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200)

“워크숍이라. 저희는 좋습니다만 혹시 대표님께서 생각하신 장소나 일정이 있으신가요?”

“일정은 7월 초 정도로 하고, 장소는 제주도 어떻습니까?”

제주도라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가 보였다.

홍지혜가 입을 열었다.

“저희 첫 워크숍 장소가 바로 제주도였죠. 지금의 오프라인을 있게 한 수많은 콘텐츠가 그때 취재했던 내용들이었고요.”

“맞아! 그때 내가 만든 제주도 맛집 콘텐츠는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걸?”

“음. 최 본부장님. 말을 정확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박 본부장님. 그게 무슨?”

“어떻게 그게 최 본부장님이 만든 콘텐츠입니까? 제가 만든 거지. 거기 나오는 맛집 대부분 제가 추천한 거잖아요?”

“어머!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실까? 분명 당시에 내가 제주도 사람인데 이런 집들은 처음이야 라고 머리를 긁적이셨던 양반이?”

“응? 제가 그랬다고요?”

모두가 웃으며 당시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한마디씩 던졌다.

홍지혜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 가게 되면 멤버들 모두 다랑쉬오름에 오르는 건 어떨까요?”

“다랑쉬오름? 거기가 어디지?”

“언니는 안 가셨던가요? 그 왜 오름의 여왕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다랑쉬오름 좋죠. 저도 찬성입니다. 안 가 보신 분들은 꼭 가 보세요. 정말 좋습니다.”

최루리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덕오가 강추를 날렸다.

다랑쉬오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홍지혜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왜 아니겠는가.

홍지혜가 오프라인에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나와 함께 다랑쉬오름에 올라 팀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이후였으니.

‘그때 홍지혜에게 팀워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홍지혜는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일정은 여러분들께서 상의해서 알려 주세요. 본부원들에게는 임원들만 놀러 간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끔 잘 좀 이야기해 주시고요.”

“네, 대표님!”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집무실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청와대에서 나를 급히 찾았다.

이국대였다.

* * *

청와대 뒤 산책길.

1968년에 있었던 1·21 사태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구역이었다.

이국대와 나는 청와대 경호처의 호위를 받으며 북악산을 올라 한양도성 곡장에 다다랐다.

둥글게 돌출된 성곽에 오르자 탁 트인 시야가 놀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다.

경복궁을 비롯한 광화문 도심은 물론 멀리 인왕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게 실로 절경 중의 절경.

경호처 관계자들이 곡장 주변 곳곳에 배치된 가운데 나와 이국대만이 곡장 전망대에 올라 주변 풍경을 지켜보았다.

이국대가 가방에서 생수병을 하나 꺼내더니 물을 마시고는 내게 건넸다.

“어떤가요? 경치가 좋죠?”

“그러게요. 출입이 통제된 곳이라 그런지 자연환경이 좋습니다.”

“그렇죠. 김신조 사건 이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곳이니까요.”

“김일성이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사건이죠?”

“그렇습니다. 미수에 그쳤지만, 당시 남북 관계가 아주 험악해진 계기가 되었죠.”

“김일성에 이어 그의 아들인 김정일까지 죽고,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시민들에게 길을 열어 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국대가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털털하게 웃었다.

“허허. 우 대표는 엉뚱한 이야기를 참 잘하는군요. 가끔은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 말은?”

“네. 남북 관계가 많이 좋아졌으니 저도 이제는 이 길을 시민들에게 오픈해도 좋다는 생각을 마침 하던 참입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청와대가 국민들과 소통하는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는 한참 동안 멀리 광화문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통일부 장관 말입니다.”

“네.”

“북측에서는 우 대표에게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까?”

“어떤?”

“그러니까 뭐 특별히 추천하는 사람이나 누가 더 좋겠다는 식의.”

“아.”

이국대 역시 통일부 장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일국의 대통령이 북측의 지도자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았던가.

나는 근처 성벽에 걸터앉아 그가 건넨 물을 마셨다.

“박고선 장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가능하면 북측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을 임명하면 대화가 수월하겠지요.”

“많이 변하셨군요.”

“허허. 우 대표도 보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으로서 수치입니다. 그런 자를 내 손으로 임명했다니.”

“흠.”

나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이국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북측에서 따로 추천한 인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바로 백철웅에 대해 꺼내는 것도 흐름상 이상하고.’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대통령께서는 따로 생각하시는 사람이 있습니까?”

“생각한 사람이라. 아시겠지만 박고선 장관 임명 당시에 야당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3명이나 낙마를 했지요. 어쩔 수 없이 꺼낸 카드가 박고선이었고요. 저로서도 고민이 많은 결정이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제 생각을 밝히자면 그건 실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책이라는 말에 이국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묻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떤 자가 좋을지.”

“내각의 구성은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저한테 여쭙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현재 남한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제 앞에 있는 대통령이시지 않습니까.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셨고요.”

“허허. 제 비위를 맞추는 이야기라면 이 자리에서는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같이 등산을 하자고 한 건 아니었으니.”

그는 내가 앉은 성벽 옆에 등을 기대더니 평소와는 다른 표정을 지었다.

“권력이란 건 말입니다. 참으로 요상스러운 겁니다.”

“말씀하시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죠. 때로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고, 뻔히 반발이 보이면서도 실행하게 되죠.”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사담이 길었군요. 앞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자면 현재 남한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 우 대표요. 그건 부정하지 않겠죠?”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부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자 그가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김정일이 죽으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말년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성사시켰죠.”

“네, 동의합니다.”

“우 대표도 한 조직의 우두머리니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고민이 많을 겁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더 말할 것도 없죠.”

“네.”

“김정일이 내린 결단은 정말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 역시 북한을 더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거겠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고요.”

순간 이국대의 표정이 쓸쓸해 보였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저리도 외로운 자리란 말인가.’

나 역시 오프라인의 대표로서 어딘가 공감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생수를 건네며 물었다.

“그래서 대통령님께서도 무언가 중대한 변화를 원하신다는 걸까요.”

“중대한 변화라고까지 하면 부끄럽고. 그냥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싶은 거죠. 이대로는.”

“사실 북한에서 따로 추천한 인사는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추천해 드리고 싶은 사람은 있습니다.”

“응? 그게 누구죠?”

이국대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백철웅 의원입니다.”

“이번에 종로구에서 당선된? 오프라인의 전 공동 대표 말입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오프라인이 북한과 이야기가 잘 통하는 언론사라는 건 잘 압니다만 그가 실제로 북한과 관련하여 무언가 이룬 업적이 있습니까?”

“그가 없었더라면 김일성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평양에 지사를 설치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저 혼자만의 업적이라고 오해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백철웅이라. 하긴 종로에서 무소속으로 나서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긴 합니다만.”

“백철웅 의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능력도 있고 북한에 대해서는 현 국회의원 중 그 누구보다 이해가 깊은 사람입니다.”

“백철웅이라.”

이국대가 한참 동안 광화문 광장 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 * *

<박고선 통일부 장관 전격 해임……. 김정일 영결식 나흘만>

<이국대, 통일장관 경질……. 직무 대행에 백철웅 의원>

<민주통일당, 백철웅 후임자 대환영 메시지 “통일부 장관에 적임자”>

대통령과의 북악산 산행 다음 날.

이국대는 박고선을 전격 해임하고는 그 후임자로 백철웅을 지목하였다.

박창후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백 회장님 국회의원 되신지, 얼마나 되셨다고 장관까지…….”

“이거 오프라인의 경사 아닌가요? 통일부 장관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잖아요!”

“맞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통령 후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자리입니다.”

최루리와 홍지혜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박창후의 말을 받았다.

그들의 말처럼 박고선의 실책 이후 통일부 장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자리였다.

김정일이 죽고, 조만간 김설송이 북한의 넘버원이 될 것이 자명한 마당에 북한과의 교류와 소통을 책임지는 자리.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많은 책임과 권한이 집중되는 권좌(權座)였다.

그래서 차기 통일부 장관 후보로 여야의 잠룡들에 대한 하마평이 분주하게 오가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그 자리의 주인으로 백철웅이 지목당했으니 오가는 말들이 끊이지 않았다.

박창후가 나를 보더니 슬쩍 물었다.

“혹시 어제 우 대표님이 이국대에게 무언가 이야기한 거 아닙니까? 두 분이서만 산행을 다녀오셨다면서요.”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부드러운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박창후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진짜 대단하십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장관 자리를 쥐락펴락하실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단지 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하기에 백 회장님을 언급했을 뿐.”

“그게 그거 아닙니까! 진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오프라인에 들어온 게 제 일생일대의 행운입니다. 정말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뿌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워크숍 준비는 어찌 되고 있습니까?”

“아, 네. 다음 주 수요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이슈도 없고요.”

“네, 그럼 장소는 제가 따로 알아볼 테니, 여러분들은 그 전에 밀린 일들만 잘 처리해 주십시오.”

“물론이죠. 매일 철야를 해서라도 문제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친 나는 곧바로 백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철웅이 다소 흥분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겁니까!

“무슨 짓은 무슨 짓이요. 회장님 잘되시라고 한 건데.”

-제발 저랑 미리 좀 상의하고 일을 진행해 주세요. 갑자기 통일부 장관 권한 대행이라니.

“백 회장님 말고는 딱히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대통령도 그렇지. 그런 중요한 걸 우 대표한테 물어서 진행해요?

“북한과의 관계가 있으니까요. 그것보다 요즘 어떠십니까?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만.”

-정신만 없을까!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보다 많습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잘해 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시간을 내시긴 어렵겠네요.”

-시간?

“네. 곧 있으면 본부장들 대부분이 해외로 떠나게 되어서 조촐하게 원년 멤버들끼리 제주도로 워크숍을 떠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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