프라인 정보통이 빠르긴 빠릅니다. 기사를 쓴 시간까지 고려하면 청와대보다 빠른 속도군요.

“그러라고 설치한 평양 지사니까요.”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곧바로 북한으로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엄청난 특종이기도 하고, 김정일이나 김설송 모두 저와 엮인 일들이 많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저도 조문 차 북한에 올라가긴 할 텐데 조금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재 전군 비상 경계 태세이기도 하고 군 및 관료들과 상의도 해야 하고요.

“네, 아무리 남북이 화해 무드라고 해도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죽었으니까요.”

-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 전세기를 내어 드릴 테니 통일부 장관이랑 먼저 올라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프라인은 ‘김정일 사망 특별 취재팀’을 긴급 구성하고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떠났다.

* * *

박고선 통일부 장관.

일각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전형적인 한량 스타일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무색무취한 인물이라고 했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행정학과 교수로 조용히 지내던 그가 통일부 장관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순전히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던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세상 차암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그 여-엉원할 것 같던 김정일도 시간은 거스를 수가 없군요.”

옆자리에 앉은 박고선이 옆집 할아버지 같은 말투로 말을 건넸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인간이니까요. 인간은 모두 다 죽죠.”

“허허어. 그렇긴 합니다마는. 그런데 그으거 아십니까?”

“어떤?”

“우 대표님 때문에 통일부에서 할 일이 어엄청 나게 늘어서 다들 야근이 일상입니다.”

“그렇군요. 본의는 아니지만 미안하게 됐습니다.”

비상 상황에서 무슨 이런 한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는 내 기분 따위는 관심이 없는 듯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덕분에 저도 매애일 결제해야 할 서류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대학에서 교수나 하는 건데 말입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전선에서 가장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할 통일부였다.

그런 곳의 수장이라는 자가 이런 한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열이 올라왔다.

“그러게요. 바쁘실 텐데 이번 조문이 끝나면 한직으로 내려가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대통령이나 되어야 연금을 받지 장관은 해봤자 연금 한 푼 못 받습니다. 그으저 욕만 먹는 명예직이죠. 이 자리에 와서 보니 왜애들 그렇게 사람들이 이걸 하고 싶어 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장관님은 어쩌다가 장관을 하셨습니까?”

“저요? 국대가…… 아, 아니 이국대 대통령이 저랑 막역한 사이입니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 부모님들끼리도 잘 알죠.”

“장관이라는 자리가 단순히 대통령과 친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닐 텐데요.”

박고선은 일말의 자존심도 없는 듯 그저 웃으며 답했다.

“우 대표님도 언론사 대표니 자알 아시겠지만 제가 장관 될 당시에 야당에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여러 명의 후보를 낙마시키지 않았습니까. 결국, 인재가 없어서 저까지 오게 되었죠. 허허어. 인생 참 오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가 스스로 언급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평양 순안 국제공항 활주로가 보였다.

* * *

예상과 다르게 북한 내부는 무척이나 차분했다.

평양 시민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차분하게 김정일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안재영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수상한 움직임이나 반란 분위기는?”

“전혀. 보시다시피 조용하고 평온합니다. 후계자는 김설송으로 굳어진 것 같고요.”

“불행 중 다행이군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김설송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단순히 평양 지사에 있는 안재영이나 지강원의 신변이 위험한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문제였다.

‘자칫 잘못하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려 전쟁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지.’

다시금 김설송이 얼마나 치밀하게 권력 장악에 몰두하였는지, 그녀의 능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혹시 김설송에게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습니까?”

“네, 지금은 장의위 준비로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한 그 날 저녁.

내가 머물고 있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김금철이 찾아왔다.

그는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말을 건넸다.

“부위원장 동지께서 찾으십네다.”

“부위원장이라면?”

“김설송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말입네다.”

“알겠습니다. 앞장서시죠.”

나는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김설송의 숙소에 도착했다.

김금철이 문을 열자 검은색 상복을 입은 김설송이 나를 반겼다.

조금은 수척한 얼굴이었다.

“어서 오시라우. 우세진 동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고맙습네다. 불편한 건 없디우?”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 불편한 건 없습니다. 아버님께서 평소 심장이 안 좋다 들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네.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이자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 동지 역시 심장이 안 좋았습네다. 집안 내력이디요. 당뇨가 있고 간 질환도 있고 오래전부터 몸은 좋지 않으셨습네다.”

“그렇군요. 설송 씨. 아니, 부위원장께서도 그럼?”

“저는 다행히 어릴 때부터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을 꾸준히 해서 아직까지는 별일 없습네다. 하하. 벌써부터 저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겝니까?”

“인간은 건강한 게 최고니까요. 오래 사십시오.”

김설송은 조금 감격한 듯 잠시 말이 없더니 거실로 나를 안내했다.

“영결식은 일주일 뒤에 금수산기념궁전홀에서 진행할 예정입네다.”

“네. 부위원장님께서 장의위원장을 맡았다 들었습니다.”

“그래야디 않겠습네까.”

북한 사회는 특이하게도 장의위원회 명단에 오른 이름 순서로 내부의 권력 서열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김설송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왔고, 장의위원장은 자연스레 그녀의 몫이었다.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당시 김정일이 장의위원장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밖에 별일은 없습니까?”

“별일이야 있겠습네까. 사실 북남정상회담 때가 가장 큰 고비였고, 이후에는 평탄합네다.”

“그 이후 계속해서 권력 이양에 집중하셨군요.”

“하하. 제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건 아마 우세진 동무 한 명뿐일 겝네다.”

그녀는 한참 동안 웃더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잘할 겝네다. 내래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릅네다. 북조선을 그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부유 하고 강대한 나라로 이끌 겁네다!”

그녀의 표정은 확고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부디 그러시길 기원합니다.”

* * *

남한 정부는 김정일 사망 첫날 박고선 통일부 장관을 임시조문단으로 보낸 이후.

일주일 만에 이국대 대통령 내외와 정부 관계자.

그리고 정재계 주요 인사들과 함께 대규모 조문단을 꾸려 북한을 방문하였다.

‘회귀 전만 하더라도 당 내부의 강경론에 따라 정부 조문단은 보내지 않았는데 놀라운 일이군.’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방문하기 전까지 먼저 북한에 도착한 박고선이 그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내내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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