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희는 홍보팀장을 맡은 이후 기자들이 취재하는 장면이나 내부에서 회의하는 모습 등을 촬영하여 오프라인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다.
억지로 오프라인의 성과를 외부에 알리는 것보다는 내부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것이 오프라인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인터뷰이 섭외는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모두 자기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다큐멘터리에 나가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일반인이 카메라에 나오면 얼굴이 크게 나오는 것은 물론 한국인 특유의 남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겠지.’
안 그래도 민정희가 인터뷰이 섭외에 애를 먹고 있었는데 이덕오의 제안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나는 크게 맞장구를 쳤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는 대표라서 출연 확정이지만 다른 분들은 다들 발을 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1등 한 조 이외에는 모두 출연하는 거로 어떻습니까?”
1등 조 이외에 모두가 출연한다는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우리는 가장 공정한 승부인 가위바위보로 조를 나눴는데 나를 제외하고 18명이 3명씩 총 6조로 짜였다.
“꼭 맛집이나 명소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사건·사고도 좋고 문화나 스포츠도 좋고요. 제주와 관련된 내용이면 무엇을 취재해도 무방합니다. 내용만 좋다면요.”
조가 나뉘자 모두 빠르게 민박집을 이탈.
1박 2일 동안의 본격적인 취재 경쟁에 돌입했다.
상을 타기 위한 경쟁이 아닌.
벌을 피하기 위한 경쟁 말이다.
직원들이 취재 경쟁에 돌입한 사이 나는 집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한가롭게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현관 벨이 울렸다.
농장주인 민 씨 아저씨였다.
나는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고맙수다.”
그는 밑도 끝도 없이 고맙다는 말만 전하고는 나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뭐가요?”
“영화도, 딸래미 취업도.”
그의 얼굴에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제가 한 건 별거 없습니다. 영화도 취업도 모두 민정희 씨가 스스로 이뤄낸 성취이고요.”
민 씨 아저씨는 끊임없이 고맙다는 말만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나는 멀어지는 그를 보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아침 안 드셨으면 해장국 같이 드시죠!”
오전 8시 30분.
이른 시간임에도 세진해장국에는 아침을 먹기 위해 들른 손님들이 많았다.
현지인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관광객이었다.
홍보 한번 한 적 없었는데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더니 어느새 제주 맛집으로 등극했다.
가게는 분주함으로 가득했고, 나는 민 씨 아저씨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해장국 두 그릇을 주문했다.
“여기 매일 오신다고 들었어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이제 안 그러셔도 돼요. 사람이 어떻게 매일 해장국을 먹겠어요.”
“괜찮수꽈. 멘도롱한 이 집 해장국 좋아허니.”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나저나 따님이 아주 인재입니다. 일도 잘하고 열정도 있고요.”
“정말이수꽈? 나 똘이 고와사 사윌 골를턴데, 말광량이라꽈서.”
“하하. 능력 있는 친구니 조만간 좋은 소식 들려 주지 않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민 씨 아저씨는 기분이 좋아진 듯 힘차게 해장국을 한 입 떠 입안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창후가 조장으로 뽑힌 조였다.
그들은 카메라를 이용해 식당 곳곳을 찍더니 식사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박창후가 이쪽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니, 우 대표님! 쉬신다고 하시더니 여기서 식사하고 계셨던 거예요?”
“네. 저희 집이니까요.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아하하. 세진해장국이 요즘 제주도의 떠오르는 맛집 아니겠습니까. 인터넷에 찾아보니 블로그는 많은데 기사는 없는 것 같아서 저희가 한번 콘텐츠로 만들어 보려고요.”
“여기를요?”
“네, 절대 우 대표님한테 점수 따려고 하는 건 아니고 정말로 맛집 탐방차 온 거니 오해는 마세요.”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곧 자리를 뜨더니 어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조리실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해장국이 끓여지고 있는 솥 안을 카메라로 담는 그의 모습은 진지했다.
이번 경쟁에서 절대로 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른 사람들은 뭘 취재할지 궁금하네.’
나는 각 조장들에게 현재 어떤 아이템을 취재하고 있는지 다톡으로 문자를 남겼다.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이덕오였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그래, 덕오야. 용눈이오름이라고?”
-네. 오늘 오름 몇 곳에 올라서 사진도 남기고 기사도 쓰려고요.
“좋은 생각이네. 아직 우리도 오름에 관해 다룬 기사는 없지?”
-네. 찾아봤는데 오름 관련된 기사는 없더라고요. 분명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는 콘텐츠가 될 겁니다.
제주도 마니아인 이덕오가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오름이었다.
그 커다란 덩치를 이끌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제주도에 오면 꼭 오름에 오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야트막하면서도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름은 자연이 준 제주의 선물임이 분명하다. 좋은 기사가 될 거야.’
그와의 전화를 끊고 이어서 최루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올레 사무실에 있었다.
그녀는 내게 제주올레 홍보팀장을 인터뷰 중이라고 알린 상태였다.
“최 본부장님 제주올레에는 무슨 일로요?”
-아는 동생이 여기 홍보팀장으로 내려와 있거든요! 원래 대기업 홍보팀에 있던 친군데 도시가 싫다고 여행 가방만 들고 제주도로 떠나더니 글쎄 여기서 홍보팀장을 하고 있지 뭐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인터뷰 약속을 잡았죠.
“묘한 인연이네요. 그분도 인터뷰에 흔쾌히 동의해 주셨나요?”
-물론이죠. 오프라인이잖아요? 공짜로 홍보할 수 있겠다고 아침 일찍부터 약속을 잡던데요? 응? 뭐라고? 대표님 바꿔 달라고?
최루리와 누군가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안녕하세요, 우세진 대표님. 저는 제주올레에서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서재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재희 팀장님. 우세진입니다.”
-방송에서는 자주 뵈었는데 이렇게 직접 전화로 통화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영광이에요.
“영광은 뭘요. 아침 일찍부터 저희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드리죠! 오프라인에 저희 인터뷰 기사가 실리면 제주올레에 대한 홍보가 절로 될 테니까요. 정말 감사드려요.
“최 본부장님으로부터 원래 서울에서 홍보 일하시다가 내려갔다고 들었습니다. 제주도 생활은 만족하시나요?”
-물론이죠. 올해로 만 5년째인데 대만족입니다! 우 대표님도 제주도에 집이 있다면서요? 같은 도민끼리 잘해 봐요!
“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사무실에 방문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인터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재희처럼 도시에서 생활하다 제주의 자연환경에 반해서 무작정 제주에 내려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이 직접 경험한 제주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좋은 콘텐츠가 되었다.
제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워낙에 높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제주 올레길은 고단한 도시 생활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따듯한 위로와 희망을 안겨 주면서 제주의 대표 관광 코스가 되고 있었다.
‘서울에 살다가 제주에 내려와 생활하는 사람의 인터뷰로서도 좋고, 제주 올레의 취지나 홍보 인터뷰로서도 나쁘지 않군. 좋은 선택이야.’
한편, 이수빈은 제주지방기상청을 방문해 제주도 주요 해수욕장의 자세한 기상 정보를 담은 ‘제주 해수욕장 날씨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취재하고 있었고, 김지인은 자신의 시댁 인근인 서귀포의 예쁜 카페를 취재 중에 있었다.
단 한 사람, 홍지혜로부터만 연락이 없었다.
‘그녀 성격상 단순히 맛집이나 관광지 취재를 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내 예상은 적중했다.
<대표님. 혹시 오후에 괜찮으시면 강정마을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강정마을이요? 거긴 무슨 일이죠?>
<여기로 와 주시면 직접 설명드릴게요>
강정마을이라.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곳이었다.
* * *
점심을 먹고 도착한 강정마을에서는 시위가 한참이었다.
“해군 기지 결사반대!”
“아름다운 제주에 해군 기지가 무슨 말이냐! 물러가라! 물러가라!”
“평화 강정! 기지 반대!”
50여 명 정도 모인 시위대들은 끊임없이 구호를 외치며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했다.
말없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멀리서 홍지혜가 한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남자의 키는 190㎝는 훌쩍 넘을 만큼 컸고,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분은?”
“네. 케코아 씨라고 미국 분이세요. 환경 운동가시고요.”
내가 영어로 인사를 하려는 사이.
케코아가 능숙한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케코아입니다.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우세진입니다. 한국어를 무척 잘하시는군요?”
“제 할머니가 한국 분이십니다. 덕분에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죠.”
“그러셨군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프라인 대표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제가 대표입니다만.”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멀대처럼 큰 그가 갑자기 90도로 허리를 숙이자 활동가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나는 그를 서둘러 일으켜 세우고는 장소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장소를 옮기죠.”
우리는 인근에 위치한 한 동네 슈퍼로 이동했다.
그리고 슈퍼 앞에 놓인 평상에 걸터앉고는 각자 음료수를 하나씩 시켰다.
나는 사이다를 홍지혜에게 건네며 물었다.
“혹시 이분을 취재하려던 겁니까?”
“네. 인터뷰는 오전에 마쳤고요. 케코아 씨가 대표님을 꼭 만나 뵙고 싶다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잠시만요. 꿀꺽꿀꺽. 꺼억~”
놀랍게도 한숨에 콜라를 들이켠 케코아가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서는 상황에 맞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제 고향 하와이에도 해군 기지가 건설되면서 심각한 오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군요.”
“하와이는 해군 기지가 건설된 지 오래되었죠?”
“그렇습니다. 현재는 토지 오염이 너무 심해서 농사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그 누구도 진주만에서 잡힌 해산물을 먹지 않습니다.”
“해양 오염이 심각해서?”
“네. 그뿐 아닙니다. 기지에서 사용되는 막대한 물로 인해 식수가 고갈되면서 물 부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문제가 많군요.”
“미국 의회에서도 2004년에 하와이에 건설된 해군 기지에 의한 지역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나는 잠시 음료수를 마시고는 등을 곧게 폈다.
제주의 푸른 하늘 사이로 뭉게구름이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케코아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해군 기지가 건설되면 주변 지역이 오염될 테고, 안 그래도 식수난에 시달리는 제주도의 물 부족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건설은 진행되었다.
‘제주 해군 기지는 여러 불협화음 속에서도 2016년 완공되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해군 기지 건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훨씬 더 많은 지지를 받기도 하였고.’
그러나 해군 기지 건설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하면서 공사는 오랜 기간 지연되었고,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거센 반발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궁극적으로 주민들은 물론 국가도 손해 보는 일이었지.’
나는 고민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케코아 씨. 저도 제주의 자연환경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역시! 말이 통하는 분이셨군요!”
“그렇지만 그런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국가안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케코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는 제주에 해군 기지가 건설되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인 나라로 바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주는 평화의 섬입니다. 기지가 없다면 누구도 이곳을 공격할 일은 없을 겁니다.”
“제주에는 해군 기지가 없지만 내륙에는 기지가 있습니다. 한국뿐 아닙니다. 북한도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주변에 모든 국가가 이미 해군 기지를 보유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