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200)

“그러니 먼저 이곳에서부터 평화를 실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활동가들은 평화로운 강정마을을 희망합니다.”

“힘이 없으면 당신이 그렇게 강조하는 평화도 지킬 수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분이셨군요. 홍 기자님. 제 인터뷰는 오프라인에 내보내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대표인 매체에 저의 인터뷰가 실리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케코아 씨, 그건.”

“두 번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 분 다 어서 제 눈앞에서 사라져 주시면 좋겠군요.”

나는 홍지혜를 데리고 강정마을을 빠져나왔다.

슬픈 눈빛을 한 홍지혜가 중얼거렸다.

“대표님이 그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왜요? 강한 안보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건 역사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제주도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주도를 사랑합니다. 자연도 환경도 소중히 생각하고요. 하지만 한국의 대양해군 건설은 지리적인 여건상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번 정부에서 갑작스럽게 추진했던 일도 아니고요.”

“머리로는 알겠지만 어렵네요.”

“다만 이 부분은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네?”

“지금과 같은 제주 해군 기지 건설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사업, 위법 요소 많아>

<주민 의견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진행된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제주 강정마을…… 대양해군 건설을 위한 최적의 부지인가?>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사업이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아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고, 주민 생존권을 침해하는 조치였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게다가 1심과 2심은 모두 주민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진 상황.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면 주민들과 굳이 마찰을 일으키면서 꼭 해군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해군기지 건설은 외부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강정마을은 좀 의문임. 거기 수심도 별로 안 깊잖아?>

<여러분! 구럼비 바위와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멸종 위기인 맹꽁이와 붉은발말똥게 등을 보호합시다! 강정마을을 지킵시다!>

제주 해군기지와 관련하여 10여 개의 기사를 제작한 홍지혜는 기사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 중 일부를 내게 보여 주며 말했다.

“여론이 나쁘지 않아요. 절차적으로도 적법하지 않고,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써 적정한 곳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댓글도 많고요.”

“고생하셨습니다. 하루 만에 기사를 10개나 쓸 줄은 몰랐네요.”

“찾다 보니까 문제가 많더라고요. 법원도 1심과 2심 모두 주민들 편을 들어줬고요.”

“주민들 편을 들어줬다기보다는 최초 사업 실시 계획에 대한 승인 처분은 무효이고, 이후 변경 승인은 유효하다는 일부 승소 판결입니다. 착각하면 곤란해요.”

“그래도 국방부 측에 문제가 있다는 판결이니까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걸로 아는데, 아마 다음 달쯤에 나올 예정이죠?”

“맞아요. 주민들도, 국방부도 모두 대법원 판결만 목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죠.”

“우리는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지정된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설득 근거를 마련해야겠죠.”

“네. 대표님.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제가 최대한 기사를 만들어 볼게요.”

“그리고.”

“그리고?”

“이건 한 가지 부탁할게요. 자연환경을 지키자는 프레임도 나쁘진 않지만 너무 많이 쓰지는 마세요.”

“네? 그게 왜요? 사람들에게 강정마을 선정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는 그게 가장 크게 와닿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공을 응시했다.

홍지혜가 몸을 당겨 나의 반응을 살폈다.

“홍 본부장님. 저는 개인적으로 기자는 사실과 진실에 기반을 둔 객관성을 담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대표님.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감성을 자극하는 기사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의 동물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그럼?”

“부지 선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고, 또한 최적의 부지가 아닐 가능성이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필요가 있죠.”

“네, 맞습니다. 거기에 구럼비 바위를 포함하여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오염되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홍 본부장님은 구럼비 바위가 뭘 뜻하는지 아시나요?”

“구럼비 바위요?”

홍지혜가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이죠. 까마귀쪽나무의 열매라는 의미의 제주도 사투리 아닌가요.”

“맞아요. 까마귀쪽나무는 제주 전역에서 아주 흔하게 자라는 식물이고, 구럼비 바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정마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바위가 아니라 제주도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죠.”

“그렇다고 그게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소중하다고 그 모든 자연 유산을 다 문화재로 지정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특히나 트위터 등에서는 구럼비 바위가 세계 자연 유산이라는 말이 떠돌던데 그것도 사실이 아니고요.”

“바위는 그렇다 치더라도 멸종 위기 생물들이 많이 서식하는 곳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체 서식지로 포획 및 이식을 하는 등의 보전 대책이 필요하겠죠.”

“그게 가능할까요? 만약 인간에게 너희가 살던 터전은 다른 공간으로 쓰일 터니 집을 옮기라고 한다면 대표님이라면 괜찮으시겠어요?”

“싫겠죠. 반발할 겁니다.”

“그것 보세요. 대표님도 싫은 걸 말 못 하는 생물이라고 함부로 강요할 순 없잖아요?”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라면 우리 인간은 그 어디에도 집을 짓거나 시설을 지을 수 없겠죠. 모든 공간에는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이 있을 테니까요.”

“지나치게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무분별한 개발과 건설을 지양하고 자연을 보호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선택과 집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네요. 최대한 생태계를 보전하면서도 개발은 이뤄져야 하니까요.”

“아니, 그래도.”

나는 홍지혜가 말을 하려는 걸 도중에 끊고 힘을 주어 강조했다.

“환경 기사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쓰되 가능하면 그쪽 기사보다는 절차적 하자와 부지 선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데 힘을 써줬으면 한다는 거죠. 대법원을 설득하려면 그게 더 힘이 될 겁니다.”

홍지혜는 한참 동안 내 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대표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했고 또 납득했습니다.”

“네. 그거면 됐습니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대법원의 판결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원래대로라면 대법원은 국방부의 손을 들어준다.

‘대법원 판결은 강정마을에 해군 기지가 건설되는 데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줌으로써 해군 기지 건설이 강행되는 명분을 주었다. 이를 막으려면 대법원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야.’

자연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는 게 왜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번 사안에서는 그게 핵심 포인트가 아니었다.

‘절차적 적법성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대법원 판결을 바꿀 포인트야.’

* * *

제주도에 내려왔던 원년 멤버 모두 각자의 기사를 작성하고서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중에서 박창후 조가 작성한 세진해장국에 대한 기사와 이덕오 조가 작성한 제주 오름에 대한 기사가 인기가 많았다.

박창후는 기분이 좋은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내기는 저의 승리로 끝날 것 같네요. 유튜브 조회 수가 장난 아닙니다. 다들 제주에 이런 식당이 있었냐며 방문하고 싶다고 난리예요.”

“대표님 어머니 손맛이 정말 끝내주거든요. 누구든 한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맛이죠. 그래도 제주 오름 기사도 반응이 좋아요. 제주에는 한라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곳이 있냐면서요.”

“뭐 오름도 좋긴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죠. 해장국을 이기긴 어려울 겁니다, 이 이사님. 하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회 수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건 이들 아이템이 아니었다.

홍지혜 조가 작성한 제주 해군 기지 적법성 의문에 대한 기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밝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 적법성을 어겼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아무리 해군 기지 건설이 필수라고 해도 말야>

<해군에서 맨 처음 해군 기지 건설 지역으로 뽑은 곳은 강정마을이 아니라 화순마을이지. 난 여기가 더 맞다고 생각해. 수심이 깊어서 대형 군함이 정박하는데도 딱이고>

<위에 의견에 나도 동의! 모래사장이니까 바위를 부술 필요도 없잖아. 공사비도 절약될 테고>

오프라인에서 기사를 내보내자 다른 언론사들도 이를 주요 헤드라인에 올리며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대부분 절차적 적법성이 훼손되었다는 내용이 주였다.

언론이 움직이자 여론도 움직였다.

결국 대법원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속보] 대법원,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사업 위법”>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사업, 절차적 적법성에 큰 하자 있어 승인 무효>

<국방부 “대법원 판결 존중…… 후속 대책 고심 중”>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본부장급 회의에서 이수빈이 홍지혜에게 축하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제주도 내기의 승자는 박 본부장님이 아니라 홍 본부장님인 것 같네요. 축하드려요.”

“아니에요. 이 본부장님. 제주 해수욕장 날씨 서비스도 너무 흥미로운 기사였어요.”

“헤헤. 제 아이템이 이번에 발제한 아이템 중에서는 가장 조회 수가 낮았는데요 뭘.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아이템으로 기사를 쓰신 거예요?”

홍지혜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수빈을 바라보자 그녀가 부가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이미 구럼비 바위 발파작업이 시작되었잖아요? 전체 공사도 20% 이상 진행 중이었고요. 저는 그래서 그 문제를 다루는 건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맞아요. 그렇지만 아직 남아 있는 해안이 있고, 여전히 주민들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그걸 그냥 못 본 채 넘어가기 어렵더라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대법원 판결을 이끈 건 모두 홍 본부장님 덕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홍지혜와 이수빈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박창후가 팔짱을 끼고는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다 좋은데,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된다는 건가요? 제주에 해군 기지 건설하는 것 자체가 없었던 일로 된 건 아니죠?”

박창후는 제주에 해군 기지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대양해군 건설은 무척이나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그는 홍지혜가 제주 해군 기지 건설에 대한 아이템을 가지고 기사를 쓰자 너무 늦었다면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와 홍지혜가 감정 다툼을 벌일까 봐 중재에 나섰다.

“해군 기지 건설 자체가 무효인 건 아닙니다. 다만 강정마을에 건설을 강행하는 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판결이죠.”

“그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 겁니까?”

“입지 타당성 조사를 걸쳐서 강정 해안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건설될 수도 있고, 만약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한다면 강정마을에 다시 건설될 수도 있고요.”

“도대체 그게 뭐 하는 짓인지. 어차피 건설을 할 거라면 진행 중이던 공사를 막는 건 돈 낭비 시간 낭비가 아닌가 싶네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차적 적법성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만약 박 본부장님 말씀처럼 강행이 된다면 피해를 받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나올 것이고, 향후 문제가 될 겁니다.”

“이런 말하기 뭣합니다만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할 수도 있죠. 사회라는 게 다 그렇게 이상적일 순 없잖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사이.

민정희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박창후에게 말했다.

“박 감독님. 아니 박 본부장님. 그런 식이라면 4.3사건도 똑같은 거 아닌가요? 당시 제주도에 공산주의 세력이 있었던 건 사실이잖아요.”

“아니, 그건 사안이 다르죠.”

“학살당했던 이들은 그와 전혀 무관한 민간인이었으니까 문제가 된 거잖아요! 공산주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학살을 정당화할 순 없습니다! 본부장님도 거기에 동의해서 영화를 만든 것 아니었나요!”

“그게 저…….”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는 말이 박 본부장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조차 못 했네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박창후는 반박할 수 없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때였다.

꽝!!

굉음과 함께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강하게 흔들렸다.

# 3장 조사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1층 로비를 구성하고 있던 대형 유리들이 산산이 조각난 채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또한 놀란 시민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종로센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의 풍경은 가관이었다.

회전문 옆 유리가 박살 난 채 흰색 승용차 한 대가 카페 오프의 벽면을 들이박고는 멈춰서 있었다.

최루리가 자동차 쪽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저…… 저기 김희철 사장님이…….”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살펴보자 흰색 승용차 옆으로 한 남자가 정신을 잃고 넘어서 있었다.

카페 오프의 사장.

김희철이었다.

“형님!”

나는 큰 소리로 그를 부르고는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사람들은 조금 전 승용차의 갑작스러운 돌진에 놀란 듯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얼어 있었다.

“희철 형님! 희철 형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내 말 들려요?!”

나는 그의 뺨을 치며 큰소리로 외쳤지만,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서둘러 119에 전화를 걸어 신고하고는 승용차 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종로센터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 안에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키에 노란 머리.

얼마 전 강정마을 앞에서 만났던 케코아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쪽으로 뛰쳐나갔다.

“이 자식!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내가 그의 멱살을 잡으려던 사이.

경호원들과 몇몇 오프라인 직원들이 말린 탓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지만, 그 역시 많이 놀란 듯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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