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지 않더니, 실로 무능하기 짝이 없군.’
나는 오프라인 평양 지사로 떠나기 위해 안재영과 함께 아침 일찍 차를 타고 나섰다.
그리고 창밖으로 박고선이 머무는 숙소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안재영이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통일부 장관 때문에요.”
“박고선 장관이요?”
“네. 살다 살다 저렇게 무능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뭐 아시다시피 당시 통일부 장관 후보자 3명이 야당의 반대로 죄다 낙마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청와대에서 내민 카드가 무색무취 박고선이었고요.”
“그건 아는데 지금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곳이 통일부 아닙니까. 답답합니다. 정말.”
“이국대도 답답할 겁니다. 그렇다고 내치자니 마땅한 인물도 없고.”
“인물이라…….”
불현듯 백철웅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북한과 관련하여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지나가는 투로 툭 뱉었다.
“백철웅 회장님은 어떻습니까?”
“백 회장님이 왜요?”
“통일부 장관으로 말입니다.”
“네? 이제 갓 국회에 진입한 초선의원입니다. 아무런 기반도, 지지 세력도 없고요.”
“지지 세력이 없었다면 감히 종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건 불가능했겠죠.”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장관은 또 다르지 않습니까.”
“박고선 같은 사람도 저렇게 장관 자리에 올라 탱자탱자 노는데 백 사장님이 훨씬 더 잘하실 것 같군요.”
박고선에 대한 우려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하필이면 김정일 영결식 당일에.
* * *
금수산기념궁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최고 지도자였던 김일성이 생전에 사용하던 공간으로 그가 죽은 이후에는 그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고 있는, 어찌 보면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였다.
궁전 1층에는 거대한 홀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앙에 김일성의 아들이자 북한의 2대 지도자인 김정일이 누워 있었다.
인민복을 입고 있는 그는 편안한 얼굴로 머리에 베개를 베고는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색 천을 덮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케이스 안에 안치된 그의 주변은 화려한 꽃들로 가득했다.
바로 그 앞에서 김설송이 검은색 상복을 입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금 더 클로즈업해서, 오케이. 좋아.”
박창후가 현장을 지휘하며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다.
김정일 영결식은 오프라인이 독점으로 전 세계 생중계를 진행하였다.
덕분에 금수산기념궁전 홀에는 곳곳에 오프라인 스태프가 현장을 찍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또한 지강원은 여기저기를 오가며 김일성의 시신과 남북한 고위인사의 모습을 찍었다.
김정일의 시신 옆쪽에 자리한 나와 안재영은 가만히 서서 김정일을 바라보았다.
‘그도 결국은 죽음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어.’
그런 생각을 하며 서 있는데 안재영이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저거 시신 영구보존하는 비용이 얼만지 아십니까?”
“얼만데요?”
“초기 세팅에 10억 원. 연간 유지에 매해 10억 원가량 든답니다.”
“적지 않은 예산이군요.”
“그리고 이 공간도 기존에 김일성 집무실을 궁전으로 화려하게 개조하면서 9,000억 이상을 썼고요.”
권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죽으면 끝인 것을.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배를 끝낸 우리는 일행을 따라 금수산기념궁전 밖으로 나왔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궁전 밖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오열하면서 한때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때였다.
숙소에서부터 얼굴이 좋지 않았던 박고선이 휘청거리더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이국대가 빠르게 그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아니, 박 장관.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아이고오. 어제 방에서 과음해서 그런지 영 피곤하네요.”
“아니, 오늘 이렇게 중요한 행사가 있는데!”
이국대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추태는 그만 부리고 얼른 정신 차리세요!”
“저기, 각하. 저는 뒤에서 좀 쉬면 안 될까요?”
“이 양반이!”
김설송을 비롯한 북한의 고위 관계자들이 매서운 눈으로 박고선을 노려보았다.
먼저 입을 뗀 것은 김설송이었다.
“몸이 안 좋으면 참석을 하지 말든지, 뭐 하는 작태입네까. 북조선 주민들과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네다. 정신을 차리든 뒤로 빠지든 날래날래 결정하시라우!”
“나이가 드니까 몸이 예전 같지 않네요. 그럼 저는 뒤에서…….”
비굴하게 웃으며 뒤로 빠지려던 박고선을 이국대가 강하게 잡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 장관. 정신 차리십시오. 여긴 평양입니다.”
“으…….”
이국대의 윽박에 박고선이 깜짝 놀라더니 다시 몸을 추슬렀다.
평양시민들이 영문을 몰라 웅성거리다가 갑자기 터진 대포 소리에 움찔거렸다.
펑! 펑! 펑!
조포(弔砲)가 터지며 다음 행사 순서를 알렸다.
김설송은 무거운 얼굴로 운구차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이군.’
김정일의 대형 영정 사진이 실린 차량을 선두로 화환을 실은 차량과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V자 형태로 무엇인가를 호위하고 있었다.
김정일의 시신이 실린 운구차였다.
운구 차량의 뒤를 따르는 차량 중 한 대에 탑승한 나와 안재영은 박고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재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능한지는 알았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이국대의 실책입니다. 저런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앉히다니.”
“동의합니다. 전 세계에 생방송 되는 현장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전날 과음을 했다는 게 혼자 술을 마신 건가요?”
“설마요. 지인들과 같이 마셨겠죠. 기본이 안 된 사람입니다, 정말.”
한낱 에피소드에 그칠 수도 있지만 저런 자를 장관 자리에 계속 둘 순 없었다.
“이따 이국대 대통령과 이야기를 좀 나눠 봐야겠습니다.”
“네? 어쩌시려고요.”
“박고선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빨리 바꾸지 않으면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망신살을 뻗칠 거라고.”
“대통령도 이번 일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지 않았을까요? 본인도 엄청 창피했을 겁니다.”
“현 정권하의 통일부가 초기에는 이름뿐인 조직이었다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에는 빠르게 바뀌었어야만 합니다.”
“네, 이국대도 이렇게 빨리 남북 관계가 진전이 이뤄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그동안은 자신의 허수아비를 세워 둔 것일 테죠. 실책입니다.”
“인사가 만사입니다. 혹 우리 오프라인 내부에는 저런 인물이 없는지 안 본부장님도 신경 써 주세요.”
“네, 대표님!”
운구 행렬은 3시간여 동안 평양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김정일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그렇게 18년간 철권 통치를 자랑하던 김정일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 * *
남측 조문단은 북한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김설송과 이국대의 면담 시간을 가졌다.
김설송은 이제 실질적인 북한의 지도자였고, 이에 따라 두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였지만 특별히 나는 그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둘만 있으면 불편하다며 중재자로 나를 부른 것이다.
김설송이 먼저 예를 갖췄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평양까지 조문을 와 주셔서 북조선 주민들을 대표해서 감사 말씀을 드립네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와야 하는 자리였고, 장의위원장으로서 부위원장님이 고생 많으셨습니다.”
“통일부 장관은 몸이 좀 괜찮습네까?”
“안정을 취했더니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추태를 보여 드렸군요.”
“추태까지야. 앞으로 북남이 서로 이야기 나눌 것들이 많은데, 주무부처 장관께서 몸이 그리 불편하시니 걱정이 많이 듭네다.”
김설송은 직설적인 여자였다.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했지만 명백히 박고선에 대한 불만이었다.
내각의 구성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을 살 테니까.’
그러나 박고선의 무능은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단순히 이번 영결식에서의 해프닝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할 김설송이 아니었기에 이국대의 시름은 깊어갔다.
이국대는 왼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말했다.
“제 불찰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좀 부탁드립네다. 그리고 우세진 동무.”
“네.”
“이번 영결식에 대한 해외 반응은 좀 어떻습네까?”
“예전 김정일 위원장 인터뷰만큼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유튜브 조회 수는 현재 4천만 뷰를 넘었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중이고요.”
“특별히 인상적인 코멘트가 있습네까?”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말을 줄이자 김설송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정일 위원장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구나 같은 댓글들이 많더군요.”
“하하. 그렇죠. 저희가 신도 아니고 별거 있겠습네까. 그래서 그런데.”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런 말을 전했다.
“김정일 동지의 시신은 영구 보존하지 않으려고 합네다.”
“네?”
나와 안재영. 그리고 이국대가 동시에 소리쳤다.
김설송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사실 김일성 주석 때도 내부에서는 말이 많은 프로젝트였습네다. 남조선 말로는 뭐라디라? 맞다! 돈 먹는 하마라고 하디오?”
남자 셋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유일한 여성인 김설송이 호탕하게 웃었다.
“내래 달라진 북조선의 모습을 보여 드릴 갑네다. 지켜보시디요. 우리가 어떻게 변할지.”
“네. 저희 오프라인이 옆에서 지켜보겠습니다.”
“물론입네다. 많이 도와주시라우.”
* * *
<김일성 영결식 이모저모 #5. 영결식에서 박고선이 휘청거린 까닭은 전날 과음?>
<[한민족 논설실] 과음이 문제 아냐……. 진짜 원인은 장관의 무능과 대통령의 갈팡질팡 인사 전략>
<박고선 통일부 장관 “깊이 반성하며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것”>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따른 우리 정부의 공식 조문단이 3박 4일의 일정을 끝으로 서울로 귀환하자 여기저기서 준비했다는 듯 기사를 쏟아냈다.
대다수의 내용이 박고선 장관 및 통일부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었다.
박창후가 신문을 보면서 혀를 찼다.
“끌끌. 박고선 장관 나이가 이제 62예요. 무슨 70대, 80대도 아닌데 다리 힘이 그렇게 부실해서야.”
“그러니까 박 본부장님도 저 나이 먹고 그렇게 안 되려면 평소 허벅지 관리 잘하세요. 나중에 비실거리지 말고.”
“어허! 장딴지 근육 하면 또 저 박창후 아니겠습니까! 제 와이프도 그래서 저를……. 하하 이쯤 하겠습니다.”
박창후와 최루리의 만담에 집무실에 모인 모두가 왁자지껄 웃으며 농담을 나눴다.
이 모습을 조금 있으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이번 영결식 취재한다고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취재 뒤풀이 겸 곧 해외로 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서 그런데 원년 멤버들끼리 간단한 워크숍 어떻습니까?”
“워크숍이요?”
모두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해외 지사장으로 떠나시면 짧게는 1년. 길게는 몇 년을 외국에 있다 오시는 겁니다. 오늘의 오프라인을 있게 한 주역이 바로 여러분들인 만큼 원년 멤버들끼리 간단한 송별식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